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여는 한 권의 책 1854년 어느 겨울 밤, 한 사람이 난로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가족이 모두 잠든 늦은 시간이었다. 책을 뒤적이다가 그는 우연히 한 권의 곤충학 잡지에서 레옹 뒤프르라는 사람이 쓴 비단벌레를 잡아먹는 노래기벌에 관한 논문을 보게 된다. 그것은 그의“마음속의 난로에 쌓아올린 장작에 지식의 불꽃이 튀어 타오르도록”만들었고 그 후 60년 동안 곤충의 생태를 끈질기게 관찰하고, 연구하여《곤충기》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기도록 하였다. 프랑스 아비뇽의 한 중학교에서 자연과학을 가르치고 있던 당시 30세의 J. H. 파브르(1823-1915)의 이야기이다. 후에 파브르는“우연히 읽은 한 권의 책에 의해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크게 열려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 일이 있다”는 말로 그 순간을 묘사했다.
필립 얀시는 말콤 엑스의 자서전《나와 같은 흑인》(Black Like Me)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책《버밍엄 감옥에서 온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City Jail)를 읽어 나가는 동안 자신의 세계가 산산조각 나버리는 경험을 한다. 그는“한 인간의 영혼이 얇은 종이 조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고 지나가게 만드는 힘”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처럼 책읽기는 그 행위 자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독서는 곧 인생의 씨를 뿌리는 것과 같고, 일생을 두고 수확할 수 있는 과실과 같은 일이라고 어떤 이는 말한다. 풀러 신학교의 로버트 클린턴 박사는 “영적 지도자는 어떤 발달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가?”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 수준 높은 지도자들 가운데 대다수가 광범위한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며, 글에서 삶에 필요한 교훈들을 뽑아낼 줄 아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책들을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터득한 사람들이였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단순히 실천가가 아니라“성찰하는 실천가들(reflective practitioners)”1)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요즘 들어 높아지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는 독서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떻게 연관되어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책 읽는 사람이 지도자(Leaders are Readers)라는 말이 있는데 독서능력의 향상은 생애 초기부터 이루어져야 할 작업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2), 성찰하는 실천가들이 되기 위해 선교사들은 좀 더 의도적인 교육의 일환3)으로서의 책읽기를 시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선교 교육가인 테드 워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배움이란, 경험을 더욱 통합적인 의미로 재조직하는 것이다…… 모든 배움은 먼저 경험했던 것에 연관을 줌으로써 일어난다…… 배움이란 먼저 경험했던 것을 잘 조직하는 역량과 맞먹는 것이다…… 계속해서 과거의 경험을 조직하여 점점 더 큰 그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워드 1996, p.29). 이것을 책읽기와 관련하여 표현한다면 독서를 통해 우리가 가진 관점의 확장과 심화, 그리고 교정이 일어나게 될 때 우리에게는 참다운 배움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관점의 확장을 일으키는 책읽기 새로운 정보를 계속적으로 얻게 됨으로써만 우리의 관점은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또 유연해진다. 책 읽기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때때로 필요한 책을 다양한 방법으로‘배달’해 주신다. 나의 경우 1993년 GMTC 훈련을 받던 중, 막 출간되어 나왔던《영적 지도자 만들기》(로버 트 클린턴, 베다니 출판사, 원제: The Making of a Leader)를 선물로 받았다. 그 책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나의 일생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에 대한 전망을 열어주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여덟 번 이상 그 책을 정독하였고, 지도자 발전 과정에 있어 내가 어느 시점에 있으며 나의 과제는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마다 수시로 읽곤 한다. 같은 맥락에서 동일한 저자가 쓴《당신의 은사를 개발하라》(로버트 클린턴, 베다니 출판사, 원제: Unlocking Your Giftedness)를 삼년 전 읽으면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은사론을 대폭적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성령의 은사들(Spiritual Gifts)에 관한 것만을 생각하던 것에서 우리가 부모들로부터 물려받은 천부적 재능들(Natural Abilities) 과 삶의 과정에서 습득한 기술들(Acquired Skills)을 포함한 삼중적인 은사의 집단(Giftedness Set)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됨으로써 우리 삶의 모든 영역과 우리 전 생애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획기적인 관점을 갖게 된 것이다. 클린턴 박사를 직접 만나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없었지만 책을 통해 귀중한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신학적 관점의 확장과 관련해서 나의 기억에 남는 책들이 있다. 그중 안토니 후크마의《개혁주의 종말론》을 읽고서 하나님나라와 현재 삶의 연속성에 대한 견고한 인식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특별히 맨 마지막 장이 ‘새로운 땅’에 관한 것이었는데 우리가 장차 하늘 어느 곳에서 영원히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 땅에서 영화스럽고 부활된 육체를 가지고 살 것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땅과 새 땅 사이에는 불연속성과 더불어 연속성이 있기에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을 잘 관리하고 더 좋은 세계로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놀라왔다. 