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많은 외국인유학생이 있었다. “오 하나님!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시든지 아니면 죽음을 주십시오.”라고 외쳤던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낙스. 그는 1559년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칼뱅에게 신학을 배웠다. 외국인유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서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정치체계를 유럽 대륙보다 더 빨리 현실에서 구현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은 3년 동안 당대 최고의 선진학문을 배운 뒤에 본국이 아닌 체류국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주역인 폴 포트는 국비 장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을 가서, 1951년 프랑스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훗날 캄보디아를 통치할, 즉 크메르 루주의 이념적 토대를 프랑스에서 마련했으며, 여기서 배운 것으로 캄보디아에서 2백만 명을 학살한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여겨지는 이광요 수상은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도시국가로 변혁을 이루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민족적 고민이 있었다. 서구 열강보다 중국의 기술과 문화가 수천 년 동안 앞서 있었는데 작금의 현실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 원인은 부패에 있다고 진단하고 그는 청렴한 국가 시스템을 운영하는 법체계를 완성해서 운영하게 된다. 동일한 유학 시절의 생각과 학문이었지만 한 사람은 2백만 명을 죽이는 도구로, 다른 한 사람은 세계적 도시국가를 건설하는 데 사용했다. 두 명의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외국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은 모국에서 배웠던 기존의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지역에서 새롭게 배운 학문을 더해서, 자신의 새로운 가치체계와 이념을 창출하여 고국에서 새로운 이념과 가치체계를 실현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외국인유학생들은 유학 온 국가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성이 매우 높은데,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내려놓거나 변경하기도 한다. 외국인유학생들은 마음을 바꿀 태도를 준비하고 고국을 떠난다. 폴 포트나 이광요가 나올 수 있는 중요한 배경에는 고국을 떠나는 국경 이동 시의 변화와 새로움을 흡수하고자 하는 결단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국경을 넘었다.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역동성은 역사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즉 이런 변화에 대한 갈망과 열정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기 ‘쉬운 마음 밭’을 가지고 한국으로 오는 사람들인 것이다. 세계관이 변화되기 쉬운 외국인유학생이라면 우리는 이들에게 이러한 과정이 촉진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회심한 유학생들의 영적인 힘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고, 축적하게 하여, 발산하게 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외국인유학생 사역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선교적 차원에서 기독교의 미래를 바라볼 때도 기독교의 다음세대를 세워가는 부분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본고에서는 재한 외국인유학생들의 유입 추이와 양상의 변화 그리고 재한 외국인유학생 사역의 역사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두 번째는 재한 외국인유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세 번째는 MZ세대의 특징, 네 번째는 외국인유학생의 개인적인 필요들과 사역적 시사점, 다섯 번째는 재한 외국인유학생 사역의 현황, 여섯 번째는 외국인유학생(이주민)과 만나서 세워가는 단계에 대한 선행 연구들, 일곱 번째는 교회에서 외국인유학생 사역 세워가기, 여덟 번째는 결론과 미래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외국인유학생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한 영혼은 복음과 접촉해서 변화되고 성숙해져야 한다. 