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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의 계승 당 무종(武宗) 회창(會昌) 연간의 금교령 이후 경교는 중국에서 기반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오대(五代)와 송대(宋代)의 중국 자료에서는 경교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송 태종 태평흥국(太平興國) 5년(980) 서아시아 바그다드의 기독교 선교사 나즈란(Najran, 那及蘭)이 선교사 5명과 함께 중국에 가서 현지 기독교를 살펴보았으나, 당시 중국의 기독교는 이미 완전히 사라지고 기독교인들은 모두 횡사당하고 교당은 부서졌음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고 전한다.1) 비록 경교가 중국 내지에서는 자취를 찾기 어렵게 되었지만 중국 북방의 변경지역에서는 여전히 그 활동이 이어졌다. 신강(新疆)에서는 경교 문헌이 다량 출토되고 경교묘도 다수 발견되었음이 보고되었다. 고창국(高昌國)에 경교도가 존재하였음은 현지 유적과 유물 자료로서 입증되고 있다. 이리(伊犁)와 칠하(七河)지역에 경교도의 묘지 4개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2) 1253년 몽골에 사신으로 파견된 프란체스코수도회 선교사 루부르크(Whilelm van Rubruquis, 魯布魯克)는 신강으로 가던 도중에 이곳에 경교를 신봉하는 우루무치인과 아랍인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자료들은 송원대에 경교가 신강지역에서 계속 계승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외몽고지역의 케레이트(Kerait, 克烈), 메르키드(Merkid, 蔑里乞), 나이만(Naiman, 乃蠻) 등의 부족이 경교를 신앙하였다. 1001년 페르시아 바그다드 네스토리우스파 대총관이 선교사 다수를 케레이트 부락으로 파견하였을 때 족장 옹칸(Ongkhan, 王汗)이 부하 20만 명을 인솔해 기독교로 귀의했다.3) 케레이트 부족에게 이어진 경교 신앙은 칭기즈칸(成吉思汗) 가문에도 이어졌다. 칭기즈칸의 아홉 번째 황후(忽蘭)는 메르키드족의 용장(帶亦兒兀孫, Dair Ussen)의 딸이었다.
칭기즈칸의 4남 툴루이(拖雷, Tului)의 부인이자 몽케(Mongke, 蒙哥), 쿠빌라이(Kubilai, 忽必烈), 훌라구(Hulegu, 旭烈兀)의 모친 사라쿠나니바기(唆魯禾帖尼別吉, Sarakutanibagi)는 케레이트 부족장 옹칸의 질녀였고, 훌라구의 왕비도 케레이트 부족장 옹칸의 손녀였으며, 두 왕비가 모두 경교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칭기즈칸의 신하 가운데 유명한 친카이(鎭海)도 케레이트족 경교도였으며, 그의 세 아들(要束木, Joseph · 勃古思, Bacchus · 闊里吉思, Georges)도 경교도였다.4) 나이만(乃蠻) 부족도 경교도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칭기즈칸의 열 번째 황후(哈勒巴律)는 경교 부족 나이만 추장(亦難察汗)의 처였으나 그 남편이 칭기즈칸에 의해 피살되고 그만 궁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나이만부가 1204년 칭기즈칸에게 공멸당한 뒤 그 왕자 구출루크(屈出律, 古出魯克)가 서요(Kara Kitai, 西遼)에 투항하고 서요의 왕녀(古兒汗女, 晃忽)와 혼인한 뒤 그녀의 권유에 의하여 본래의 경교 신앙 대신 불교로 개종하였다고 전한다.5) 내몽고지역, 황하의 오르도스(河套) 일대에서 유목을 하던 왕고(汪古) 부족도 경교를 받아 들였는데, 13세기 초 왕고 부족에 속한 마경상(馬慶祥), 조세연(趙世延) 일가가 그 대표되는 사례이다. 그들의 족보에 “마씨의 선조는 서역 네스토리우스파의 귀족출신이다.”라고 하고 있으며, 그 자손 중에는 경교가 자주 사용한 기독교 세례명을 갖는 인물도 있는데, 이는 이들이 경교계 기독교 집안이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동몽골과 만주 일대를 분봉받은 종왕(宗王) 나이얀(Nayan, 乃顔)을 비롯한 일부 부족들도 세례를 받고 기독교도가 되었다고 한다.6) 몽골제국이 세워지고 통일하고 팽창하는 과정에서 일찍이 경교를 믿었던 여러 부족을 공격할 때 저항하는 남자들이 대거 죽임을 당한 한편 용모를 갖춘 부녀자들의 경우 오르도스행궁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칭기즈칸의 제9, 10 황후가 그 대표되는 예이다.7) 이들 경교를 믿던 황후들이 몽골 황궁에서 본래의 경교 신앙을 얼마나 유지하고 계승시킬 수 있었는지는 명확한 자료가 없지만, 이후 몽골 칸들이 기독교를 용인하는 정책을 취하는데 어느 정도 배경 요인이 되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원대 경교, 야리가온 13세기에 몽고인들이 중국 중원으로 들어오면서 중앙아시아와 중국 변경에 분포하던 경교도들이 기타 종교 인구와 함께 중국 내지로 진입하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나 오도릭(Frair Odoric)의 기록에서 중국 북서부의 사주(沙州, 현 敦煌), 숙주(肅州, 현 酒泉), 감주(甘州, 현 張液), 양주(凉州, 현 武威)와 오르도스(河套) 지구에 경교 교당이 많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내몽고 백령묘(百靈廟) 일대에서 경교도의 묘가 다수 발견되었고, 십자패(十字牌)도 다량 출토되었다.