특히 그리스도를 위해 현재 이곳에서 행해진 일들이 장차 영원세계에서도 그 충만한 진가의 빛을 발할 것이라는 선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재 나의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여 주었다. 이런 안목은 기존에 내가 한국교회 안에서 받았던 하나님나라에 대한 가르침이 너무 협소했음을 알도록 해주었고 하나님나라의 통전성에 관한 인식이 계속 자라나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것은 최근 강영안 교수가“흙이나 물질 같은 자연성, 물질성, 신체성을 개신교는 잃어버렸어요……. 인간의 몸으로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만큼 물질성이 너무나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 준 것은 없지요. 이토록 기독교는 철저히 유물론적이라는 점을 인식하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사람의서재》, pp.51,52)라고 한 말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성육신에 관한 묵상과 더불어 성만찬 예전에 있어서의‘물질성’과도 연결시켜 보게 되었다. 나아가 만유의 회복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이어지는“꼬리에 꼬리를 무는”연속적 확장을 일으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레슬리 뉴비긴이 그의 부모의 죽음 앞에서 가졌던 생각은 그것이 단순한‘신학적 추상’이 아니라 우리 구체적 정황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대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오로지 자녀들에 대한 염려뿐이었다. 본인에 대한 불평은 한 마디도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 곁에 어머니를 모셨다. 두 분의 몸이 흙으로 돌아갔듯이, 아버지가 언덕배기 암벽을 깎아 만든 아름다운 정원이 야생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내가 신약성경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옳게 해석하고 있다면, 나는 기대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재회가 있을 때 그 정원도 새로워지고 영화롭게 될 것임을 의심할 수 없다. 《( 아직 끝나지 않은 길》p.383)
관점의 심화를 유도하는 책읽기 책읽기는 우리 관점의 확장뿐 아니라 우리 생각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을 동반해야 한다. 선교사로서 제한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역하다보면 우리는 좁은 시각(tunnel vision)을 가지게 될 뿐 아니라 선교 사역과 관련된 지나친 실용성만을 강조하는 경향에 빠져들게 되면서‘얕은 사람들’이 되기 쉽다. 우리의 선교는 어디에 기초를 두는가? 무엇이 우리 선교의 동기이며, 원동력인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은 한 번의 답변으로 만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성찰과 새로운 도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세계에 나를 열어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를 넘어서서 더 높고 깊은 생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책읽기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진 생각과 사역이 얼마나 뿌리가 약한지에 대해 깨닫고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1978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기독학생반과 뒤이은 선교단체 생활을 통해‘제자훈련’의 개념을 알게 되었고 또 세계선교의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획기적’신앙성장을 한 것은 좋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속에는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네비게이토(Navigator) 계통에서 나온《훈련으로 되는 제자》(Disciples are made not born)와 같은 책들이 인기가 있었고 그것들은 캠퍼스 안에서 일대일 제자훈련을 실행하는데 유용한 자료들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주님의 지상명령(마 28:19- 20)은 그러한 방법을 통해 성취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1994년 10월, 선교사로서 에콰도르로 출국을 앞둔 시점이었다. 사랑의교회 제자훈련 세미나에 참석하여 옥한흠 목사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사실 캠퍼스를 중심으로 10여 년 이상 제자훈련 사역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세미나 참석을 결정할 때만 해도“뭐 더 배울 것이 있겠나!”라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옥 목사님의 제자훈련의 신학적 근거로서‘교회론’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끌어 들이는 것을 보았다. 무엇보다 한스 퀑의《교회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제자훈련의 신념을 발견했다는 말씀은 내게 큰 도전이 되었다. 신대원 시절 나도 그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과 연관을 짓지 못한 나의 한계와 둔감함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그것은 평생 내가 몸담고 있었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교회의 중요성과 신비성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단 그러한 물꼬가 트이고 나니 그런 방향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것을 통해 나의 선교 사역의 근거는 파고 또 파도 끝이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의 신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아가며 경탄하게 되었다.
