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  통권 135호     필자 : 김선
[중국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雪花秘扇》
- 뉘수(女書)와 라오통(老同)을 통해 본 영원한 우정

왕잉(王穎, 1949년생)은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계 감독으로 1993년에 《조이 럭 클럽(JOY LUCK CLUB)》을 제작하여 주목을 받았다. 곧이어 1995년에 《스모크(SMOKE)》로 호평을 받았으며, 2011년에 한국의 전지현과 중국의 리빙빙(李氷氷)이 출연한 《설화와 비밀의 부채(雪花秘扇, Snow Flower and the Secret Fan)》라는 영화로 메가폰을 잡았다. 

이 영화는 중국계 미국 여성 작가인 리사 시 (Lisa See)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리사 시는 《황금산에 올라》와 《플라워 넷》을 집필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 《상하이 걸즈》와 《모란의 사랑》 같은 장편 소설을 발표하여 인기를 얻었다. 왕잉 감독은 소설에 등장하지 않은 도시, 상하이에 거주하는 ‘소피아’와 ‘니나’라는 여성을 새로이 등장시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19세기 청말(淸末) 후난성(湖南省)의 농촌에 사는 설화(雪花)와 백합(百合), 두 여인의 신분은 다르지만 서로의 비밀문자로 이야기를 주고받게 해 준 부채, 그리고 라오통에 관한 이야기로 소피아는 자신과 니나의 상황을 대입해 소설을 썼다. 현재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말할 수 없는 서로의 감정이 소설 속 설화와 백합의 이야기로 교차되어 펼쳐진다.

뉘수: 여성들 의사소통의 매개체
설화와 백합은 전족의 고통과 고된 시집살이, 불행한 여성들의 삶을 부채 위에 뉘수를 쓰며 서로를 위로하였다. 소설에 의하면 뉘수는 중국 남서부 후난성의 외진 지역에서 오직 여자들만이 사용한 비밀스런 문자로서 약 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뉘수는 모기 다리나 흙에 찍힌 새 발자국처럼 연약해 보이고 발음 그대로 쓰기 때문에 발음이 같은 한 글자가 여러 단어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뉘수는 붓과 먹물로 종이나 부채에 적을 수도 있고 손수건이나 옷가지에 자수로 놓을 수도 있었다. 뉘수에는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이 있다. 남자가 뉘수의 존재를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형식으로든 남자가 뉘수에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것이 두 번째 원칙이다. 

