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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쉬카르(喀什)  
정순수  Homepage Email [2007-04-02 16:28:57]   HIT : 1212   
 

카쉬카르(喀什)


카쉬카르는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의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위구르 민족의 중심지이자 난장(南疆: 신장 남부지역)의 상업, 문화, 종교 중심지이다. 동·서 문명 교류의 중대한 공헌을 하여 ‘신장 역사의 활화석’이라 불리고 있다.


행정구역 및 인구

카스(喀什)시(市)와 수러(疏勒), 수푸(疏附), 셰청(叶城), 저푸(泽普), 수오처(莎车), 잉지샤(英吉沙), 빠추(巴楚), 치에스(伽师), 웨푸후(岳普湖), 마이까이티(麦盖提), 타스쿠얼간(塔什库尔干)현(县)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은 16.2만㎢, 인구는 340만 6천3백 명 (2004년)이다.
 

역사

남쪽으로는 카쉬카르강, 서쪽으로는 파미르고원, 북쪽으로 타클라마칸 사막에 접해있는 전형적인 오아시스 도시이다. 전한(前漢)시대에는 ‘수러(疎勒)’로 불리웠고 당나라 때에는 안서사진(安西四鎭) 중 하나로 서역을 향한 최전방 전진기지였다.

  카쉬카르가 역사에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카라한 왕조(喀喇汗: 최초의 이슬람계 유목민 투르크족 왕조) 시기였다. 이슬람교가 카라한 왕조의 국교로 선포된 후부터(960년) 신장 지역 이슬람화의 본부 역할을 하였다. 카쉬카르를 통해 이슬람이 신장에 뿌리를 내리고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카쉬카르는 타림분지에서 이슬람 문화의 본 고장이자 위구르 민족의 정신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1860년 청·러 조약으로 시장이 개방되면서 카쉬카르에는 러시아인의 왕래가 많아졌고, 인도, 아프가니스탄 등과의 교역도 이루어졌다.

  중국 정부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위구르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한 한화(漢化)정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200만 명의 한족을 이 지역에 이주시켰고, 문화혁명 시기에는 언어와 종교를 강력하게 탄압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한족의 통치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수록 위구르족은 이슬람을 중심으로 강하게 뭉쳐왔고, 계속적으로 반정부 독립운동을 시도하고 있다.

   

기후 및 교통

연평균 기온은 11.8℃으로 평균기온은 1월이 -6℃, 7월이 26℃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121㎜인 건조 사막기후이다.

  카쉬카르는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로 나가는 실크로드의 요지이다. 1999년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카쉬카르를 잇는 난장철도(南疆鐵道)가 개통된 이래로 한족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314번, 315번 국도가 지나고 있으며, 톈산남로(天山南路)와 북로가 합류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서남쪽으로는 파키스탄과 통하는 고속도로가 있어서 파키스탄 상인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산업 및 경제

카쉬카르의 공업은 대략적인 규모를 갖춘 전력, 시멘트, 방직, 석탄, 건재, 화공, 농기구, 피혁, 도자기, 종이제조, 식품가공업 등 중소형 기업 등이 있다. 농업을 기초로 삼고 공업에 의탁하여 살아가는 경제구조이다.

  카쉬카르의 진정한 본질은 시장(市場)이다. 실크로드 상의 오아시스 도시로서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오늘날도 여전히 비단과 각종 상품들이 거래되고 있다. 비록 과거에 독자적 소왕국으로 중개무역을 통해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난장지역 최대 시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인도와 러시아 연방의 교역 중개지로 곡물, 목화, 생사(生絲), 과일 및 가축, 피혁제품 등이 집산되며, 공업으로는 기계, 방직, 화학, 도자기, 가죽공업이 발달하였다.


종교 및 기독교 현황

카쉬카르는 역사적으로 10세기 초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신장지역의 이슬람교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 되었다. 카쉬카르에는 중국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이드카 사원이 있다. 이드카는 위구르어로 ‘축제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4천 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매주 금요 예배 때 1만 명 이상의 이슬람 신자들이 모이며, 로자헤이트나 코르반헤이트 같은 명절에는 7, 8만 명이 사원 바깥 광장까지 가득 모여 예배를 드린다.

  100여 년 전 스웨덴 선교사들에 의하여 기독교가 전해졌고 서북영공단이나 편전복음단 등 한족(漢族) 기독교인들이 이 지역에 와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중국 공산화 이후 선교사들은 추방당하였다. 한족과 위구르족 간의 민족적 반감으로 인하여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온 한족 성도들이 위구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기에는 여전히 큰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기도제목

1. 신장위구르차지구의 이슬람교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카쉬카르가 속히 하나님의 땅으로 회복되도록 기도하자. 오랜 역사 속에서 이슬람에 뿌리박힌 위구르족의 마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도록, 카쉬카르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진기지로 변화되도록 기도하자.

2. 위구르족과 한족 간의 갈등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화합과 연합으로 변화되도록 기도하자.

3. 더 많은 헌신된 일꾼들이 카쉬카르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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