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밤새 운전하여 새벽 3시쯤 허톈에 들어섰는데 입구에는 놀랄 정도로 많은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거의 30분을 기다려서야 우리의 검문이 시작되었다. 총을 든 무장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우리 차량이 검문소 앞으로 다가가자 무장 경찰이 다가오며 모두 차에서 내리라고 손짓했다. 운전석에서 차문을 열고 내리려고 하니 운전자는 내리지 말고 면허증과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했다. 면허증과 신분증을 검색기에 검색한 후 다시 차량의 화물칸을 열라고 지시해서 열어 주었더니 안에 있는 물건들을 일일이 뒤지며 내용을 확인했다. 검색대를 지나 차를 건너 쪽에 세워놓고 일행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20분 쯤 지났을까, 그때서야 하나 둘씩 나타났다.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한 사람씩 자신의 신분증을 들고 검색기 앞을 지나가며 얼굴과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고 또 소지품도 하나하나 검사했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까다로운 검문절차를 모두 무사히 마쳤다. 새벽에 누구에게 연락하는 것도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일단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다음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휴대전화로 가격이 제일 싼 호텔을 찾았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의 길 안내를 따라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방을 지친 몸을 끌고 올라가 그대로 그렇게 침대에 드러누웠다. 요란한 차 소리에 놀라 깨어 눈을 떴다. 커튼을 열어저치니 밝은 아침 햇살이 유리 창문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왔다.
허톈(和田)은 중국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공항도 있고, 수년 전엔 철도도 건설되었지만 가난의 그림자는 여전했다. 그뿐 아니라 물도 부족하다고 했다. 특히 허톈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 지역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 강물을 길어 와서 모래를 가라앉힌 후에 식수로 사용한다고 했다. 심지어 겨울에는 내린 눈을 집안으로 가져와 녹여서 그것을 식수로 사용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배탈이 자주 난다고 했다.
허톈 허톈은 위구르인들이 이슬람이 되기 이전에 위톈국(于阗国)이라고 하는 불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의 수도였기에 수백 년 동안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위톈국 왕에게는 아들 하나와 조카 하나가 있었다.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났던 왕의 조카는 왕의 자리를 탐냈지만 삼촌인 왕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왕은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고 왕위를 물려줄 준비를 했다. 왕권 쟁탈에서 밀려난 왕의 조카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이웃 이슬람 국가 카자흐스탄에서 왕자 하나가 위텐국으로 망명했다. 이슬람 국가 카자흐스탄에는 여러 아들들이 있었는데 왕의 나이가 많아지자 그 아들들 사이에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다. 왕위 쟁탈전에서 밀려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 이웃 불교 국가인 위톈국으로 망명했다는 것이다. 위톈국은 이웃 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망명한 왕자를 보호해주었다. 그 이유는 위텐국과 맞닿아 있는 카자흐스탄 변방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자주 일어났는데 망명 왕자를 받아줌으로 분쟁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왕자는 위톈국에서 지내면서 왕위 계승에서 밀려난 왕의 조카를 알게 되었다. 비슷한 처지의 그들은 가까이 지내면서 이슬람 국가에서 온 왕자는 위톈국 황제의 조카에게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면 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개종을 하게 되면 카자흐스탄에서 왕의 조카가 황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왕의 조카는 위톈국에서 멀리 떨어진 카자흐스탄과 가까운 카슈가르로 가겠다고 삼촌에게 요청을 했다. 황제의 허락을 받은 조카는 망명한 왕자와 함께 카슈가르로 갔다. 거기에서 황제의 조카는 자신을 따라 카슈가르로 온 부하 172명과 함께 비밀리에 이슬람 개종의식을 거행했다.
따라서 지원세력을 얻은 황제의 조카는 카슈가르 주변에서 군대를 모집하여 위톈국 군대와 전쟁을 벌였다. 두 나라 군대는 군사 요충지인 신장 지역의 잉지사(英吉沙)에서 혈전을 벌였는데 이슬람 군대는 결정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 전투에 참가했던 위톈국 군대는 전멸했지만 이슬람 군대의 손실도 적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4명의 이맘 중 3명이 이 전투에서 희생했으며 3만 명의 군사 중에서 2만 명이 전사했다. 지금도 이들의 무덤이 잉지사에 있는데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무덤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죽은 3명의 이맘의 무덤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들의 이름과 행적이 쓰여 있다고 했다. 잉지사 전투에서 승리한 카슈가르군은 기세를 몰아 위톈국까지 진격해 왕을 사로잡아 위톈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다시 카슈가르로 돌아와 신장 지역 최초의 이슬람 국가를 세우고 카슈가르를 수도로 삼았다. 그가 바로 신장 지역에서 유명한 제1대 이슬람 국가 초대 왕이 되었다.