설화와 백합은 함께 뉘수를 쓰는 법과 서로 뉘수로 소통하는 법을 배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들은 예쁜 발을 만들어 좋은 조건의 남자한테 시집을 가기 위해 7살 때 전족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각자 결혼 한 후에는 서로 변치 않는 우정을 다짐하면서 시집살이의 고달픔과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뉘수에 쏟아냈다. 전족의 고통을 인내하며 예쁜 발을 만들기 위해 힘들었던 어린 시절, 출가하여 친정을 떠나 낯선 시댁으로 향하는 발 길, 혼례를 치르고 두렵기만 한 첫 날 밤에 대한 묘사, 남편과의 잦은 이별로 외로운 처지, 라오통(老同: 여성 간의 우정을 다짐하는 계약, 소울메이트)과 만나고 싶은데 시어머니의 제재로 마음 놓고 만날 수 없는 처지,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구박을 받고 아들을 낳아야만 며느리로서 인정을 받는 여인들의 불쌍한 신세, 역병으로 인해 시체들이 들끓는 속에서도 자신의 몸을 사르지 않고 시어머니를 돌보는 며느리의 섬김 등이 고스란히 뉘수에 녹아 있다. 뉘수에는 여성들 간의 정신적인 교감과 남편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뇌와 진실한 마음이 담겨져 있어 더욱 귀하다. 영화에서 니나는 소피아의 이모가 운영하는 뉘수 박물관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소설 작가 리사 시가 직접 중국 외진 마을에 가서 뉘수와 관련된 자료를 찾고 박물관을 답사하고 뉘수를 쓸 줄 아는 96세의 할머니를 만난 경험들을 담아낸 것이다. 영화에서 뉘수는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소피아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후에 발견된 뉘수와 그녀의 원고가 직접적인 매개체가 되어 니나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부채의 비밀을 하나씩 파헤쳤다. 니나는 소피아가 아버지의 자취를 찾아 남자 목욕탕의 사물함에 아버지 영정을 모신 것과 뉘수가 적힌 부채를 발견하였고 소피아가 거주했던 누추한 집에서 자신을 향한 진심이 담긴 뉘수를 찾았다. 니나는 소피아가 자신을 뉴욕에 가게 하기 위해 호주로 간다고 말한 것을 알게 되자 그동안 쌓였던 오해가 풀렸다. 니나가 자신이 쓴 뉘수를 병상에 누워 있는 소피아의 손에 쥐어주며 눈을 감고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자 의식이 없었던 소피아가 눈을 뜨며 깨어나는 것이 엔딩 장면이다. 뉘수는 소피아와 니나 그리고 설화와 백합 네 여성 인물의 내면을 세밀한 터치로 다루었다. 청말 후난성의 두 전통적인 여성과 도시 상하이에 거주하는 두 현대 여성 간의 거리를 좁혀주고 그녀들의 사랑과 우정을 시공간적으로 교차하며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라오통 : 두 여성간의 계약과 우정
소설에 의하면 의자매는 같은 마을에 사는 여러 소녀들이 의자매를 맺는다고 해도 시집가면 자연히 해체되지만 라오통은 다른 마을에 사는 두 소녀가 평생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설화와 백합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 라오통 관계를 맺으며 영원한 사랑과 우정을 약속하였다. 백합이 시집갈 때 설화는 곁에서 지켜주고 친정어머니를 떠나는 심정을 위로해 주며 집 밖을 나설 때 서로 간의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였다. 두 사람은 매년 사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백합의 시어머니는 아들 낳기를 빌라고 명령하며 설화와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몰래 설화와 만나 담소를 나누고 집에 돌아온 백합은 시어머니한테 들켜 불순종했다는 이유로 창고에 갇히게 된다. 설화의 집안이 몰락하여 신분의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뉘수를 통해 자신들의 애환과 고난을 토로하며 서로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았다. 두 여성 모두 아들을 낳아 대를 이을 수 있게 되자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후에 백합이 직접 설화가 사는 집을 방문하였는데 뜻밖에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 반란군을 피해 함께 피난을 가게 되었다. 착하고 마음이 여린 백합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설화를 직접 도와주려고 했다. 그러나 설화는 더 이상 그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뉘수를 보내어 백합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다. 얼마 후에 친척 결혼식이 있어 설화가 가족을 데리고 백합의 집에 찾아왔지만 백합은 서먹하여 그 자리를 피해 버렸다. 그 후 설화의 딸이 찾아와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를 만나 줄 것을 간청하자 백합은 마음을 열고 설화를 방문하여 그녀의 임종을 지키며 서로 간에 진심 어린 사랑과 우정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니나는 한국인 친구 소피아를 좋아하고 집에 자주 놀러왔지만 소피아의 계모는 서로 사귀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후에 소피아의 아버지가 주식 투자로 인해 집안이 망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돌아가시게 되었다. 니나는 대학 입학 고사를 볼 때 소피아를 위해 자신의 시험지에 소피아의 이름을 쓴 것이 발각되어 상하이 교육당국으로부터 두 명 모두 3년간 재시험을 보지 못하는 징계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 후 니나는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 뉴욕 지사로 승진 발령이 났지만 소피아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서 망설이자 소피아는 니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은 남자친구와 함께 시드니로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피아의 말은 니나를 분노하게 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되어 결국 단절되었다. 며칠 후 니나가 뉴욕으로 가는 것을 축하하는 송별 파티가 열린 날 소피아는 니나한테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피아는 니나를 만나려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택시와 충돌하여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한 밤 중에 연락을 받은 니나는 단숨에 소피아 곁으로 달려오고 의식을 잃은 소피아를 그냥 두고 혼자 뉴욕으로 떠날 수가 없어서 결국 뉴욕 행을 포기했다. 니나는 소피아의 가방 속에서 뉘수가 적인 부채와 <무제>로 쓴 원고를 발견하여 하나 둘씩 소피아 삶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과거를 회상했다.      

변하는 것 VS 영원한 것
인간의 운명은 수시로 바뀐다. 가난했던 백합은 가문이 좋은 부유한 설화와 라오통을 맺으며 부자 집에 시집을 가게 돼서 귀부인으로 변신하지만, 설화는 아버지가 아편 중독에 걸려 재산을 탕진하고 망하게 되어 백정에게 시집을 간다. 결혼 전과 결혼 후의 두 사람의 운명은 확연이 다른 차이를 보이게 된다. 백합는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귀부인으로서 부와 권력을 갖게 된다. 반면 설화는 백정 남편에게 학대받고 태평천국의 난을 피하는 도중에 사랑하는 아들이 얼어 죽는 불행을 겪게 되자 남편은 모든 것을 설화의 탓으로 돌려 백합이 보는 데서 설화를 때리고 심지어는 아들을 묻은 곳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백합은 고통을 받는 설화한테 아이를 데리고 함께 자기 집으로 가자고 설득하지만 설화는 이를 거절한다. 자신이 더 이상 동정 받는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절되고 나중에 설화가 죽음의 문턱에서 백합을 찾음으로 인해 두 사람간의 오해는 간신히 풀리게 된다. 설화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백합은 새 부채를 열고 붓을 찍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세상은 항상 변한다. 매일 변해 간다. 인생의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일편단심, 함께 나눈 추억, 서로에 대한 사랑, 그것들로 인해 과거의 진실은 살아난다.” 그녀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을 나타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붙잡지 말고 영원의 관점에서 지금의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 

라인홀드 니버는 주님 앞에 겸손하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하여는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게 하시고,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하루하루를 살게 하시고,
순간순간을 누리게 하시며,
곤경을 겪을 때 평안으로 가는 길로 받아들이고,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제 방식대로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바르게 세우실 것을 믿게 하시고,
지금의 삶에 적절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며,
이후에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2013년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오묘한 섭리 속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기고 ‘오늘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하며 날마다 주님의 뜻에 합당한 선택을 하여 어두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길 소망한다.


김선 | 고려대학교 국제어학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