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비록 기독교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이미 주님을 믿고 계셨다. 어머니는 종종 나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무신론을 가르치는 교육 환경에서 자란 난, 어머님 말씀을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종교는 모두 허구이고, 단지 인류의 무지와 두려움의 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셨던 주님 중학교 졸업 후 그 해 여름휴가 때, 집에서 한가로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중학생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비록 강사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끊임없이 했지만, 이 집회를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물론 그때까지 만해도 나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하고 계신 것인 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1개월 후에, 학교에서 시험을 쳤다. 고등학교에 입학 후 처음으로 본 시험이어서 선생님들은 이 시험에 큰 비중을 두셨다. 당시 내 성적은 반에서 중간 그룹에 속하였다. 나는 이번 시험 성적을 통해 선생님들께 내가 정말 우수한 학생임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험을 정말 잘 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내 안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나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에 잠들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내가 매 시험마다 반에서 7등을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나는 당신을 믿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도를 하고 난 후에도 내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셨다. 그는 내가 주님의 면전으로 나와 그를 알 수 있게 하고, 나를 긍휼이 여기셔서 내 기도에 귀 기울여 주셨다. 그 시험에서 난 반에서 일등을 하였다. 사실 나는 단지 내가 운이 좋아서 첫 번째로 시험을 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기하게도 우리에게 우리가 구하는 것 이상의 것을 주신다. 나중에 모든 시험에서 나는 매번 반에서 3등을 했다. 이것은 내가 7등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보다 더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당시에 난 하나님과 했던 약속을 잊어버렸다. 이 모든 성적을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 언제 완전하게 나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고2때 난, 학교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반으로 편성되었다. 하지만 기숙사에서는 가장 성적이 좋지 못한 애들과 함께 지냈다. 우리들은 매일 밤 몰래 학교 근처에 있는 PC방에서 게임을 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간에 자주 졸았다. 나는 내 스스로를 이렇게 방탕한 생활로 밀어 넣었다. 나는 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했고, 삶의 원동력을 느끼지 못했다. 잠언 기자가 “헛되고 또 헛되도다, 무릇 모든 것이 다 헛되도다.”라고 말한 것처럼, 나는 심지어 자살로 이 무료한 삶을 끝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내가 인생에 대해 허무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주님은 나를 한국으로 보내셨다. 2005년 3월 1일, 한국에 도착한 나는 모든 것이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알 수 없는 즐거움에 들떠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여전히 예전처럼 삶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환경은 새롭게 바뀌었지만 마음속에 공허함은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 온 이후, 나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단순히 놀러 가보자는 생각뿐 이였는데,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교회 사람들 때문에 계속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는 않았다.
그 해 여름, 난 학비를 벌기 위해 바쁘게 뛰어 다녔는데, 대구의 한 목사님의 소개로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목사님의 배려로 나는 목사님 댁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번 식사도 챙겨주시고, 출근할 때 배웅해주시고, 퇴근할 때는 마중 나와 주셨다. 난 정말 죄송스러웠다. 난 이 분들이 왜 이렇게 나에게 잘해주시는지 몰랐다. 하지만 중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할 때면 “이 분들이 나에게 이렇게 잘 해주시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에요.”라고 고백했다. 어머니는 “죄송스러워 할 것 없다. 하나님께 감사하기만 하며 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은혜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일은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지칠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주 예수님, 나에게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한번은 너무 바쁘게 출근하는 바람에 그만 실수로 내 안경을 발로 밟아버렸다. 목사님은 나를 데리고 안경점에 가서 새로 안경을 해주셨다. 안경점에 기다리는 동안 맞은편에 앉아계신 목사님을 바라보았다. 마치 내게 “내가 너에게 하는 모든 것은 마땅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엔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행20:35).” 는 성경구절이 스치고 지나갔다.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갑자기 내 마음이 뜨거워졌다. “우펑, 너도 나중에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이 네가 예수를 잘 믿는 것보다 낫겠니? 그리고 너는 이 복음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그들이 이 기쁨의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라.” 그날 저녁, 나는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날 이후, 난 신학을 공부해서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러 다니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하나님께 감사 할 따름이다. 사실 내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주님께서 인도하셨다.
여름 방학이 끝난 후, 나는 강릉으로 되돌아갔다.(역자주: 강릉에 소재하고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음) 학우들은 내가 나중에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난 내가 주님의 기쁨 안에 거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물론 내 영적 생활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나는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신앙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은혜로우신 주님은 나를 떠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신학교로 인도하셨다. 훗날 하나님 앞에서 올해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졸업 후 나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빚 갚는 것을 돕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간증문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나는 공장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사실 나는 이 간증문을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절친한 분이 부탁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 간증문을 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사람에게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왕 간증을 쓰게 된 이상,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한밤중에 다시 이 간증문을 쓰게 되었다.
지금까지 줄곧 이 연약하고 깨끗지 못한 나를 사랑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주님은 나를 지켜주시고, 당신 앞에 세워주셨다. 그리고 끝까지 나를 보호해 주시리라 믿는다.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교회에서 사역을 하지 못하고 돈을 벌어야만 하는 나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나는 알고 있지만, 난 여기서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중에 주님께서 나를 판단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 나를 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들어 주시고 내 평생에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을 섬길 수 있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아멘.
우펑| 중국인 유학생 번역| 전진 · 중국어문선교회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