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어신학은 《구원과 소요》를 기본 도서로 삼았다.1) 이 책을 쓴 류샤오펑(劉小楓)은 미학과 시학 그리고 철학을 넘나드는 인문학자이다. 필자는 소위 통섭(統攝, Consilience)의 학문을 시도하며 진리를 찾아 헤매는 중에 이 책을 쓴 학자인 그에게서 현대인의 모상을 발견한다. 497페이지 분량의 《구원과 소요》라는 책은 한마디로 동서양의 문화와 철학의 대화와 그에 대한 기록이다.
1. 한어신학이란?
한어신학(漢語神學, Sino-theology)이라는 용어는 1994년에 중국 본토 학자인 류샤오펑이 홍콩의 양시난(杨熙楠)과 함께 홍콩의 <도풍(道風)>이라는 잡지를 창간할 당시 ‘한어신학학술지(漢語神學學刊)’라는 부제를 달면서 사용되었다. ‘한어신학’이라고 할 때는 중국어로 진행되는 신학 연구를 총망라하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한어신학의 대표주자인 류샤오펑과 허광후(何光沪)가 한어신학으로 자신들의 신학을 표방할 때는 전통적인 중국 신학의 방법이었던 토착화 신학과 대별(大別)되는 의미로 쓴다. 토착화 신학이 신학의 중국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한어신학은 중국인의 현대적 삶의 자리에서 개별적으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직접 대면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2)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독교의 진리를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을 통해 만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진리의 주변에서 서성거리게 될 뿐이다.
2. 류샤오펑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류샤오펑은 초기에는 미학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다가 소설 속에서 신학을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서양 철학자들의 저술들을 연구하면서 파스칼을 만나 철학적 인류학에 눈을 떴다. 다시 말해 성경을 정독하면서 신학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철학적 신학(철학적으로 신적 존재를 추구하기 위한 신학적 방법론을 의미)을 시작한 인문주의 신학자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기 스스로 신학을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였다.
류샤오펑은 이 책의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자기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소개한다.
“쉘러는 나를 날카롭게 하였고, 하이데거는 나를 매료시켰으며, 셰스토프는 나를 감동시켰고, 비트겐슈타인은 나에게 명료함을 주었다.”3)
그는 이 책에서 절대자의 정신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비판한다. 그리하여 그의 ‘신학함’이란 가치의 현상학이요, 현상학적 신학의 형태로 발전시켜 나간다.
3. ‘소요’에 대하여 ‘소요’란 영어로 dallying인데 중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요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4) 소요는 세상의 사소한 일에 대한 고민을 일시적으로 없애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시간 속에서 약간의 여유와 위안을 찾으며, 소소하고 소박한 행복을 얻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시골로 소풍을 가고, 호수에서 보트를 타며, 친구들과 술에 취해 경박한 짓을 하는 등 이러한 과정에서 합리적 사고는 일시적으로 정지되고, 본능적인 행복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일찍이 장자는 도가 사상을 제창하면서 제일 먼저 다룬 주제가 ‘소요유(逍遙遊)’ 사상이다.5) 그 ‘소요유’란 속세를 초월하여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의 생활을 의미한다. 이런 경지에 이른 자를 지인(至人)이라 부르고, 또 인간을 초월한 인간이란 뜻으로 신인(神人)이라고 한다.
저자는 시인의 자살의 의미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하여 인간 정신의 궁극적 돌봄인 자유와 구원을 가정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념적 경로를 요약한다. 그래서 《구원과 소요》는 ‘구원과 자유’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별명은 ‘아는 자의 주인(master of men who know)’이다. 그는 물리학에서 윤리학, 정치학에서 생물학과 시학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학문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그가 이끈 모임의 이름이 ‘소요학파(Peripatetic school)’였다. 학생들을 교실에 모아놓고 책상에 앉힌 뒤 가르치는 대신 길가를 ‘소요’하며 토론식으로 진리를 탐구했기 때문이다.
