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강변을 끼고 지어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때 아예 강변을 낀 1.2킬로미터를 공원으로 조성한 후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배려인데, 처음에 이사 와서는 날마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산책을 하곤 했었다. 공원 중간에 모래사장과 체육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가벼운 운동정도는 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러다가 점점 게을러져서 공원에 나가지 않게 되었는데, 어느 날은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나니 해질녘의 강변로를 산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1.2킬로의 강변을 끝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모처럼 여유를 즐기면서 천천히 걷다보니 돌아올 때는 날이 어두워졌다. 강변 중간쯤에 있는 광장에 오니 로맨틱한 댄스곡이 흘러나오고 몇몇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갈 때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선교지 생활 10년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 이 나라의 춤 문화는 익숙한 것이지만 이곳의 야외 무도장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전에 본 광경은 길거리든 공원이든 가리지 않고 조금의 여유 공간만 있으면 녹음기 한 대를 가지고 와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모습이 사회적 공해로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이곳 춤마당의 분위기는 제법 그럴 듯 했다. 거의 야외 무도장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음악 사운드부터 달랐다. 커다란 스피커와 오디오가 동원됐다. 음악에 전문가인 사람이 음악을 선곡했는지 분위기에 맞는 곡을 들려주고 있었다. 이런 모임은 대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주민문화행사의 하나로 하면서 간혹 교육 영화도 보여준다. 그리고 마루를 깐 탁 트인 광장에는 강변 쪽으로 커다란 판넬을 달아서 불빛을 더 밝게 반사해 주고 있어서 마치 실내의 무도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다가 외곽으로 보이는 도심의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불빛들은 여름밤의 정취를 한껏 부추기고 있었다.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은 70대의 노인부터 연령층이 다양해 보였다. 그런데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동네 이웃 아주머니들끼리 어울려서 나온 듯 서로 즐겁게 담소하며 서로 짝을 맞추어 춤을 춘다. 느린 곡에는 부드럽게, 빠른 곡에는 정신없이 빠른 동작으로 잘 맞추어 춤을 춘다. 나를 잘 아는 분이 다가오더니 자기 고향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눈인사를 나누고 나서 사람들이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눈 화장을 좀 까맣게 한 활동적으로 생긴 중년여인이 다가오더니 나에게 처음 왔느냐고 말을 걸었다. 자기는 고 1짜리 딸을 데리고 왔다면서 딸에게도 춤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날씬하고 귀엽게 생긴 소녀는 엄마의 리드에 따라 곧잘 춤을 추었다. 그냥 서서 구경만 하고 있는 내가 보기에 안됐는지 활동적인 그 중년여성은 자기가 가르쳐 줄 테니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하나, 둘, 셋, 넷 하며 구령을 부치면서 스텝 밟는 법을 가르쳐 준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아주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춤마당이 끝나고 나는 몇몇의 현지인 부인들과 돌아오면서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춤을 시작하고 나서 뱃살이 쏙 빠졌다고 한 부인이 애기하니까 또 한부인은 자기는 20일 동안에 7근(3.5kg)이 빠졌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체중을 킬로그램으로 얘기하지 않고 근으로 애기한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선교지에서 초창기 생활을 할 때이다. 우리가 사역하던 현지인 여대생이 자기 몸무게를 이야기 하면서 “전에는 98근이 나갔는데 지금은 100근이 넘어요.”라고 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돼지가 연상됐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 역시도 몸무게 이야기를 할 때는 몇 근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동네 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야~이 사람들 전도하기 딱 좋겠구나.’ 그런데 나에게 춤을 가르쳐 주었던 부인이 “당신은 음악 감각이 아주 좋아요.”하며 나를 칭찬했다. 나는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으로만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하는 것이 날마다 찬양을 하는 것인데 당연히 음악 감이 좋을 수밖에.........’ 그렇게 속으로만 웃으며 스스로 다짐한다.
‘당신들은 이제 다 나한테 걸려 든 거야. 복음의 그물이 곧 덮칠 테니 기다려요!’
뜻밖에 강변의 춤마당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전도의 접촉점을 발견하고서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는 여름밤의 공기가 왠지 상쾌하게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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