마이클 그리피스의《기억 상실증에 걸린 교회》(원제: Cinderella with amnesia)는 내가 학생단체와 지역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준 책이다. 도날드 G. 블러쉬가 쓴《복음주의 신학의 정수》(한국 장로교 출판사, 원제: Essentials of Evangelical Theology) 또한 나의 교회론의 폭을 크게 넓혀주었다. 그에 따르면, 완전하고 실제적인 복음주의는 가톨릭적 이어야 하고 참된 가톨릭주의는 복음주의와 똑같아야 한다. 즉 복음적 메시지(evangelical message)와 가톨릭적 유산(catholic heritage)이 성경적이고 에큐메니칼한 교회의 꼭 필요한 유산이 라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와 자유주의는 조화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주장은 복음주의자로서 교회를 특정한 좁은 틀에 한정시키려고 하는 저항감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최근 로버트 웨버가 미국의 젊은 복음주의자들(The Younger Evangelicals)이 다음과 같이 전(全) 교회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쓴 것을 보았다:
니케아 신조의 근본 사상으로, 그리스 교부의 통찰력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사상,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종교 개혁자, 존 웨슬리와 같은 이들의 사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 젊은 복음주의자를 말하다》p.100)
누구보다도 선교와 교회에 대한 나의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사상을 제공한 이는 레슬리 뉴비긴(1909-1989)이다. 그는 나로 하여금 선교가 단순히‘선교 명령’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복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선교는‘기쁨의 폭발’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교회는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가시적(visible)인 공동체인 동시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이며, 복음에 대한 해석학적 공동체, 하나님 왕국의‘표징(sign)이요, 맛보기(foretaste)이며 도구(instrument)’라는 사실을《교회란 무엇인가》(원제: Household of God),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Trinitarian Doctrine for Today's Mission》과 같은 그의 책들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들은 나의 삶과 사역에 말할 수 없는 축복과 새로운 전망을 가져다주었다. 특별히 그의 사상에 기반을 둔‘선교적 교회론(Missional Church)’은 나의 생애를 두고 연구하고, 터득하고, 체험하고 싶은 주제를 던져주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책상위에“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교회에 대한 가톨릭, 동방정교회, 개신교적 이해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은《삼위일체와 교회》(미로스라브 볼프, 새물결플러스, 2012)라는 책을 올려두고 있다. 이번 GMTC 45기 훈련이 끝나면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목차만 보고 있는데도 마음이 설렌다.
