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에서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어, 매년 찾아오는 봄이지만 늘 반가움과 설레임으로 기다려지곤 했다. 달콤한 봄바람을 타고 라일락 향기가 창 틈으로 스며들어오고, 긴 겨울에 지쳐 마치 죽어버린 것 같은 마른 나무에 연초록 물이 오르면 ‘올해에도 어김없이 봄이 오기는 오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선교지에서 맞이하던 봄을 올해에는 안식년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고국에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 한편에 어느새 그곳의 봄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지난 7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어느새 그곳이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음을 실감케 된다.
선교지에서의 첫날밤
어느 선교사에게나 선교지에 처음 도착하던 날의 감격과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1994년 선교지에 처음 도착하던 그 밤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유난히 추웠던 그 해 겨울, 가방 두 개에 간단한 짐을 챙기고 생후 6개월된 아이를 품에 안고, 비행기 안에서 두려움 반 기대 반 복잡한 심경으로 조금씩 멀어지는 고국 땅을 바라보면서, 점점 멀어지는 거리만큼이나 가족간 30년 간의 추억으로부터 긴 이별을 하는 아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밟게 될 그 땅에서 과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평균 해발 3,000m의 고원, 건조한 사막지역, 길고 추운 겨울, 소수민족 거주지이며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곳,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는 곳… 이러한 기본적인 정보들 속에서 뭔가 위로가 될만한 내용을 찾고 싶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가라…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는 말씀만 마음으로 반복하여 새기면서, 바로 지금부터 내가 가진 믿음을 사용할 때라는 긴장감이 온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우리가 갈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베이징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반을 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없어 사역지와 인접한 다른 성에 먼저 도착, 밤새 택시를 타고 4시간 넘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우리 나라 60,70 년대 농촌과 같은 흙담집 뿐이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남편과 아기는 긴 여행에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면서 흔들리는 차에 그저 몸을 맡기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 나는 묘한 긴장감과 호기심에 잠이 오지 않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모래산, 모래바람으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시골길, 토담집 창 밖으로 새어나오는 순박한 불빛, 그때 문득 머리를 들고 밤하늘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반짝이는 별들이 까만 하늘에 박혀 있었다. 순간 그 별들은 빛나는 눈동자로 보였다.
그것은 바로 반역의 땅, 버려진 이 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동자였다. 차에서 내리자 칠흙같은 어둠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살을 에이는 찬 밤바람이 불어왔다. 허술한 기숙사에 도착해 감사예배를 드리고 먼지가 뿌옇게 쌓인 침대 위에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다. 와야할 곳에 드디어 왔다는 기쁨과 함께…. 이러한 평안과 기쁨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렇게 선교지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만 의지하라
우리가 도착한 곳은 고원지대라 산소가 부족해서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었고, 40년 전에 지은 낡은 건물의 창 틈 사이로 뼈를 시리게 하는 겨울 바람이 스며들어 왔다. 수시로 끊어지는 수도와 전기, 건조한 날씨와 부족한 산소, 깨끗하지 못한 물로 인해 계속되는 아기의 질병, 지독한 유행성 감기로 세 식구 모두 고열로 나란히 누워 사경을 헤매던 일, 치열한 영적전쟁 속에서 잠 못 이루게 하는 악몽들, 믿었던 현지 동역자들의 배신, 인간관계에서 오는 실망과 아픔…. 이런 시련과 어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줄 미리 알았다면 과연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수도가 생긴지 얼마 안 된 이곳에서 2,3일에 한 번씩 그것도 새벽 2시에 1시간 정도 수돗물이 공급되었다. 수질도 좋지 않아 어떤 때는 흙탕물, 어떤 때는 폐수가 나와 빨래가 온통 새까매진 일도 있었다. 한번은 탈수된 빨래를 터는데 무언가 우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손으로 집어보니 구더기였다. 소리치며 얼마나 놀랬는지! 그런 물로 분유를 타 먹여서 그런지 아기는 만성설사로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고 영양실조와 탈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지 의사들조차 귀국을 권고했다. 힘없이 누워 눈을 깜박이며 나를 쳐다보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 아이를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져 왔다. 힘이 없어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중에 어디선가 조용하고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이 아이는 내 것이다.” 주신 분이 그분이시니 언제 데려가신들 나는 할 말이 없다. 모든 것이 주님 것이라고 고백하며 살았지만, 내 아이에 대해 포기하지 못하고 완전히 주님께 위탁하지 못한 나를 보게 해 주셨다. 이후에도 아이는 계속 크고 작은 질병으로 어려움 속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신실한 그분께 맡기고 나니 내 안의 평안은 깨지지 않았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다시 큰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쉽게 피로를 느끼고 얼굴이 창백해졌고, 두 세 걸음 걷다가 다시 쪼그려 앉아 “엄마, 어지러워” 하는 것이다. 한창 뛰어 놀아야 할 5살 사내아이가 왜 자꾸 이렇게 약해져 가는 걸까?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결과였다. 눈앞이 다시 아득해졌다. 우리와 같은 학교에서 유학하는 미국인 간호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아 보니 같은 결과가 나왔다. 수술을 제의했지만 망설여졌다. 유치원에 하루 갔다오면 3일을 누워 있어야 하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은 약해져 갔지만,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기도 중에 평안을 느끼며 하나님이 곧 회복시키시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점차 아이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밖에 나가 노는 횟수가 늘어나고 신나게 자전거도 타며 씩씩해져 갔다. 병원에 다시 가서 진단 받았을 때 아이의 심장이 완전히 정상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얼마나 감사했던지…!! 아무 것도 의지할 것 없는 그 땅에서 오직 그분만을 의지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신실하신 치료자가 되어주셨다.
