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3  통권 249호     필자 : 사무엘
[선교현장 이야기]
중국과 한족을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드리는 답변

주 안에서 사랑하는 동료 선후배 선생님, 한족을 향한 선생님의 사랑과 그 땅을 위한 희생적인 헌신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저의 답변을 드립니다.

먼저, 천사백만의 중국 H성에 믿는 개신교인 수가 고작 사만 명이라는 믿기 힘든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럼 실제로 중국 개신교인의 숫자는 중국 정부가 최소한으로 축소 발표한 개신교의 숫자에도 미치지 못하는가?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요지는, 미전도종족 한 영혼의 가치가 한족의 한 영혼보다 더 소중하다거나 혹은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미전도종족을 선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모두가 주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구원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기에 결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럼 구원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 여전히 한국에도 많이 있는데, 더군다나 지금 개신교인의 숫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내 민족 내 혈육을 전도하는 일에 힘써야 할 판에 굳이 한국교회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타민족선교를 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생님, 선교는 어느 민족을 더 사랑하고 더 소중하게 여기느냐 하는 선교사 개인의 감정과 경험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소명이며, 지옥에 갈 영혼을 천국에 갈 백성으로 만드는 그 이상의 비전이며, 어느 민족에게 마음이 사로잡혔느냐의 선택 사항도 아니고, 그 민족 100% 전도의 가능성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어떤 민족도 예외 없이 모든 민족이 반드시 주께로 나아오는 요한계시록 7장의 이미 성취된 비전의 성취를 위한 거룩한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적 관점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증인들이며, 열두 사도가 살아서 목회했고, 나눔과 구제가 풍성했고, 심지어 첫 순교자가 나온 예루살렘교회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만 전도했으며, 마침내 핍박을 통해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 중 일부가 타민족선교를 시작하였을 때 안디옥 지방에 최초로 이방인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최초의 다민족 공동체 안디옥교회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지역민들에게서 받았지만, 여전히 안디옥지역의 전도에만 집중하는 지역교회로 존재하였을 때 성령이 직접 바나바와 바울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가라는 주님의 지상 대명령을 귀로 직접 들은 제자였음에도 베드로는 여전히 유대인교회가 있는 룻다와 욥바의 성도들만을 대상으로 사역하였고, 마침내 보자기 환상과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의 이끌림을 받고서야 비로소 이방인선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된 이 모든 사건은 주님의 지상 대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전도에서 선교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 로잔대회에서 대만 대표 Alain R. Haudenschild는 대만에 소수민족 방언그룹을 위해서는 약간의 선교사가 지금도 필요할 수는 있지만, 만다린어를 사용하는 주류 종족은 복음화율이 6.5%가 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선교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제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잔대회 이후로 더 많은 한국선교사들이 대만으로 갔고 그들 대부분이 만다린어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본웹진 2019년 2월호(통권 198호)의 기획글 대만은 선교지인가?에서 강대위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2016년 대만 타이베이(台北)에서 개최된 제9회 화푸대회(华福大会, 세계화인복음회의(世界华人福音会议))에 1400여 명의 전 세계 교계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각국 화인교회의 현황을 보고하는 것을 보면서 세계 화인교회들이 부흥하고 있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특히 화인교회들이 선교적 사명을 크게 강조하는 것을 볼 때 더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화푸대회의 진행과 발표하는 내용들이 선교학적으로 매우 균형이 있고, 현재의 선교적 주요 쟁점들이 많이 포함된 것을 보면서 이처럼 수준 높은 화인교회에 한국선교사들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였다.” (…) 이 조사를 주관한 주싼차이(朱三才) 목사는 대만을 부흥시키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만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또 대만의 모든 교회가 한마음으로 노력한 성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현재 대만에서 사역하는 한국인선교사는 120여 가정(혹은 Unit)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만다린어 사용의 교회개척 사역을 위해서는 더 이상의 선교사를 대만에 파송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 그리고 주 목사의 주장과 같이 만다린어를 사용하는 언어종족집단 이외의 사역을 위해서는 선교사가 필요할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대만교회가 자국민에 대한 열심을 품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대만교회는 이 같은 능력이 충분하기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상황과 중국의 상황이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내 56개 민족 중에 복음화율이 7% 이상이 되는 민족이 몇몇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한족입니다. 