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꼬불꼬불 지하도를 지나 어렵사리 출구를 찾았다. 다시 버스를 익숙하지 않은 동네를 진눈깨비와 함께 헤치며, 제2국제여객터미널 앞에 내렸다. 공사 중인 질퍽거리는 길을 걸으며 엘림해외선교회를 찾느라 두리번두리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길 건너에 다소곳이, 따뜻한 미소를 품은 작은 한옥으로 된 엘림해외선교회 문을 열었다. 그곳은 한국 속의 작은 중국 가정교회 같은 느낌이었다. 하여라 선교사님의 따스한 환영의 미소는 얼었던 손과 맘을 녹였다. 따뜻한 유자차를 내어 놓으시며 말문을 열기 시작한 하여라 선교사님. 선교사님과 함께 엘림해외선교회에 대한 사역 나눔의 꽃을 피워 봅시다.
편: 엘림해외선교회 홈페이지에“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출15:27) 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엘림해외선교회의 시작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하: 제가 처음 중국선교를 시작할 때 중국어문선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연안선교하는 장로님이“전도사님, 여기에 오고 갈 데가 없어서 지하도에서 잠을 자는 중국교포들이 많이 있는데 전도사님이 이들을 좀 돌봐줘요.” 하시더라고. 나는 교포 사역을 안 해봤으니까 이런 사역을 하고 있는 곳을 알아봤어. 봉천동 한중선교교회가 이 사역을 하고 있더라고. 그분들에게도 조언을 많이 들었지. 그리고 1993년 2월 25일부터 사역을 시작했는데 3월 말부터 불법체류자들이 단속에 걸려 자기나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어. 그들을 위한 쉼터 사역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양강무역 사무실 귀퉁이에서 한 개의 책상을 놓고 사역을 시작했어요. 그해 8월 15일, 한중선교교회에서 진행하는 추석행사에 한국어를 못하는 조선족 세 명과 함께 참석을 했는데 이들을 위한 사역을 해야겠다고 그때 깨달았어요.
1994년 설날부터는 한족과 한국어를 못하는 조선족을 대상으로 집회를 열었는데, 첫 집회에 43명이나 모였지. 근데 참 재미난 것이 내가 중국어를 못했지만 감사하게도 중국어가 아주 유창한 조선족 한 명을 보내주신 거야.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구나 확신을 가졌지. 그리고 설교는 김교철 목사님한테 부탁을 드렸고. 그 후로 중국어가 되는 여러 사람들이 연결이 됐어. 또 한국에 온 대만의 단기 선교팀과도 연결이 되어서 그 팀들이 찬양집회, 말씀집회도 해주었어. 그런 모임이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면서 화전(華傳)宣敎會와도 연결이 되서 집회가 있을 때마다 강사초빙을 도와주셨지. 그런데 이러한 집회들이 여러 교회에서도 생기기 시작하더라고. 그러면서 중국인들은 줄어들기 시작하고. 인천 남동공단 중국인근로자들도 줄어들기 시작했어. 공단이 평택으로 이전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도 부산, 전주 등 지방에서 집회에 많이 왔어. 구미, 창원 등지에서도 차를 대절해가지고 오기도 하고. 그러데 앞으로 설날집회를 계속 해야 할지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동안 중국인신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서 많이 도와줬는데 지금 점점 그 자원봉사자들이 줄고 있어요. 한국인이면서 중국어가 어느 정도 되는 분들한테 자원봉사 부탁을 드리면 처음 한번 해주고는 꽁지를 빼고 그 다음부터는 안 오시더라고.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 또 집회를 할 때마다 크게 도움을 주시는 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가 선교 대상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바꾸신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요.
편: 요즘 새로운 사역에 열정을 쏟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역인지 소개해 주세요
하: 우리나라 교도소에 외국인 죄수가 600여 명 가까이 된다고 해요. 그 가운데 70%가 중국인(조선족포함)이에요. 그 사람들과 편지 왕래를 하고 있거든요. 그들이 보내준 카드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구구절절 써 내려간 사연들이 있지요. 칠판에는 그 사람들의 기도 제목들이지요. 그동안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중국어로 번역해서 보내줬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것도 사정상 못하게 되어서 우리 간사가 묵상집과 카드를 보내줬 어요. 그랬더니 그 안에서 돌려보면서 묵상하고 마치 처소교회가 생겨난 거지. 어떤 사람은 편지에 자기 사진까지 넣어서 보내주기도 했어요. 자기 장가 보내달라고 하면서.(하하)
편: 교도소사역에 대해 좀 더 나누어 주세요.