필자가 1998년부터 재한 외국인을 만나기 시작해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재한 외국인유학생 사역을 하며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재한 외국인유학생 유입 추이 양상의 변화와 유학생 사역의 역사 한국에서 재한 유학생 사역의 시초는 대전지역 카이스트와 연구단지에서 외국인유학생, 과학자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사역했던 SEM(Science Engineer Mission)선교회가 김춘호 교수(뉴욕주립대 명예총장)를 중심으로 1995년부터(최초 접촉은 1992년) 사역을 시작했다. 1997년 6월에는 서울대학교 외국인유학생 사역을 이상일 교수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ISF(International Student Fellowship) 사역이 있다. SEM과 ISF는 현재도 모범적으로 사역하고 있다. 2023년 3월 현재 ISF는 전국 36개 대학에서 1400여 명의 유학생들이 38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ICF(International Christian Student Fellowship)는 ISF에서 접촉한 학생들을 ICF로 인도해서 사역하는데 현재 ICF에는 100여 명의 외국인유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재한 외국인유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유입되는 시기와 사역은 2003년으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한국의 외국인 유입이 1988년 이후 시작된 뒤 1990년대는 조선족인 중국 동포들의 유입 시대를 지나 1997년부터 2003년에는 중국 한족 근로자 유입이 본격 진행됐다. 그러나 외국인인력도입제도가 산업연수생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제도의 변혁기에 중국인근로자들은 한국 입국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이로 인해 2003년부터 학생을 가장한 중국인 유입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중국인유학생 사역은 2003년 대구동신교회가 시초이며, 이형로 선교사에 의해 시작됐다. 그리고 이형로 선교사는 이후에 선교중국(김의원 이사장)을 조직해서 중국인유학생 사역이 각 교회에 세워지도록 동원했으며, 사랑의교회, 수영로교회, 온누리교회, 새문안교회 등이 적극 호응했다. 2006년부터 국내 중국인유학생 사역이 일어났다. 당시 위의 대형교회들은 연변과기대학에 후원을 하고 있었던 관계로 지도자를 요청했으며, 요청에 의해 지도자들이 입국했다. 연변과기대학 출신들인 온누리교회 염문홍 목사, 사랑의교회 유영준 목사, 소망교회 심향화 목사, 새문안교회 장마가 목사 등이 자리를 잡고 현재까지 사역하고 있다. 후에 CHISTA로 연합모임이 진행된다. 당시 중국 소득 수준의 증가로 인해 중국 유학생 유입의 추진이 이루어졌다면, 2003년 등장한 동방신기는 중국에서 인기를 크게 얻었다. 이로 인해 K-POP이 중국인유학생을 흡입하는 작용을 했다. 즉 동방신기를 보겠다는 소황제를 부양하는 6명(부모, 조부모, 외조부모)은 이들을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주게 된다.
하지만 중국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중국 위안화 국제화의 기회로 삼고 이를 적극 추진하게 된다. 또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2009년 이후 2010년부터는 중국 유학생의 목적지가 한국을 벗어나 유럽과 미국으로 변경되어 한국 유입은 감소하거나 정체하게 된다. 또한 2016년 7월 사드배치 사태도 중국 유학생의 감소와 정체의 중요 요인이 됐다. 그러다가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다른 나라에 비해 부모와 국가에 대체적으로 순종적인 중국인의 특성상, 또 코로나19 발생이 중국이라는 이유로 본국으로 귀국했으며, 유학을 오지 않게 됨으로 인해 중국 유학생의 규모는 2019년 12월 71,719명에서 2020년 9월에는 56,239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와 같이 중국 유학생이 답보 상태에 있는 동안 베트남 유학생의 증가는 비약적이었다. 코로나19 중에 중국은 15,480명이 전년과 비교해서 20% 인원이 감소했으나, 베트남은 1.1%인 단지 660명 감소하여 2020년 9월 기준으로 재한 베트남 유학생 규모가 56,879명으로 재한 중국 유학생 56,239명의 규모를 추월했다. 이는 코로나19 발생 전에 중국과 베트남 유학생 규모가 역전되는 시기를 필자는 2025년 전후로 예상했으나 코로나19가 그 시기를 급격하게 앞당겼다.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거 진출한 베트남에서는 관광통역, 가이드와 같이 베트남 내 한국어 수요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한편 베트남에서는 영어 사용자보다 한국어 사용자의 급여가 높다.
축구의 박항서 감독도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 사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대다수가 한국에서 일을 해서 학비를 충당하는 베트남 유학생들의 경우는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새문안교회에서 베트남유학생 사역을 하다가 현재는 호주 캔버라에서 베트남유학생 사역을 하고 있는 보뜩지 목사가 2015년 2월에 세종대학교에서 베트남유학생 사역을 시작했다. 세종대학교의 베트남 유학생 사역은 Phuoc Nguyen Vinh 전도사가 섬기다가 2023년 3월 말에 귀국했다. 현재는 50~60명이 모이고 있으며, 중간 지도자들은 안정적이며, Nguyen Anh Hau 전도사(고신 M. Div. 과정)가 섬기고 있다. 평택대학교(Nguyen Thi Thu Thao 목사, 총신대 박사과정), 명지대학교(Nguyen Khah Vinha 목사, 소망교회), 아주대학교, 경기대학교에서 10여 명씩 모이고 있다.
