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5.5  통권 153호     필자 : 주향기
[특집] - 특집/ 선교사의 재충전과 자기계발
고유의 모습을 찾아가는 시간, 안식년


◎ 안식년

중국에서 돌아와 한국에서의 생활은 낯섬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에도 카드를 찍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기억을 하는데도 기어이 몇 번의 실수를 하고서야 몸에 익었다. 지하철역에서는 역무원을 찾기 힘들어 당황스럽기도 했다. 앞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며 걸어오는 사람을 반갑게 쳐다보다가 ‘아∼참, 여기는 한국이지’라고 혼자서 괜스레 민망함을 웃음으로 무마하길 몇 차례. 갑자기 많아진 친척관계와 챙겨야 할 사람들, 친구들……. 가지 못해도, 잘 하지 못해도 용서가 되었던 상황이 바뀌어서 가봐야 하고, 돌봐야 하고, 찾아뵙고 인사해야 할 곳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기준은 아직도 한국을 떠나기 전의 상태로 그대로 멈춰 있는데, 사람들은 다 나이가 들어 중후한 어른들이 되어 왠지 위축되고 힘이 든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과의 갈등도 풀어야 했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빈자리의 허전함 때문에 눈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른 가족들에게 그동안 못했던 도리를 하느라 눈치도 보이고, 선교지에서 이사를 밥 먹듯 하며 버린 물건 몰래 주워 사용하던 습관 때문에 지인들로부터 눈총도 받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이 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면서,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하리라 계획했던 욕심들을 조금씩 내려놓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즐겁게 평생을 달려온 길인데 어느 때부터인지 재미도 의욕도 없다. 내 맘이 이런데도 늘 칭찬해주고 기꺼이 따라주는 현지인들이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다.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일까? 나의 문제를 직면해야 할 시기가 왔고, 충전이 필요했고 나의 정체성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기도원엘 가서 실컷 기도하고 찬양도 하면서 채워야겠다.

“그런데요, 하나님! 다른 사람을 위한 것 말고 저 자신을 위한 것들을 해도 될까요? 이 기회에 영어를 좀 더 했으면 좋겠어요. 성경도 상담도 제대로 좀 더 공부해 보고 싶어요. 말씀과 기도와 교제를 맛나게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아서 마음의 양식과 외로움을 채우고도 싶어요.”
 

◎ 정체성의 회복
지나고 보니 삶에서 가장 힘들고 흔들렸던 순간은 바로 자신의 신념과 목표가 흔들렸을 때였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그만큼 인간은 존재의 이유가 필요하고 살아야 하는 목표가 있어야 살아가지는 것 같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기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하나님을 빼놓고 답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안식년이라는 귀한 시간은 ‘쉼’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리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동기를 말씀에 집중하며 다시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들을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확인하고 싶다. 그동안 목말랐던 모국어로 된 많은 신앙서적들과 성경 말씀(현지어 말씀의 부담을 내려놓고), 신학교에서의 수업과 세미나들은 내 소진된 머리와 마음에 살이 차오르게 만들어 주었고 곧 삶은 깊은 만족과 평안으로 채워졌다.

‘내 마음의 치유’라는 책을 읽는 중에 '신앙성숙의 과정을 통한 치유과정단계'를 통해 나를 점검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의 정체성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써 나의 흔들림이 이해가 되었고 자신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진행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하나님께로 방향 전환하는 회심으로 정체성이 바뀌는 단계. 두 번째, 풍성한 사역의 열매를 통해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단계. 믿음의 확신과 기도의 체험이 늘어날수록, 마치 하나님이 내 기도를 다 들어 주시기에 기도하기조차 겁이 났던 아찔할 만큼의 풍성한 열매를 허락하신 순간들이 있었다.

세 번째, 정체성의 위기 단계로서 막다른 골목에 갇힌 것 같은 위기의 과정으로 지금까지 확실하다고 믿었던 믿음의 체계가 흔들리는 위기에 직면한다.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확실함이 무너지는 과정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주지만,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던 확신과 개인적인 성취감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불확신과 개인적인 연약함 그리고 상실감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과 새로운 만남을 경험하게 된다. 네 번째, 마음의 치유를 통한 정체성 회복의 단계. 다섯 번째,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연합의 단계.

