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오늘날은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한 난민, 많은 수의 구직 희망자들, 해외 유학, 국제 결혼 등의 다양한 원인으로 새로운 나라와 문화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평론가인 제이슨 드팔은 “현대의 삶에 있어서 글로벌 이주만큼 도처에서 발생하면서 동시에 간과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글로벌 이주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재편하는 창조적 파괴를 견인한다”라고 했다.1)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민족 사람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2)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복음을 전해야 할 미전도종족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곳에서 모든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우리나라 안에 들어와 사는 다른 종족의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이것을 ‘종족 무지(people blindness)’라고 하였다.3)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다가와 있는 다민족에 대해 선교적인 기회임을 인식하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선교 방안과 전략을 짜야 한다.
다민족 사역은 선교의 단편만을 고집했던 전통적인 방법이나 전략들이 지구촌의 대이동(혹은 이주)으로 인해 전통적 선교방법인 속지적 중심의 사역에서 속인적 중심의 사역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선교의 3시대인 미전도종족 사역의 붐으로 도시의 사역을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고, 오직 사역만을 진정한 선교라고 하는 편견 또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주민들을 위한 올바른 선교전략을 세우는 것은 우리나라에 입국한 이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넘어 궁극적으로 다민족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인 미전도종족의 복음화를 위한 일이다. 이에 다민족 사역에 대한 지역교회의 역할이 더 전문적이고 실제적이 되어야 한다. 다민족 사역에 대한 선교적 고찰을 한 뒤 지역교회의 역할과 전략에 대해 기술하고자 한다.
다민족 사역에 대한 선교적 고찰 성경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구속과 통치 회복을 위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라고 부르시는 경우가 많다. 창세기 1:28에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이라고 볼 수 있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프로젝트는 하나님의 뜻을 인류가 철저히 거부함으로 인해 온 인류가 지역으로 흩어지는 비자발적 분산을 하게 되었지만.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이주하게 함으로 흩어진 열방을 향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셨다. 창세기 37장에서는 요셉도 타의에 의해 애굽으로 이동하였지만 그곳에서 다른 민족들을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올라감으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 가운데 있음을 보여주었다.
에스더는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갔지만 왕후에 올라가는 위대한 기적을 이루었고, 유대인들을 말살하려는 하만의 계획을 절대 죽음을 각오한 순교신앙으로 악한 자들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해내는 위대한 역사를 창출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잡혀 가 포로로 살았지만 이방 땅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디아스포라로서 준비되어 마침내 고향인 이스라엘로 돌아가 자신의 동족이 하나님 앞에서 사역을 감당하게 하였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 가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고,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백성에게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이스라엘에 새로운 성전이 복원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유수 기간의 장기화로 인해 비탄에 빠져 있던 백성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고대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도록 해주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왕을 섬기는 관리로서 교육을 받고 왕을 섬겼지만, 자신들의 절대 신앙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위해 목숨 걸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열방에 드러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탄생하기 수 세기 전에 유대인의 흩어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심어져 교회가 탄생하였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은 천하 각국의 경건한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었다. 그들은 각기 난 곳 방언을 사용하는 여러 지방과 나라에서 온 종족집단으로서 자신들의 방언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예수를 믿은 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디아스포라와 다민족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선교전략이었다.4) 하나님은 다민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복음으로 도전을 하게 한 것이다. 초대 기독교가 왕성하게 확장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 디아스포라이다.5) 초창기의 기독교 개종자와 선교사들은 모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다. 사도행전 2:5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라고 했다. 이들이 예루살렘교회와 초대교회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한 뒤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지만 그곳에서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사도행전 11:19에 보면 “그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라고 하였다.
역사적으로도 대규모 이주는 본래 식민 국가였던 아프리카 나라들이 이주를 하면서 시작되었고, 청교도들의 미국과 캐나다 이주, 최근에는 중동과 아시아지역의 분쟁지역에서 탈출한 난민들, 혹은 유학, 노동, 결혼 등의 이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민족 간의 이주에는 다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계획이 있다.
다민족 사역 활성화를 위한 지역교회 역할 한국교회는 새로운 이주민들을 위한 선교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 국내 다민족선교는 이주해온 다양한 인종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 열매를 통해서 그들이 가서 자기 민족을 복음화할 수 있는 귀한 전략이다. 특별히 이주민들 가운데는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인 제한이 심하여 우리가 직접 복음을 들고 가지 못하는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국내 지역교회들은 국내 다민족 사역보다는 해외의 타문화 사역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해외 타문화권 사역과 더불어 다민족선교는 교회가 새로운 관점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선교사들이 국내로 철수한 이후에 현장 복귀가 더디어지고, 선교 사역들이 중단되는 일을 겪으면서 자국 내에서 다민족 대상 사역으로 전환하는 예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다민족 사역을 할 일꾼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게 해주시고, 국내 다민족을 향한 선교적인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다민족 사역의 활성화는 지역교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비례한다. 지역교회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을 선교 대상자로 보고, 그들을 향한 선교적 소명을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주민들을 품을 수 있도록 보내주신 이들을 위한 다민족선교의 활성화를 위해 범교단적으로 힘을 기울여야 한다.
