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통권 123호     필자 : 루쿤(陆昆)
[오늘의 중국교회]
도시교회의 남녀비율 격차의 문제

문제점
오늘날 중국교회의 남녀비율은 거의 1 : 2이고 심지어는 1 : 3-5까지 된다. 이러한 격차는 중국 일반 사회의 남녀비율과 정반대이다. 비록 우리와 비슷한 문화배경에 처한 해외 중국인교회와 한국교회에도 같은 문제가 있지만 중국교회 만큼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국교회의 이런 현상은 농촌교회에서 더욱 심각하다. 대다수의 농촌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몰려가는 까닭에 열 가구 중 아홉 가구가 텅텅 비어 있다고 봐야 한다. 도시의 신속한 팽창은 주로 청장년들을 도시로 몰려들게 한다. 무엇보다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들, 문화 수준이 조금 낮은 젊은이들과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이 집단은 늘 남자가 여자보다 많다는 통계가 있다. 중국사회에는 언제나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는 여전히 형제가 자매보다 적고, 남녀비율의 불균형으로 인해 목회 사역은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는 오늘날의 중국교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면 아래의 여러 가지 원인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결혼
남녀비율의 심각한 격차는 교회 내에 미혼 자매들에게 몹시 큰 어려움을 준다. 일반적으로 형제는 본인보다 학력과 수입이 낮은 자매를 배우자로 삼아도 되지만, 대체적으로 자매는 자신보다 형편이 안 좋은 형제와 결혼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형제가 본인보다 조건이 좋은 자매와 결혼하는 것도 많은 장애물에 부딪힐 텐데, 조건이 안 좋은 형제와 조건이 탁월한 자매가 결혼하여 성경에 합당한 가정의 질서를 세워나가는 것은 어려움이 더더욱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물론, 부부 중에 한 쪽만 믿는 경우는 목회하는데 늘 어려운 과제이다. 특히 부부 중에 자매만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남편은 불신자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여성의 지도자로서의 지위
교회 내의 여성들은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남성들보다 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과감하고 간결하다. 그리고 창의적이고 친화력이 있어서 더 많은 자매들을 교회로 오게 한다. 교회에서 자매들이 인원수와 영향력에서 현저한 우세를 차지하고 있지만, 교회는 여전히 이 사실에 대한 의미를 연구하지 않고 있어서 신학적으로 이에 대한 효과적인 해석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의 남녀비율 격차의 문제를 올바른 태도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교회가 어떻게 신학적으로, 교회 조직적으로 이 문제를 대응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교회 문화의 변화
오늘의 교회신학과 문화가 달라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이런 변화는 교회 자매들의 모임이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본다.

a. 신학중심의 전의
십자가의 구원과 고난의 중점인 신학보다 사랑과 치유를 강조하는, 감성적인 면에 비중을 두는 특징이 있다. 구원에 대한 이해도 현세적이고 더 이상 죄와 사망과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보다 더 의미 있는, 온정 어린, 서로를 지지 해주는 삶을 강조한다. 정확한 교리에 대한 관심 보다 사람과 하나님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통한 신앙체험에 관심이 더 기울어졌으며 이제는 신앙이라는 것은 집단적인 것 보다 더 개인 중심적으로 흐르고 있다.

b. 여성화된 교회 문화
위에서 말했던 신학색체의 변화는 교회의 찬송가, 예배, 개인간증, 교회의식 등에도 여성적인 취향으로 반영되고 있다. 보다 따뜻하고 개개인위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중요시하고 추구하는 편이다. 

c. 교회권력구조 및 사역방식의 변화
교회의 권력구조는 단일화에서 다원화로 옮겨가고 있으며, 권력의 움직임은 제도와 권위로부터 개인적인 대인관계와 상호작용의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d. 개인적인 교제
자매들 간에는 우정과 관심, 그리고 지지가 있다. 서로 좋아하며 의지하지만 주관적이고 변덕이 심해 신뢰하지 못함으로 인한 관계의 결핍은 목회자와 교회의 다른 자매들에게도 혼란을 가져다준다.

