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30  통권 140호     필자 : 김영철
[중국 영화]
《초한지 : 영웅의 부활(王的盛宴)》
- 제왕의 원초적 불안

루촨(陸川) 감독은 《가가서리(可可西里), 2004)》 와 《난징!난징!(南京!南京!), 2009)》으로 중국과 외국영화제에서 잇달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12년 12월, 중국에서 《초한지: 영웅의 부활(王的盛宴)》 을 새로운 시각으로 선보였다. 

초한지에 관한 스토리는 오랜 역사의 변천을 거쳐《삼국지》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영웅서사이다. 초한지에 관한 고사성어는‘패왕별희(縊王別姬)’,‘ 사면초가(四面楚歌)’,‘ 홍문연(鴻門宴)’등 70여 개가 넘는다. 이렇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스토리는 2011년 말에 홍콩감독 리런강(李仁港)이 《초한지: 천하대전(鴻門宴)》 을 제작하여 초한지에 대한 열기를 고조시켰다. 2013년 KBS1TV에서는 80부작 중국 대하드라마《초한지(楚漢傳奇)》를 방영하여 한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루촨 감독은 기존에 초한지를 소재로 한 영화들과 차별화를 시도하기 위해 초한전의 최후 승리자인 한 고조 유방의 지략과 성공을 다루기보다는 유방이 삶을 마감하기 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시도는 영화《조조-황제의 반란(銅雀台)》에서 조조가 겪었던 만년의 삶을 조명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루촨 감독은 한 고조 유방이 노년에 경험했던 내면의 불안과 고독을 심층적으로 파헤쳤다.

제왕의 악몽
영화의 첫 장면은 유방(劉邦, 劉燁분)은 꿈속에서 항우(項羽, 吳彦祖분) 군대에 쫓겨서 도망가며‘악몽’이라는 첫 대사를 반복하고“나는 유방, 61세다.”라는 1인칭 독백으로 시작된다. 유방은 평생 동안 악몽처럼 자신을 괴롭힌 두 사람이 바로 항우와 한신(韓信, 張震분)이라고 밝혔다. 유방이 악몽 속에서 막 깨어나자 곁에서 시중들던 아리따운 척부인(戚夫人)은 유방의 손을 어루만지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었다. 그러나 유방은 왕후 여치(呂雉, 秦嵐분)가 당도했다는 소리에 급히 그녀의 손을 밀쳐낸다. 유방이 누워있는 왕실의 침실 내부는 어두컴컴한데 자신은 초췌한 백발노인이 되어 얼굴에 생기조차 없고 귓가에는 자신을“막내야(劉季, 실제는 셋째)”라고 부르는 소리, 조롱하는 비웃음 소리가 맴돈다. 고통스러운 환청에 시달리고 사방에서 엄습하는 암살의 공포에 떨게 된다. 여기서 한(漢)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유방의 당당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병들어 쇠약해진 그에게 재상인 소하(蕭何, 沙溢분)가 여치가 분부한 대로 한신의 수급을 가져다 바쳤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유방은 이를 보고 내심 기쁘면서도 측은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한 고조는 중국의 국가와 문화의 원형을 다진 찬란한 왕조를 건립하였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혼의 자유와 안정을 누리지 못한 채 내면의 불안과 고통에 시달렸다.

제왕의 열등감과 욕망
진시황이 순행 중에 사망하자 태자인 호해과 자영(子叛, 呂聿來분)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지만, 진승과 오광의 난이 발생하여 전국은 혼란에 빠졌다. 그 당시 발호한 세력 중에 초나라의 항우가 가장 막강하였다. 48세였던 유방이 24세의 젊은 항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귀족 태생으로 강건한 체격, 준수한 외모와 강력한 군대를 가졌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인을 소유하였다고 질투어린 독백으로 소개하였다. 

한 왕조를 건국한 유방은 패현(沛縣, 지금의 江蘇徐州市酪縣) 출신으로 위대한 정치가이며 탁월한 전략가로 불렸다. 그러나 유방의 집안은 빈한하여 대대로 농사를 짓고 어른이 되어서도 번듯한 이름도 갖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를 막내(셋째)의 의미를 지닌 유계(劉季)라고 불렀다. 유방이란 이름은 왕위에 즉위한 후에 얻은 이름이다. 

