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및 분포 : 뚱족의 총인구는 1990년 현재 2,514,014명으로 꾸이저우(貴州)성에 140여만 명, 후난(湖南)성에 75만 명, 광시장족(廣西壯族)자치구에 30만 명, 그리고 후베이(湖北)성에 5만여 명이 분포해 있다. 꾸이저우성 티엔주(天柱)에서 베트남으로 피난해 가 7대째 뿌리를 내리고 사는 뚱족도 있다. 그중 꾸이저우성 치엔동난미아오족뚱족자치주(黔東南苗族侗族自治州)에 106만 명 가량이 살고 있어 가장 집중되어 있다. 꾸이저우성의 치엔동난(黔東南)과 후난성은 이미 춘추전국시대(B.C.770~B.C.221)부터 뚱족의 선조들이 자리잡고 살아온 곳이다. 꾸이저우성 동남부 묘령산맥의 주봉인 레이꿍산(雷公山; 해발 2,179m)을 중심으로 광활하게 골 깊은 산과 칭수이강(淸水江)과 떠우리우강(都柳江)가에 분포해 있어 일부는 수상민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민족의 원류(源流) : 진나라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적 봉건왕조가 일어나 남쪽지역을 정벌해 일부는 한족과 융화하지만, 일부는 A.D 3세기 초인 위진시대에 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생활하게 된다. 뚱족은 간란(干蘭)식으로 집을 짓고 단발문신(斷髮文身)을 하며 남녀가 함께 목욕을 하는 등 고대 월인(越人)의 풍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언어와 어법에 있어서도 좡족(壯族), 뿌이족(布依族), 따이족(傣族), 리족(黎族) 등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서로 밀접한 관계로 살아온 형제 민족이다.
언어 : 뚱어는 한짱어계좡뚱어족뚱수이어지(漢藏語係壯侗語族侗水語支)에 속한다. 좡뚱어(壯侗語)의 어원은 고대 월어(越語)로 랴오어(僚語)를 거쳐 현재의 뚱어로 이어져 왔다. 뚱족의 언어 사용현황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한어(漢語)는 거의 못 알아듣고 자기 민족 언어만 사용하는 부류인 대부분의 노인층과 부녀자 그룹, 둘째는 뚱어를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은 못하는 부류, 셋째는 비교적 지식수준이 높아 한어와 뚱어를 동시에 잘 하는 부류, 넷째는 서남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기 민족어인 뚱어를 전혀 못하고 한어만 하는 부류 등이다.
문자 : 문자 없이 구전으로 오랜 동안 계승되어 왔기에 애석하게도 단절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1956년 12월부터 1958년 8월까지 현지 조사와 토론을 거쳐 뚱어 남부방언인 꾸이저우성 룽장현(榕江縣) 차장화(車江話)를 표준음으로 라틴문자를 사용해 문자를 만들게 되었다. 1981년 이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뚱어문 교사를 양성해 소위 쌍학(雙學)이라고 하여 많은 지역에서 소학교를 시작하여 한자와 겸용 교육을 실시 하고 있다.