관점의 교정을 창출하는 책읽기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선교사들에게 신학적 확신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고, 그런 확신들을 흔들어 놓는 도전들은 매우 위험스럽게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확신들이 온전한 하나님의 진리에 근거하기 보다는 조각난 지식과 인간의‘전통과 문화’에 근거한 상대적인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나는 폴 히버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의 신학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우리가 신학을 특정 언어로 기술한다는 사실 자체가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편견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편견이 없는 언어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의 말대로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지만(폴 히버트 1996, p.283) 동시에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 한마디로 신학은 계시와 구분되며, 인간의 모든 신학은 하나님의 진리를 부분적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이해하는 우리 인식의 제한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세계 교회가 상호교정과 보완을 통해 하나님의 온전한 진리에 이를 수 있도록 계속 추구할 것을 도전하는 내용이었다.4)
그의 책《인식론적 전환의 선교학적 의의》(원제: Missiological Implications of Epistemological Shifts)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신학에 대한 인식론적 기반이 현대사상(Modernism)에 기반을 이룬 실증주의였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이야말로 온전한 진리를 추구하는 인식론적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신학의 상황화 (Contextualization)의 필요성뿐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교정과 전환은‘복음의 번역성(translatability)’내지‘복음의 상황화’를 이야기하는 많은 선교학 책들을 이해하는 기반이 되었다. (예: Lamin Sannehh, Translating the Message; Dean Flemming, Contextualizaton in the New Testament.)
특별히 어느 한 지역(서구)에서 만들어진 신학이 세계 모든 지역에 통용되는 가운데 나머지 지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만들어진 신학을 전수받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서구와 비서구를 오랫동안 지배하여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앤드류 월즈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서구 선교사들이 서구학문의 여러 분야에 탁월한 영향을 미쳐왔지만 유독 신학부문에 있어서는 영향력 있는 학자들을 배출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그들이 신학은 새로운 문화적 상황 속에서 발전시켜야 할 어떤 것이라기보다 이미 주어진 것(datum)을 단지 설명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1996, p.197). 한국선교사들도 인식의 교정과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러한 연장선상에 서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학은 특정 지역교회나 신학자들의 책임이 아니라 전 세계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할 작업이며, 각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스스로 읽고 해석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상황 속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성경적 해답을 주는 신학적 작업을 해나가야 할 책임과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버트 박사가 진정한 토착교회는 자립, 자전, 자치하는 교회를 넘어서서 자신학화 (self-theologizing)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선교사들의 사역에도 큰 변화를 요구하는 도전이 될 것이다.
최근 수 년 동안 내게 일어난 가장 ‘충격적’(sensational)인 관점의 변화는 진화론에 관한 견해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창조과학’에 관한 견해의 변화이다. 나는 오랫동안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견해에 귀를 기울여왔고 그것이 성경적 진리라고 믿고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왔다. 그런데 마크 A. 놀의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원제: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Mind)을 읽으면서 그러한 확신에 균열과 교정이 일어났다.