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20  통권 74호     필자 : 한국일
[선교일언]
다시 한 번 선교를 생각한다

한국 교회는 80년대 중반부터 파송하는 선교사의 수가 배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세계 교회가 놀랄 만한 선교적 열정을 품고 한국 교회는 세계선교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마지막 주자로서, 지금까지 달려온 선교 주자로부터 배턴을 이어받아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에 여념이 없다. 거의 모든 한국 교회는 어떤 형태든 간에 선교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한국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선교활동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적 열정, 그리고 아직 품고 있는 잠재력이 올바른 방법을 향하여 실현되려면 그에 걸맞은 선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이론적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 선교는 물론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삼고 있지만, 전도 이사의 많은 내용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교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여 기존의 선교활동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선교의 본질을 표현하는 다양한 의미들을 살펴보며 선교가 담고 있는 풍부한 면들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교란 무엇인가?

첫째,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로부터 출발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다. 이 극히 짧은 한 마디 말씀에서 우리는 선교의 본질과 근거와 목적을 발견한다. 최초의 선교사는 예수님 자신이었다. 하나님이 온 인류와 피조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보냄을 받았다(mitto)’ 라는 용어로부터 ‘선교’란 용어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선교의 주인은 곧 보내신 하나님이다. 교회가 아무리 많은 선교사를 파송할지라도, 선교사가 목숨을 건 희생을 할지라도, 선교는 그 시각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며, 하나님에 의해 진행되며, 궁극적 책임도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송된 선교사의 수와 수행한 선교의가시적 업적에 중점을 두다 보면,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나 선교사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교회나 사람이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사역을 행하실 수 있다. 이것은 교회나 사람의 역할이 필요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선교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서 선교의 든든한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우리를 보내는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면,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게 될 영광으로 인하여 감사하게 된다. 

 

둘째, 선교는 현실적으로 다양한 동기들로부터 출발하지만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선교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사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였노라고 고백한다(롬 5:8). 이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이다. 그 사랑의 범위에는 제한이 없다. 이 사랑의 표현은 역사 속에서 한 민족을 선택하신 사건을 통해서 구체화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종종 우월주의나 배타주의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편협하게 만드는 잘못을 범하게 한다. 사랑은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나 독점욕에 의해 변질되곤 한다. 이스라엘은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민사상으로 받아들여 배타적이며 독점적인 사랑으로 왜곡시켰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밖으로 전하기 보다는 자기 안에 보존하기에 급급한 반(反 ) 선교적 태도를 초래한다. 선교는 사랑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주어지는 행위이다. 사랑은 자신을 열어 다른 사람을 향하게 한다. 그러나 때때로 사랑의 이름으로 행하는 선교에서 오히려 타인을 향한 배타적인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개교회주의, 교파주의 선교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된다. 선교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문을 활짝 열고 다가서서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청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선교는 하나님 나라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선교를 초대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선교는 매우 인격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강력한 확신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듣는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복음의 청취자를 전하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다. 선교사는 복음을 들려주는 사람일 뿐, 그 자신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거나 믿음을 심어주지 못한다. 복음을 듣고 마음에 받아들이며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은밀하신 사역으로만 가능하다. 믿음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박해와 핍박의 지역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탄생하여 번성하는 것은 바로 초대하시는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교사들이 모두 떠난 문화대혁명의 극심한 박해 상황 속에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도록 하는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다.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날 때 그리스도인들이 100만 명 정도였는데, 문화대혁명이 끝났을 때 약 5천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선교사의 역할과 동시에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정직한 선교의 자세이다.

 

넷째, 선교는 우정을 쌓아가며 친구가 되는 것이다. 선교는 멀리서 사랑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깝게 다가가며 우정을 쌓아가는 관계에서 사랑의 나눔을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이슬람권, 공산권과 같은 선교활동이 금지된 곳에서는 더욱 이러한 자세가 요청된다. 그러나 특정 지역만 아니라 선교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우정을 쌓아 가는데서 시작한다. 예수님은 이러한 선교사의 본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간격을 넘어서 우리 곁으로 오신 행위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셨다. 친구는 그와 동행하는 관계이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성령께서 빌립을 광야로 인도하신 후 마침 지나가는 이디오피아 왕의 관리인 간다게의 마차에 가깝게 다가서도록 명령하셨다(29절). 빌립과 간다게는 종교적, 인종적, 제의적인 차이로 인하여 함께 할 수 없는 사이였으나, 빌립은 간다게의 마차에 동승하여 동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선교는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다섯째, 선교는 경계선을 넘어가는 행위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고, 유대에 독점되지 않고, 그들과 원수지간으로 보냈던 사마리아와 교제를 금지했던 이방세계로 퍼져나가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선교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경계선을 초월하여(넘어서) 증거되고 실현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선교를 과거에는 단지 지리적 경계선만을 넘어가는 것, 즉 해외 전도사역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여주는 경계선은 지리적 경계선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상적, 제도적, 인종적, 문화적 경계선들을 넘어가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점에서 선교활동은 그 본질상 매우 급진적 성향을 띠고 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3:28)라는 바울의 선언은 당시 혁명적 말씀으로 들렸을 것이다.

 

경계선을 넘어감은 말씀만이 아니라 전도자 자신도 넘어가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은 사람은 그대로 있고, 단지 복음만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에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전하는 말씀과 전하는 자의 삶을 분리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단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증인(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전하기는 쉬워도 전도자 자신이 경계를 넘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세상에 존재하는 적대적, 배타적인 경계선을 넘어가는 행위는 곧 하나님의 평화를 전하는 화해의 행위이다. 선교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평화의 행위에 참여하며 그것의 실천자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교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세계 교회가 모두 연합함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것을 때로는 시간적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지금은 선교의 힘이 많이 쇠약해 보이는 서구 교회가 한때는 전세계를 향해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였다. 그 후 아프리카, 남미, 북미를 거쳐 아시아와 한국에까지 복음이 증거되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진행되어 온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세계 모든 지역의 교회들을 자신의 섭리와 뜻에 따라 골고루 사용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선교는 어느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전달된다. 이러한 과정은 공간적으로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변해 가는 것을 경험한다. 한 지역이 기독교가 활발하게 번성한 적이 있었는가 하면, 어느 때에는 쇠약해지다가 완전히 비기독교지역으로 변한 곳도 있다. 그러나 전혀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이 복음을 듣고 교회가 활발하게 성장하기도 한다. 한때 선교를 주도했던 서구 교회는 점차로 쇠퇴하는 분위기지만,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복음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

 

세계선교 역사를 살펴보면 초대교회 이래 그 형태와 방법들은 다양할지라도 교회들은 꾸준히 곳곳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참여해왔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다른 교회로부터 배턴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게 되었다. 선교는 400미터를 함께 뛰는 육상경기와 같다. 한 사람의 주자가 열심히 뛴 후에 다른 사람에게 배턴을 넘겨준다. 그도 열심히 자기 몫을 다한 후 다른 사람에게 연결한다. 이렇게 해서 참여자 모두가 협력하여 주어진 과제를 완수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선교가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함께 협력하여 수행되는 것임을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현재 달리고 있다고 해서 다른 주자들을 무시하거나, 자신만이 주자인 것처럼 자만해서는 안 된다. 릴레이와 같이 선교는 모두가 함께 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완성할 수 없는 과제이다. 


선교를 향한 한국 교회의 뜨거운 열정이 빗나가지 않도록 언제나 선교의 본질적인 관점에서 성찰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한국일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