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  통권 93호     필자 : 유관지
6년 다리

중국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은 매6세기 마다 한 번씩 중국선교의 기회를 주신 것을 알 수 있는데 최근의 일들을 살펴보면 20년 단위로 끝이 6년인 해가 중국교회에 변화를 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것은 1965년 가을의 일이었습니다. 1965년 11월 10일, 당시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였던 문예비평가 야오원위안(姚文元)이  "신편역사극 해서파관(海瑞罷官)을 평한다"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베이징의 지도자적 지식인들을 공격한 것이 문혁의 발단이었는데 문혁이 본격화된 것은 1966년입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도 인민해방군 기관지인 「해방군보(解放軍報)」1966년 4월 18일자 사설이 최근의 일들을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라고 규정한데서 붙게 되었습니다. 이어 5월 16일에는 마오쩌뚱이 '5․16통지'를 공포하였는데 이 통지는 문혁의 신호탄 역할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홍위병이 날뛰며 구 풍속, 구 문화, 구 습관, 구 사상을 '사구(四舊)'라고 하면서 박살을 내려하였습니다.
  중국의 공산화 이후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던 교회는 이때부터 심한 시련의 폭풍 한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각처의 교회당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교역자와 교인들은 구타, 심지어는 참살(慘殺)을 당하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80년대 중국선교의 지침서와 같았던 「중공의 기독교정책(中共對基督敎政策)」은 이 시기를 설명하면서 '10년의 피눈물(十年血淚)', '그들은 종교를 철저하게 진멸하려고 하였습니다(他們想徹底殘滅宗敎)', '피어린 겨울(血凝的嚴冬)'이라는 말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십여 년 뒤, 중국은 개방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는데 1986년은 이와 같은 개방정책의 한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전문기술과 과학지식, 그리고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외부세계에 대해 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개인재산의 일부를 인정하고 왕래, 거주의 자유가 인정되었습니다.  
  교회에도 다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되었는데 중국어문선교회 편역인 「중국선교핸드북」(저자 죠나단 차오)은 이 시기의 중국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1986년은 서울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려 분단 이후 최초로 대규모의 중국인들이 한국 땅을 밟은 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올림픽 선수촌 종교관의 채플린이었는데 선수촌에 몰려다니던 중국 선수들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키던 일, 중국어에 능통하고 용모도 중국인 비슷했던 한국인 목사님 한 분이 중국 선수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는 것을 보며 경탄하던 일, 중국 선수의 일부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종교관에 출입하기 시작했을 때 감격했던 일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66년과 1986년의 다리를 건너 올해, 2006년을 맞이했습니다. 중국기독교 2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베이징 올림픽을 두 해 앞둔 올해 중국선교의 환경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집니다.
  원래 격월간이었던 「중국을 주께로」는 지난 2년 간 계간으로 발행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올해부터 다시 격월간으로 복원된 것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월간을 지향하고 나가야할 것입니다.
  이번 호는 '중국의 변화에 민감하라'를 특집으로 마련하였습니다. 세계에서 중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선교의 중요성도 높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호가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알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유관지ㅣ 발행인, 목양교회 담임목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