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소설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책이 저의 관심을 끈 것은 소설 형식을 갖췄지만, 실화를 토대로 한 것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책 띠지에 적힌 “중국은 당신이 이 책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는 CNN의 언급도 저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여기서 중국이라 함은 ‘중국공산당’을 의미합니다. 중국공산당의 민낯이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소설류를 팩션(Fact + Fiction)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2017년 9월 5일, 50세의 휘트니 단(중국명, 段偉紅)이 베이징의 거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중국 사회에서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일상다반사이기는 합니다만, 휘트니는 무엇을 하던 인물이었을까요? 그녀가 최종적으로 하던 일은 25억 달러가 넘는 (공항복합)개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프로젝트 외에도 수십억 달러의 부동산 프로젝트를 손안에 쥐고 흔드는 막강한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휘트니 단이 이 책의 저자 데즈먼드 슘과 10년 넘는 세월 동안 부부로, 사업파트너로 함께했다는 것입니다(저자는 2002년에 휘트니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낳았고, 2015년 이혼할 때까지 13년간 중국에서 함께 사업을 했습니다). 그녀가 증발될 무렵에는 이미 이혼한 뒤였지만, 저자 슘이 해외에서 그들 사이에 난 아들을 양육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슘은 사방팔방으로 휘트니를 찾고자 노력했으나 (그녀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많았지만)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이 저자가 이 책을 쓰게 하는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책의 저자 데즈먼드 슘(1968년생)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중국 상하이 태생입니다. 글의 첫 부분에서 스스로 자신은 홍색(紅色)귀족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홍색귀족은 1949년 중국의 권력을 장악한 공산주의 엘리트 그룹 지도자 가문의 후손을 의미합니다. 홍색귀족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 행위에서 이미 그들(홍색귀족)에 대한 불만이 보입니다. 슘의 친가와 외가는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한 뒤 핍박받는 쪽(친가)과 그렇지 않은 쪽(외가)으로 나뉩니다. 아버지 쪽은 지주 집안이었고 해외에 친척이 있었다는 이유로 요주의 그룹이 됩니다. 다행히 어머니 쪽은 저자의 외할아버지가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애국적인 화교’가 되는 바람에 중국 본토에 남은 가족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저자는 10살이 되던 해 어머니와 함께 홍콩으로 갑니다. 그 후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재무와 회계를 공부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과 중국에서 몇 군데 직장을 거치던 중 중국에서 매우 특별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휘트니 단입니다. 슘은 거의 6년 동안 중국을 누비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렇게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여성 기업가는 만나 본 적이 없었다고 적습니다. “내가 휘트니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회의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녀가 한쪽 끝에 앉았고 나는 그 반대쪽 끝에 앉았다. 그녀의 말이 아주 빨라서 도중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가부장적인 중국 사회에서 한 여성이 회의실을 압도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내 경험상, 중국의 여성들은 언제나 과소평가되어 왔다. 나는 휘트니 단 회장처럼 여성이 비즈니스 전면에 나서서 주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얼마 후 슘과 휘트니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연인으로, 부부로 지내게 됩니다. 막강한 자본이 들어가는 그들의 사업은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슈퍼리치 대열에 들어섭니다. 휘트니의 장점은 인맥입니다. 관시(关系)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휘트니가 증발된 뒤 슘의 입장에서 답답하다 못해 울분을 품게 된 것은 휘트니 덕분에 중국공산당과 정부에서 승진된 사람들이 수십 명이나 되는데, 그녀가 곤경에 처하자 그들에게 그녀는 모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슘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그녀를 돌멩이 버리듯 버렸다고 합니다.
하루는 휘트니가 슘에게 누군가 중요한 분을 만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 그분의 신분을 밝히겠다고 합니다. 휘트니는 그 여인을 장이모라고 부릅니다. 휘트니는 모임이 끝난 뒤 그분은 원자바오(溫家寶)의 부인 장페이리(張培莉)라고 말해줍니다(원자바오가 총리가 되기 전입니다). 이 책에서는 장이모가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비즈니스와 정치권력의 끈적한 관계가 보입니다. 휘트니와 장이모는 비즈니스에서는 찰떡궁합입니다. 서로 돕는 사이에 서로의 금고가 채워집니다.
