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평한 땅 창춘(长春)에서 일 년을 살았습니다. 온종일 가도 오르막 내리막이 없는 길을 일 년 간 다녔습니다. 처음엔 이런 길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차츰 평지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창춘에는 남호공원이라는, 유람선이 떠다닐 만한 호수를 낀 아주 큰 공원이 있습니다. 남편과 나는 울창한 숲이 있는 남호공원을 아침 산책길로 택했습니다. 숲 속에 들어서면 여느 깊은 산 속과 같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쭉쭉 뻗은 나무들과 각종 야생화와 들풀들, 그래서 숲 속 분위기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산이 아니라 평지입니다. 마치 산이 푹 주저앉은 것 같습니다.
그 곳에 살다가 잠시 한국에 다니러 나간 적이 있습니다. 숨가쁘게 오르막 길을 걸어보니 얼마나재미있는지요. 그것 뿐인가요? 높은 산도 있고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도 있고, 한국 땅은 하나의 공원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커다란 공원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공원 사이에 집이 있고 공장을 짓고 학교도 짓고 사는 한국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원 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곳 따롄(大连)으로 이사 온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갑니다. 그 동안 평평한 지형에 싫증이 났던 터라 약간 경사진 곳에 집을 구했습니다. 처음 이사를 하고 시장을 보러 내려갔다가 오르막을 올라오는데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던지요.
남편과 나는 30년 가까이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서로 모난 구석이 깎이고 닳아, 웬만한 일들은 대충 넘어가게 됩니다. 자연히 다툴 일도 없어져 버렸지요. 대학에 다니는 딸 둘을 고향집에 떼어놓고 남편과 둘이 생활하는데 크게 웃을 일도, 크게 다툴 일도 없습니다. 서로 각자 일을 하고 필요한 말만 하고, 참으로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를 얄궂다고 하지 마세요.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 그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걸 이해하실 수 있겠는지요. 내가 한국에 있을 땐 뜻대로 안 자라주는 아이들 때문에 속생해 하고, 이웃 친지들과 때론 아웅다웅 하면서 스트레스 속에서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떠나 훌쩍 어디론가 가서 살아보기를 얼마나 갈망했었는지요. 그런데 막상 그런 생활을 해보니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였습니다.
이 곳에서 나는 아이들 이름이 부르고 싶어 때때로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러봅니다. 그런데 대답이 없지요. 그러면 나는 또 ‘이 불효막심한 녀석들아, 엄마가 부르는데 왜 대답을 안 하니?’ 하고 혼잣말로 꾸중을 합니다.
지난 겨울, 한국에 갔더니 딸들 역시 처음엔 부모 그늘이 없어서 해방감을 느꼈었는데 차츰 그 해방감에 싫증이 나더랍니다. 밤 늦게 집에 들어와도, 아침밥을 걸러도 꾸중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게 싫더랍니다. 어느 땐 꾸중이 듣고 싶어서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잘못을 고해 바치고 ‘꾸중 좀 해 주세요.’ 하고 부탁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웃들과 부대끼며 가족과 한지붕 아래에서 매일같이 이런 일 저런 일로 속상해 하고 팔자타령하며 사는 생활이 진정 행복한 생활이라는 제 생각에 동의하실 수 있는지요.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생활, 그런 생활 때문에 인간의 한평생이 지겹지 않고 쉬 지나간다는 사실에 동의하실 수 있겠는지요.
전찬미/ 중국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