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8.20  통권 71호     필자 : 강진구
[중국 영화]
못다 핀 천재 소년 화가의 삶 – 로빙화

영화와 치유의 기능
지금까지 영화가 인간의 정서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주로 부정적인 측면을 밝히는 데 치중해왔다. 폭력적인 장면을 시청했을 경우 인간의 공격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보고서가 심심치 않게 우리의 귓전을 두드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비록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흉내낸 모방범죄의 유형만큼 심각한 것은 아닐지라도, 영화의 강한 폭력의 이미지들은 연령이 낮은 청소년들의 정서를 불안하게 만들고, 현실적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폭력을 쉽게 택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이론은 설득력 있게 다가왔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순기능이 전혀 묵과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오락적 기능이나 의사소통을 돕는 기능, 교육적 기능 등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즐거움을 맛보고 심오한 지식이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기도 하며, 새로운 지식과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지침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껏 소홀히 해온 영화의 좋은 기능 가운데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어떤 영화들의 경우 영화를 보는 사람의 내면에 작용하여 정신의 안정이나 삶의 자신감 고양, 스트레스 해소 등의 치유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기분전환의 기능’으로 알려진 영화의 치유적 역할은 근본적으로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간접체험을 경험하게 된다는 데 기인한다. 영화 속 세계가 비록 현실이 아닐지라도 영화를 보는 동안 사람들은 마치 실제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배경과 주인공의 행동들은 또 다른 현실로 체험되며, 그에 대한 심리적이며 생리적인 반응이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재회의 극적인 장면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행복감에 젖어들수 있다. 이때 행복감을 느낀 관객들은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혈압이 매우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게 되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그것이다.

영화가 인간 심리에 부정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인정할 수 있다면, 좋은 영화를 보는 동안, 그리고 보고 난 후에 그것이 내 마음과 몸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바를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곧 약은 아니지만, 좋은 공기와 음식이 건강에 기여하는 역할에 견줄 수 있다 하겠다.

보양식 같은 영화 로빙화
타이완의 양립국 감독이 1989년도에 만든 영화 <로빙화(The Dull-Ice Flower)>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차 농사로 살아가는 어린 남매를 중심으로 한 농촌 영화이다. 아시아권의 영화들 안에서 발견되는 이 같은 소재는, 흔히 가난한 마을을 배경으로 생활 깊이 배어 있는 가난을 극복하며 꿋꿋이 살아가는 인간 의지의 발현이라는 정형화된 틀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지난 호에 소개한 <아빠를 업고 학교에 가다>라는 영화에서처럼 가난하지만 부자(父子)간의 애정과 교육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로빙화>의 배경은 가난한 시골 마을이지만 성공시대류의 영화들에서 흔히 보여지는 자수성가의 규칙을 따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가난 때문에 재능을 미처 꽃 피우지도 못하고 사라져간 어린 인생을 꽃과 호수라는 지연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것은 이 영화를 계몽적 성격의 ‘참여시’라기보다는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서정시’에 가깝도록 만든다. 가난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거칠 것 없이 살아가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을 본다는 것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 영화는 회색의 도시 생활과 경쟁적인 물질문명 사회에서 상처입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뭔지를 되찾아 주고, 현실의 긴장과 고단함으로부터 잠시나마 정신을 쉬게 만들고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일종의 내적치유의 기능이기도 하다. <로빙화>의 치유적 기능은 다음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영화 속 주인공이 이루게 되는 성취와 감정의 동화가 가져오는 카타르시스 효과는 정서적으로 맺혔던 앙금을 씻어내리는 시원함으로 나타난다. 주인공 아명은 미술에 천재적 소질이 있지만 가난하다는 편견 때문에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학교에 새로 부임한 미술 선생님이 아명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학교 대표로 전국미술대회에 출전시키려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부유한 지역 유지의 아들인 임지홍을 선발한다. 임지홍의 그림은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이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치중한 반면, 아명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창조적인 그림을 그린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임지홍을 밀어주는 권위주의적이고 권력에 아부하는 어른들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는 반면 가난한 제자를 키워주려는 미술 선생님의 행동에 감동한다. 아명은 비록 살아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미술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그림으로 세계아동미술대회에서 1등하는 영예를 죽어서나마 누리게 된다. 상장을 받아들고 아들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지만, 관객의 마음 속에 일었던 격랑은 이제 평온함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 영화 속 소박한 자연미가 일으키는 시각적 효과와 의미 산출은 이 영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자양분 역할을 한다. <로빙화>의 배경을 이루는 호수는 스위스의 레만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미국의 미시간호처럼 장엄하지도 않다. 어떤 자연의 위협도 느낄 수 없는 안온함이 화면에 가득하다. 그래서 주인공 어린 남매가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뗏목을 타고 다녀도 불안하지 않다. 이것은 같은 자연이라도 연출의 의도에 따라서 공포의 대상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수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내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호수 주위를 둘러싼 노란색의 로빙화는 호수와 더불어 엄마 품에 안기는 듯한 안정감과 따뜻한 정경의 핵을 이룬다. 그래서 영화 속 아이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별들은 말이 없고 인형은 엄마를 닮았는데 하늘의 눈은 반짝이고 엄마의 마음은 로빙화 차 밭에 꽃이 피니 엄마는 즐거워하시네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로빙화네.”

셋째, 안정적인 화면은 그것에 가치있는 의미가 첨가될 때 그 치유의 영향이 보다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예쁜 로빙화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로빙화가 지닌 역할을 통해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감동받는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멘트가 흘러나온다.

“농부가 차나무 밑에 (로빙화를) 심으면 봄에 꽃이 피죠. 그러나 얼마 후 (꽃이) 시들면 농부가 차나무 밑에 두고 흙으로 덮어요. 그러면 비료가 돼서 차나무가 잘 자라게 만들죠. 로빙화는 죽어서 향기로운 차를 마실 수 있게 해줘요.”

향기로운 차를 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로빙화의 모습은 우리들이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예쁘게 피어나는 꽃으로 자신을 빛내기보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들의 성장을 돕는 모성애가 로빙화 속에 담겨있다. 이것은 영화 속 아이들이 왜 로빙화를 보며 엄마를 생각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의미부여는 영상을 통한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이해의 측면을 도움으로써 자기 중심적 삶으로부터 돌이키게 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강진구/영화평론가∙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