문화 ․ 예술
1) 관(款) 문화 : 관은 법률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종합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뚱족 사회 특유의 산물로 자칭 “합관(合款)”이라고 했는데 후에 “동관(侗款)”으로 부르게 되었다. “연합대관(聯合大款)”, “합관”, “중관(中款)”, “소관(小款)”의 4등급으로 나뉘어 있는 동관은 봉건적 정치제도와 사회조직 형태를 담은 법률적 성격을 띄운 일종의 관습법과 각종 규약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상숭배, 도덕규범, 생산활동 시에 지켜야 할 제반규칙 등을 명시하고 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발전을 거듭해 내용이 풍부하고 다양해져 정치, 군사, 역사, 문학예술 등 각방면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2) 고루(鼓樓)문화 : 고루는 뚱족 문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전통문화의 핵심이다. 산지에 걸맞는 생활형태로써 마을마다 고루가 있어 고루와 더불어 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자칭 “고루자녀”라고까지 말한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어 고루의 역사를 고증하기란 쉽지 않지만, 당(唐)나라, 혹은 그 훨씬 이전인 원시시대부터 이미 뚱족이 모여 사는 곳에 고루가 건축되었다는 주장이다. 고루의 건축은 많은 인력, 물력, 재력을 필요로 하는데 당시와 같은 어려운 여건 하에서는 원시공동체 형식의 단결이 없이는 불가능함이 아직까지 개인이 고루를 건축한 예가 없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원시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환하면서 고루를 중심으로 조직이 이루어지고 관리되어 왔으며, 마을을 이룰 때에는 먼저 고루를 건축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뚱족 사회에서 오랜 동안 실행해 온 “채로제(寨老制: 마을 원로들로 구성된 의결제도로 샹라오(鄕老)라고도 함)”의 장소로 이용되어, 관습법인 “동관”을 기본으로 씨족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곳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거행하는 성대한 제사와 젊은이들의 “뚜오예(嗲耶)”, 즉 오락활동 등의 장소로도 이용된다.
3) 문학 : 뚱족에게는 풍부하고 다양한 문학장르가 전해져 온다. 예(耶) : 뚱족문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일종의 종합문학 형태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마다 매우 중요시하는 집단적인 가무형식인 ‘뚜오예’ 가 되었다. 노동을 찬양하는 것, 인류의 기원을 노래하는 것, 부모를 칭송하는 것, 애정을 표현하는 것 등 내용이 다양하다. 마을마다 가수가 있어 전래되는 모든 민요를 기억하여 노래를 통해 전통문화를 보존해 내려오고 있다.
레이(壘) : 오랜 동안 전해 내려오는 길상(吉祥)의 언어로 되어 제사나 축원할 때에 암속하는 주문같은 것인데 시대상을 반영하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다분히 감성적이다.
누안(暖) : 신화, 전설, 우화, 동화 등을 담고 있는 산문체 형식으로, 뚱족 역사의 희로애락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재치 있는 인물을 등장시켜 전설로 전하고 순결과 애정을 그리는 내용의 신화나 조상들이 대자연과 싸우며 살아온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
쥔(君) : 원나라 이후에 나타나는 대화문학 형식으로 말과 노래가 곁들여 있다.
운체문학 : 민족 역사시, 민요에 나타난다.
산체문학 : 엄격한 운율과 자구(字句)를 요구하며 신화, 전설 등을 이 형식으로 표현했다.
4) 음악과 춤 : 민간악기는 비파(琵琶), 우퇴금(牛腿琴), 동적(侗笛), 호생(芦笙), 목엽(木葉)등 다양하다. 호생만 독주나 합주용으로 사용되고 다른 악기는 노래 부를 때 반주하는데 이용된다. 특히 비파는 뚱족말로 “비바”라고 하는데 오랜 전통이 있는 현악기로 대, 중, 소의 세가지 형태이며, 지역마다 크기, 모양, 현의 숫자(3줄~5줄)가 다양하다. 호생 역시 유행하는 악기인데 각 마을마다 호생악대가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악기와 더불어 노래와 춤은 남부와 북부가 독특하게 다른 성격을 갖고 발달해 왔다. 집단 가무의 명칭인 “耶” 는 시, 노래, 춤의 삼위일체 형식으로 원시노동에서 진일보해 생활예술로 발전했고, 조상숭배를 중요시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제사활동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했다.
가정 : 산촌에서 자급자족으로 보통 3대가 함께 살며 철처히 가부장제 가족체계이다. 혈연관계로 고루(鼓樓)중심인 고루 사회의 최소단위를 이룬다. 가장은 가정의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가족의 의견을 존중한다. 대부분의 마을이 한 성(姓)씨로 한 마을을 이루며 오(吳), 양(楊), 석(石), 양(梁) 성이 가장 오래되었다.