예를 들어 경기대학교의 경우를 보면 베트남 유학생 1500여 명 중에 10여 명이 모이는데 다른 학교도 유사하다. 그러므로 성실하게 사역한다면 사역의 확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 베트남 유학생 연합모임은 코로나19 전에는 SVF 모임으로 수련회 등을 개최했었다. 현재 재한 베트남 유학생 사역은 연륜이 있는 보뜩지 목사, 프억 전도사, 이사야 선교사 등이 해외로 이주해서 전환기에 있다. 몽골유학생 사역은 2007년 이해동 목사가 장충교회를 중심으로 선교단체인 YDMN 사역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건강하게 사역을 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MOSTA 사역(이사장 남창우)을 시작해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YDMN은 매주 금요일 리더 성경공부가 있고, 매주 토요일에 전체모임이 있다. 각종 성경공부 교재를 번역, 보급하고 있으며, 매일성경 큐티를 번역해서 몽골교회와 한국교회에 보급하고 있다. 성경공부 교재 중 최근에 제작해서 사용하고 있는 CAS(Christian Arts Studies)는 지성적 접근보다 감성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MZ세대를 위한 것이다.
러시아 작가인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이 중고등 교과서에 실려 있는 몽골은 이들의 작품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다. 기독교 세계관이 담긴 단편소설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을 읽거나,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들, 영화 《The Greatest Showman》의 OST ‘This is me’를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며 자신의 삶을 나눈다. MOSTA는 몽골 새신자 초청잔치 형태로 700명에서 1000명가량 모이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배우게 되는 것 중에서 최악의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자살이다. 필자가 주로 만나는 몽골 친구들은 민족성 자체가 긍정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자살이라는 것은 몽골에서는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많은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일등을 하는 몇 가지 중에 한 가지는 높은 자살율이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스트레스 속에서 자살을 배우게 된다. 사역 중에 이런 일이 있으면 참 힘들어진다. 잘 했으면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참 어렵다. 한국에서 배우는 안 좋은 것 두 번째는 동성연애다. 우리 기독교와 크게 대치되는 부분이 동성연애 차별금지법인데, 이런 사실은 현재 우리 사회에 동성연애가 크게 퍼져 있다는 현상의 표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몽골 친구들은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이며 감정이 충만해서 춤을 잘 추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한국에 와서 대학에 입학하고, 한국의 밤문화 중 하나인 클럽에 가 보니 몽골과는 차원이 다른 화려하고 멋진 모습에 빠져든다. 춤을 잘 추다 보니 주변에서도 잘한다 잘한다 하니 게이 바 등에 발을 들여놓다가 결국 동성연애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돈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는 자본주의 사상의 습득이다. 몽골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과 필요에 반응할 때 돈으로 계산하지 않지만 한국의 자본 중심의 문화를 흡수해서 변한다. 유학생들은 1년에서 2년 만 지나면 자신의 하루는 10만 원, 15만 원이라는 일당 계산이 머릿속에 자리잡게 된다. 또한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생각하는 세상 속에서 순수함이 돈독에 빠지게 된다.
MZ세대의 특징 우리가 외국인유학생 사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특징은 바로 MZ세대라는 점이다. 1990년대에는 1970년대에 출생한 외국인노동자들을 만났고, 2000년대에는 1980년대에 출생한 이주민 청년들을, 2010년대에는 1990년대생을, 2020년대에는 2000년대생 외국인유학생 이주민들을 한국에서 만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공통점은 필자가 당시에 만난 이주민들의 연령대가 ‘10대 후반과 20대 청년들’이었다는 점이다. 반추해 보면 젊은 시절의 청년들에게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다. 이러한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하느냐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청년의 시기에는 전공, 성공, 직장과 직업, 결혼과 가정에 관한 중요한 결정들이 이루어지고, 가치관이 형성되고, 구체화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이러한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데, 젊은 시절에는 이러한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기회가 있다. 