유방은 시정잡배들과 어울리고 고을에서 정장(亭長)이란 작은 벼슬을 지낸 적이 있다. 루촨 감독은 평민출신의 유방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사투리를 사용하여 기존 역사 드라마와의 차별을 시도하였다. 유방은 진나라에 인질로 붙잡힌 여치를 구하기 위하여 항우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항우의 군대에게 온갖 조롱을 당하였다. 하지만 항우는 대범하게 그에게 5천 명의 군사를 빌려주었다. 

유방은 진나라의 군사를 격퇴시키고 함양성에 입성하여 화려한 진나라 황궁에 도취되어 온갖 욕망에 사로잡혔다. 이때 장량은 퇴각을 권고하였다. 유방은 진나라의 주력부대를 물리친 항우의 40만 대군이 접근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초조해하였다. 유방의 부하인 장량은 항우의 숙부에게 뇌물을 주고 혼인을 빌미로 항우와의 화해를 부탁하는 동시에, 유방은 항우에게 진나라 황실의 옥새를 건네주며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하였다. 범증은 항우에게 홍문에서 밤에 연회를 열어 유방을 제거하여 후환을 없앨 것을 권했다. 연회에서 유방의 목을 노리는 검무가 펼쳐지고 유방은 자신을 겨냥한 칼에 식은땀을 흘리다 연회 도중에 거짓 핑계를 대고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그 후 유방은 홍문연에서 경험했던 살벌한 죽음의 공포를 평생 동안 잊지 못하고 고통 속에 시달렸다. 

유방이 진 황궁에 진입하여 불타오른 탐욕은 타인에게 천하를 호령하는 제왕에 대한 욕망으로 비추어 그에 대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마침내 살해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한대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사기(史記)》에서 항우는 유방이 탐했던 진시황의 아방궁을 불태웠다고 기록하였다. 가진 자였던 항우는 탐욕이 모든 패망의 원인이라고 간파하여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방의 눈에는 항우가 자신의 고상함에 취해 타인의 욕망을 소홀히 여기는 것으로 보였다.

제왕 곁에서 불안한 아내
바람기가 많았던 유방은 아내 여치의 질투 때문에 눈치를 보며 자신이 진나라를 멸망하는 대업으로 인해 동분서주한다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여치는 유방이 진나라와 싸운다는 핑계로 여자들을 찾아다닌다고 매섭게 쏘아 붙였다. 여치는 유방이 밖에서 데려온 여인과 자녀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주지만 유방이 죽은 후에 3명의 아들을 죽이는 잔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여치는 시아버지와 함께 항우의 진영에서 2년 4개월 동안 인질로 잡혀 온갖 고초를 겪었다. 그 당시 항우는 유방과 대치하며 유방의 아버지를 삶아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유방은 자신에게도 그 끓인 국을 나눠달라고 교묘하게 답변했다. 항우는 결국 유방의 아버지를 죽이려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가족의 안위조차 아랑곳 하지 않는 유방의 이러한 냉정한 태도는 가족에게 다소 서운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아내 여치는 간신히 인질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는데 유방의 곁에는 척부인이 총애를 받고 있었다. 61세가 된 유방이 삶을 마감하기 1년 전에도 척부인은 손수 유방을 정성껏 돌보았지만 유방이 죽은 후에 그녀는 여치에 의해서 가차 없이 제거되었다. 세상에서 성공하여 한 왕조의 제왕이 되었던 유방은 남편과 아버지로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정서적으로 충분한 사랑과 안정감을 주지 못하였다. 유방의 아내 여치는 자신이 인질로 잡혔던 희생에 대해 충분히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남편의 여성 편력은 그녀로 하여금 권력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어 왕후에서 태후로 섭정하며 노쇠한 남편과 어린 왕을 위하여 정적들과 개국 공신들을 숙청하고 제도를 완비하여 한나라 왕조의 안정된 기틀을 다져《사기》에서 사마천은 여치를 군왕으로 평가하였다. 비록 여치는 정치적인 수완은 탁월하였지만 불안정한 부부관계로 인해 긴장과 불안이 가시지 않아 결국 자신의 가정을 불행으로 몰아넣었고 정적을 잔인하게 제거하는 면모를 드러내었다. 