복장 : 지역환경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노인과 중년남자는 깃이 달린 옷을 입고 여자는 머리를 쟁반같이 올리고 긴 바지를 입는다. 청조 말의 한족 복장과 비슷하다
음식 : 쌀을 주식으로 하지만 찹쌀음식을 좋아해 흰 찹쌀, 붉은 찹쌀, 검은 찹쌀 등 여러 종류의 찹쌀을 재배한다. 음료 또한 찹쌀을 주로 사용한다. 명절이나 경사에는 반드시 찹쌀밥을 하고 제사 때도 마찬가지이다. 기호식품인 유차(油茶)를 만들 때에도 찹쌀을 사용한다. 편미(扁米)라는 뚱족 고유의 식품이 있는데, 가을에 80% 정도 말랐을 때 식힌 후 여러 차례 방아에 가볍게 찧으면 껍질이 벗겨지고 남는 것을 먹는다. 약할 불에 말리는데 색은 연하고 맛 또한 별미이다.
결혼 : 일부일처제이나 원시사회의 연애, 혼인방식이 남아있는 편이다. 교통이 편리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에 따라 풍습이 약간 차이가 있으나 비교적 자유롭게 교제하며 연애하는 편이다. 오랜 기간 동안 여럿이 함께 교제하는 단계를 거쳐 둘 만의 연애로 들어간다. 혼기에 찬 총각은 “뤄한(羅漢)” , 처녀는 “뤄미엔(羅面)”이라고 한다. 매일 저녁 어두워지면 여러 아가씨들이 당옥(堂屋)에 모여 수를 놓든가 옷감을 짜면서 총각들을 기다린다. 그러면 3~5명의 청년들이 등불을 들고 비파를 켜면서 노래를 불러 자기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찾아간다. 아가씨는 비파소리를 듣고 창으로 내다보아 마음에 드는 총각이 있으면 창문 두 개를 열어 들어오라는 표시를 한다. 때로는 문을 열지 않고 서로 주고 받으면서 노래를 부른 후 노래가 마음에 들어야 문을 열어주고 들어오게 한다. 교제해서 뜻이 맞으면 정표를 나누고 약혼한다. 부모의 동의를 거쳐 17,18세에 음력 9월에서 다음해 정월 안에 간소하게 결혼식을 거행한다.
장례 : 장례는 정상적으로 죽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서 의식을 달리한다. 사람이 죽으면 곡을 하고 종이돈을 태우며 시체를 씻기고 옷을 입힌다. 이 때 죽은 이가 결혼식 때 착용했던 머리띠, 의복, 신발 등을 입힌다. 허리는 오색실로 나이 수만큼 묶고 손에는 종이돈을 쥐어 주며 관 바닥에도 돈을 깔아 준다. 관을 신당 앞에 모셔두고 손님을 맞고 3~5일 후 매장한다. 매장 사흘 후 다시 묘지를 돌아보고 49일제를 지내며, 칭밍제(淸明節)에 찾아가 묘를 돌보는 등 다른 민족들과 다를 바 없다. 비정상적으로 죽은 사람은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밖에서 염을 한 후 봉분 없이 매장한다.
절기 : 뚱녠(侗年): 추수를 마쳐 모든 농사일을 마쳤을 때를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 간주해 음력 11월을 신년으로 지낸다. 각 가정에서는 돼지를 잡아 요리하며 축하한다. 처음 이곳에 옮겨와 수렵생활을 하며 후에 땅을 개간해 수확을 거둔 조상을 기리며 제사한다. 룽장현(榕江縣) 일대의 뚱족들은 음력 10월 말과 11월 초에 신년을 축하하는 활동을 하며, 11월 말에는 “페이니엔(陪年)”이라고 해서 마을마다 민족의 단결과 우의를 다지는 행사를 거행한다. 총장현(從江縣) 관뚱(貫東)의 뚱족은 “양년(楊年)”이라고 부르면서 음력 11월 초삼일 온 가족이 모여 친지들을 청해서 물고기로 잔치를 벌이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한족과 왕래가 잦은 지역에서는 동일하게 음력 정월 초하루 춘제(春節)로 지낸다.