오전 묵상 오전 10쯤 우리 방에서 사도행전 6장을 묵상했다. 사도행전 6장은 7명의 헬라파 집사를 세우는 내용으로, 교회의 구제 때문에 내부 갈등이 발생했는데 사도와 교회 지도자들은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은 하나님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다. 그리고 7명의 집사를 세워 구제하는 일에 전담하도록 했다. 하지만 본문에서 우리는 세워진 일곱 집사들이 맡겨진 구제에 전념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도들과 함께 말씀전파에 더 집중하는 것을 발견했다. 세워진 일곱 집사들 중에 빌립과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다. 그리고 말씀에 전무하고 있을 때 발생한 교회 구제 문제가 해결되었고, 교회가 부흥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는 많은 제사장들도 이 도에 복종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체마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말씀과 기도에 의탁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우리가 전했던 말씀과 우리의 기도, 그리고 앞으로 계속될 기도가 이들을 이끌어 갈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실 일곱 집사가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일정 가운데 늘 그랬듯이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허톈에는 고아와 과부들이 많다. 이슬람 경전 코란에는 남자 한사람이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 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허톈에서는 여자들이 15-16세에 결혼을 해, 대부분 결혼 직후 아이를 낳는다. 이슬람 코란에는 한 명의 남자가 네 명의 부인을 둘 수 있지만 중국 법률에는 일부일처만 허락하고 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이를 낳은 여자들 중에는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경우가 허다하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여자들은 대부분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간다. 그럴 경우 친정에서는 외할머니가 아이를 키운다. 이때 아이는 외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엄마를 언니라고 부르게 한다. 왜냐하면 어린 나이에 여자가 혼자서 평생 살 수 없는 일, 다시 결혼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딸려 있으면 결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평생 자신의 생모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가난한 허톈을 돕기 위해 K농장에서 사막기후와 사막지대에서 잘 견디고 성장할 수 있는 경제 작물 재배를 연구하고 있다. 이미 연구를 마친 작물을 현지 가정과 연결하여 재배를 시작하고 있다.
카스 가는 길 허톈에서 카스는 약 500킬로미터 정도다. 허톈과 카스는 위구르인 집거 지역으로 중국의 화약고로 불리며 폭력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이동할 때에는 안전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이 지역에서 밤에 이동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 좋다. 허톈 시가지를 벗어나니 황량한 사막이 일망무제하게 펼쳐졌다. 달리고 달려도 사막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차량 전방 멀리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앞으로 가니 길옆의 커다란 표지판 하나가 보였다.
“예청(葉城)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장의 남쪽 지역은 쿤룬 산맥을 경계로 티베트와 서로 연결돼 있다. 신장에서 티베트로 가려면 반드시 예청을 거쳐야만 한다. 그래서 예청은 신장과 티베트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이다. 예청을 거처 티베트로 가려면 쿤룬산맥 즉 파미르 고원을 넘어가야 하는데 해발이 7천 미터를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탐험이나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면 이 길을 따라 티베트로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카스로 가려면 예청 시가지 외곽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지만 우리는 도심으로 차량을 운전해 들어갔다. 예청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거리가 아주 넓었다. 길 양옆의 가로등의 색상들도 다양했는데 빨간색, 노란색, 파란 색깔로 어우러진 가로등은 예청의 밤거리를 환하게 비춰주었다. 처음 보는 야경에 우리 일행은 저마다 환호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난 곳에 야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곳은 불교와 이슬람교가 교차하는 곳입니다. 이제 당신의 종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셨으니 주님의 은혜를 이곳에 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야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이 풍성했다. 우리는 우선 야시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가 보았다. 먹을거리가 너무 풍성했다. 먹을거리만 풍성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아주 밝았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웃고 떠들고 있었다. 우리가 이전에 들었던 소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시장 안에는 여러 가지 음식 판매대가 놓여 있었고 판매대 앞에는 사람들이 음식을 사서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어디서 오시는 가요?” “우루무치에서 왔어요.” 이렇게 대화가 오가며 즐거운 시간이 흘렀다. “혹시 아리(티베트 지명) 가 본적 있나요?” “아니요, 아직 못 가봤어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우리 중에 누군가 대답한다. “우리는 예수 믿는 크리스천들인데 이곳과 당신을 축복하러 왔어요.” 그랬더니 “그러면 마음껏 축복하고 가세요. 하지만 저는 무슬림입니다.”하고 대답한다. 이제 군만두도 거의 다 먹었고 시간도 많이 지나 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되었다. C형제가 또 시작했다.
“아이싸 약시 큐르둠”, “아이싸 쉬스케 만구이 하야트 베레쉬”
그리고 중국말을 이었다. 우리는 일생에 한번 밖에 못 만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내가 한 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그 말이 당신의 인생에 큰 복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 그 청년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Mr. HAN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