초한전에서 승리하여 모든 것을 소유하였지만 원망과 오해로 점철된 유방의 부부와 달리 항우와 우희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고상한 영웅과 미녀와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남녀는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상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였다. 우희는 전세가 역전되어 항우가 유방 군대에게 수세에 몰린 것을 간파하고 항우가 전투를 할 때 자신의 존재가 방해가 될까봐 스스로 자결을 선택하였다. 항우는 전쟁의 패망과 파멸을 자신의 과오보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마지막 전투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였다. 유방과 항우는 한 시대가 낳은 영웅이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자기성찰이 부족하여 자신들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그들의 혼인과 애정은 비극적인 결말로 막을 내렸다.

역사의 정통성에 집착하는 제왕
일반적으로 정권을 쟁탈한 집권세력은 역사로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유방, 여치, 소하 등 한나라 왕실의 집권세력들은 자신이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장으로 기억되길 원했다. 특히 유방의 아내 여치는 자신이 계획한 내용을 사관으로 하여금 역사서에 기록하게 하여 역사를 왜곡하는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었다. 여치는 역사란 미명 아래 홍문연에서 유방을 도와주었던 항우의 숙부를 암살하였고 한신에게 황후와 태자에 대한 암살 음모죄를 씌워 미리 기록하게 한 다음 연회를 베풀어 한신을 초청하여 그가 입궁할 때 승상인 소하로 하여금 자신이 추천했던 한신의 목을 손수 베어 유방에게 바치게 하였다. 한나라 왕실은 처음에는 한신에게 모반죄를 씌워서 병권을 박탈하였고, 35세 밖에 안 된 한신을 처참하게 죽였을 뿐만 아니라 삼족을 멸하였다. 한신은 항우에게 중용을 받지 못해 유방에게 귀순하여 항우를 제거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한나라가 왕조를 건립하는데 막대한 기여를 하였지만 유방과 여치는 젊고 능력 있는 한신이 자신들을 배반할까 늘 염려하였다. 승상 소하는 사관에게 한신을 유방과 여치를 구해준 인물로 기록하라고 명하여 한 왕실이 한신에게 모반 혐의를 씌운 것에 대해 반발을 표시하였다. 

루촨 감독도 한신을 송대에 교수형을 처한 충신 악비에다 비유하며 그에 대해 동정을 표하면서 기존의 초한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유방을 편애한 것에 반기를 들고 비극의 영웅인 항우에게 연민과 애정을 나타내어 사마천의 역사관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유방은 과거에 이름도 없고 보잘 것 없는 농민 출신이다. 어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고 외치고 다녔지만 작은 벼슬을 지낸 적이 있고, 자신이 제왕이 된 후에는 철저하게 집권 세력의 입장에 서서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고 약자들을 간신 혹은 역모자로 몰아넣었다. 

2013년 교육부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여 세간에서는 찬반논쟁이 뜨겁다. 역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우리는 다음 세대들이 편협한 민족사관이나 이념적인 논쟁을 탈피하여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한국사를 배우길 희망한다. 

한 고조 유방은 인생을 홍문연에서 경험한 두려운 악몽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비록 온 세상을 차지하였지만 평생 동안 끊임없이 홍문연에서 느꼈던 살인의 위협과 공포를 지울 수 없었다고 고백하였다. 루촨 감독도 이와 비슷한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네 편의 우수한 영화를 제작하여 인정을 받았지만 그 기쁨과 즐거움이 채 일주일을 넘기기 전에 그 다음에 무슨 영화를 찍어야 하는지 고뇌한다고 토로하였다. 

시장경제의 과속화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정신적인 피로가 누적된 현대인들은‘행복’한 삶을 갈망하고, 정치인은‘복지’라는 화두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쓴다. 《초한지: 영웅의 부활》은 이러한 현대 사회를 반영이라도 하듯 기존에 익숙했던 초한지 인물들의 영웅담보다는 극중 인물이 보여주는 성공의 뒤안길과 내면세계의 갈등을 세밀하게 다루었다. 

2천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성공을 향해 끊임없이 질주하고 있다. 종종 실패하여 절망의 늪에 빠져 마음속에 좌절과 허무감이 밀려오곤 한다. 이때 시편 기자는“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11)라고 격려한다. 호흡하는 매순간 부활하신 예수를 바라보며 새로운 소망과 비전을 품고 십자가 사랑으로 메마른 땅을 적시는 아름다운 우리의 삶이 되길 바란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강의전담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