중국에서는 누가 무슨 짓을 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막강한 연줄이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합니다. 부정부패, 부정축재가 잠들 날이 없는 것이지요.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제일 먼저 들고나온 것이 부정부패 척결입니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부정부패’라 쓰고 ‘정적제거’라고 읽게 됩니다. 시진핑 전에도 그런 일이 많았겠지만, 시진핑 집권 후 더욱 강해진 듯합니다. 슘이 중국 내 공산당집권부의 변덕과 욕심에 환멸을 느끼고 휘트니에게 해외로 눈을 돌리도록 권유했지만, 휘트니는 여전히 중국에서 특별한 일을 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당의 상류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더 많은 홍색귀족을 지원하면서 우리의 길(휘트니와 슘)을 계속 가자고 설득합니다. 휘트니에게는 공산당 유력자들과 인맥이 큰 재산이기 때문입니다(앞부분에서 언급한 대로 휘트니가 위기 상황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이는 두 사람이 이혼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 사고가 많이 생깁니다. 결론은 ‘홍색무죄(紅色無罪), 무색유죄(無色有罪)’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만들어낸 단어들입니다. 홍색귀족들이 전세기를 타고 유럽 관광길에 오르고, 여인들은 최고가의 명품들을 싹쓸이하는 쇼핑 이야기도 있지만, 내게는 현실감이 없군요. 이렇게 살다가는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마음으로 바라봤습니다.
보시라이(薄熙來) 사건 기억나시나요? 2011년 11월 15일, 충칭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영국 사업가 닐 헤이우드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헤이우드에 대한 최초 보도는 ‘그가 술을 마신 뒤 급사했다’는 것이었고, 그의 시신은 부검 없이 화장됩니다. 헤이우드는 보시라이의 두 번째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오랜 사업 파트너였습니다. 충칭의 공안국장(경찰서장) 왕리쥔(王立軍)이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는 보시라이의 부인 구카이라이가 사업상 갈등으로 헤이우드를 독살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욍리쥔은 보시라이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그에게 이 사실을 말합니다. 보시라이는 이를 협박으로 받아들이고 왕리쥔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왕리쥔을 해임하고 오히려 그를 부패 혐의로 조사합니다. 왕리쥔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미국 영사관을 찾아가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는 단계까지 이릅니다.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이 문제가 거론됩니다. 그렇잖아도 보시라이가 정치적 걸림돌이었던 시진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관련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조사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합니다. 상무위원회 서열 이인자인 원자바오 총리가 시진핑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때 보시라이 측 인물들이 원 총리에게 이를 갈게 됩니다. 그리고 원 총리의 뒤를 캡니다. 캐면 나오게 되어 있지요. 장이모가 궁지에 몰리자 휘트니에게 모든 것을 감당(이라고 쓰고 뒤집어쓰라고 읽습니다)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휘트니는 사라집니다. 원자바오, 장이모라는 연줄이 끊어진 것이지요.
중국공산당, 참 비열하네요. 기업가들에게 돈을 벌도록 잠시 판을 깔아준 뒤,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몽땅 접수합니다. 휘트니의 엄청난 재산도 공산당 윗머리들이 나눠 가졌을 겁니다. 책 속에서는 휘트니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이야기는 안 나옵니다. 휘트니가 저자에게 입버릇처럼 한 말은 “관에서 내 시체를 꺼내 채찍질한다 해도 먼지 하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입니다. 저자는 다음 글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당이 개인의 이기적인 이익보다 집단을 우선시한다는 주장은, 중국공산당이 날조한 대표적인 거짓말이다. (…) 현실은, 혁명가 아들딸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당의 진짜 목적이다. 중국 경제와 정치권력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그들이야말로 중국 공산주의 체제의 최대 수혜자들이다.”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