한국에 오기 전, 나의 단계는 세 번째 단계였다. 내가 정상적인 단계를 밟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가운데 순종(사람이 해야 하는)의 영역과 신뢰(하나님이 하시는) 영역을 확실히 구분할 때 올바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한다. 나 자신의 침체가 자연스럽게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하나님이 하실 일과 우리의 할 일을 구분하는 것에 미흡했던 자신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고, 질서가 잡혀갔고, 어깨 위의 짐이 가벼워졌다. 

◎ 영어공부
현지어에 익숙했지만 영어에 대한 미련이 늘 있었고 무작정 시작을 하고 싶어 시도한 것이 필리핀행 비행기를 타게 했다. 필리핀 현지 선생님들과 하루 종일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외로움을 잊게 해주었고 활기를 되찾게 해주었다. 젊은 선생님들은 나의 서툰 영어에 귀를 기울여주고 자신들의 문제를 내놓으며 나의 조언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영어공부 교재로 성경을 사용해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현지교회를 방문했다. 현지 교인들과 교제를 나누고 떠들다보니 영어를 배우러 온 것인지 필리핀선교를 온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원 없이, 겁 없이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기에 즐겁고 의미 있었다.

아름다운 섬들과 열정적이고 친절한 현지인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선생님들과의 행복한 기억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시작된 신학교 수업에서 선교 영어코스가 눈에 들어왔다. 계속해서 영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웠다. 또 다시 다른 영역의 영어훈련에 감사했다. 영어로 말씀을 보고 성경공부도 하고 연륜 있는 외국인선교사님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가르침을 받으며 그분들과 교제를 나누었다. 내가 꿈꾸던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선교사로서의 자질을 구체적으로 점검받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은 감사와 말씀으로 충만해졌다.

◎ 소명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도 내 중심적 사역을 했다. 하나님은 부재중이셨기에 쉽게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좌절하였었다. 모세가 쫓겨 가 수십 년을 철저히 무명으로 살면서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뼈 속 깊이 느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시고 그분의 열정을 모세를 통해 쏟으시고 일을 시작하셨다. 이 타임이 내겐 목이 말랐다. 비워져야 할 텐데. 기다림이 지치고 불안했다. 그 과정을 통과한 모세는 완전히 변하였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능력들을 지켜보았으며 더 이상 주저함이나 사람들의 인정, 사람들의 비방이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때였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 전문성 업데이트
A국에서의 사역은 가정파탄의 끝을 보는 것 같은 가슴 아픈 경험의 연속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너져가는 자신의 가정을 먼 산 보듯 속수무책으로 내버려 두었다. 내게는 그들의 가정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가 항상 큰 고민거리였고 감당하기 힘든 숙제였다. 한국에 돌아와 피부로 느껴졌던 가정 문제 또한 그곳과 다를 바 없었다. 선교지의 작은 모형 같은 다문화 가정도 스나미처럼 무너져 가고 있었다. 국가를 불문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이루어진 교회, 믿음공동체 안에서 조차 파괴된 결혼관을 회복하기 위한 성경적 기준의 교육이 필요했다. 가정 상담 역시 절실했다.

초기 선교사들이 시대마다 필요했던 병원과 학교들을 세웠던 것처럼, 선교지에 각 분야별 전문적 필요의 준비와 대책이 절실하다. 말씀 공부와 더불어 가정 사역 전문선교사로서 준비하는 시간을 내게 허락하셨다.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구상과 사명을 회복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한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잘못된 집중으로 가정을 뒷전으로 해야 했던 우리의 선조들의 자녀 세대가 대가를 지불했다. A국의 기독교인들이 그 전철을 밟지 않고 복음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모국에 있는 기간 동안 배움에 더욱 힘쓰고 싶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때 복음의 뿌리가 단단하게 내려지고 땅 끝까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확장되고 열매를 맺음으로 영광을 받으시리라 믿는다.

◎ 고유한 모습을 찾아서
‘진리를 탐구할 때 부지런함과 정직한 탐구심을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라인홀드 니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당신의 마음에 맞게 우리를 지으셨던 그 고유한 모습을 찾아가길 원한다.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살아졌으면 좋겠다. 아직은 죄인의 한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우리네 삶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정직함과 신실함으로 그분을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끝까지 경주하길 소망한다.







주향기 |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