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저마다 하나님과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원하고, 어떤 사람은 들어가기를 거절할 뿐이다. 나는 대부분의 중국 사람과 같이 보통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산당원이고 어머니는 일반 직장인이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모든 중국 어린이에게 정해진 길로 갔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어릴 때부터 무신론, 진화론 교육을 받았기에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축구와 십자가 중학교 때부터 나는 축구를 좋아했다. 이탈리아 축구 리그를 방영해주는 일요일 저녁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월드컵과 유럽축구선수권 대회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 시절 축구는 신앙이자 유일한 정신적인 힘이었다. 내 방은 각종 축구 잡지, 스타플레이어 포스터로 가득 찼다. 어려움이 찾아와도 기분이 좋지 않아도 축구만 있으면 기뻤다. 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참된 하나님을 찾았고 어떤 사람은 잠깐 있다 사라지는 존재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대신한 것뿐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무신론자는 하나도 없다. 그때 축구는 나의 하나님이었다. 축구는 나를 즐겁게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중에 내 맘을 끌어당긴 선수들의 동작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 속에 들어왔다. 나중에 이것이 천주교의 동작인 것을 알게 되었지만 친구들하고 축구를 할 때 나도 그들처럼 가슴에 십자가를 그렸다. 고등학교 때 나는 점점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학 입시에 대한 거부 반응으로 공허감은 커져갔다. 내 자신에게 질문했다. ‘왜 꼭 대학 입시를 치러야 하지? 왜 사람들은 시험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을까? 왜 선생님들은 성적이 좋은 학생만 좋아하고 성적이 나쁜 학생은 왜 포기해 버리지?’부모는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해 온힘을 다한다. 가정교사를 붙여주고, 학원에 보낸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학원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나는 학원 가야할 시간에 대부분 PC방에서 게임을 했다. 이과 문과를 나눌 때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아버지께서 중문과를 졸업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 언어, 정치, 역사는 아버지께서 잘 아셨지만 물리, 화학은 도와줄 수 없으시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컴퓨터 게임을 좋아해서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이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 입시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로 공허함은 갈수록 커졌다. 그래서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셜록 홈즈 시리즈≫,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외국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들을 통해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소설 안에 하나님과 종교가 있었다. 나는 서방 국가의 하나님에 대해, 그들의 경전인 성경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성경을 읽지 못했다. 교회와 성경책 대학 입시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 인기가 많고 내가 원했던 컴퓨터학과에 진학하지 못했다. 하지만‘관계’를 이용하고 돈을 좀 써서 쿤밍이공대학교 컴퓨터학과에 진학하여 컴퓨터과학기술을 전공했다. 대학생활 4년 동안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몇 가지 일을 시작했다. 먼저 나는 담배를 배웠다. 담배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도록 도와줬고 공허감을 마비시켰다. 이 공허감은 사람이건 일이건 새로운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내가 상상하는 인생은 공부, 졸업, 취업, 결혼, 아이 낳고 결국 죽음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부모님께 받은 교육은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잘 살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게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계속 질문했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나는 나만의 인생을 발견할 수 있을까?’나는 중국사회는 관계사회인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개인의 실력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워도 관계로는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중국 교육은 대입 위주이고 인재 평가는 학업 능력으로 결정됐다. 많은 문제들을 발견했지만 내게는 이 현실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었다. 심지어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술, 담배를 즐겼다. 나는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축구, 소설로 인해 서방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 곳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컴퓨터도 서방 국가인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실리콘 밸리는 컴퓨터 인재를 집중하는 곳이므로 나는 진리가 서방에 있을 줄 알았다. 당나라의 승려는 불경을 구하러 갔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그때 나는 몰랐다. 하지만 나는 과학도 공산주의도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성경책 한권을 얻게 되었다. 친척 집에 갔을 때 사촌 동생의 책장에서 두꺼운 번자체 성경책을 발견했다. 동생은 외할아버지가 주신 거라서 그냥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성경에 관심이 있으니 읽겠다고 하면서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시편, 아가, 그리고 전도서는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 전도서는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헛되고 헛되도다.’ 그 후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신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기독교는 괜찮은 것 같아. 나는 기독교에 대해 더 알고 싶어.”그 친구도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으로 함께 교회로 향했다. 하나님은 그 첫 걸음부터 붙잡아 주셨다. 나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인도해 주셨다. 믿고 나서 마음속에 평안이 임했고 미래에 대한 불확신과 두려움도 사라졌다.
