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온갖 책도 너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책은 남몰래, 너를 너 자신 속으로 돌아가 서게 한다. - 헤르만 헤세 -
문고판 책의 힘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이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흔히들“이와나미의 100년은 일본 현대정신사 100년과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로 이와나미에서 출판된 책들이 일본의 지식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특히 이와나미의 도서 중 가장 사랑받고 있는 분야는 이와나미 문고이다. 1928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한 이와나미 문고는 이와나미서점을 일본 국민과 폭넓게 연결해 주는 가장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문고판형의 책들은 휴대하기 편한 작은 사이즈 외에도, 가격과 분량에도 부담이 적어 일반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중에 이와나미의 문고판은 동서양의 고전을 가능한 한 정확히 번역해 내어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했기에 일본의 독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이와나미 문고는 일본 청년들이 2차 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손에 쥐고 잠들었다고 알려질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문고판을 향한 관심과 사랑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렸을 때 범우사에서 발행한 문고서적 삼국지 상중하를 비롯한 여러 국내외 고전을 읽은 기억이 있다. 간결한 내용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어렵지 않은 번역과 표현들은 계속 책을 붙들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다. 범우사 외에도 책세상에서 발행하고 있는 현대사상의 문고판과 삼성연구소의 세리(Seri) 경영관련 시리즈도 유익하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이번에 선택한 책 역시 문고판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앎과 삶 시리즈’로 발행한 도서들 중에 세 번째 책으로 ≪중국: 소프트파워 전략으로 부활하는 큰 나라≫ 이다. 먼저 이‘앎’과‘삶’이란 씨줄과 날줄의 구도로 방향을 보여주고 사고를 이끌어낼 만한 동일한 분야의 책들 30권을 선정해 전체의 그림을 짜나가는 문고판 시리즈 형식이 참 독특하다. 기존 문고판은 보통 한 주제를 선정하여 써나가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그러나‘앎과 삶’시리즈는 한 분야에서 중요한 책들 30권을 선정하여 각 분야의 해당전문가들로부터 서평형식의 추천글을 받아 엮어낸 것이 특징이다.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을 꼼꼼히 잘 소화하고 나면 중국에 대한 탄탄한 이해의 틀을 만드는데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작은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디자인한 편집자와 그가 선정한 30권의 책을 살펴보도록 하자.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기준치 중국을 소프트파워 전략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강대국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키워드로 읽을 만한 30권의 도서를 선정하며 본 책의 감수자 역할을 한 김영수 씨. 그는 사마천의 ≪사기≫ 를 20년 이상 연구해온 중국전문가이다. 그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기준으로 네 가지 분야를 설정하여 (세계속의 중국, 중국이 말하는 중국, 중국의 역사, 중국의 문화) 그에 맞는 책들을 분류, 소개하고 있다.
“30권의 책을 선정하면서 중국 각 분야를 고루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책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중국의 현상을 분석한 책부터 중국인을 심층적으로 다룬 책,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서와 중국 문화 방면을 대표하는 저서 및 기타 주목을 끌었던 30여 권을 분석해보았다. 이 책들에 대한 분석이 중국을 제대로 알기 위한 절대치는 될 수 없겠지만 기준치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22쪽)
중국은 우리와 오랫동안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왔다. 시간적으로는 신라가 삼국을 통합하기 전까지 상고사 수천 년을 공유했고, 공간적으로는 중국의 동북3성을 비롯하여 기타 중국동북의 변방지역을 공유했다. 그러한 공유의 오랜 역사로 인해 두 나라의 관계는 정치, 경제, 문화전반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에게 중국이란 쉬운 말로하면 외교는 잘 지내면 되고, 경제는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교역해 윈윈(win-win)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화(中華)로 상징되는 정신문화적 소프트파워이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이 무서운 이유는 무엇보다 문화를 경제와 결합시켰다는 데 있다. 이 전략은 정치와 군사를 결합해 타국의 내정에 간섭해 오며 세계 곳곳에 전쟁과 갈등의 후유증을 남긴 미국의 ‘하드파워 전략’과 선명하게 구별된다. 이 시대에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은 어떠한 강대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2,3백 년 전 서양 열강들은 제국주의를 통한 무역과 무기를 앞세운 하드파워 외교전략을 펼쳤지만 점차 소프트파워 외교전략으로 전환했다. 21세기 들어서 미국을 견제하며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그 모양새로 봤을 때는 분명 소프트파워 외교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러한 중국도‘부드러운 강대국의 리더십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수자의 고민대로 지금 중국이 의욕적으로 밀어붙이는 소프트파워 전략의 가장 날카로운 창끝이 본의 아니게 우리를 제일 먼저 겨냥할 수도 있다. 강대국의 가장 치명적인 유혹인 제국주의적 성향과 방법이 부드럽다고 해서 그 속성마저 부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날로 심화되고 있는 북한의 대중국 종속화를 보면 이러한 중국의 소프트파워의 결과가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우려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소프트파워로 읽는 중국 1부 세계 속의 중국은 서구의 눈으로 중국의 미래를 진단한 존 나이스비트의 ≪메가트렌드 차이나≫ 로 시작한다. 그리고 중국 고유의 문명사적 저력에 주목하며 세계패권국으로 가능성을 진단한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과 김태일의 ≪차이나 이펙트≫ 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경제대국 중국이 마주한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랑셴핑의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중국에 대한 과장과 허실을 지적한 에드워드 S. 스타인펠드의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가 소개된다. 그 외에도 ≪다시 보는 동아시아 근대사≫, ≪한국과 중국 100년≫ 등 서구적 관점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적 가치 위에 중국의 부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다.
