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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1 통권 151호     필자 : 박애양 프린트   이메일 
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易地)”
《孟子》〈離婁下〉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禹稷顔子易地則皆然(우왕과 후직과 안자가 처지를 바꾸면 다 그러하셨을 것이다)”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역지사지와 비슷한 의미로 “易地而处(yì dì ér chǔ)”라는 말을 쓴다.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 중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는 아파트가 많습니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한국 주택 가운데 58% 이상이 아파트라고 했으니 지금은 훨씬 높은 수치를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요즘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 간에 갈등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분쟁의 당사자들은 서로 참을 만큼 참았다고 주장합니다. 참을 ‘인(忍)’ 자는 마음 ‘심(心)’에 칼날 ‘인(刃)’으로 구성된 형성(形聲)자입니다. 참다, 용서하다, 잔인하다, 차마 못 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 위에 서슬이 퍼런 칼날이 올려 있으니 참으로 위험한 글자입니다. 바둑판을 세워 놓은 것 같은 아파트마다 마음에 칼날을 품은(忍) 사람들이 위태롭게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에게 가장 큰 행운은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아파트 주민에게 이웃은 문을 마주한 앞집에만 제한되기 쉽습니다. 윗집과 아랫집은 보이지 않는 이웃으로 그 존재감이 매우 낮습니다. 위아래 집의 존재는 층간소음으로 처음 맞닥뜨립니다. 서로에게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뛸 때마다 윗집 부모는 좌불안석입니다. 초인종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청소기나 세탁기 돌리는 것도 위아래 집 눈치를 봐야 합니다. 아래층 주민 고통은 더 심합니다.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윗집 아이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도 좀처럼 내색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시공사가 방음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고,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 반 백 년이 넘도록 층간 소음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건설 기술이 문제인 것을요. 다 이해합니다. 그래도, 아래층 주민은 윗집 아이 엄마에게 약간 섭섭함을 느낍니다.

‘애가 저렇게 뛰는데 바닥에 소음 방지용 쿠션을 좀 깔아 주지 …….’

참다 참다 결국, 미안한 마음 반, 부탁 반으로 어렵게 입을 엽니다.

“애기 엄마, 미안한데 …….”

윗집 아이 엄마는 죄스런 마음에 얼른 사과하지만 아랫집 아주머니가 조금은 야속합니다.

'어린애가 뛰면 얼마나 뛴다고 매번 이렇게 …….’

윗집 아이 엄마도, 아랫집 아주머니도 서로 마음이 상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서로 피해자라는 생각에 길에서 우연히 만나도 어색한 인사만 주고받을 뿐, 이웃 간의 정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웃사촌’이란 따뜻한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공동주택 층간소음과 관련된 법률적 기준이 계속 엄격해지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지어진 공동주택은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공동주택은 한 건물 안에 여러 세대가 모여 살기 때문에 앞집은 물론 윗집과 아랫집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여러 세대가 수직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살기 때문에 거기서 발생하는 소음까지 공유해야 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직이 만들어내는 관계는 불평등의 관계입니다. 상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관계는 연속적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공동주택 주민은 서로가 피해자이면서 또한 가해자입니다. 어떤 일에 대한 시각과 입장에 따라 해석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서로 피해자라는 생각보다 “내가 윗집 때문에 힘든 만큼 아랫집도 우리 집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힘들겠지”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로 조심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아파트 주거 형태가 일반화된 현대 한국에서 사는 우리에게 역지사지는 꼭 필요한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박애양 | 중문학 박사  

필자 : 박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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