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내용이 과학적 세대주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저변에 19세기적 과학에 대한 맹신을 가진 근본주의적 신학이 뒷받침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주의적 성경읽기가 성경저자의 무오성을 주장하는데서 나아가 성경저자의 경험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성경을‘비역사화’하면서 폭넓은 지성적 문제들에 대한 불모지를 만들어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근본주의라는 여과지는 초자연적인 기독교의 골격을 유지하기에 충분할 만큼 무신론을 걸러냈지만, 지성적인 면에서 살펴볼 때 근본주의는 또한 지성의 생명력에 필요한 요소들까지도 대부분 걸러 내 버렸다. (p.308)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다면 성경에 최고 권위가 있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로저 스티어 2010, p.182)는 존 스토트의 말은 창조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성경이 말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확정”하는 것이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과 그들이 말하는 것과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음도 처음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 읽었던 존 스토트의 《로마서 주석》에서도 아담 이전의 영장류(靈長類)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p.211) 그것은 기존의 창조과학자들의 주장과 매우 배치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으며, 비슷한 내용이 안토니 후크마도《개혁주의 인간론》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했다(p.212). 존 스토트가 진화에 대한 관점을 다음과 같이 밝힌 것을 보았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최소한 일부 형태의 진화론은 창세기의 계시를 반박한다거나 그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종교적 진리를 계시하는 책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분이 창조하신 세계는 ‘좋았다.’그 분의 놀라운 창조는 인간에게서 절정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창조과정에서‘진화’를 사용하셨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5) 이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인간의 독특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로저 스티어 2010, pp.283-284)
아무튼 마크 A. 놀의 책은 나로 하여금 창조과학의 옹호는 곧 성경을 옹호하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지성을 훈련시키고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다. 그가 복음주의자들에게 지성적 직관주의를 자제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지성을 사용하겠다는 끈기 있고 단호한 태도를 가지라는 권면 (p.352)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시의적절한 조언을 주도록 현명하고 경험있는 지도자를 보내주신다고 로버트 클린턴은 말하면서 섭리적 만남과 멘토(mentor)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1993, p.138). 나는 우리 선교사들에게 책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삶과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내셔서 조언하게 해주시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책들을 통해 절묘하게 그런 일들을 이루신다는 것을 보게 된다. 나의 경우,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역사적 인물’들 중 나의 멘토로 삼고 있는 세 사람이 있다. 나는 그들의 책을 통해 나의 삶과 사역을 성찰하고 있다. 나는 되도록 그분들의 전(全) 작품을 다 읽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폴 G. 히버트 (1932-2007)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TEDS)에서 공부하던 때 나의 은사 중 한 분이었던 히버트 박사는 선교 문화인류학 분야의 탁월한 학자이면서 호인(好人)이셨다. 그의 책《선교와 문화인류학》,《 선교현장의 문화이해》,《 민간종교의 이해》,《 인식론적 전환의 선교학적 의의》,《 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와 같은 책을 읽으면서 나는 회심(중심집합과 경계집합), 비판적 상황화, 배제된 중간지대의 문제점, 자신학화와 같은 신학, 문화, 선교에 있어 중요한 개념들을 정립할 수 있었다. 특히 그의 자신학화에 대한 주장은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6) 를 설정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 존 R. 스토트 (1921-2011)
대학 신입생 시절에 처음 읽었던《기독교의 기본진리》부터 시작하여, 《현대 사회문제와 기독교적 답변》,《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자도》,《 현대 기독교 선교》와 같은 책들은 나의 기독교적 사고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의 성경 강해 시리즈와《현대 교회와 설교》등을 통해서 사역에 큰 도움을 얻었다. 로저 스티어가 쓴《존 스토트의 생애》는 생애 마지막까지 헌신된 제자로서 탁월한 삶을 살아낸 그를 본받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 레슬리 뉴비긴 (1909-1998)
40여년을 인도에서 사역한 선교사인 동시에 신학자이며 성경학자였고, 변증가요 에큐메니칼 운동지도자였으며, 저술가요 선교학자였던 그의 책들은 깊이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영미권을 중심으로 뉴비긴의 저서들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도 그의 중요한 저서들이 연속적으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7)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등을 통해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계몽주의적 세계관에 도전하는 복음의 능력에 대해 깊은 이해와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교회란 무엇인가》, 《 교회의 재연합》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근거를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오픈시크릿》, 《 Trinitarian Doctrine for Today’Mission》을 통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의《요한복음 강해》(원제: The Light Has Come)는 서구 신학자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서양인의 문화적 전제를 뛰어넘는 인도선교의 경험에서 우러난 통찰력을 가지고 선교사의 시각으로 풀어낸 말씀의 깊이를 맛보게 해 준다. 