즉 청년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적 에너지를 자신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를 위해 분출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젊은이들이 많은 부분에서 과거와는 또 다른,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적 흐름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 만해도 한국에 입국한 이주민들은 옷과 화장법에 따르는 외모를 보면 아, 이 친구는 한국 사람, 중국 사람, 몽골 사람이라는 것을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외모뿐 아니라 생각과 문화는 더더군다나 한국과는 상이했다. 한국교회는 이런 친구들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이주민을 환대했다.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는 재한 이주민들 사이에서 한 가지 문화가 형성됐다. 그것은 과거에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면 먼저 교회에 정착하고 관계망을 형성했던 것과 동일하게 재한 이주민들도 입국 초기에는 교회로 들어가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교회를 거쳐서 한국 사회에 들어가는 문화가 존재했었다. 속마음은 다른 마음과 다른 종교였지만 필요에 의해서 교회에 출석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필자가 대학교에 전도하러 들어가면 이 여자대학생이 한국 사람인지, 몽골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구분이 어려워졌다. 한류로 인해서 K-Beauty로 한국식 화장법을 받아들인 몽골과 중국 사람은 한국 사람과 구분이 어렵고, 옷도 K-Fashion, 즉 한국 스타일의 옷을 입기 때문에 구분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일례로 중국 유명배우 탕웨이가 처음 한국에 입국해서는 중국식 화장을 하기 위해 중국 사람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동반해서 중국식 화장을 했지만, 이제는 한국식 화장을 하고 다닌다. 거기다가 2020년대 들어서는 더욱 어려운 상황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010년경부터는 한국 대학교들이 외국인의 입학 절차에서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TOPIK 3급은 학부, 4급은 대학원생에게 요구하는 자격 요건으로 자리 잡았으며, 5급과 6급이 되면 장학금을 주는 기준이 됐다. 과거에는 TOPIK 5급과 6급의 실력으로 한국어를 구사하려면 한국에서 대체로 5년 이상 거주하면서 한국어를 습득하고, 한국 문화를 이해(동화가 아닌)해서 한국어를 구사하면 5급과 6급이 됐던 것이 2010년경에는 일반적인 상황이 됐다. 하지만 2023년에는 2004년생 20세의 청년이 한국어 6급을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먼저 취득하고 한국어학당에 입학하지 않고 한국 대학교를 곧바로 다니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 관해서 매우 중요한 점은 민족 정체성의 변화다. 단순히 언어 영역을 초월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와 2010년대 한국에 입국한 이주민들은 한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의식 속에는 자신의 민족 정체성은 몽골인,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 태어나서 한국에 입국한 청년 이주민들은 민족 정체성이 약해지고 세계인을 지향하는 세계인 정체성을 이미 장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생각하는 것까지 세계화와 한국화가 이루어져서 입국하는 것이다. 즉 외국에서 입국한 이주민 청년들이 한국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한국 청년이나 몽골 청년이나 중국 청년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유사한 성향들을 띤다는 것이 우리 사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현상을 매우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과거에는 TV나 영화를 통해서 ‘람보’의 공통된 할리우드 문화를 소유했다면 이제는 넷플릭스, 페이스북, 인스타, 유튜브를 통해서 뽀로로와 오징어게임, 기생충, BTS로 전 세계가 공통의 문화를 소유하는 것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메리칸드림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코리안드림이 더욱 증가되고 코리안드림이 K-POP과 K-DRAMA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르렀다. 즉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서 최근 가장 트렌디한 문화로 주목받으면서 사역의 환경은 크게 변화됐다.
또한 떡볶이와 김밥은 이상하다면서 먹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외국인들이 그 매운 떡볶이를 좋아하게 된 시대다. 과거 몽골에서 한국은 3류로 인식됐다. 중국에서도 동일하게 한국은 미국과 일본과 유럽 다음이었다. 그러나 이제 K-Contents 현상으로 인한 한국 소프트파워가 향상됨으로 예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즉 한국 청년들이나 이주민 청년들이 MZ세대 생활양식이 공통점을 띄며 공유되는 부분이 매우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사역에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고 고민한다. 필자는 런닝맨 게임을 중국 칭다오 올림픽요트경기장 앞 광장에서 저와 함께 간 한국 단기청년선교 팀원들과 중국 대학생들과 함께했는데 지나가던 흑인 어린아이와 중국인들이 “I KNOW 런닝맨”이라고 말하며 박수를 치며 환호를 받던 기억이 있다.
