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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발전소와 상상 놀이터로서의 웹진『중주』  
차하경  Email [2014-08-31 01:35:59]   HIT : 459   

지식 발전소와 상상 놀이터로서의 웹진『중주』


이광열


“문자(文字)는 인쇄기술의 발달로 활자(活字)로 진화하고, 이어 컴퓨터의 등장으로 전자(電子)로 바뀌었으며, 전자텍스트가 발전되면 들을 수 있는 성자(聲子)로 바뀔 것이다.     _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



문서 사역의 새로운 성찰


이 시대 ‘책의 위기’라는 말의 의미는 책의 ‘내용의 위기’라기 보다는 그 내용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위기’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책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이러한 위기는 이 시대에 처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양피지가 파피루스를 대신하고 종이가 다시 양피지를 대체하는 순간부터 이러한 매개체의 위기는 늘 반복되어 왔다.


그래서 지금은 문서 사역에 있어 새로운 담론형성을 위한 토론이 필요한 때라 생각한다. 한가지 제안으로 ‘문서 사역’의 문서를 책으로만 등가시키는 기존의 관념을 ‘문서란 글자를 포함한 모든 대상’이라는 의미로의 확장이다. 즉 ‘문서’라는 단어에서 뒷 글자 ‘서(書)’보다는 앞 글자 ‘문(文)’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여, 현재까지는 ‘문(文)’을 각 지역과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주로 ‘서(書)’에 많이 태워보냈고,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지만 이후에는 미래 지향적으로 ‘인터넷’과 ‘전자북’에도 태울 수 있고, 그리고 아직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또 새롭게 출현할 그 무언가에 함께 태워보낼 수 있다는 이해의 개념을 넓히자는 것이다.


그래서 책이라는 매개물의 역사가 환경의 변화 앞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한 단계 더 확대되어져 가듯이, 문서 사역의 개념도 제한된 책이라는 매개체만을 사역도구의 형태로 보지말고, 내용은 동일하되 다양한 매개체를 포함하는 문서 사역의 새로운 의미확대로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


위의 글은 글쓴이가 본지 2009년 1/2월호에서 문서 사역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변화의 필요를 언급하며, 그 결론의 한 부분으로 마무리하였는데, 본 글의 서론격이 될 듯하여 다시 한 번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2012년 여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이색적인 다큐멘터리 촬영이 진행되었다. 촬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움베르토 에코. 그는 자신의 소설책 《장미의 이름》과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을 2층 난간에서 마치 누가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려는 듯 아래층 바닥으로 동시에 내던졌다. 물론 킨들은 산산조각이 나고, 종이책은 약간 구겨지는 것으로 결판이 났다. 이 세계적 석학은 종이책의 우월함과 불멸을 옹호하는 입장에서의 이러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의 개발책임자인 제이슨 머코스키는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책의 미래를 이렇게까지 내다보고 있다.

“나는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전자책의 힘을 사랑한다. 시간이 지나면 출현할 새로운 형태의 책은 생각 자체에 더 근원을 둔 책일 것이다. 현재 작가들은 원고를 타이핑하거나 받아쓰게 하지만, 미래에는 작가의 머릿속에 고속 플러그를 꽂아서 작가의 상상력을 직접 디지털 포맷으로 연결하게 될 것이다. 이 고속 케이블은 독자를 작가의 원래 경험과 연결해주며, 책을 해독하는 행위는 앞으로 예술적인 활동으로 승화할 것이다.”


물론 전자책의 압승을 넘어 극단적인 상상과 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는 종이책이 디지털화된다는 의미는 단순하게 말을 갈아타듯 글의 내용이 문서에서 디지털로의 전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존의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책 등의 매개체의 전환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의 디지털화된 플랫폼이 시작된 것이며 이것은 곧 여러 차원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통합적 사역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에서 필자로, 글자에서 영상으로