▶다민족 사역에 대한 소명과 사명을 가져야 한다 국내 다민족 사역은 특정한 사역자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소명임을 인식하고,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가 머무는 곳에서 선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가슴 벅찬 일이다. 오늘날 세계선교는 모든 곳에서 선교를 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시선은 늘 자신이 서 있는 곳과 동시에 땅 끝을 향하여 관심을 가지며, 우리와 함께 사는 다민족에 대한 사명을 인지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자국민들뿐만 아니라 다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디아스포라 다민족은 하나님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이들을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을 구원하라는 예수님의 대위임령의 기회를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다민족 사역은 시대적 명령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다민족 사역을 위해 지역교회가 가지고 있는 영적, 재정적 자원과 자산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복음화 사명을 완수할 수 없다. 디아스포라 다민족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외면한 것과 같다. 디아스포라 다민족 사역은 오늘 한국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감당해야 하는 필수적인 사명이다.
▶다민족 사역에 대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정착한 이주민들을 선교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감격스러운 이유는 이들이 그동안 정치적, 지정학적, 문화적, 언어적 장벽들로 인해 선교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던 민족들이기 때문이다. 접근조차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왔다는 것은 너무도 큰 기회인 것이다. 특히 이주민들의 특징은 자국이 아닌 다른 문화권에서는 타종교에 대한 장벽이 낮아지기 때문에 복음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섬김의 자세로 다가가서 환대하고, 진심을 담아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나오도록 교회는 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온 이주민들의 경우 한국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이나 차별 등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교회가 먼저 그들에게 심적인 거리를 좁히고, 문턱을 낮추며 관계 형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스포츠나 취미 활동 등을 통해 다민족과 접촉할 수 있는 관계 형성, 다민족 사람들이 교회 안에 정착할 수 있는 한국어 교육이나 활동을 통해서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일, 다민족 사람들이 공동체로 모여 사역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는 일,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 등 적극 지원해야 한다.
▶다민족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 이제는 선교 영역이 속지적 영역에서 속인적 영역으로 바뀌었다. 지역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중심을 두는 것이다. 민족과 종족들이 있는 곳은 모두 다 선교현장이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지리적인 확장이 아니라 열방의 민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화를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교회들이 다민족 사역에 대한 교육과 세미나를 통해서 성도들의 인식과 공감을 높이고, 교회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다민족을 위한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교회가 국내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경제적인 부담도 줄이면서도 모든 교인들이 실제적인 선교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이제 한국교회에는 은퇴선교사들이나 비자발적 귀국 등으로 인해 해외선교에 오랜 경험이 있는 사역자들이 많다. 이들을 국내 다민족을 위한 선교사로 재파송한다면 다민족 사역이 훨씬 다양하게 펼쳐 질 수 있을 것이며, 오랫동안 활동한 GMS이주민네트워크와 협업하여 유학이나 직업 등을 위해 장기간 거주하는 다민족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여 교회에 정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맺음말 다민족 사역은 이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넘어 궁극적으로 그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나라에 있는 미전도종족의 복음화를 위한 세계복음화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다민족선교에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일은 한국교회의 올바른 자세와 태도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가가지 못하는 민족들을 우리에게 다가오게 하셨다. 폴 필리디스(Paul Filidis)는 “전 세계적인 이주 현상은 선교의 다이내믹한 기회들”이라고 말했다.6) 이 선교적인 기회를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않고,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다민족선교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문화사회와 다민족에 대한 시각과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책과 전략을 개발하고, 그 실천을 위해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교회가 다민족선교에 도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 땅에서 사는 다민족에 대한 선교는 선택이 아닌 한국교회가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교단 내의 다민족 사역자들을 격려하고 파송하고, 지원하는 일, 교회가 함께 마음을 모아서 다민족선교를 하는 일은 매우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이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이 기회들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민족선교에 대한 호기를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적극 다가감으로써 예수님의 남은 과업 완수를 이루어내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미주 1) 뉴욕타임즈, 2010. 6. 27. 2) GMS 본부가 있는 화성시 발안도 이미 외국인의 도시라 불릴 정도로 변했다. 선교훈련 기간 중 일주일에 한 번씩 시행하는 전도훈련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우리 주변에 다민족 사람들이 이미 다가와 있다. 3) 종족 무지는 자신의 종족에게만 관심을 가지면서 다른 민족들에게 무관심한 경우를 말한다. 4) 사도행전 2장. 5) 1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18만 명, 소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도 18만 명, 로마에는 거의 6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았다. 6) 필리디스(1991, 8월), 전 세계적인 이주: 현상과 기회. 세계 기독교 소식, 4(2), 1-3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전철영 선교사 | GMS 선교사무총장, Dr. Missiology(Grace Theological Seminary, IN. U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