홍대는 최근에 외국인사역자라면 꼭 가 보아야 하는 곳이다. 밤 12시가 지나야 홍대의 불야성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야밤의 홍대는 외국인들이 한국인보다 더 많아서 한국인들이 위축될 정도다. 지난 카타르월드컵 오프닝에서 BTS 정국이 하이라이트 시간에 주제가를 불렀다. 그러한 힘은 홍대 클럽문화에서 표출되고 저변이 되며, 또한 한국의 클럽 밤 문화를 보려고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의 홍대로 모여 든다. 여기서도 우리는 젊은 감성에 복음의 그릇을 바꾸어서 진리는 동일하게 전도해야 한다. 해외 단기선교를 가는 것처럼 홍대 외국인 전도여행을 가야 한다. 외국인을 위한 예배와 교회가 홍대에 세워져야 한다. 영화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의 감성을 알고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거기에 알맞게 옷을 입혀서 명작들을 만들어낸다. 즉 MZ세대의 특징들이 존재하는데 이런 MEGA TREND 속에서 MZ세대들이 한국과 전 세계 곳곳에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났다고 한탄하고 탄식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는 MZ세대들을 잘 이해하고 우리가 낮아져서 MZ세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받아들여서 이들의 세계관 속에서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복음을 수용할 수 있는 씨앗(칼뱅이 이야기한 마음에 남겨진 종교의 씨앗)이 무엇인가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매개로 해서 나아가야 한다. MZ세대의 세계관 속에서 이들에게 남겨져 있는 접근가능한 복음의 씨앗은 쉽게는 4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진실한 공동체에 자신이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욕구가 있다. 두 번째는 꿈과 비전이라는 것이 있다. 세 번째는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도전정신의 분출 욕구가 있다. 네 번째는 건강한 습관을 장착하고 싶은 욕구이다. 아무리 MZ세대들은 복음에서 멀어지고 전도가 안 되며, 편리함만 추구하고,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민족주의는 약화되고, 미디어 속에서 나타나는 팬덤 문화가 기존의 권위를 대체하는 특성이 존재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어려운 현실이 주어졌다고 슬퍼만 할 수는 없다. 현실은 한국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닌 도시화하고 세계화하는 현상 속에서 범세계적인 청년들에게서 공통적인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반대로 MZ세대 전 세계 청년들에게는 공통적인 부분이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특징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 공통 부분 속에서 각자 주어진 환경 가운데서 복음의 씨앗을 찾고, 그 씨앗을 우리 가슴에 품고 우리 모두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MZ 청년들을 진리로 배양해 큰 나무를 이루며 그것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될 것을 소망한다.
재한 외국인유학생의 개인적인 필요들과 사역적 시사점 현재 재한 외국인유학생들의 일반적인 필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수업을 듣기 위한 한국어의 필요와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필요가 있다. 둘째, 학업을 배우기 위한 전공적 지식습득의 필요가 있다. 셋째, 정서적인 외로움에 대한 결핍이 존재한다. 넷째, 재정적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한국 문화 습득과 한국 관광을 위한 필요가 있다. 물론 이외에도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영적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앞의 이러한 5가지의 대표적인 중요한 필요들 중에서 현재 재한 외국인유학생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으로서 필요들과 긍정적인 필요들을 나누어서 보고자 한다. 먼저 재한 외국인유학생들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재정적 필요다. 재한 외국인유학생들의 재정적 조달은 장학생(한국 정부, 출신 국가 정부, 교환학생, 기타 장학생), 자신이 벌어서 공부하는 학생, 부모나 친지가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재한 외국인유학생 중에서 장학생은 매우 적은 경우이고, 부모나 친지가 재정을 지원하는 경우이거나 부분적으로 부모나 친지가 부담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출신의 경우는 자신이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국가의 소득 수준에 따라 상이) 학비를 충당한다. 그러하기에 보통의 경우는 학생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실토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몽골인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제일 어려워지는 산업은 이사업계라는 말이 있다. 이동하는 것을 선호하는 유목 민족인 몽골인들은 이사업계에서 일을 많이 하고,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많이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집중된 이사는 하루 일당이 15만 원에서 20만 원가량이기 때문에 하루를 일하면 일주일을 살아가는 용돈을 벌 수 있기에 일요일에 교회 나오기가 어렵다.
두 번째,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 오기 어렵다. 주말에는 주중에 밀린 숙제나 리포트를 작성하고, 스터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 교회에 나오기가 어렵다. 그러하기에 좋은 학교일수록 일요일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고, 서울대 학생들 중에 교회에 다니는 학생은 평균치보다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
세 번째, 주말에는 놀러 다녀야 하기에 교회 오기가 어렵다. 한국 문화를 배우고 한국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고, 여행하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젊은 시기의 유학생들이기에 주말에는 여행하기를 선호한다. 또한 외국인유학생들은 대체로 한류 드라마, K-POP에 익숙하고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보기를 원한다. 유학생들이 한류 드라마 촬영장소들(남이섬, 남산타워 등)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즉 주말에는 아르바이트와 공부, 여행을 하기에 교회 오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교회에 오면 충족되는 것들도 있다. 정서적인 외로움을 충족시킬 수 있다. 특별히 외국인유학생들이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수업을 듣다 보면, 모국어로 모국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이야기를 하고 싶고, 본국 음식을 먹고 싶어지는데, 즉 모국어 예배 모임이 있는 교회나 모임에 와서 모국 음식을 함께해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나 선교단체에서 전략적으로 외국인유학생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이를 접촉점으로 삼기도 한다.