하: 인천구치소, 대전교도소의 수감된 중국인들을 2006년부터 꾸준히 늘어나서 50여 명과의 서신왕래 뿐만 아니라 화상 면회까지 하면서 위로하고 신앙상담을 하고 있어요. 그 안에 전도사가 된 사형수가 있는데 얼마나 열심히 전도를 하는지 몰라.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집행을 할 수가 없어요. 이 사람은 집안에서 손을 쓰면 풀려날 수도 있다는데 그렇게 안하겠다는 거예요. 중국에 가서는 예수를 믿을 수 없으니까. 이제까지는 교도소 사역을 한 두 명이 했었지만 앞으로는 전도지도 만들어 전도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교도소에 수감된 자들에게 나눠줄 거예요. 외국인 죄수들은 대전교도소와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요. 두 곳 다 지방에 위치해 있어서 거리적으로 가까운 곳이 아닌데도 예전에 우리가 잘 모르고 사역할 때는 대전까지 내려갔어요. 이제는 인천교도소에서 대전이나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자들에게 면회요청을 하면 화상으로 면회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요일마다 면회자들을 정해서 만나요. 10년, 20년 갇혀있어도 찾아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찾아와 줘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고마워하지요.
사연도 다양해. 편지를 주고 받다보니까 이제는 성경을 보내달라고 해요. 그래서 내가 속한 교단에서 기증을 받아 보내줬어요. 이렇게 사역을 하다보니까 다른 외국인 죄수들도 편지를 보내오고 성경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해 와요. 화상대화를 할 때 중국어 자원봉사자 에게 말할 내용을 중국어로 써 주어 그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도 제시하게 하지요.
우리가 교도소 사역하기 전에는 공장기숙사에 들어갔었어요. 그 안에 얼마나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 나는지. 정해진 시간마다 들어가면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기타, 키보드 치고 찬양하면서 말씀 전했지. 그런데 그 공장이 부 도나서 중국인 근로자들이 중국으로 철수하게 되었어요. 이 사역의 문을 닫아야 할 때 터미널에서 전해준 전도지를 받은 한 유학생이 교도소에서 우리에게 편지를했어요 성경책 좀 보내달라고요. 나중에 알고보니 학비를 마련하려고 도둑질을 해서 잡혔다는 군요 그래서 우리가 면회를하고 성경과 전도지를 보내줬어요. 그런데 그 유학생이 미감(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는데, 형을 받고 대전교도소로 이감됐지요. 그리고그가 대전교도소에서 전도를 많이해서 오늘날 우리가 교도소 사역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어요. 교도소에도 성령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기대가 돼요.
편: 문서선교를 어떻게 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하: 중국선교사 및 중국에서 사업하는 평신도들의 활발한 활동과 터미널 전도팀의 노방전도로 성경책 9,864권과 영오성경, 복, 좋은 소식 등의 소책자도 25,000여권 배포하였어요. 모퉁이 돌 선교회 덕분에 전도하는 성경책에 애로사항이 없었어요. 하지만 모퉁이 돌 선교회도 성경책이 중단되고 유학생들은 몰려오고 중국성경책은 더 많이 필요한데 수습이 되지 않고 있어 답답해하고 있어요. 전요한 선교사님이 쓴 생과 사(福), 이 책자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전도지인데 이 책을 인쇄하는 데도 많은 재정이 필요해요.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면 좋겠어요. 요즈음은 한중선교교회(AFC선교회)로부터 중국성경책과 전도지를 받아서 배포를 해요. 동역자들을 주셔서 감사하지요.
유학생 사역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화제가 전환되었다.