무엇보다 그의 자서전《아직 끝나지 않은 길》(원제:Unfinished Agenda)은 그와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 선교사들이 읽게 될 때, 빨려 들어가게 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웨인라이트가 쓴 뉴비긴에 대한 450페이지에 달하는 평전(評傳)인《Lesslie Newbigin: A Theological Life》를 2005년 9월부터 밤마다 자기 전에 조금씩 읽기 시작하여 2009년 12월까지 4년간에 걸쳐 다 독파한 경험이 있다. 깊은 감동과 도전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시인 롱펠로가 활기찬 노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젊게 사는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정원의 나무들을 가리켜 보이면서“나무가 매일 조금씩이라도 계속 성장하는 것처럼 자기도 매일 조금씩 성장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늙은 나무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젊은 나무처럼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더 느리게일망정 성장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 또한 96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 강연과 집필 작업을 계속했다. 그가 말년에도《페루 민속사》를 읽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왜 아직도 공부해야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인간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성경에서는 의인의 삶을“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낸다”(시 92:12-15)고 묘사하고 있다. 선교사로서 우리는 계속 성장하기를 멈추지 말아야겠다. 무엇보다 우리의 지성과 영성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삶과 사역을 성찰하도록 만드는 책읽기를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영상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성경을 비롯하여 책읽기를 게을리 하는‘습관’에 빠질 수 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주었던 권면을 떠올려본다.“ 내가 이를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3,15)
1) “반성적 실천가”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용어는 세계복음주의 연맹(WEA) 선교위원회 총무였던 윌리엄 테일러 박사가 1999년 브라질 이구아수 폭포 근처에서 모였던 선교지도자들의 모임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알려져 있다. 그 모임 결과로 출간된 Global Missiology for the 21st Century (한국어판: 21세기 글로벌 선교학)의 제 1장의 제목이“From Iguassu to the reflective practitioners of the global family of Christ”이다.
2) 재미와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독서가 유년시절의 독서능력 향상에 중요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3) 공식적 교육과 대비되는 비형식(Non-formal)교육으로서 가장 중요한 방법이 독서라고 할 수 있다. 비형식적교육은 형식적 변화를 꾀하면서 의도적이고도 계획적으로 행해지는 창의적인 교육방식을 일컫는다.
4) 이것은 진리의 상대성이 아니라 근사성(approximation)의 문제이다.
5) 프랜시스 S. 콜린스가 쓴 <신의 언어>(김영사, 2010)는 그런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과학자로서 미국에서 주도한‘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6) 필자가 2012년 3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 박사학위(Ph. D) 취득을 위해 제출했던 논문 제목은 Assessing the Potential of Korean Cross-Cultural Missionaries for the Self-Theologizing of the Korean urch이었다.
7) 흥미롭게도 우리 시대 기독 지성인 16명의 독서편력을 소개하는《그 사람의 서재》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강영안, 송인규, 박영선등)이 레슬리 뉴비긴의 저작들을 따로 분류하여 읽고 있다고 한다.
※참고도서 파브르 곤충기 | 오쿠모토 다이사부로 해설 | 고려원미디어 내영혼의 스승들 | 필립 얀시 | 좋은 씨앗 영적지도자 만들기 | 로버트 클린턴 | 도서출판 베다니 당신의 은사를 발견하라 | 로버트 클린턴 | 도서출판 베다니 지도력 계발과 비형식 교육 | 테드 워드 | 한국해외선교회 출판부 그 사람의 서재 | 복음과 상황 엮음 | 새물결 출판사 개혁주의 종말론 | 안토니 후크마 | CLC 개혁주의 인간론 | 안토니 후크마 | CLC 복음주의 신학의 정수 | 도날드 블러쉬 | 한국장로교 출판사 복음주의지성의 스캔들 | 마크 놀 | 도서출판 엠마오 젊은 복음주의자를 말하다 | 로버트 웨버 | 죠이선교회 출판부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 | 마이클 그리피스 | IVP 인식론적 전환의 선교학적 의의 | 폴 히버트 | 한국해외선교회 출판부 선교와 문화인류학 | 폴 히버트 | 죠이선교회 출판부 로마서 강해 | 존 스토트 | IVP 존 스토트의 생애 | 로저 스티어 | IVP 아직 끝나지 않은 길 | 레슬리 뉴비긴 | 복있는 사람 신의 언어 | 프랜시스 콜린스 | 김영사
변진석 | GMTC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