ISF나 SEM이라는 사역단체는 한국어를 가르치며 전략적인 접촉점을 삼아서 사역하고 있다. 이러한 재한 유학생들의 필요를 교회나 사역단체들은 어떻게 충족하며, 아픔과 슬픔을 같이하고, 함께 기뻐할 것인가 하는 사역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는 동시에 접촉점이 된다. 여기서 출발해서 이들을 어떻게 복음화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어서 세례를 주고, 가르치고, 지키어 주님의 제자 삼을 것인가에 대한 거룩한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재한 외국인유학생 사역 현황 현재 재한 외국인유학생의 사역 상황은 국가별로는 중국유학생 사역이 약 40여 개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베트남 사역, 몽골 사역, 각 교회들의 영어 예배(EM)가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역 주체별로는 교회에서의 사역, 대학교수 연구실이나 대학교회에서 진행하는 유학생 사역으로 대표적인 단체는 CICA(Campus International Church Association, 영어예배)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3개 대학에서 영어 예배를 드렸고, 학생선교단체(CCC, IVF 등)에서 진행하는 유학생 사역, 전문 유학생선교단체(ISF, SEM, GSM[Global Student Movement, 건대 고성림 교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교회 사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외국인유학생(이주민)과 만나서 세워가는 단계의 선행 연구들 타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을 가볍게 만나서 친구를 맺는 부분,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디아스포라들이 신앙인이 되고 변화되는 과정과 관련해서 유학생과 일반적인 경우 등을 정리한 학자 및 사역자들의 연구와 주장들 중에서 3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로잔의 디아스포라분과 초창기 설립 4인방 중 한 명인 에녹 완(Enoch Wan)은 디아스포라 사역의 선교 단계를 3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1) 에녹 완은 특별히 유학생으로 한정하지 않고 이주민, 즉 디아스포라 사역의 전체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런 구분은 대략적으로 큰 부분만 제시한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1단계는 mission TO diaspora, 2단계는 mission THROUGH diaspora, 3단계는 mission BY/BEYOND diaspora이다. 1단계 mission TO diaspora 사역은 한국 내에서 발생하지만 이런 사역이 발전하고 성장하게 되면, 2단계 mission THROUGH diaspora로 나아간다. 2단계 본국에 귀국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몽골의 경우 한국에서 예수를 믿고 몽골로 귀국해서 교회를 개척한 숫자는 40여 개나 된다. 몽골 전체 교회가 570여 개로 파악되는데 이는 몽골 전체 교회 중에 7.0%이다.2) 3단계 mission BY/BEYOND diaspora는 제3국에 선교사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사역이다.