이제 중국어문선교회가 그 새로운 디지털 문서 사역의 입구에 들어서며, 지금까지 문서로 발행하던 종이 『중주』를 웹진으로 갈아타며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실시간 사역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 과정에서 허물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아니 희망하는 첫 번째 벽은 독자와 필자의 구분의 벽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상황적 필요에 사역적 대안을 수동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닌 문서 사역의 개념을 새롭게 하는 중요한 전환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즉 단순하게 문서로 해왔던 내용의 보급을 이제는 디지털로 보낸다는 소극적 전환을 넘어서, 디지털을 통해 가능하게 된 글쓰기와 읽기의 새로운 전환, 그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매체적 장점을 개방형으로 바꾸어 갈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사역의 장이 전개되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07년에 번역 출간된 위키노믹스에서 저자인 돈 탭스코드는 앞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대중들의 협업이 일상화되어, 생산의 중심적 역할을 감당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출현을 소개하고 있다. 쉬운 예로, 기존의 책으로 발행된 종이『중주』는 일방향의 지식정보 제공의 의미가 강했으나, 이제 웹진을 통한 디지털상의 웹진『중주』는 독자가 필진이 되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이미 쓰여 진 글에 대한 댓글이나 피드백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참여형 독자로 바뀔 수밖에 없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힘들다는 말처럼 웹진『중주』의 글은 메아리 없는 일방적 주장이 아닌 여러 주장을 통합해가는 첫 마중물의 글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제 독자들은 그간의 경직된 읽기와 수용자의 자리에서 나와 실시간의 추천과 댓글로 아니면 또 하나의 형식적 글쓰기로 여러 의사표시에 참여하며 왁자지껄한 독자가 되어 함께 웹진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이 참여형 웹진의 성격은 기존의 『중주』와는 구별되며, 웹미디어적 특성을 살려가는 중요한 발전의 상수가 될 것이다. 웹진은 기본적은 웹상의 잡지이지만, 앞으로는 모바일이 대세이기에 모바일진을 포함한 개념으로 실시간 체크와 추천이 가능한 편집기능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디지털의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글솜씨가 없다하더라도, 한 장의 사진, 하나의 동영상도 참여 가능한 공간이 되어 항상 새로 자라고 있는 잎사귀를 보여주고 웹진, 그리고 스스로 키워갈 수 있는 시리즈게시물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웹진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블로그를 연결하여 중국 관련도서나,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며 많은 사람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첫 번째 필요이자 기대이다.


IT기술의 발전으로 피할 수 없는 협업의 시대를 맞이하는 21세기의 모든 사역적 특성은 영역에 상관없이 자발적 참여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율과 공유의 여부가 성패를 좌우하는 큰 요소가 될 것이다. 즉 한 사람의 사역적 특성이 개인의 경험만으로 그치지 않도록 참여와 나눔을 통해 하나의 큰 망을 형성하며 함께 공동 접속의 시대로 진입하여, 그로인한 열매적 시너지를 다시 각자의 개별 사역으로 흡수, 발전시킬 수 있는 순환적 모델이 앞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분리에서 통합으로, 경계에서 개방으로  


『중주』웹진을 통해 허물어질 두 번째 벽은 선교지로서의 보안과 경계선의 벽이다. 중국이 창의적 접근 지역이라는 인식은 이제 많이 탈색되어 가고 있다. 아직도 제한적 사역과 견제와 통제라는 틀에서 당장 벗어나 개방적 사역을 꾀할 수는 없지만, 이미 중국 정부는 중국 내 현재의 선교적 상황의 큰 줄기를 잡고 있고, 관련당국에서의 정보장악력을 비추어 볼 때에도 새롭고 긍정적인 선교지 개념과 보안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지금까지 『중주』의 내용은 그곳을 여기서 바라본 관점이 주류를 이루다가 근래에 와서 그곳에 관련된 해외 사이트나 관련 글들을 번역 소개하고, 또 기존의 사역자 출신의 필자들을 발굴하여 글을 소개하는 편집의 방향을 보고 있다. 더 나아가 잠시이지만 한인필자의 내용을 중문으로 번역하며 함께 실어가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사역 전선의 전후방이 점차 흐려지고, 사역자 배경도 기존의 목회자 중심에서 평신도 사역자들의 분발과 헌신으로 사역자의 경계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것은 우려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참여에 대한 적극적 수용과 변화에 대한 기회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맨 앞줄 선봉에 웹진『중주』의 역할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허브 웹진의 역할로서 해외의 사역적 도움이 되는 글들을 번역, 발췌하여 실을 수도 있지만, 간략한 소개와 함께 직접 링크로 연결하여 연동시키는 부분도 고려할 수 있다. 보안상의 수위는 사안과 상황적 민감성에 따라 편집위원회 회의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중주』에서 웹진『중주』로의 전환은 접근의 용이성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개방의 창의성을 보여주며, 선교중국의 큰 흐름 속에 기여점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한국 내에서 많은 중국 성도와 사역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선교중국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러한 모임들의 성격은 중국 정부가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늘 문제시 되고, 보안상의 빨간불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관점의 새로움과 변화의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 오고 있다. 늘 중국법으로만 압박해오는 현재의 공세 앞에서 이러한 운동과 모임이 결코 반정부적이지 않음을 보임으로 보안의 수위를 낮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 예로 그러한 모임을 리뷰하고, 소개하는 글을 싣는 것이다. 사진과 동영상까지야 어렵다 해도 중국에서 일어나는 사역적 움직임을 중국 정부의 위협적, 공세적 시각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마저도 함께 함의 안전함을 느끼며 드나들 수 있는 웹진에 대한 기대이다. 이를 위한 사전준비와 조율작업의 역할은 국내의 중국 관련 연합단체들의 몫이 될 것이다. 특히 문서 사역 관련단체들의 사역공유와 역할분담을 위한 주기적인 포럼형식의 모임과 중개(仲介)는 그 자체로서 대륙안과 밖의 경계를 넘어 사역적 도움이 될 것이다.


