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31  통권 147호     필자 : 김성곤
[한시 강좌]
이백의 <증왕윤(贈汪倫)>


李白乘舟将欲行,忽闻岸上踏歌声。
桃花潭水深千尺,不及汪伦送我情。

이백이 배를 타고 막 떠나려 할 제
홀연 강 언덕 위로 발을 구르며 노래하는 소리 들리네.
도화담 맑은 물이 천길 깊다 해도
나를 보내는 왕윤의 저 정만큼은 깊지 않으리라.


주석
1 汪倫(왕윤) - 인명. 안휘성 남쪽 경현(涇縣) 도화담(桃花潭) 마을의 주민으로 이백을 도화담으로 초청한 장본인이다. 많은 전통적인 주석서에서는 왕윤을 평범한 촌민으로 보고 있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왕윤은 이백이나 왕유와 같이 유명한 시인들과 교류를 했던 지역의 명사였다고 한다.
2 將欲行(장욕행) - 장차 떠나려 하다. 이 구절은 이백이 경현 도화담에 놀러왔다가 이제 막 돌아가려고 배에 올랐다는 말이다.
3 踏歌(답가) - 발을 구르며 부르는 노래. 여럿이 함께 발을 구르며 노래하는 집체가요의 일종이다. 이 구절은 왕윤과 마을 사람들이 강가에서 답가를 부르며 이백을 전송한다는 말이다.
4 桃花潭(도화담) - 안휘성 경현 서남쪽으로 백여 리를 흐르는 강물로 청익강(靑弋江)의 상류지역이다. 물이 맑고 깊다.


천보 3년 봄 장안 궁정에서의 파란만장한 생활을 끝내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온 이백은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마음을 달랬다. 낙양에서 두보를 만나 함께 하북과 산동 여러 지역을 여행했고, 두보와 헤어진 후에는 강동의 명승지를 두루 여행했으며 멀리 북쪽 유주까지 가서 변새의 풍광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안휘성 선성(宣城)에서 벼슬하고 있던 친척 아우인 이소(李昭)가 편지를 보내 그를 선성으로 초청했다.

풍광이 수려한 선성은 이백이 가장 흠모하는 사조(謝朓)라는 시인의 자취가 선명한 곳이었으므로 이백은 선뜻 그의 초청에 응해서 선성으로 갔다. 선성의 풍광은 이백의 고향과 흡사했다. 성 동쪽을 흐르는 완계(宛溪)는 고향 청련향 앞을 흐르는 반강(盤江)을 연상시켰다. 완계는 반강만큼 크지는 않으나 맑아서 바닥까지 보였다. 성 북쪽의 경정산(敬亭山)은 청련향의 광산(匡山)을 연상시켰다. 경정산은 광산만큼 높지는 않지만 맑고 그윽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고향과 같은 친근함에서였을까? 이곳 선성에서 피는 두견화를 보고는 이백은 다음과 같은 애틋한 시를 썼다.

촉국에서 들었던 두견새 울음소리
선성에서 또 보게 된 두견화
한번 울 적마다 애간장 한번 끊어지느니
삼춘 삼월에 내 고향 삼파가 그립구나 

蜀国曾闻子规鸟,宣城还见杜鹃花。
一叫一回肠一断,三春三月忆三巴。  <宣城见杜鹃花> 

삼파는 파군(巴郡), 파동(巴東), 파서(巴西) 삼군으로 이백의 고향이 있는 촉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두견새가 피를 토하듯 울어서 붉게 피어난 꽃이 두견화라는 설화는 바로 이백의 고향이 있는 촉의 전설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두견새 울음소리에 애간장 끊어지는 날이면 이백은 어김없이 기(紀) 노인의 술집을 찾았다. 기 노인이 빚은 ‘노춘(老春)’이라는 색이 맑고 맛이 강한 좋은 술 때문이었다. 이 노춘의 맛에 얼마나 반했던지 이백은 훗날 기 노인이 죽은 뒤에 너무 아쉬워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서 애도하기도 했다.

기씨 노인 저승에 살아서도
여전히 노춘을 빚고 있으련만
저승에는 나 이백이 없으니
그 맛좋은 술을 누구에게 팔려나 

纪叟黄泉里,还应酿老春。
夜臺無李白,沽酒與何人?   <哭宣城善酿纪叟>

하지만 이백의 가슴 깊은 곳에는 이 맛좋은 노춘으로도 달래지 못하는 깊은 좌절감과 격한 울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백의 친척 어른인 이화(李華)를 모시고 사조루에 올라 쓴 <배시어숙화등루가(陪侍御叔华登楼歌)>에 이런 좌절과 울분이 잘 드러나 있다.  

