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학생이 자신이 “尾款人[wěikuǎnrén, 웨이콴런]”이 되었으며 몇 천 위안이 있어야 그 꼬리표를 뗄 수 있다고 했다. 또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숙소를 사용하는 친구들 대부분 자신처럼 “尾款人”이 되었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尾款人은 중국 광군제(光棍节[guānggùnjié]) 쇼핑 때문에 생긴 신조어로 광군제는 매년 11월 11일에 기념하는 이른바 ‘독신의 날’이다. 尾款은 지불해야 할 잔금을 의미하며 尾款人은 그러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尾款人이라고 했을까? 이미 예약금을 지불한 상태이니 예약금 지불자라는 의미로 “定金人”이라고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호기심에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니 일종의 조소적(调侃) 표현이란다. 계약금보다 잔금이 더 많이 남았다는 경고적 의미와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구매욕구를 충족하려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풍자적 표현인 셈이다.
중국 광군제 행사는 2009년부터 시작했으니 이미 십여 년 전통이 있는 행사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번 광군제는 11월 11일 당일 발생할 인터넷 병목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11월 1일과 11일 두 차례 진행하는데, 11월 1일 행사는 10월 20일부터 예약을 받고 계약금을 지불한 사람만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잔금을 지불하면 구입한 물건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1년 내내 광군제를 기다려왔던 학생들은 1차 광군제 행사에 참여하여 치열한 클릭 전투 끝에 자신들이 사고 싶었던 상품을 예약하고 계약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자신들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尾款人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자신이 예약한 물건을 받기 위해서는 잔금을 마저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약금을 손해 보게 된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예약한 상품에 대한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 “곧 매진!”, “곧 마감!”이라는 글자가 주는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학생은 2차 행사에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신이 구입하고자 하는 물건을 사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최근 중국의 유명한 인터넷 스타(网红)가 라이브방송에서 판매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열성 소비자들이 많이 생겼다. 이른바 ‘핫’한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밤을 새우면서까지 인터넷 라이브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로 인해 “琦困无比([qíkùnwúbǐ]는 奇困无比(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졸리다)를 페러디한 것으로 늦게까지 라이브방송을 보느라 너무 졸리지만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꾹 참는 현상)”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인터넷 쇼핑이 대성황이다. 이런 것을 보면 중국인들의 소비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광군제를 기다리는 학생들에게 그날 사면 할인이 많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싼 것도 있지만 물건값이 싸기 때문이 아니라 광군제 행사에 참여하는 의미가 더 크단다. 그래서인지 11월 11일이 되면 “光棍节快乐!” 라는 메시지가 많이 온다. “솔로데이 즐겁게 보내세요!” 정도의 의미가 있다. 중국 전역을 넘어 세계적인 쇼핑 시즌이 된 광군제 행사는 이미 단순한 쇼핑 차원을 넘어 축제로까지 확대되었다. 팔지 않는 물건이 없다고 할 정도로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 인원과 행사 진행 플랫폼이 증가하고 판매액도 매년 신기록을 세우고 있어 우리나라 기업들에도 도전의 기회로 여겨지는 주요한 행사이다. 참고로 중국의 유명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티몰(Tmall Genie, 天猫精灵)의 광군제 행사 판매액을 보면 2018년 11월 11일에는 2135억 위안(약 308억 달러)이고 2019년에는 2684억 위안(약 384억 달러)을 기록했다.1) 한 플랫폼에서 판매한 금액만 이 정도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외출이 자유롭지 않고 제약도 많다. 해외여행이나 면세점 쇼핑은 생각도 못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욕을 맘껏 풀 수 있는 광군제는 그야말로 축제라 하겠다. 상술에 능한 중국 기업가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光棍节를 双节棍([shuāngjiégùn])으로 치른다는 계획이다. 소비자들에게 두 번의 쇼핑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매출 신기록을 달성하겠다는 의도이다. 물론 이 목표는 쉽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차 광군제 행사에서 개시 1시간 51분만에 티몰의 판매액이 1억 위안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것으로 보아 2차 광군제 행사에서도 매출 신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2)
이번 광군제 추가 행사는 내수시장 진작을 강조하는 중국 정부와 판매 기회를 더 잡으려는 기업들의 합동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수출주도형이던 중국 산업이 ‘세계적 유행(팬데믹)’으로 주춤하게 되었고 수출길이 막혀 쌓여 있는 재고의 소진을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이번 광군제 행사에 사력을 다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광군제가 아니더라도 중국은 이미 라이브 커머스가 유통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 대유행으로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하였고 보복 소비로 씀씀이가 커진 소비자들의 쇼핑 욕구를 광군제가 제대로 불을 붙인 격이다.
현재 뉴스에 보도되는 경제지표를 보면 중국은 이미 V자 반등에 성공한 듯하다. 이미 국제적으로 논쟁이 끝난 한국전쟁을 왜곡하면서까지 미국에 대한 강력한 반감을 표시하며 중화 부흥을 부르짖는 중국 정부는 내심 중국 내수시장의 발전에 큰 기대와 믿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이 글로벌시장에서 자립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딱 부러지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것은 중국이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地大物博), 인구가 많은(人口众多) 나라라는 점이 내수시장의 발전을 확신하게 한다지만, 글로벌 공급망이 촘촘하게 얽혀진 현재 글로벌경제 시스템에서 혼자만의 독야청청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시간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월 말 중국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에서 발표한 14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앞으로 중국은 경제발전의 방향을 수출 주도형에서 내수시장 안정화로 돌리고 수출 품목들도 선별하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쌍순환(双循环)을 강조하여 국내 경제성장을 핵심으로 하되 자국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선진국과의 지속적인 교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경제발전으로 회복한 중화의식에서 발현된 자신감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홀로 설 수 없는 중국의 입지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미주 1)참고 搜狐网 https://m.sohu.com/a/353186675_120113054/ 중국에서 데이터는 그 진의를 의심받는 예가 있는데 티몰 판매액에 대한 중국 네티즌의 이의 제기로 중국은행에서 이례적으로 티몰 판매액을 공식화했다는 보도도 보인다. 참고 ZDNeTKorea https://zdnet.co.kr/view/?no=20191115083155
사진출처 | 바이두 박애양 | 중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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