4. 덩샤오핑은 경제적 개방을, 류샤오펑은 철학적 개방을
류샤오펑은 중국식 현대판 소요학파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동서양의 철학자들과 시인들 그리고 사상가들을 소개하면서 자기 문화에 대한 우월감을 드러내는 자문화중심주의 태도를 보인 한편, 자기 나라 철학의 위대성을 고집한 나머지 서로 경쟁적이고 대립적인 자세를 내려놓고 ‘철학적 개방’을 제언했다. 사실 알게 모르게 서양은 동양의 철학과 문화를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 또 세계의 중심으로서 중화민족의 정신을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는 중국 역시 서양 사상을 배척함으로 서로 대화가 부족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Transfer of Chinese Technology to Western Europe
Technology |
First known in China |
First known in Europe(A.D) |
Breast-strap harness |
ca. 400 B.C. |
6th C. |
발등자쇠 Foot stirup |
265.420 A.D. |
early 8th C. |
Harness |
483-520 A.D. |
ca. 800 |
크랭크축 |
220 BC-220 A.D. |
early 9th C. |
제지(paper) |
105 A.D. |
early 12th C. |
투석기 |
1004 A.D. |
1147 |
자기 나침반 |
1st C. |
(1170) 1180 |
선미 포스트 방향타 |
1st C.BC-1st C. |
1180 |
▲김유신(부산대학교 물리학 명예교수): ‘과학 혁명과 근대 과학의 탄생’. 특강 자료집. 3(부산: 시네바움아카데미. 2019. 8. 6).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중국의 과학기술이 결코 서양에 뒤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류샤오펑은 《구원과 소요》에서 서양의 철학이 대단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인류 역사에 공헌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중국 역사에서도 서양이 다룬 철학 사조를 보는 관점과 용어는 비록 달랐지만 이들을 모두 다 공유하며 발전시켜 왔음을 이 책을 통해 논증을 펼친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의 비교
철학 구분 |
동양(중국) |
서양 |
기원 |
고대 인도와 중국 문화 |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와 히브리문화 |
주안점 |
자연과 조화 |
개인주의와 합리적 사고 |
형이상학 |
삶의 신비적 차원들 |
물리적이고 경험적인 차원 |
윤리학 |
공동체 윤리 |
개인의 도덕적 차원과 자율성 |
방법론 |
명상적 성찰 |
이성적 논리적 성찰 |
그는 비교미학과 비교시학을 통하여 서양의 소설과 철학 속에서 그동안 모호했던 중국의 문제가 모두 서양과 관계 속에서 제기된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중국과 서양의 사상사를 통하여 한 사람 대 여러 사람의 개별적인 대화로 《구원과 소요》(탈출 혹은 초연함)을 서술하였다. 다시 말해 서양과 동양의 중국 사상을 이원론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절대자를 찾아가는 정신의 공통성을 발견하고 그동안의 동서양 간의 경쟁의식을 내려놓고 철학적 상생의 출발점을 제시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이성과 종교라는 두 바퀴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면 동양은 삶을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는 도덕적 형이상학을 추구한 것이다. 결국 동서양의 공통된 주제는 인간의 고뇌와 허무의 문제를 다루면서 비교시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구원과 소요》는 ‘구원과 도피’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양은 직접적·분석적·논리적·직선적으로 접근했다면 동양의 철학은 간접적·통합적·감성적·완곡적으로 접근을 한 셈이니 반대편에서는 도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 근대 역사에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을 제시하면서 경제적 개혁과 개방의 문을 열었다면 류샤오펑은 인문학, 즉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동원하여 유물사관에 서 있는 신중국 지식분자들에게 유신론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가치 추구를 하는 철학적 개방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5. 인생의 의미와 가치의 문제
그는 중국과 서구의 전통적인 가치를 재검토함으로 기독교적 가치관을 생각해 보도록 인도한다. 그리고 서양의 사상 저변에 있는 ‘사물 그 자체’에 대한 바른 이해는 중국 사상을 다시 이해하는 지름길임을 가르쳐 준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고민되는 것은 여전히 ‘의미’의 문제이다. 작가 창작의 기본 포인트는 의미 추구와 초월성에 대한 탐구이며, ‘삶의 무의미함’이 지닌 결점과 어두운 면을 제시하며, 인간에게는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동서양의 사상 중에 어느 하나를 더 의미 있다고 전제하기보다 서로 간의 의미의 진실성을 물어야 하며 어느 한쪽을 강요하지 말라고 한다.
