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 국경에는 사용되지 않는 곳을 포함해서 30여 군데의 접촉지점이 있고, 그 가운데 16개 지점이 공식적인 국경통과지점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호 특집의 주제가 ‘북-중 교역도시를 통한 북한선교’인데 북-중의 공식적인 교역도 이 지점들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지점들은 북한선교의 발판이 되는 곳들이고, 또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지점들을 중국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바라보고, 또 북한과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는 곳들이다. 단동(丹東)
단동은 북-중 교역의 70% 이상이 이뤄지는 곳이다. 단동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다리를 중국쪽에서는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라고 하고, 북한쪽에서는 조중우의교라고 하는데 이 다리는 철로와 육로를 겸하고 있다. 단동과 신의주 사이에는 다리가 하나 더 있는데 6․25 전쟁 때 미공군의 폭격으로 이 다리의 반이 파괴되었다. 이 반쪽 자리 다리는 ‘단교(斷橋)’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데, 중국은 이 다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1911년에 이 다리가 준공되었을 때, 일본 당국은 이 다리 개통식에 참석한 일본 총독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조작해서 서북지방의 민족운동가들을 대거 체포했다. 그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는데 이들은 무시무시한 악형을 받았다. 이것이 이른바 한국기독교의 대표적인 수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105인 사건’이다. 
압록강 다리. 왼쪽은 조중우의교. 오른쪽은 단교. 건너편은 북한의 신의주시 다리 하나로는 북-중 교역을 감당하기 어려워 중국과 북한은 신압록강대교 건설에 착수하였다. 신압록강대교는 내년 봄에 개통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최근에 중국이 신압록강대교와 연결된 도로의 종착점을 서울로 잡고 있다는 보도가 솔솔 나오고 있다. 단동의 랑터우(浪頭)항은 평안북도 신의주와 연결되는 수로의 연결점이다. 전에는 단즈(丹紙)항이 있었는데 이 항구는 폐쇄되었다. 랑터우는 단동의 신시가지로 단동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고 있다. 시청이 이미 이곳으로 이전해 왔고 신압록강대교도 이 부근에 자리잡고 있다.
단동 주변의 북-중 교역도시들을 알아보자. 압록강의 토사가 퇴적되어 단동 콴톈현(寬甸縣) 후산진(虎山鎭)과 하중도(河中島)인 의주군 어적리(於赤里)가 거의 연결되어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 지점을 ‘한 걸음이면 된다’는 뜻으로 이부콰(一步跨)라고 부르고 있다. 
이부콰. 옆에는 ‘지척(咫尺)’이라고 새긴 비석도 있다. 콴톈현에는 평안북도 삭주군과 연결되는 수로도 있고 제방도로들도 있다. 그리고 압록강 단교와 마찬가지로 6․25때 폭격으로 끊어진 청성단교가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허커우(河口)에서 배를 타고 수풍댐으로 가는 일이 많은데 그 배가 이 다리 밑을 지난다. 단동과 그 주변의 이렇게 다양한 연결 루트들을 살피면서 우리는 단동이 북중교역을 통한 북한선교에서 실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특집에서 현장사역자를 통해 단동 편을 따로 다루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안(集安)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하여 고구려의 유적들이 많아서 한국인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지안에도 북한과 연결되는 통로가 여럿 있다. 먼저 북한의 지안의 위린진(楡林鎭)과 북한의 자강도 만포(灣浦)시를 연결하는 철교가 있는데 이 철교는 중국의 3대 대북통로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철교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되었는데 2000년에 시설을 확충했다. 지안에는 북한과 연결되는 제방도로가 둘 있고, 수로가 둘 있다. 그 가운데 지안의 위린진과 자강도 위원군을 연결하는 수로는 쇠줄을 이용하여 배가 오간다고 하는데, 위린에 여러 번 가 보았으나 이 쇠줄 수로는 보지 못했다. 한국인관광객들은 지안에서 고구려 유적들을 보고 통화(通化)시를 거쳐 바이산(白山)시를 지나 린장(臨江)을 경유하여 창바이(長白)로 가는 일이 많은데 린장에는 자강도 중강군과 연결되는 육로교(陸路僑)가 하나 있다. 이 다리는 6․25 전쟁 때 중공군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요한 통로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었다.

지안에서 건너다 보이는 북한의 만포시. 6․25 전쟁 때 납북된 기독교 지도자들이 만포에서 고초를 겪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구호가 보인다. 북한은 구호의 나라이다.