산서 대동(大同)에도 경교 거점이 형성되었고, 상도(上都) 카라코룸(和林)과 대도(大都) 연경(燕京)에도 적지 않은 경교도가 있었다. 1275년는 한팔리(汗八里, 大都)에 경교총주교관할구를 설립되었다. 대도 부근의 대표 경교 유적지인 방산(房山)의 십자사(十字寺)에는 1365년(至正 25년) 황제 하사문을 새긴 <칙사십자사비기(勅賜十字寺碑記)>가 남아 있다.8)
《元史》에는 “至元 元年(1264) 3월 병신, 중서성의 신하가 말하기를, 감주로(甘州路, 현 감숙성 일원) 십자사는 세조황제의 모(布濟克太后)의 어용(御容)을 받들어 제례를 정하기를 청하여, 그것에 따랐다”9)라는 기사로 보아 감주에 일찍이 경교의 십자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남방 장강 하류와 동남 연해의 천주(泉州), 복주(福州), 온주(溫州), 항주(杭州), 양주(揚州), 진강(鎭江) 등의 지역에서도 경교도의 묘비가 출토되었으며, 양주, 진강, 천주 등지에는 또한 경교의 십자사가 있었다. 
또한 진강부(鎭江府) 지방지 자료에는 진강부다루가치(鎭江副達魯花赤) 마·설리길사(馬·薛里吉斯)는 재임기간(1278-1282) 동안 진강에 경교사 6개소를 건립했으며, “僑寓戶 3845호 안에 한인이 3671호가 있고, 나머지 174호중 몽고가 29호, 위구르 14호, 回回 59호, 야리가온 23호 106명이 있었고, 별도로 야리가온을 신봉하는 독신자가 109명이다.”라는 기록도 있다.10) 쿠빌라이 시기 경교도 마·아파랍마(馬·雅巴拉馬, 원명 馬古思)는 카라 키타이 지역과 옹구트부의 대주교로 임명되고, 뒤에는 경교총주교로 선출되었다. 랍반소마(拉班掃馬)는 페르시아 지역을 통치하던 일한국 아르훈(阿魯渾, Arghun)에 의해 1287년 유럽 각국과 로마교황청에 파견되었으며, 이슬람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기독교 세력과의 연대를 도모하였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이룬 몽골제국 통치자들은 각 민족의 종교에 대해 기본으로 관용정책을 취하였고, 그러한 과정에서 경교도 몽골제국 안에서 부흥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경교는 원대 사료에서 주로 야리가온(也里可溫)이라 기록되는데, 이노륵곤(伊嚕勒昆), 아륵가온(阿勒可溫), 야리가온(耶里可溫), 야리아온(也里阿溫), 야리하온(也里河溫), 이리극돈(伊哩克敦) 등으로도 표기된다. 복음을 받드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경교도를 가리키는 지칭이다. 타르삭(達婆, tarsak -중기 페르시아어로 ‘경외’, ‘그리스도교도’의 의미) 혹은 십자교(十字敎)라는 지칭도 등장하며, 그 교당은 십자사(十字寺)라 하였다.
미주 1) 張星烺 編注, 朱杰勤 校訂, 《中西交通史資料匯編》 第1冊 (北京: 中華書局, 1977), pp.129-130. 2) 朱謙之,《中國景敎》 (北京: 東方出版社, 1993), pp.171-172. 3) 張星烺 編注, 朱杰勤 校訂, 《中西交通史資料匯編》 第1冊, pp 202-203; 朱謙之, 《中國景敎》, p.187. 4) 이상 楊森富, 《中國基督敎史》 (臺灣: 商務印書館, 1991), p.34; 李京圭, <元代의 宗敎政策과 基督敎> (《中國史硏究》15 (2001.11), pp.83-84. 5) 楊森富, 《中國基督敎史》, p.35. 6) 朱謙之, 《中國景敎》, pp.172-175. 7) 佐伯好郞, 《支那基督敎の硏究》 第2冊 (東京: 春秋社, 1943), p.116. 8) 현재 원래의 비는 유실되고 비문을 明代 嘉靖十四(1535)年에 重刻한 비가 남아 있다. 9) 《元史》 卷38. 10) 이상 李京圭, 《元代의 宗敎政策과 基督敎》, pp.84-86 참조.
김종건 | 문학박사(중국사), 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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