결국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표현하고 풀어가는 과정에 두 가지 길이 있어 왔는데, 하나는 중국이 지향한 미학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서양이 지향한 신의 은총에 의지하는 신앙의 길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은 다른 종교와는 달리 지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 준다. 그 이유를 받아들이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고백해야 할 문제이다.6)
나가는 말
류샤오펑의 《구원과 소요》는 다른 말로 ‘구속과 초연’ 또는 ‘구원과 탈출’로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표현이다. 이 둘 속에 서양 종교철학 사상과 중국 종교철학 사상이 다 농축되어 있는 시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상학적 해석학이요, 굳이 신학이라고 표현한다면 현상학적 신학이며, 인문학적 신학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그의 책 제목을 ‘구원과 소요’보다는 ‘구원과 어슬렁거림’으로 번역하고 싶다. 인생을 창조하신 분이 인생과 역사와 우주를 해석하는 기본 책으로 성경을 주셨는데 그 특별 계시에서 출발하지 않는 모든 사상은 목표 잃는 여행자처럼 배회하고 방황하며 어슬렁거릴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인본주의 철학들은 구원의 문 주변에서 배회하고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다만 류샤오펑의 공헌이 있다면 유물주의 사관과 인본주의 철학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에 얽매인 중국인들에게 서양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기독교 문학을 통하여 어렴풋이나마 기독교 복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적 교량을 제시한 일이다. 그러나 이 책만으로는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너무나 먼 여정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진리의 저편을 건너가기 위해 징검다리의 돌 하나를 놓는 일에 일조했다고 감히 표현하는 바이다.
어거스틴이 세상의 철학 속에서 헤매고 방황하다가 로마서 11장을 읽고 주님께 항복하고 돌아와 쓴 《고백록》(Confessiones)에서 말했듯이7) “우리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하기까지 쉼이 없나이다(Our hearts are restless until they rest in you)”.
철학자 사울이 거듭난 이후 바울이 되어 했던 말처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4b~5) 아멘!
미주 1) 류샤오펑. 《구원과 소요》. (상해: 상해사범대출판사, 2011). 2) 오동일. ‘중국 한어신학연구’(서울: 장로회신학대학원. 장신논단: 49호), 193. 3) 류샤오펑. 상게서. 5. 4)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에는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거나 조급한 흔적이 눈곱만큼도 없다. ‘소(逍)’ 자는 소풍 간다는 뜻이고, ‘요(遙)’ 자는 멀리 간다는 뜻이며, ‘유(遊)’ 자는 노닌다는 뜻이다. 즉, ‘소요유’는 ‘멀리 소풍 가서 노는 이야기이다. 소요유는 묘하게도 글자 세 개가 모두 책받침 변(辶)으로 되어 있다. 책받침 변은 원래 ‘착(辵)’에서 온 글자인데, ‘착’이란 그 뜻이 ‘쉬엄쉬엄’ 갈 착’이다. 5) 《노자·장자》. 장기근·이석호 역(서울: 삼성출판사, 1982). 176. 6) 류샤오펑. 상게서. 9. 7) 어거스틴. 《고백록》. 김기찬 옮김(서울: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0). 31.
♣사진 출처 | 바이두 ♣김북경 선교사 | 고신대 선교목회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