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6.20  통권 76호     필자 : 변문희
[기획 취재]
중국인들을 향한 사랑의 물결
-부산중화교회를 찾아서-

 

항구 도시하면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가운데 넘치는 이국적인 활기가 떠올려진다. 우리나라 최대 항구도시 부산에도 역시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15,500명(2001년 부산 시청 통계) 가량이며, 그 중에서 중국인이 6,969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부산에는 서울의 가리봉동이나 안산의 원곡동처럼 중국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거주지는 없지만, 다른 지역과 유사한 점은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신평이나 사상공단 등 공단지역에 밀집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도, 중국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며 이들이 말씀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 부산중화교회는 원래 화교 교회였지만 중국인 근로자드리 점점 늘어나면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초여름의 주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외국인 상가 거리에 위치한 부산중화교회를 찾아갔다. 이곳 초량동은 관광객들을 포함하여 많은 외국인들로 북적거려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이곳 한 모퉁이에 부산중화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연합으로 섬기는 중국인 근로자 사역 
교회 입구에 오전예배를 드리고 난 중국인들이 여기저기 모여 교제하는 모습이 보인다. 불법체류자 자진신고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고 있는 사람들, 로비 옆에 있는 소예배실 한 쪽에서는 자원봉사자 한 명이 중국인들의 머리를 깎아 주고 있다. 주방에서는 오후 예배가 끝나고 함께 만두를 빚기 위해 준비하느라 분주한 듯했다.

 

 4시에 시작하는 중국인 근로자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3층에 있는 예배실에 올라가니 벌써 많은 중국인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현재 부산중화교회에는 오적 예배에는 약 100명, 오후예배에는 70명 정도의 중국인들이 참석한다.

 

기자가 참석한 주일 오후의 예배에는 마침 특별한 순서가 준비되어 있었다. 부산에서 가장 큰 교회인 수영로교회 청년부를 비롯, 몇몇 교회의 한국인 성도들이 부산중화교회를 방문한 것이었다. 한 장로님의 신앙간증과 청년들이 준비한 찬양과 율동으로 예배는 한층 풍성하였다. 함께 율동을 배우며 즐겁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중국인과 한국인들.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지역 사회 중국인들을 찾아와 섬기는 부산지역 성도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언어와 국적은 달라도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했다. 올 여름 중국 단기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한 교회에서도 목사님과 청년부 형제 자매들이 찾아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유창하진 않지만 청년들이 중국어로 부른 찬양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함께 듣고 있던 중국인 성도들도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기도와 찬양의 은혜로운 예배가 끝난 후 중국인 성도들과 한국 교회에서 온 성도들 모두 식당으로 내려갔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만두를 빚어먹으며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부산중화교회의 예배와 사역 
부산중화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은 부산에 거주하는 화교들과 한국인, 그리고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에서 온 선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국 대륙 출신의 근로자들이다. 근로자들의 경우 동료들의 입을 통해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오거나, 교회의 사역자와 성도들이 정기적으로 공단이나 기숙사를 직접 방문하며 복음을 전함으로서 교회에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어느 정도 양육을 받은 이들은 새신자반 리더, 심방대원, 성가대원, 예배 시 공중기도 등으로 섬기면서 교회의 모든 사역에 직접 참여하여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처음 등록을 하게 되면 우선 새신자반에서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교리와 성경공부를 하게 된다. 그릭 몇 개의 구역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번씩 돌아가며 전도사님과 중국인 근로자 형제들이 심방을 하고 함께 모여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 주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사역자가 전화로 또는 직접 방문하여 어려운 점 등을 상담하고 위로하며, 무엇보다도 이들이 말씀으로 굳건히 서 갈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현재 부산 중화교회에는 장혜관 목사를 비롯한 전도사, 간사, 자원봉사자 등 10명 정도의 사역자들이 팀사역으로 중국인들을 섬기고 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달려와 돕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지만, 역시 지속적으로 함께 일할 동역자가 부족하다. 특히 교회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차량 운전으로 섬길 봉사자가 시급하다.

 

매일 첫째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이들을 위한 세례식이 있고, 오후 예배 시간에는 성경 아송대회 및 찬양 대회 등 특별 순서를 갖고 있는데, 이 때는 좋은 상품도 준비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일 점심 식사 후에는 한글교실을 운영해 한국어를 모르는 중국인들에게 도우을 주고 있고, 이∙미용 봉사도 이뤄지고 있다. 1년에 두 번 야외예배와 체육대회를 열고 있으며, 설날과 추석에는 2박 3일의 집회를 통해 집중적으로 말씀을 듣고 배우며 더불어 관광지를 방문하여 쉼과 은혜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더욱 감사한 것은 부산중화교회를 다니다가 중국으로 귀국한 이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양육과 관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수시로 전화를 통해 심방하고, 1년에 두 번 정도는 사역자들이 직접 중국에 들어가 그들을 방문하여 격려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중국 전체에 제자 배가운동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사역들을 통해 중국 현지에 지도자가 양성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복음의 통로가 되는 믿음의 형제들 
성가대에서 전심으로 찬양을 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한 형제(29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서 온 이 형제는, 올해로 한국 생활한 지 3년 되었고 부산의 한 염색공장에 다니고 있다. 이 공장에는 이 형제 외에 5명의 중국인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산업연수생으로 합법적으로 한국에 들어왔고, 그리스도인 사장이 잘 대해주어서 임금체불등의 불이익은 당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렇지만 많으 중국인 근로자들이 고용주와의 사이에서 겪는 어려운 일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형제는 작년에 우연히 교회에 왔다가 받은 성경책을 읽으면서 점차 말씀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한다. 성격이 소심한 편이라 평소에 근심과 걱정이 많았는데,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성경 말씀대로 행하니 마음이 평안하단다. 형제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계속 복음을 전했고, 통화할 때마다 “예수 사라하심” 찬송을 불러드렸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큰 병에 걸리게 되어 형제와 중화교회 사역자들이 중국까지 찾아가서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였다. 놀랍게도 그들이 돌아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의 병이 깨끗이 치료되었고, 이 일로 어머니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형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도 돈을 벌 목적으로 왔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돈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성숙된 소망을 말했다. 연수 기간이 끝나는 7월에 중국으로 돌아가는데, 가서도 계속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조금씩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도 그들이 당하는 인권 유린과 인종 차별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자주 들려온다. 특히 올해는 월드컵 축구대회와 부산 아시안게임을 기회로 우리나라에 입국하는 외국인이 크게 늘어나, 현재 26만 1천명 수준인 불법체류자가 연말엔 35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장소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외구인들을 쉽게 만나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부자와 지식인들, 권력 있는 자들에게 찾아가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이 세상에서 소망 없는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가셨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타국에 와 있는 나그네들의 마음은 가난하다. 그들에게 누군가가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그대로 열릴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각종 이단들도 외로운 그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우리가 소외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무관심할 때 그들은 아무 의심도 없이 거짓으로부터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우리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품으셨던 긍휼의 마음을 구할 때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부어주실 줄 믿는다. 언제까지 그들을 모른척하고 있을 것인가. 그러기엔 우리 안의 양심의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지는 않는지….  

 




변문희 | 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