그러나 반면 12억 명이 넘은 한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이지만 결코 적은 수가 아닌 위구르티베트족은 여전히 미전도종족으로 남아 있습니다. 선교사는 선교를 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고, 전도는 그 민족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선교사들을 향해 전도는 자신들에게 맡기고 미전도종족을 향해 떠나 달라는 필리핀교회의 성명이 발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한국인선교사가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가 필리핀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WEC 창설자 C. T 스터디는 중국과 인도에서 그리고 노년에는 병약한 육체를 가지고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선교하다가 그곳에서 선교사의 삶을 마쳤습니다. 아내와 자녀를 잃고 상실감 속에 있었던토마스 선교사는 조선에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소식을 중국에서 듣고 사역지를 변경하여 미전도종족조선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모두가 해안가에 모여 선교할 때 내륙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카프만 부인이 쓴 《광야의 샘》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하는 중이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멍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빠져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나는 마침 또 나오려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과 자비가 많다고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다. 내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다. 공중으로 솟아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앗차!! 나는 깨달았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을 참으며 힘쓰면서 나와야 그 몸의 영양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날개가 나올 때 심하게 마찰하면서 날아오를 만큼 강건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교사님, 현재 태국선교는 대부분이 이미 복음화가 상당히 진행된 지역에서 소수민족을 중심으로 중복적이고 편중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에, 불교를 강력하게 숭상하는 주 종족인 타이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매우 적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슬람을 강력하게 믿는 말레이시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러한 불균형적인 선교는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통적인 현실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부분의 피선교지 민족과 국가의 교회들이 지금도 여전히 선교사를 의존하는 연약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데, 어떻게 한국교회와 중국의 한족교회는 아시아의 어떤 국가보다도 더 건강하게 자전, 자치, 자립을 이루고 세계선교의 대열에 합류하는 교회가 되었을까요? 우수한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수고와 양육이 있었다는 것 외에도 더 크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0세기 초, 중반 한국(1940-1942)과 중국(1949-1959)의 모든 선교사들이 강제로 추방되었을 때, 한국교회와 한족교회는 선교사 없이 그들이 남기고 간 말씀과 신앙의 본을 따라 고난과 고통 속에서 성장한 공통된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선교사들이 중국 땅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미숙하였지만 이미 충분히 (3천-5천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부유한 한국교회가 지금도 고난을 감내하는 한족교회보다 더 성숙하고 더 건강하고 더 자기 부인의 신앙을 살아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저는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한족교회를 사랑한다면, 바울과 같이 그들을 선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중국 내 혹은 중국 밖의 다른 미전도종족을 향해 떠나야 합니다. 그럴 때 한족교회는 진정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한 독립적인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선교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국 내에는 여전히 수많은 미전도종족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족선교는 완성되었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충분히 한국교회와 함께 세계선교의 동역자로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화교선교’가 아니라 선교화교입니다. 왜냐하면 화교교회에는 이미 많은 교회와 교단 그리고 신학교가 있습니다. 한국선교사보다 더 부유하고 한국선교사보다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사역자들이 있고 그리고 그들은 신학적으로도 상당히 앞서 있습니다.

이제 남은 한족의 전도는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족에 의해 계속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민족 전도는 세계선교와 함께 21세기 한족교회에 주어진 이 시대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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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독교 인구 현황에 대해서는 본웹진 2014년 10월호(통권 146호)의 기획 기독교 인구 수치로 본 중국교회의 현황과 과제를 참고하였습니다.






사진 설명 및 출처 | (맨 위) 지난 3월 25일 상하이 국제패션센터에서 상하이-윈난산해정문화흥향촌: 추슝이슈상하이전(沪滇山海情 文化兴乡村——楚雄彝绣上海发布) 행사가 열렸는데, 추슝지역의 수낭(绣娘)들이 행사장에서 이슈(彝绣: 이족자수) 솜씨를 선보이고 있다. 중국민족종교망(바이두)
사무엘 |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