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30  통권 134호     필자 : 덩샤오린
[내가 만난 하나님]
엄마가 한국에서 돌아오셨다

나는 80년대 후반 산동성 제남의 봉급생활자 가정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조국의 꽃’인 우리들에게 무신론의 씨앗을 심어 주셨다. 교과서나 각종 매체를 통해서 보고 듣는 것은 “사람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동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사물의 발전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보여 주신 원시인 모형과 진화론의 개념은 우리의 세계관이 되었고 그 진화론은 어떤 연구나 논증도 없이 믿어진 이론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는 한국의 대구 지역으로 5년간 일하러 가셨다. 남아있는 아빠와 나는 서로를 의지하며 보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 내 기억은 회색빛이다. 난 엄마의 사랑과 관심도 없이 자랐고 아빠는 동고동락할 아내도 없이 지낸 것이다. 아빠는 늘 업무로 지쳐있었고 나는 나대로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그러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집에 오면 따뜻한 엄마 품이 그리웠고 마음이 아플 땐 엄마의 부드러운 위로를 받고 싶었다.

따뜻한 미소
비록 어두웠던 그 시절이 나나 아빠에게 삶이란 쉬운 게 아니다라고 느끼게 해주었지만 한 가지 선물은 있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세 식구 안에 살며시 다가와 있었다.  

엄마가 한국에 계실 때 평생에 한번 있을까 하는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기독교인이었는데 평범해 보였지만 뛰어난 인격을 지녔다고 했다. 한 번은 엄마와 친구 분이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하는데 짐이 너무 많아서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한 기독교인이 서울까지 짐을 운반해 주기 위해서 차를 몰고 5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를 달려 먼저 비행장에 도착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기독교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엄마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엄마는 하나님을 믿고 나서 우리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복음을 전하셨다.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 싫었다. 나는 그것을 미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아오셨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엄마는 마침내 집으로 오셨다. 마음이 흥분되고 떨렸지만 엄마 모습 속에 뭔가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온유해지셨다. 이전의 ‘여장부’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좋은 아내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비록 엄마가 순종적으로 변했지만 함께 살아가는 과정은 상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아빠는 예수를 믿지 않고 계속해서 세상을 쫓아 살았다. 한 번은 친구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 엄마와 말다툼을 하셨다. 나는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께 아빠가 술, 담배를 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딱히 별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우리 부녀에게 성경을 읽어주며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셨다. 그러나 나에게 예수는 그저 전해 내려오는 어떤 인물들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예수가 병을 고치고 이치에 맞는 말을 할지라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빠도 믿게 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은 신선하고도 낯선 세상이었다. 학교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학우들과 함께 학교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런데 대학생활을 하며 갑자기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대학에 들어 왔을까? 장래에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인가? 이것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고, 내가 존재하는 의미일까? 이런 질문들이 내 뇌리를 맴돌았다. 만약 내가 큰 집에 살면서 매일 산해진미를 맛보며 산다 해도 동물원의 팬더곰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 존재의 가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혼돈의 시기에 엄마가 한국에서 알게 된 기독교도 친구분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셔서 나와 아빠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나는 그분들이 조금 고집스럽고 어리석다고 느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을 위해서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떤 힘이 그들을 이렇게 만드는지 알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분들과 함께 성경을 보면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풀리게 되었으며 2000년도에 아빠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셨다. 나에게는 좀 의외였다. 비록 학식이 풍부하시지는 않았지만 교육을 받으신 분이 왜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겠지만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 믿게 되자 정말 하나님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왜 볼 수 없지?
어떤 기독교인이 이렇게 말했다. 공기는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존재한다. 공기를 떠나서 살 수 있는가? 하나님도 그와 같다. 이 세상의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그분의 존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람이 왜 하나님을 볼 수 없는가에 관해서는 개미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개미는 자신보다 더 고등한 존재인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이 만약 개미에게 물을 붓는다면 개미는 아마도 홍수가 발생했다고 여길 것이다. 설사 개미가 자신이 배운 학식과 논리로 머리를 쓴다고 할지라도 사람이 그 위에 물을 부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우주에서 개미보다도 작은데 어찌 능히 인간과 천지를 만든 하나님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오만했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고 여겼던 것이다. 우매하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머리를 숙이다
‘죄’의 문제는 나에게 또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죄인’ 이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나쁠 것이다. 나도 그랬었다.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최 형제님이 성경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 정확하게 쓰여 있었다. 원한과 질투와 정욕은 생명과 함께 온 것이라고.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 5:19-21). 이 모든 것이 죄의 외적 표현이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한 번도 질투 한 적이 없다고 욕심을 부려 본 적이 없고, 거짓말 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죄의 대가는 사망이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아무도 지옥에 가길 원치 않는다. 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 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7-18).

바로 대답하다
최 형제님이 다시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까? 나는 바로 대답했다. “네, 믿습니다.”

부모님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으며 나 또한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고 즐거웠다. 6개월 후에 나는 세례를 받았다. 


출처 | 海外校園 第 114期
번역 | 이순자 ․ 본지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