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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 통권 170호     필자 : 박애양 프린트   이메일 
풍수지탄(风树之叹)


풍수지탄은 树欲静而风不止, 子欲养而亲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라는 옛말에서 나온 말로 효도를 다 하지 못했는데 어버이가 돌아가시어, 효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옛말에 군사부일체(君师父一体)란 말이 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다는 말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 역시 군(君)의 은혜는 몰라도 스승의 은혜만큼은 어버이의 은혜와 동일하다 여기고 있다. “효도하고 우애가 있을 수 있게 됨은 스승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고, 알 수 있게 되고 행할 수 있게 됨도 모두 스승의 공덕이니라(能孝能悌莫非师恩, 能知能行总是师功 《四字小学》)”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를 낳아주신 것은 부모지만 우리를 사람답게 살도록 이끌어 준 이는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승의 은혜에 효를 다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9월 10일은 스승의 날이다. 지식 전달은 물론,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들의 덕을 기리는 날이다. 그런데 그날, 나는 지도 교수님의 추모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대형 화면에 쓰인 “刘叔新先生追思会” 몇 글자를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학계의 저명한 노교수로부터 학생들까지 추모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추모회는 마치 대형 학술대회를 방불케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평생 학문연구와 후배 양성을 위해 살아온 그의 82년 외길 일생이 여러 미담과 함께 소개되면서 추모회는 다섯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추모회가 끝나갈 무렵 선생님 친구분이 제자들을 향해 서운함을 토로하면서 선생님 임종 전의 쓸쓸한 삶에 대해 가슴 아픈 추도사를 낭독할 때 우리는 모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졸업 후, 삶이 팍팍하고 여유가 없어 제대로 찾아뵙지 못했던 선생님. 박사만도 수십 명을 배출하신 선생님이, 말년에 질병과 힘겨운 싸움을 외롭게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제자들의 한쪽 가슴에 평생 죄송함으로 남게 되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내리사랑’만 있고 ‘치사랑’은 없는 가 보다. 가끔 뵈러 갈 때마다 연락이 없어 소원하게 지니고 있는 제자들의 안부를 물으시고 궁금해하시고, 보고 싶어 하셨는데…. 삼삼오오 모여 처지가 좀 나아지면 찾아뵈어야지 했는데 이제 더는 만나 뵐 수 없게 되었다며 애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제자들 가운데 ‘나’도 있었다. 이제는 선생님께 제자의 효를 다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여름방학 전, 잠시 뵙고 온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이미 병세가 악화되어 걷기도 힘들어하시던 선생님께 가을에 다시 뵈러 오겠노라고 약속하고 돌아설 때 어쩌면 다시는 뵙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억지로 그런 생각을 지우고 발길을 재촉하던 일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그러나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은 선생님 모시고 교회에 가지 못한 일이다. 신앙 문제로 꾸중도 많이 하시고 걱정도 많이 하신 선생님을 안심시켜 드리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이 안타깝다. 다만 전도는 우리의 몫이지만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라 했으니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혼에 긍휼을 베푸시길 바랄 뿐이다.

마중은 설렘이지만 배웅은 아쉬움이다. 누군가를 보낸다고 하는 것은 두려움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심리적 불안감이다. 그러나 주님 안에 우리는 다시 만날 그 날의 기쁨을 기대할 수 있어 감사하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풍수지탄 하며 후회하지 않도록,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기에...  





박애양 | 중문학 박사 

필자 : 박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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