츠샹쓰(吃相思): “웨이커(爲客)”라고도 하는데, 즉 손님을 위하는 날이라는 뜻으로 마을끼리 우의를 나누기 위한 사교활동이다. 음력 1월, 2월 또는 가을에 남녀노소 무리를 지어 다른 마을을 방문, 손님으로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하며 ‘소싸움(鬪牛)’ 을 시키는 등 단체 사교활동을 벌인다.
츠신제(吃薪節): 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르나 음력 6월 또는 7월 묘(卯)또는 인(寅)일에 우물에서 새로 길어온 물에 찹쌀로 감주를 담고 물고기 요리를 장만하고, 소금을 섞지 않은 곡식과 채소를 준비해 새벽에 조상에게 제사지낸다. 소싸움, 노래 등의 활동을 하는데 조상을 기리는 뜻이 있다. 이외에도 많은 전통 명절이 있다.
종교 및 금기 : 원시모계사회의 영향으로 전설 속의 최고 권위의 영웅인 조상 여신(女神), ‘싸(薩)’ 를 중심으로 한 조상 숭배 신앙이 매우 특별하다. ‘싸’는 신성의 대명사이며 무소부재한 존재이다. 예전에는 각 가정마다 신위(神位)를 모셔놓는 ‘싸탕(薩堂)’ 이 있어 식사 전에 먼저 음식을 올려 공경했다. ‘탕(堂)’ 은 대중집회의 장소이며 싸신이 거주하는 곳을 뜻하기도 하고 큰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원시신앙 형태인 점복술도 아직 남아 있다. 불교, 도교와 더불어 만물에 영이 있다고 믿어 뱀을 숭배하는 등 토템사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금기사항들은 정월 초하루에 철로 만든 그릇을 들지 않고 정초에는 먼 곳에 출입을 삼가 하며, 봄에 벼락이 떨어진 날에는 산에 올라가거나 밭에 가지 않는다. 결혼식 후 처가에 가서는 부부가 함께 방을 쓰지 않는 등 다분히 미신적인 것이 있지만,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기독교 상황 : 1920년대에 미국 선교사 리우푸췬(劉富群), 딩후이밍(丁惠明)과 중국인 목사 린다잉(林達榮)이 광시좡족자치구에서 룽장현으로 들어와 복음을 전했다. 이 결과 룽장현의 황커푸(黃克夫)가 광시 우저우(梧州)의 선도회(宣道會) 성경학원에서 학습한 후 목사가 되었다. 1938년에는 쑤따오핑(蘇道平) 목사와 그의 부인 쑤아이롄(蘇愛蓮)이 광시에서 룽장현으로 와서 핑요우(平油), 번리(本里), 러리(樂里), 양띠아오(楊調)등 뚱족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다. 그들의 전도로 100여 명이 세례를 받았고, 신도 수는 1,000여 명에 이르렀으며, 교회는 빈민구제와 치료에 앞장섰다. 리핑현(黎平縣)에는 독일 선교사 요우더카이(尤德凱)가 들어 와서 전도했다.
뚱족은 널리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복음전달이 쉽지 않다. 동북지역은 한족과 어울려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복음 전도의 문이 열려있는 편이다. 반면 동남지역은 고산지대이고 한족의 영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아직 복음이 거의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서 많은 관심과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기도제목 1) 뚱족을 위한 중보기도자들이 많이 일어나도록. 2) 뚱족을 사랑하며 섬길 현지 교인과 지도자가 생겨나도록. 3) 고루(鼓樓) 전통문화에 젖어 잇는 퉁족을 지배하고 있는 사단의 세력이 성령의 강한 역사로 무너지고, 성령의 뜨거운 역사만 이루어지기를.
자료출처/ 「귀주를 생각만 하여도, ARM(복음음반선교회) 출판부
정리/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