하: 중국선교가 이제 전환점이 와야 하지 않냐 그렇게 얘기들 하더라고. 하긴 그렇지 내가 옛날에 멋모르고 시작했었는데. 지금 멋모르고 시작하는 게 또 하나 생겼어. 새터민선교. 탈북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을 돌보는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인천 논현동(소래포구) 임대 주택에 1700명이 살고 있어요. 정부의 지원금은 1인당 2천만 원, 그중에 1350- 1650만 원 정도는 임대주택 보증금으로 쓰고, 그 나머지를 일시불로 받거나 매월 나눠 받아요. 저소득층에게는 국가에서 매월 40만원, 6개월 동안 지급해요. 그 안에 취직을 해서 임대주택 관리비, 임대료를 내야해요.
노인 혼자서 오신 분도 계시고 부부가 온 경우도 있어요. 오전에 문화교실을 열고 점심을 함께 먹지요. 또 헌옷 모으기, 중고 세탁기 사주기, 이것저것 필요한 것 모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줘요. 지금도 중국이나 한국에서 어려운 중국인들이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이 와요. 중국 쪽도 새터민 사역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다 하는 거예요.
편: 그래서 하여라 인가 봐요.
하: 하하하. 맞아. 끊이지 않고 일이 들어오네요. “나는 선교 잡화점이야.”안 할 수가 없어요. 내 일 아니다 할 수가 없어.
편: 국제여객터미널전도는 어떤가요?
하: 제1, 제2 국제여객터미널 두 곳에 화, 목, 토요일에 전도팀이 노방 전도를 해요. 요즘은 옛날에 비해 제한이 많아요. 종교편향주의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전도를 못하게 되어 있어요. 전도를 하려면 기관 안에 들어오지 말고 나가서 해야 해요. 그래서 눈치껏 지혜롭게 합니다.
편: 승선 사역은 제가 한번 밖에 참여를 못해봐서 잘 모르는데 그 사역은 어떻게 해요?
하: 그건 외항선교회에서 하거든요. 승선선교 할 때, 그 배는 그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거야. 남의 나라를 어떻게 들어가. 근데 외항선교회는 오래 하면서 문제도 안 일으키고 도움이 되니까. 명단을 제출해서 해양경찰청에서 허가를 해주면 배에 들어가서 사역을 하는 거지.
편: 그러면 여기(엘림 선교회)는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하: 우리는 그 사역은 안 해요. 우리는 터미널에 있는 조선족 중국인. 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편: 잘 듣고 반응하고 그래요?
하: 그냥 전도지 주는 거지, 읽으라고. 주는 걸로 끝나는 거야. 근데 한 번은 우리가 준 전도지를 배 안에서 읽고 중국에서 교회를 하겠다고 우리한테 편지가 온 거야. 그래서 가보니까 이건 뭐 계모임 같이 되어 있더라고. 회원을 모집을 한 거야. 모일 때마다 1원씩 내기로 했대. 그래서 겨울인데도 내가 거기 들어갔지. 전도지를 다 읽고 났더니 믿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서 이렇게 모였대. 그래서 내가 주기도문이랑 사도신경 적어주면서 이걸 다 외우면 한 달 후에 찬송가 반주기를 갖다 주마 했지. 그리고 성경 읽으라고 하고.
또 우리가 맨 처음에 중국에 시작한 것 중에 중요한 게 공부방인데, 그걸 하면서 깨달은 게 거기 있는 지도자를 교육하여 그들을 통해 학생들을 키워야겠다는 거. 내가 그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냐면 가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가르쳤는데, 배울 때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아멘, 아멘 했어요. 그런데 가르친 것을 되물으니 모른다는 거야. 다 아멘 하니까 따라 했다는 거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는 거야. 한국말이 잘 안 되니까. 그래서 내가 공부방을 현지 지도자들이 하도록 도와주면서 겉으로는 영어를 가르치고 축구를 하는 것처럼 하니 공안도 피하고 아이들도 관심 있고... 처음 공부방이 무엇인지 몰랐던 이 사람들도 잘 알게 되면서 여기저기 생겼어. 그래서 우리가 처음 했던 애들이 공부방 지도자로 있고. 그 애들 만나고 그러면 신나지. 이렇게 재미나게 살아요. 제자들한테 맛있는 것도 대접받고. 중구난방으로 얘기했는데 알아서 정리하세요(웃음).
정리 |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