잡지에서 사람으로, 중국에서 모든 민족으로


마지막 세 번째로 웹진『중주』를 통한 기대와 필요는 역시 문서 사역의 마지막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중국 사역의 마지막 그자체로 수렴되지 않고, 모든 민족으로 수렴될 것이다. 그 일에 각성과 변화를 주는 일에 사용되는 웹진『중주』을 기대한다.


요즘 사회에서는 귀속감이나 통합된 집단과의 확고한 관계는 흔들리고 있다. IT의 급속한 발달이 ‘모바일 공동체’라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망을 형성해내었지만, 그 관계망이 우리의 생활을 활력 있게 만들 것이라는 예상은 아직 가능성으로만 남아있다. 그러기에 웹진『중주』에서 사람으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방향성을 놓을 수 없다. 매주 한 번씩 발송되는 중국기도정보는 기도의 구체적인 필요와 함께 현 상황의 사역적 흐름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이다. 이 사역이 온라인으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 매주 월요일 오프라인의 기도모임 또한 꾸준하게 가꾸어 나가고 있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글과 형식이 디지털화 될수록 만남과 사람의 중심점을 놓을 수 없다. 그러한 실천적 한 예로, 웹진『중주』의 필자나 중국 관련도서의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강의와 교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보안상에 누가 되지 않는 선에서 웹 미디어로 활용하며 공개하여 웹진『중주』를 더욱 살찌울 수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함께 개설하여 필요와 사안에 따라 번개모임의 즉흥성과 우연성의 기쁨도 누릴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사역적 내용과 관심도가 필자와 독자를 묶어주어 새로운 소그룹을 만들어주는 그룹방을 개설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역으로 이어지는 발전적 모습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과거에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사람과 그저 글이나 사진으로만 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와 사귐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문서 사역의 마지막도 사람이고, 디지털의 생태계의 마지막도 결국은 사람중심으로 귀속될 것이기에, 이러한 만남중심의 의도가 없으면 결국 독자들은 웹진『중주』를 ‘읽는 사람’(reader)이 아니라 클릭하는 ‘사용자’(user)가 될 뿐이다. 참여자가 아니라 관망자로 남는 것을 보게 되며 그러한 흐름 속에 다시 종이『중주』가 웹진『중주』로 물성의 변화를 통해 관계성과 관점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중요한 하나의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웹진『중주』은 중국교회와 세계선교를 만나게 하는 교량의 역할을 기대한다. 선교중국의 현황을 알리고, 그들의 시대적 사명의 귀함을 일깨우고, 직접 만나고 격려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한 장의 초대장로 쓰임받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중국을 바라보지만, 그들은 주변국과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일을 스스로 계속해서 해나갈 수 있도록 소명을 일깨우는 하나의 확성기가 되도록 중국과 화교권 내의 많은 유익한 사이트를 소개하고 링크해 놓아야 한다. 이상의 모든 것들은 다 웹진『중주』 이기에 가능하며, 붙잡아야 할 기회이자, 넘어서야 할 벽들이다. 처음 발걸음이 중요하다. 처음의 보폭과 속도가 남은 경기의 몸의 균형과 지속성을 결정한다.


웹진『중주』는 독자와 필자의 구분이 없고, 글이 영상으로 발전하며, 사역자와 후원자, 그리고 이곳과 그곳의 경계선마저 허물며, 많은 이들이 몰려와 상상하고 노닐 수 있는 것, 그러다보니 모이고 쌓여 현지의 사역적 틈을 메꾸고, 우리의 필요적 틈을 채우는 지식발전소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선하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충성스러운 숨은 일꾼들의 헌신에 따라 종이『중주』는 나룻배와 나침반과 나이테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선교적 동기와 필요를 부지런히 나르고 공유한 나룻배의 역할, 올바른 사역적 방향을 보여주기 위한 치열했던 나침반의 기능, 그리고 작은 동심원 하나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모이고 쌓여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의 역사를 모아온 나이테의 모습은 충분히 하나님께 드려질만한 귀한 예물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또박또박, 그리고 꾸준히 웹진『중주』를 다듬어 갈 장인의 손길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이광열 | 전 중국선교사, 동인교회 담임목사
 

   3. 『중국을주께로』 144호가 나오기까지
   1. 웹진『중국을주께로』의 비전과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