칼을 뽑아 물을 갈라도 물은 다시 흐르듯
술잔 들어 시름을 녹여도 시름은 더 시름겹다.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느니
내일 아침 머리 풀고 조각배 타고 떠나련다.

抽刀断水水更流,举杯消愁愁更愁。
人生在世不稱意,明朝散髮弄扁舟。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에 마음 상하는 날에는, 술로도 달래지 못하는 좌절감을 어쩌지 못하는 날에는 선성 북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경정산을 찾았다. 경정산에 홀로 앉아서 떠가는 구름을 보고 있자면 이백 스스로 산이 된 듯 그렇게 평안할 수 없었다.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론 구름 홀로 한가롭게 떠간다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 것
오직 경정산 너 뿐이로구나

众鸟高飞尽,孤雲独去闲。
相看两不厌,只有敬亭山。   <独坐敬亭山>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 것, 오직 경정산 너 뿐이로구나”라는 말에서는 경정산에 매료된 이백의 흔연한 모습보다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백의 외로운 모습이 읽힌다. 높이 날아 사라진 뭇 새들처럼 이백의 재주에 환호하던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무리들도 다 떠나 가버렸다. 그 새들이 다 떠나간 텅 빈 하늘을, 그 추억 속의 하늘을 자신은 한 조각구름이 되어서 이리저리 무의미하게 떠돌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이백의 외로움이 극에 달해갈 즈음에 안휘성 남쪽 경현(涇縣) 도화담에 살고 있는 왕윤이라는 사람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자신의 동네를 방문해 주십사 요청하는 것이었는데, 이 편지의 구절 중에 “저희 마을에는 십리에 걸쳐 복사꽃이 피어있고 마을에는 주점이 만 개나 됩니다.”라는 구절이 이백의 마음을 끌었다. 절경과 미주(美酒)를 마다할 이백이 아니었다. 십리에 걸쳐 복사꽃이 피어있다면 이는 필시 무릉도원이 아닌가. 그곳에 술집이 만 곳이나 된다니, 작은 촌마을에 무슨 술집이 만 곳이나 되겠는가마는, 좀 과장했다손 치더라도 술집이 제법 많을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이백은 뱃길로 도화담을 찾아갔다. 도화담 마을은 물이 맑기로 유명한 청익강의 상류에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루터까지 왕윤이 주민들과 함께 나와 이백을 맞았다. 이백이 십리 복사꽃과 술집 만 곳이 있는 곳을 물었더니, 왕윤이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동네 앞을 흐르는 맑은 강물이 이름이 도화담입니다. 십리에 걸쳐 흐르지요. 그리고 우리 동네에 술집 한 곳이 있는데 그 술집 주인의 성이 만가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이백이 한바탕 크게 웃었더니, 왕윤이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는 오랫동안 대인의 시명을 흠모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대인께서 이곳에서 멀지 않은 선성에 와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꼭 초대하여 뵙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이렇게 얕은꾀를 썼습니다. 대인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이백은 물 맑은 도화담 마을에서 왕윤과 촌민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유쾌한 날을 보내게 되었다. 울적했던 마음도 얼마간 치유가 되었다. 그렇게 여러 날을 지낸 뒤 마침내 돌아갈 날이 되어 이백은 왕윤과 작별하고 배에 올랐다. 이백은 자신이 마치 옛날 무릉도원을 방문했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던 어부라도 된 듯 도화원에서 지낸 날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공이 삿대를 밀어 배를 출발시켰다. 그때 강기슭 마을 쪽으로부터 여럿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꿈결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왕윤을 필두로 많은 수의 촌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발을 굴러 춤을 추면서 자신을 전송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 중에는 만가 주점의 만씨 성의 사내도 있었고, 도화담에서 물고기를 잡아 가져다 주었던 어부 황씨도 있었고, 오동통 살찐 닭을 선물로 들고 왔던 이름 모르는 젊은 아낙도 있었다. 그들이 환한 얼굴로 춤을 추면서 송별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이백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이백은 서둘러 사공에게 배를 다시 돌리라고 부탁하고는 지필묵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한편의 정감이 넘치는 아름다운 시를 써내려갔다.

이백이 배를 타고 막 떠나려 할 제
홀연 강 언덕 위로 발을 구르며 노래하는 소리 들리네.
도화담 맑은 물이 천길 깊다 해도
나를 보내는 왕윤의 저 정만큼은 깊지 않으리라.   ▩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학교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