어느 부분의 균형이 깨졌는가?
비록 도시교회의 형제자매의 출석비율 격차가 심각한 것은 기존 사실이지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연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 아동: 거의 차이가 없다.
• 청소년: 9-18세 청소년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연의 요소 외에도 다른 한 가지의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순종하고 의지하려는 마음에도 성별의 차가 있다는 것이다.
• 청년: 대학생, 미혼 남녀 직장인은 차이가 비교적 크다. 청년들의 공동체마다 그 차이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 공동체의 구성원의 남녀출석 비율에도 영향을 받는다. 혹은, 그 공동체에서 한 두 명의 핵심 구성원의 특징도 영향을 줄 수 있다. 
• 청장년: 22-45세의 도시 직장인들의 모임인데, 그들은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직종의 차별 없이 남녀모두 같은 문화권에 속한다. 성별을 초월한 동일한 가치관과 삶의 스타일이 있지만 종종 이 연령대의 남녀비율 격차가 제일 심각하다.
• 중노년층: 45-60세의 이 연령대는 많은 도시가정교회와 단절된 상태이다. 인원수는 거의 없으며 교회 내에서도 별로 활동을 하지 않는다. 남녀비율 차이는 거의 없다.
•  노년층: 60세 이상인 성도들인데, 주로 같은 주거단지 내에 세워진 교회가 이들을 향해 사역을 하고 있으며 비교적 남녀비율의 격차는 있으나 해당 사역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교회 내의 남녀비율 격차의 일반적인 해석
• 남녀의 책임분담의 차이
남자는 주로 사회와 직장에서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으므로 여자보다 스트레스가 많고 더 바쁘다. 한국교회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비교적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국교회에서는 남녀가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녀비율의 격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더욱 고찰해야할 문제이다.

• 여성화되는 교회 문화
자매의 인원수가 월등히 많고, 자매들이 교회 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기 때문에 교회 문화가 여성적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해외 중국인교회의 문화 역시 대부분 여성적이어서 중국교회 남녀비율의 격차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는 없다. 실제로 오늘날 모든 사회의 문화는 대부분 여성적인 경향이 있다. 교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남성들은 여전히 “교회보다는 세상의 유익을 사랑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 남성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 중국에서는 1세대 성도가, 해외에는 몇 대째 내려오는 성도들이 많음
사실상 이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이다. 중국의 도시교회 성도는 대다수가 1세대 성도이며, 남자는 여자보다 예수 믿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모태신앙인들의 경우 그들의 문제는 남녀비율 격차와 무관하며 부모님의 가르침과 상관이 있기에 해외의 중국인교회 남녀비율 격차의 문제는 중국보다 심각하지 않다. 중국교회와 해외 중국인교회의 남녀비율 격차가 큰 원인은 중국이 처한 상황이 다른 나라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가 해당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극히 다르기 때문이다. 22-45세의 연령대는 중국의 주류문화를 대표하며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이며, 자신들의 문화의 하위에 있는 문화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많이 다르다. 이들은 중국교회 남녀비율 격차의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사회의 주류와 비주류
중국인은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의식이 결여되어서 현세에서의 기능적인 면만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종교단체나 종교 세력이 중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인심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 종교가 나라에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하며 중국정부 측에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 현대사회에는 비록 국가기관에 속하지 않은 다양한 전문기구들이 있지만 중국의 지식인들은 아직도 국가기관에서 인정해주는 학술평가와 학력만을 주류로 여긴다. 근래중국에 이러한 관료중심의 관습에서 벗어나 조금씩 변화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그것은 상업과 기술에로 그 중요성이 옮겨가고 있으며, 권력의 소유와 분배가 보다 더 다원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단일화된 사회시스템을 형성하고자 하는데, 여전히 나라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기준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바로 경제 분야와 여러 분야의 경영인들인데 현 사회의 핵심세력이다. 20-45세의 고등교육을 받은 청장년층이 이 주류사회 집단을 대표한다. 그러나 종교집단은 사회의 하류층에 속한다. 이들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이 중국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본인의 신분과 지위는 나라에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기에 그들이 국가발전에 유익을 끼치고 사회에서 용납과 존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의식은 본인이 경쟁가운데서 승리했다는 자부심과 관계가 있다. 동시에 본인의 높은 지성과 소양을 자랑한다. 그 부류의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특정한 품위와 가치가 있는데, 예를 들면 효율성, 과정, 규율, 공동규칙, 시간준수, 근면과 투철한 직업의식 등이다.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20-45세의 청장년층들은 보편적으로 기독교를 하류문화이며 이상한 집단이라고 여긴다. 살다 보면 힘이 들고 걱정근심에 휩싸일 때 한번쯤 기독교라는 다른 삶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기독교 같은 종교는  그들이 생각하는 정도(正道)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면 반드시 피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가정과 사회를 위해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봉사하는 것은 무위도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도 현실도피라고 생각한다. 사업과 기술 전문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 모든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인생 자체도 기술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모든 일은 사람이 하기 나름이라고 여기며 정확한 목표와 운영방법을 잘 선택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기 때문에 신(神)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신께 나아가는 것은 약자들이 보이는 반응이며, 사람들이 자신을 무능력하고 실패자라고 생각할까봐 신적인 존재에 헌신하는 것을 거부한다.

