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두가 스마트 기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스마트 디바이스들의 가장 큰 골치거리 중 하나는 바로 충전이다. 금방 방전되는 배터리 때문에 장거리를 이동하려면 휴대용 외장 배터리를 챙겨야 한다. 제 아무리 똑똑한 스마트폰도, 순간이동으로 지구 반대편의 동역자를 연결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면, 그 어떤 기능도 사용할 수 없다. 아무리 기기를 붙잡고 애걸해 보고, 야단쳐 봐도, 열 받아 던져 보아도 소용 없다. 왜? 방전된 배터리는 더 이상 전원을 공급해주지 못하니까!
사람은 스마트기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스마트하며, 근본이 다른 생명의 존재다. 그런데 이 사람이라는 존재도 방전이 될 때가 있다. 완전방전의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Burn Out Syndrome (번 아웃: 탈진 증후군, 이하 번 아웃으로 지칭) 상태다. 사람도 마치 배터리가 완전히 out된 스마트폰처럼, ‘번 아웃’된 사람은 삶을 유지해내는 에너지가 완전방전 되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런 완전 방전상태를 번 아웃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 상태에 처한 선교사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중 한 분은 사모님이셨다. 사모님은 목사님과 함께 선교사명으로 열심히 사역하면서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도들을 반복해 겪으면서 지쳐갔다. 결국에는 선교지에 대한 정이 뚝 떨어져 짐을 싸서 현지를 떠나게 되었다. 부부가 현지어와 현지생활 등 다방면에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었는데 결국에는 현지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탈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휴식과 재충전이 적절하게 이루어진다면 어려운 시기를 부드럽게 넘길 수 있다.
왜 번 아웃이 발생하는 것인가? 용수철은 탄성이 있어 어느 정도 늘어나면 다시 원래 형태로 회복된다. 그런데 그 어느 정도를 넘겨 계속 늘어나면, 늘어난 용수철은 그냥 늘어진 상태로 멈춰 버린다. 다시는 원래 형태를 회복하지 못한다. 과도한 사용이 회복능력을 초과한 것이다. 더 심한 경우에는 탄성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끊어져 버리기도 한다. 용수철을 제대로 오래 쓰려면 어느 정도를 넘어 늘어나지 않게 해야 하고, 늘어남과 회복을 균형 있게 유지해야 한다. 우리에게 휴식과 재충전은 바로 끊어지기 쉬운 삶의 탄성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래서 휴식과 재충전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번 아웃이 될 정도로 무리한 생활을 하게 될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국 사람이 휴식에 대해서 갖는 일종의 죄의식이다. 한국인 사역자들은 ‘쉬는 것 = 노는 것 = 게으른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다. 두 번째 이유는 일종의 일중독현상이다.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일을 끊임 없이 벌리며, 일을 해야만 심리적인 안정감을 누리는, 일에 대한 중독현상이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휴식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휴식에 대한 죄의식, 일중독 등으로 우리는 건전하고 건강한 휴식의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런 경향은 사역자의 경우 더욱 심하다.
그렇다면 선교사에게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성경이 ‘안식’을 말하기 때문이다. 안식은 휴식이란 단어로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안식의 구성요소는 휴식이다. 그래서 안식은 성경적이다. 창세기 2:1-3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으신 후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안식일로 삼으셨다. 출애굽기 31:12-17에서 안식일 준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명령이었다. 예수님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잠시 쉴 것을 권하셨다. 성경이 말하는 휴식은 그냥 무턱대고 노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잘 노는 것도 포함하지만, 더 넓고 깊은 의미가 있다.
안식을 통해 관계의 회복,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선포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안식은 어떤 면에서는 물질적이고 소비적인 시대를 향한 저항이다. 더 많이 생산해내고 더 많은 성과물을 달성해내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세상의 요구에 영합하지 않고 ‘No’를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공급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의 공급은 언제나 충분하다는 자족의 선언인 것이다. 휴식을 하면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축복은 주인 되신 하나님, 그의 자녀 된 나에 대한 더욱 또렷해진 인식이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평안, 여유, 믿음이다. 휴식은 쉼표다. 그 쉼표의 자리에서 우리는 위에서 나열한 안식의 유익을 누릴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영혼뿐 아니라 육체와 정신도 함께 지닌 전인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엄연히 육체와 정신을 지닌 인간이다.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육체와 정신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간혹 열심히 달려가던 영적 리더들의 넘어진 소식을 듣는다. 얼마 전 이곳에서도 유명한 한 시니어선교사가 성추행 문제로 좌초됐다. 이렇게 된 것에는 복잡한 원인이 있었겠지만, 이런 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않고 수십 년간 사역에만 매진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많은 경우 조금의 개인 시간도 없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해가면서 사역을 일구어 왔던 성실하고 열심히 했던 분들이다. 이분들이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의외의 곳에서 벌어진 문제로 낙마한다. 왜 그럴까? 열심이 부족해서 일까? 아니면 기도와 경건생활이 문제일까? 원인은 종종 의외의 곳에 있다. 번 아웃 문제에 처하게 되면, 이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더 많이 헌신할 것을 권면 받는다.