창바이현(長白縣) 정식 이름이 창바이조선족자치현인 창바이로 가는 길의 바다오거우(八道溝)에는 량강도 김형직군(金亨稷郡)과 연결되는 나루가 있었다.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은 바다오거우에서 한의원을 하면서 자주 강건너 포평마을에 건너와서 포평교회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반일강연을 하였다. 김일성은 아버지를 따라와서 이 교회에서 풍금 타는 법을 배웠다. 이 교회는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바다오거우 건너편은 원래 후창군(厚昌郡)이었는데 북한 당국은 김일성의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이름을 김형직군으로 바꾸었다. 이 나루는 1985년에 폐쇄되었는데 김형직군 쪽에서는 나루를 복원하여 이른바 ‘혁명사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창바이현에는 북한의 량강도 도소재지인 혜산시(惠山市)와 연결되는 장혜대교(長惠大橋)가 있다. 이 다리는 1985년에 건설되었다.
쌍무펑 “중국과 북한의 국경은 압록강․두만강으로만 이뤄져 있다.”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정답은 ‘틀리다’이다. 안투현(安圖縣)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 쌍무펑과 량강도 삼지연군 쌍두봉(雙頭峰) 사이의 육지 경계선이 있다. 이 쌍무펑 육로는 2009년 임시통상구로 승격되었는데 지금도 계속 통상구로 활용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모르긴 해도 더 확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단동에서 창바이현까지는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왔는데 이제부터는 두만강을 따라 내려가며 만나게 되는 접촉점들이다. 이 접촉점들은 대부분 재중동포 밀집거주지역인 연변조선족자치주 안에 있으며 ‘통상구(通商口)’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먼저 허롱시(和龍市)에 있는 통상구들이다. 총산진(崇善鎭), 여기에는 두만강의 제일 상류에 있는 다리가 있다. 북한의 량강도 대홍단군 삼장리와 연결되는 다리인데 일제강점기에는 목교(木橋)였다. 1994년에 현재의 다리가 건설되었다. 여기는 강폭이 아주 좁다. 난핑(南坪), 철광으로 유명한 무산과 연결된 다리가 있다. 1994년에 건설되었고, 2004년에 확충되었다. 중국이 무산광산의 채굴권을 확보하였고, 철광 운반을 위해 난핑과 화롱을 연결하는 철로를 건설했기 때문에 이 다리는 더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남평의 중국 해관
다음은 롱징시(龍井市)에 있는 통상구들이다. 싼허(三合), 북한의 회령시와 연결되는 다리가 있다. 2009년 12월에 재미인권운동가인 로버트 박이 북한의 신앙자유를 촉구하기 위해 이 다리를 건너 북한에 들어갔다가 억류되어 많은 고초를 겪다가 43일 만에 석방된 일이 있었다. 회령을 바라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은데 싼허에는 그들을 위한 시설들이 여럿 있다. 카이산툰(開山屯),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 삼봉로동자구와 연결되는 다리가 있다. 일본에서 억울하게 옥사한 윤동주(尹東柱)의 유골이 당숙의 품에 안겨 이 다리를 건너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룽징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뤘다. 카이산툰과 북한 사이에는 육로도 있었고 철로도 있었으나 철로는 1987년 이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롱징시는 회령과 연결된 나루터가 있었는데 폐쇄되었고, 회령의 유선동과 연결된 다리가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먼(圖們)에는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로동자구와 연결된 도로교와 철로교가 있다. 중국 동북지역을 방문한 한국인들이 북한을 보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곳인데 ‘남양로동자구’를 ‘남양시’라고 잘못 표기한 안내간판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투먼과 훈춘에는 이차대전 말기, 일본군, 또는 소련군에 의해 파괴된 다리들이 있다. 일본군은 패퇴하면서 소련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투먼의 량수이진(凉水鎭)과 온성군을 연결하는 다리를 폭파했고, 같은 때에 훈춘과 함경북도 경원군 훈융(訓戎)을 연결하는 다리를 폭파했다. 소련군은 이 다리의 레일을 철거하여 이 다리는 현재 교각만 남아 있다. 일본군은 경원군의 유다섬에 있는 다리도 폭파했으나 이 다리는 중국이 1966년에 보수하여 현재 사용되고 있다.
치엔허(圈河), 훈춘(暉春)에 있는 이 다리는 북한 나선경제무역지대의 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다리는 1936년에 건설되었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 폐쇄되었다. 그러나 나선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1995년에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크게 보수를 하였다. 이 통상구의 업무량이 날로 폭주하여 실무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치엔허 다리 입구의 분주한 모습
두만강의 동쪽 끝에는 러시아의 핫산시와 연결된 조러친선교가 있다. 이 다리는 중국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이야기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까지 북중 접경지역들을 살펴보았다. 독자들은 ‘아니, 이렇게 많나?’ 할 것이다. 이 지점들을 통한 북-중교역이 활발해지는 것은 복음전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은 그렇다고 알아두시기 바란다. 이 지점들은 또 북한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지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미 그렇게 쓰이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
♠ 유관지|《북중접경, 기도하며 걷다》 저자, 성화감리교회(분당)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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