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료실 > 중국관문도시 
북쇼핑
선양(沈陽)  
정순수  Homepage Email [2007-04-02 15:41:49]   HIT : 1076   

선양(沈陽) 
선양시는 랴오닝성(遼寧省)의 성도(省都)로서 동북삼성의 상업유통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충지이다. 5천 년의 문화유산을 간직한 채 변화발전하고 있는 선양은 21세기 중국경제의 발전을 이끌어 갈 중심도시라 할 수 있다.

행정구역 및 인구

허핑(和平), 선허(沈河), 따둥(大東), 황구(皇姑), 티에시(鐵西), 둥루(東陵), 위홍(于洪), 쑤자툰(蘇家屯), 선베이신(沈北新)구(区)와 신민(新民) 현급시(縣級市), 랴오중(遼中), 캉핑(康平), 파쿠(法庫)현(縣) 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면적은 13,008㎢이고, 인구는 698만 6천 명(2004년) 이다.


역사

선양은 오랜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로, 연(燕)나라의 영토였다가 잠시 고구려의 영토가 되기도 했다. 선양이라는 명칭은 원(元) 성종(1296년)때 처음 사용되었으며 1625년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努爾哈赤)가 수도를 랴오양(遼陽)에서 선양으로 옮겼으며 1634년에 청태종(淸太宗) 황태극(皇太極)이 선양을 ‘성징(盛京)’이라 칭하고 청왕조의 국도로 정하였다. 1625년부터 1644년까지 청의 도읍이었으나 베이징으로 천도한 이후 ‘펑톈(奉天)’으로 불렸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장쭤린(張作霖)이 철도, 광산을 근간으로 하여 선양을 근대 공업기지로 발전시켰으나, 1931년 일본이 강점하면서 펑톈시로 불리게 되었다. 항일전쟁에 승리하고 중국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후에 다시 선양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선양이라는 지명은 훈허(渾河)의 원래 이름인 선수이(沈水)의 선(沈)에, 풍수에서 강의 남쪽을 뜻하는 양(陽)으로 ‘훈하의 남쪽’ 이라는 뜻이다.

  조선 말기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가난과 일제의 학정을 피해 많은 조선족들이 선양으로 이주하여 지금까지 시타(西塔)를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식당, 다방, 옷가게가 즐비하게 서 있어 한국에 온 것으로 착각 할 정도이다.


기후 및 교통

온대 계절풍 반습윤 대륙성 기후에 속하며 사계절이 뚜렷하고 기후변화가 비교적 크다. 연평균 기온은  7.4℃로 겨울이 길고 상당히 추운 편이며 봄은 갑자기 찾아오고, 일조량과 복사량이 충분하다. 여름은 덥고 비가 많이 내리며 공기가 습하며 가을은 짧고 시원하다. 매년 4-10월은 선양 관광의 최적기이다.


산업 및 경제

선양은 상하이, 베이징, 톈진, 광저우 다음가는 중국의 제5대 도시이 최대의 중화학 공업도시이다. 이곳에는 기계공업을 중심으로 야금, 화공, 의약, 건재, 전자, 농업기계, 자동차, 섬유 및 기타 경공업 등 144개 업종의 기업이 있다. 전기, 기계, 금속, 군사공업이 발달하였으며 400여 개의 과학 연구소, 800여 개의 민간 연구소, 28개 의과대학 등 49만 명의 각종 과학기술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선양을 중심으로 배후 위성 도시군이 형성되어 있는데 동쪽에는 석탄도시 푸순(撫順), 남쪽에는 철강도시 안산(鞍山) 및 번시(本溪), 화학섬유도시 랴오양, 서쪽에는 석유화학도시 진저우(錦州), 랴오허, 석탄, 전력도시 푸신(阜新), 북쪽에는 석탄, 식량도시 티에링(鐵嶺) 등이 있고, 항구도시 잉커우(營口)시, 따롄(大連)시가 있어 경제발전에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하자원도 풍부하며 다양하다. 철강석(전국 매장량의 22%), 금강석(전국 매장량의 5%), 탄산철강(전국 1위), 옥석(전국 1위), 석탄, 석유, 몰리브덴, 마그네슘, 망간, 소금, 내화점토, 금 등은 매장량이 매우 많다. 토산품으로는 양잠(전국 생산량의 75%), 사과(수출량 전국 1위), 인삼, 녹용 등을 꼽을 수 있다. 


종교 및 기독교 현황

선양엔 랴오닝성 기독교 양회 소속 삼자교회로 둥꽌교회(東關敎會), 베이시교회(北市敎會), 시타교회(西塔敎會) 등이 있다. 이중 시타교회는 1913년 20명의 신도로 시작하여 성장한 조선족 교회의 모체이다. 동북삼성의 처소교회 지도자를 양육하여 파송하는 사역도 감당하고 있는데, 1894년 개교한 이래 지금까지 동북삼성의 목회자의 산실인 둥베이신학원(東北神學院)이 있다.

  최초의 한글성경을 번역한 장소인 둥꽌교회는 선양의 중심적인 한족교회이다. 1889년 예배를 드리다가 의화단 사건으로 예배당이 소실된 후 1907년 재건축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1941년에 이미 신도 1,300명의 동북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고 문화혁명 이후 1979년에 예배를 재개해 지금은 등록교인 2만 명의 최대 교회이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선양은 동북삼성 기독교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들 교회와 신학교가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고, 주변 농촌의 처소교회와 가정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기도제목

1.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기 원하는 겸손한 리더십을 가진 젊은 지도자들 이 설 수 있도록 기도하자.

2. 시타교회, 둥꽌교회, 베이시교회, 둥베이신학교가 하나님의 말씀 위 에 굳건히 서서 선한 영향력을 주변 교회에 흘려보낼 수 있도록 기도하자.

3. 선양이 물질적인 부함으로 교만하지 않고 이웃을 잘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하자.   


   10. 따롄(大連)
   8. 옌지(延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