2부 중국이 말하는 중국에서는 중국인 필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중국 일반민중의 정서와 가려진 인권의 음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소 거칠고 황당무계한 문화를 지적하는 보양의 ≪추악한 중국인≫ 과 종주캉의 ≪다시는 중국인으로 태어나지 않겠다≫ 등은 경제성장이 국민성의 성장이라는 관점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하며 제동을 건다. 장리자의 ≪중국 만세!≫ 는 소위 사회주의 시절과 개혁개방의 시기에 나타난 중국의 속살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원제는 만세이지만, 내용은 결코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도 많은 갈등 속에서 근근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 소수민족의 현장을 기록한 ≪중국 소수민족의 눈물≫ 은 점차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진실한 기록을 보여준다.
3부 중국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상의‘정통’과 역사 속에‘중 화사상’의 맥을 짚어주는 ≪중국의 역사와 역사가들≫ 을 시작으로 중국사의 뼈대를 세운 시기인 ≪춘추전국 이야기≫ 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본서에 유일하게 한 주제로 두 권의 저서가 소개된 사마천의 ≪사기≫ , 김영수의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도 역사의 한 인물을 통해 인간을 읽는 통찰력과 미래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역작으로 추천했다. 그 밖에도 중국 현대의 주요 시간적 사건을 보여주는 ≪20세기 중국사≫, 중화 이면의 변방의 역사도 보여주는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 ≪초원 실크로드를 가다≫ 도 소개된다. 또 정화 함대가 유럽에 전한 과학 기술로 인해 르네상스가 촉발되었다거나 중국의 고지도를 분석해 중국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독특한 주장을 담은 ≪1434≫ , ≪고지도의 비밀≫ 등의 흥미로운 책도 실리며 가장 많은 권수를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4부 중국의 문화에서는 중국사상사의 기본개념들을 소개하는 ≪중국 사상문화사전≫ 과 중국의 민족주의와 신화의 기원을 보여주는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 , 오천 년 중국 음식의 역사와 언어를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국 음식문화사≫ , ≪중국어 이야기≫ 등 앞에서 다루지 못한 중국 문화의 인문학적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다.
퍼즐식의 주제, 한 방향의 문제의식 서평모음집을 가지고 서평형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 모두 32권을 소개한 각각의 서평 중에는 자신들의 관점으로 중국을 바라본 특색이 있는 다소 주관적 글쓰기도 있고, 중국과 연관된 경험적 성취나 연구가 있는 필진들은 폭넓은 주해로 글 읽기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그중에서도‘정화함대는 과연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어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개빈 멘지스의 ≪1434≫ 는 광운대학교 동북아 문화산업학부의 김희교 교수가 서평을 담당했는데 재미있는 관점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제목 1434년도는 정화가 로마의 교황청에 들러‘영락대전’을 포함한 중국의 선진문물을 전달한 해이다.
“정화의 남해 원정의 목적이 새삼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을 정벌하고 귀환한 중국은 그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대신 기린과 사자를 싣고 돌아왔다. 그들이 꿈꾸던 전 지구적 조공시스템에는 니덤이 말한 대로 기술과 윤리가 함께 있었던 것일까. 중국의 기술을 수용한 유럽은 윤리와 기술을 분리해 그들이 원하는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를 구축했다. 중국 또한 그들의 희생양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자본주의를 수용함으로써 귀환한 21세기 중국의 길에 다시 윤리가 살아날까?”(137쪽)
이러한 문제제기와 관점은 이 책 전체가 강조하는 소프트파워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방향을 보여주는 핵심이 될 것이다. 강대국에서 다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이 6백 년 전의 경험을 통해 하나의 시스템과 리더십을 선택해야 하는데, 기존의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보고 배울지, 아니면 새로운 개척으로 나갈지 현재 진행형인 항해의 결과가 주목된다.
헤르만헤세는 말한다.“ 이 세상의 온갖 책도너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책은 남몰래, 너를 너 자신 속으로 돌아가 서게 한다”이 작은 문고책 속에 소개된 32권의 숨가쁜 책읽기, 아니 서평읽기도 꼼꼼히 읽어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의 글들은 나에게 지식을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남몰래 내가 중국을 바라보는 사고의 틀을 형성하게 할 것이다. 중국이 부드러운 힘으로 포장된 국제관계의 리더십에서 강한 나라가 되기를 꿈꾸며 지금도 진행 중인 중국 전체의 퍼즐그림에 또 하나의 작은 조각을 채워본다.
이관 | 前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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