두 번째로는 ISF의 지문선 목사의 친밀한 관계 형성을 위한 4단계 접근법이다.3) 4단계 접근법에 따르면 1단계는 만남이다. 유학생 사역은 그리스도인과 친구로 만나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작한다. 2단계는 유학생 공동체 세우기이다. 유학생을 위한 정기모임에 많은 유학생이 오지 않더라도 소수의 유학생에게 집중하여 복음을 전하고 그 반응에 따라 성경공부 시간을 갖는다. 모임은 1:1이나 1:2로 구성하고 전인격적인 만남이 되도록 지원한다. 3단계는 리더십 세우기이다. 모임이 안정되고, 규모가 커지면 반드시 유학생 리더를 세워 리더십을 이양하도록 한다. 4단계는 현지 사역이다. 외국인유학생 사역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문창선 목사의 5단계 사역론이다.4) 5단계론도 유학생들만의 특정 지은 것은 아니고, 포괄적인 5단계 사역론이다. 1단계는 노방이든 지역 방문이든 접촉점을 가지고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모임을 갖는 단계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만남으로, Friendship에서 Gospel Presentation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2단계는 대상자와 교회 안에서 지속적인 만남을 갖는 점이 1단계 사역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와 교육이 중요하며, 부수적으로 상담, 친교, 구제 사역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2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복음 우선으로 사역이 진행되어야 하며, 이 단계에서는 discipleship이 가능하다. 3단계는 교회 안이든 바깥이든 이들이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모임을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단계이다. 4단계는 역파송의 단계이다. 선교의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재생산이며, 이주자선교에서도 강력히 요구된다. 국내로 모여든 이주자들이 전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선교의 재생산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이주자선교의 의미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5단계는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와 국내로 모여든 이주자들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디아스포라선교 시대에 세계로 흩어진 750만여 명의 한인 디아스포라와 2만 2천여 명의 한인선교사들이 국내 이주자들과 선교적 네트워크를 통해 사역한다면 대단히 효과적일 것이다. 이와 같이 에녹 완의 3단계, 지문선 목사의 4단계, 문창선 목사의 5단계론 모두 각자 사역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을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서 외국인유학생 사역 세워 가기 교회에서 외국인유학생 사역의 시작과 완성을 4가지 단계로 나누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사역의 키맨(KEY MAN)을 찾아서 팀 형성하기이다. 교회 내에서 외국인유학생 사역을 결정하였다면 기도 팀을 형성하고, 교회 예산 확보하기, 대상국가 선정하기, 언어결정하기, 현지선교사와 연결하기 등으로 전도하고 양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서 팀을 형성해야 한다. 팀을 형성할 때 사역 국가의 대학생 청년이나 대학생 청년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열린 마음의 한국 청년이나 선교사가 팀 안에서 동역하는 것이 좋다. 필자가 YDMN을 처음에 시작할 때 몽골선교사에게서 추천을 받은 이제 막 유학 온 7명과 4개월 동안 매주 성경공부를 하며 팀워크를 형성하고서 몽골에 KOICA를 다녀온 선교적 마인드를 가진 한국 학생들과 동역하며 몽골대학생 사역을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현지선교사에게 추천을 받든 어떻게 하든 해당 국가 유학생을 팀 안에 한 명 정도는 꼭 동역하며 팀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유학생 사역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처음에 해당 국가 젊은이들과 쉽게 소통 가능한 열정 있는 1명~3명이 잘 세워지면 사역은 희망이 보이고 결과도 매우 긍정적이다.
두 번째, 외국인유학생과 접촉해서 관계 형성하기이다(Connect & Relation). 관계 형성의 접근 방법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어학당전도(노방전도)이다. 외국인유학생들은 한국 대학생보다 잘 들어주고 한국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접촉점을 찾는 데 어렵지 않다. 학사 2학년 이상이나 석박사인 유학생들은 한국에 적응이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한국에 온 지 3개월 이전에 한국 적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접촉하기 쉽고, 열어 둔 마음을 아직 닫지 않았기 때문 복음을 전하기에 용이하다. 둘째, 소규모 전도초청 행사를 하면 된다. 보드게임도 있고, 해당 국가 음식 만들어 먹기, 한국 음식 체험하기, 개강파티 등 교회와 유학생들과 접촉점을 잘 찾아서 정기적으로 접촉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셋째는 관계전도이다. 친척과 친구들이 한국에 온 경우 자연스럽게 그 친구를 전도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 중에서 자신만의 접촉점을 찾고 관계형성을 할 수 있는 교회의 방법론을 찾아야 하고 이것은 지속적으로 연구 발전시켜야 한다.