사실 문제가 그렇게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사람은 여러 장의 각기 길이가 다른 나무판자를 엮어 만든 물통과 같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물통의 물은 언제나 가장 낮은 판자가 있는 부분으로 새어 나온다. 높은 판자 쪽으로는 물이 새지 않는다. 신경을 써야 할 곳은 평균치 보다 더 낮은 쪽이다. 이미 평균치 보다 높은 헌신의 판자, 성실의 판자를 더 높이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지만 물이 새는 것을 막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차라리 가장 낮은 판자를 평균치 정도로 조금만 높여 주면 물은 더 이상 새지 않을 것이다. 낮은 판자는 육체적인 필요다.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한가한 대화를 나누는 것, 여유롭게 책을 읽는 것 등이다.
이 부분이 평균치는 되어야 물이 이곳으로 새지 않는다. 사람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와 정신을 지닌 존재다. 이 점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단단한 행동이 ‘휴식’이다. 휴식은 우리를 더욱 건강한 사역자로 만들어 준다. 셋째, 타문화권에서의 삶은 더욱 휴식을 필요로 한다. 선교사는 타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타문화권에서의 삶은 끊임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우리의 몸은 긴장 가운데 있게 된다. 간혹 고국으로 귀국할 때, 인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문을 나서는 순간 내 몸이 고국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편한 옷을 입은 듯한 기분 좋음과 왠지 모를 자신감이 솟아난다. 자문화권이기 때문이다. 타문화의 긴장감에 항시 노출되는 사람은 이런 긴장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
그렇다면 선교사가 할 수 있는 휴식이란 무엇일까? 휴식은 무조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꼭 물러나 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에너지는 받아야 충전되지 더 방전시키면 충전되지 않는다. 뭔가 연결시켜야 한다. 충전기에 전기선을 연결하듯이 말이다. 잠시 쉬고 가는 쉼표의 시간에 나의 마음과 몸이 정지되고 고요한 시간을 통해 우리를 창조하시고, 선택하여 부르신 주인 되신 주님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분 안에서 다시 한번 새로워 지는 것이다.
휴식은 방법적으로는 여행, 설거지, 산보, 기도, 운동, 책 읽기, 요리, 자기계발 등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환경, 조건, 능력을 고려한 관찰과 발견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게 주어진 범위 안에서, 건강하고 건전하게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뭐가 내게 충전이 될까,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휴식을 사치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방법이 사치스럽다면, 사치스러운 시간을 사용하면 염려하는 것처럼 사치스러운 휴식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얼마든지 검소하고 적절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휴식은 우리에게 다양한 유익을 준다. 휴식을 제대로 취한 사람은 더욱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게 되며, 이런 효과적인 사역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지구력도 얻게 된다. 그리고 휴식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과 가정, 사역을 지켜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기를 수 있게 된다.
휴식에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는 근면하고 성실한 사역이 전제되어야 휴식도 휴식다워진다. 근면하고 성실한 삶이 전제되지 않을 때, 휴식은 게으름이나 나태함으로 변질되기 쉽다. 두 번째 휴식이 몸과 마음을 과도하게 지치게 하는 휴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휴식 후 더 큰 휴식을 요구하게 되는 휴식은 좋지 않다. 또한 휴식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키가 아니다. 건강한 사역, 건강한 사역자에게 필요한 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충분의 조건은 아니다. 휴식이 지닌 한계가 있다.
결론적으로 휴식과 재충전은 우리 사역을 이루는 중요한 한 부분이다. 긴장과 이완작용을 통해서 근육이 만들어지듯이, 사역이라는 긴장과 휴식이라는 이완이 합쳐져서 삶의 근육이 튼튼해지고 건강해진다. 휴식과 재충전을 통해서 사랑하는 선교사님들이 엘리야를 찾아 오사 쉬게 해주셨던 하나님, 제자들과 조용한 곳을 찾아 잠시 숨을 돌리셨던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기도한다.
박수민 선교사 | 동경 닛포리국제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