내 평생 사는 동안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점점 교회를 멀리 했다. 일 년 후, 나는 부모님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 베이징에서 내 인생의 밑바닥을 만났다. 실패는 전혀 예상하지 않고 그저 자신만만했던 나는 베이징에서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면접은 많이 봤지만 다 떨어졌고 도와주기로 했던 친구들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인간은 의지의 대상이 아닌 것을 그제야 알았다. 작은 지하실 방을 임대했다. 방 크기는 한국의 고시원하고 비슷했다. 하루 종일 햇빛을 볼 수 없었다. 실망한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드리는 기도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간단한 몇 마디로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가 베이징에 온 것이 올바른 선택일까요? 저를 도와주세요.”
기도를 드린 다음 성경책을 읽었는데 이사야서 54장11-13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1절이 인상 깊었다. 내 인생은 유랑하는 삶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와서 신학을 배우고 목사가 될 결심을 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기도한 후에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깊이 느꼈다. 얼마 후 하나님께서 갈 교회를 예비해 주셨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청년 찬양팀에서 봉사도 했다. 교회 간 첫날 선교의 중국(宣敎的中國)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나는 노래에 매료되었다. 찬양팀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듣고 바로 신청했다. 음악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합격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합격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섬김이었다. 얼마 후 나는 직장을 구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때 베이징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베이징에서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다음에 나는 한국선교사 한분을 만났다. 그분을 통해 삶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분은 내가 성경에 관심이 있는 걸 보시고 나를 도와주기로 하셨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제자도에 관해 배웠다. 하지만 나는 제자도에는 관심이 없어서 성경에만 집중했다. 그때의 삶은 힘들었지만 충실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하고 금요일 저녁 교회에 가서 찬양 연습을 했다. 토요일은 선교사님 댁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주일에는 예배를 드렸다. 이렇게 2년을 베이징에서 살았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질문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도들과 목사님은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특히 성경에 대한 질문들에 답을 못했다. 그때 나는 성경은 유일한 진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이 진리를 직면했을 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해결되는 질문도 있고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구약성경을 읽을 때 나는‘사랑의 하나님이 왜 법궤를 보호하려는 웃사를 치셨을까?’생각해 보았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지 못했다. 이런 질문들이 신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확산으로 IT산업도 피해를 입었다. 바로 이때 평택대학교의 초청장을 받았다. 신학에 관심이 있다고 선교사님께 말씀드렸었기 때문에 그분이 나를 추천해 주신 것이었다. 처음에 선교사님은 반대하셨지만 나를 위해 묵묵히 기도하셨다. 회의 차 한국에 왔을 때 신학교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내 얘기를 꺼냈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일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다시 일자리를 찾았고 아름다운 인생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초청장을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2008년 말 회사는 감원을 결정했다. 나는 그중 한명이었다. 분노와 실망 가운데 나는 욥기 1장 21절을 만났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말씀을 통해 나는 베이징을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으로 와서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나와 하나님의 이야기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 가운데 만드신 이야기가 아직도 많다. 성경은 내게 여전히 귀중한 보물이다. 평생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알고 내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사람은 모두 거룩한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 목적에 순종하기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그 목적을 버리기를 선택한다. 다행히도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번역 | 리리·본지 중국어자료 담당 원평 | 중국인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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