날마다 죽는 믿음
산소부족과 일년 내내 불어오는 건조한 모래 바람 속에서 현지인들도 심장병과 기관지 계통의 질병을 많이 앓고 있었다. 우리 가족 역시 이런 환경 속에서 여러 가지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 모두 건강한 모습을 바라볼 때, 그 당시에는 힘들고 어려운 역경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곳은 다름 아닌 바로 주님의 날개 그늘 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 것은 환경에서 오는 육체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 문화, 다른 생각과 습관을 가진 그곳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그들을 이해하고 품고 사랑하는 일이었다. 줄서기를 모르고 무례하게 새치기 하는 사람들과 싸우던 일, 자신의 물건을 만지기만 하고 사지 않는다고 무섭게 강매하여 속상하던 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피고 가래침 뱉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나도 모르게 그들에 대해 모멸감을 가졌던 일 등 번번이 회개하면서도 저지르게 되는 나의 연약함 속에서 어느새,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돼”라는 억지가 “나는 날마다 죽노라”를 앞지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엄청난 용납을 경험한 우리가 이런 작은 용납에는 왜 이리도 인색한 걸까? 이미 정답은 알지만 긑까지 자신과 싸우며 풀어야 하는 모든 선교사의 가장 큰 숙제가 아닌가 싶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면 말씀과 위로로 동행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가 받은 어려움을 이기고도 남을 만한 넉넉한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으면 통곡만 쏟아져 나왔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연약해 질 때마다 주님은 늘 내게 물으셨다. “넌 날 사랑하느냐?” 이 질문 앞에 나는 다시 그분에 대한 나의 사랑을 고백하며 회복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제 찬송가 511장이 나의 주제곡이 되었다.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찬양을 하다보면 내 안에 첫사랑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곤 했다. 헌신이란 무엇일까? 주를 위해 선교사가 되겠다는 한 번의 헌신으로, 이후의 삶에서도 흔들림 없이 그 길을 향해 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계속되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선교현장에서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주하고 편해지려는 나와 싸워야 하고, 이해하기 힘든 현지인들을 품기 위해 나를 부인해야 하고, 질병으로 고생하는 아이의 눈물 앞에 약해지는 엄마라는 존재와 싸워야 하고, 눈에 보이는 열매들로 인해 인정받고 싶어하며 높아지려는 교만과 싸워야 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시시각각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셨다.
오늘의 헌신이 내일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내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고 또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을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중 내가 경험한 가장 큰 축복은 ‘평안’ 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많이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그곳의 삶은 나에게 큰 축복이었다. “자신이 존재해야 하는 곳에 완전히 존재하는 자는 행복하다.” 라고 말한 어느 사상가의 말처럼 우리의 순종은 곧 축복인 것이다.
중국에 두고 온 많은 지체들이 보고 싶어진다. 고국에 돌아온지 한 달이 넘어가지만, 풍요와 여유로 활기에 넘치는 서울 거리를 다니면서도 여전히 내 머리 속에서는 가난과 굶주림에 지쳐 거리에 늘어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중국인들조차도 오기를 꺼려하는 고원 사막지역. 오랜 세월 유배지로 버려진 땅. 수백 수천의 이슬람 사원과 라마불교 사원이 즐비하게 서 있는 곳. 이런 소외된 땅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어김없이 봄은 돌아고고, 우리가 살던 집 앞뜰에도 연보라 라일락이 필 것이다.
그곳의 봄이 아름다운 것은 피어나는 많은 꽃들 때문이 아니라 긴 겨울의 오랜 기다림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그 땅이 깊고 오랜 잠에서 깨어나 주의 복음이 활짝 피어날 진정한 봄을 기대해 보며 기도한다.
이한나 | 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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