세 번째, 공동체 세우기이다(Community). 처음에 교회 사역 팀들이 외국인유학생 개인들과 접촉점을 찾고 관계를 형성해서 공동체를 세우는 데 1년에서 3년은 필요하다. 그러면 석사학생은 졸업을 하게 되고, 교환학생은 돌아가게 되고, 어학당 학생은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1년에서 3년의 시간 중에 진학과 학업, 정서적 부분, 주거 부분, 관계적인 부분, 건강상의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때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기회다. 필자는 유학생들이 논문을 쓸 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고, 힘들 때 격려를 했으며, 논문이 통과되어 기쁨을 나눌 때 참 감사했다. 이때는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형성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청년 사역의 공통된 필요 중 하나는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지트가 매우 중요하다. 이 아지트가 공동체를 세워가는 데 전초기지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한 부속 건물이나 선교센터가 되어도 좋다. 가능하면 오는 데 거부감이 없는 장소이어야 한다. 필자는 카페를 아지트로 사용하다가 코로나19 시기에 폐업을 하고 현재는 햄버거하우스를 외대 앞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와서 공부도 하고 밥도 해 먹는다. 또한 공동체가 세워지면 수련회 등을 통해서 부흥회나 캠프로 영성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 이때는 모국어로 집회(찬양과 설교)가 이루어지면 바람직하다. 물론 언어를 초월할 수 있는 영성 있는 한국어 강사도 좋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볼 때 20명에서 30명가량으로 구성된 공동체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네 번째, 지도자들이 한국에 정착하기이다. 필자는 10년에서 15년간 만난 몽골 지도자 7가정이 한국에 남아서 현재 함께 다하나국제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사역의 핵심 자원이다. 7가정은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십일조 생활도 모범적으로 하고, (몽골이 개방적인 문화인데) 이혼한 가정 없이 잘 세워져 가고 있으며, 모범을 보이고 있다. 졸업한 리더들이 귀국하지 않고 한국에 정착할 때는 창업을 하거나 취업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를 다니고 졸업할 때보다 취직하고 정착할 때 몇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또한 필자가 섬기는 다하나국제교회는 2017년 1월 1일 한국외국어대학교(이문로) 앞에 개척할 때 5명의 어린이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23명이 됐다. 유학생인 이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 결혼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기도하며 함께 세워져 가는 은혜가 있다. 필자가 앞에서 제시한 ‘외국인유학생(이주민)과 만나서 세워 가는 단계의 선행 연구들’과 ‘교회에서 외국인유학생 사역 세워 가기’를 참고해서 각자 교회의 상황에 맞게 사역 계획을 수립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미래와 결론 재한 외국인유학생 사역은 20년(대구동신교회 중국유학생 사역)이나 길게는 30년(SEM)의 시간이 필요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중국유학생 사역은 2003년에서 2020년까지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나마 한국교회의 지원과 선교적 마인드 그리고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한국인선교사들이 중국의 지하신학교에서 양성한 중국 청년(18세, 19세의 시골 형제자매들을 1년~3년 동안 합숙으로 신앙훈련)들이 후에 한국에 중국유학생 중간 리더와 리더그룹을 형성하며 밀려오는 중국유학생을 품고서 사역했다. 대구동신교회에는 한국에 정착한 중국인가정 20가정이 건강하게 존재하며 새로운 중국유학생들을 전도하고 주변 중국유학생교회들을 세워 가고 있다. 또한 몽골유학생들도 한국인 몽골선교사들이 몽골에서 세운 대학교(울란바토르대학, 후레대학, MIU대학)에서 복음으로 열린 접촉점들이 있었고, 리더들이 존재했기에 사역에 중요한 기점이 됐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한참 중국유학생들이 몰려올 때처럼 밀려오는 베트남유학생들을 전도하고 양육하고 지원하고 후원하지 못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의 경우는 더욱 참담하다. 2003년에 외국인유학생 9,705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 656,380명에서 1.5% 비율이었으나, 2022년 9월에는 외국인유학생이 206,341명으로 총 체류 외국인(2,172,278명)의 9.5%를 차지하게 된다.
국내 외국인유학생은 현재 20만 명이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 다가올 미래에는 30만 명, 4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인데 젊은 외국인유학생들이 한국에서 자살하거나 나쁜 것들을 배우게 할 것인가? 아니면 제2의 존 낙스로, 이광요로 세워갈 것인가? 다니엘과 같이 체류국인 한국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도록 할 것인가? 현실은 자칫 잘못하면 한국에 온 20만 명, 30만 명, 40만 명의 영혼들을 유실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주님이 주신 기회를 잘 살려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가 이를 함께 세워 가기를 소망한다
미주 1) Enoch Wan, “Diaspora missiology: Theory, Methology, and Practice” (Institute of Diaspora Studies, 2011), p.6. 2) 이해동, “귀국자몽골디아스포라들의 본국교회개척”, (Korean Journal of Frontier Missions, 2014년 7월호). 3) 지문선, “친밀한 관계 형성을 위한 4단계 접근법”, (목회와 신학, 2013년 4월호, 두란노), p.65. 4) 문창선, “이주자 사역 가이드라인”, (이주자 사역을 위한 가이드 제시, 국제이주자선교포럼, 2011), pp.9-10.
사진 설명 | 홍익대학교 거리 버스킹과 전도(2022.11/2023.3) 이해동 목사 | 다하나국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