도시 직업여성들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
중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비록 남성들과 똑같이 직업을 갖고 일터에 있어도 하류문화로 취급 받는 기독교를 남성들과는 상당히 다르게 대한다. 그들은 어떤 집단적 특성으로 신분의 소속을 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은 직관적으로 본인과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 신분의 소속감을 정한다. 낯선 이들과의 대인관계에서는 먼저 친밀한 관계부터 형성하고 그 후에 가서 미묘한 경쟁관계에 이르는 반면, 남성들은 먼저 경쟁관계로 시작하여 차차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가 되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경쟁을 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가까운 사이가 되면 쉽게 상대방의 신념과 가치관에 있어서 동일시됨을 느낄 수 있는데, 남성들은 먼저 신념과 가치관의 동일시가 있어야만 친밀한 관계에 이를 수가 있다. 또 남성들은 사적인 것 이외의 것들을 가지고 타인과 교제를 하는 반면에, 여성들은 항상 본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교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성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비주류에 속해 있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으며 다만 그 속에서 친밀한 유대관계로 만족한다. 많은 여성들은 직장 내 권력의 상하관계와 일반 사회에서 냉정하고 적나라한 경쟁을 몹시 두려워하고 심지어 혐오한다. 그들은 경쟁하기 전에 반드시 서로 지지하고 용납하는 친밀한 관계가 전제되어야 하며 권위에 대해서도 먼저 사랑과 보호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처받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교회 내의 대인관계와 믿음 그리고 사랑과 포근한 분위기는 직업여성들이 반감이 아닌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개선할 수 있을까?
만약 위에 언급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런 남녀비율 격차 상황은 오히려 크게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데, 이는 앞으로의 몇 가지 필연적인 변화로 인해 가능할 것이다. (1) 관료주의의 중국 사회는 반드시 계속해서 상업과 기술위주의 다양성의 사회로 변화?발전 할 것이다. (2) 중국사회의 개방으로 정부의 종교에 대한 탄압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 심지어는 사라질 것이다. (3) 교회는 점점 종교의 현세적인 기능을 강조할 것이다. (4) 교회 내에서 점점 더 상업과 기술적인 사회의 가치와 도덕에 대한 내용을 가르치게 될 것이고 그것들을 발전시키고 시스템화 시켜서 주류 사회의 인사들도 교회 내에서 이 시대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할 것이다. (5) 교회의 성도들도 최선을 다해 사회에서 성공함으로 주류 사회에 진출한 기독교인의 비율을 높여서 결국에는 비주류에 머무는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더 큰 위기를 가져 올 수 있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정체성확립에 있어서 이 모든 것이 우리도 모르게 지나치게 상업과 기술위주를 주류 사회로 인식하는 세태에 동일시됨으로 기독교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있으나 결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진실하게 나타낼 수 없게 된다.

대책
필자는 이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초월성과 특수한 신분을 상실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타협을 택해서 주류 사회에 억지로 들어가는 것보다 오히려 심도 있는 남성사역을 개발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에는 부녀회는 있지만 남성연합회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 특성상 여성들은 반드시 타인의 각별한 도움이 있어야만 충분한 보호와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에도 남성들을 각별히 섬기는 사역이 있을 때 그들을 효과적으로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그리고 친화력을 유지하려면 편안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기독교를 인정하고 받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오직 평범함을 초월한 기독교의 초월성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헌신하고 주님께로 오게 한다. 오늘날 교회의 말씀선포 사역 중에 이미 복음의 초월성을 약화시켜서 전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이 시점에서 딘 잉게(Dean Inge)목사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이 시대의 신부가 되어 타락하면 다음 시대에 교회는 미망인이 될 것이다.”


출처 |《教会》2010年11月 总 第26期
번역 | 차이나 중국어문선교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