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3  통권 239호     필자 : 박애양
[신조어로 보는 중국 사회]
打工人(노동자/근로자)

얼마 전 한 학생이 재미있는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중국인들이 즐겨 하는 잰말놀이(饶口令[ràokǒulìng]) 동영상이었는데 주제가 ‘打工人’이었다. 打工人이라는 말은 최근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말로 처음에는 임시로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다가 점차 출근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자조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어 이 말의 원래 의미에 대해 좀 더 살펴보았다.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打工人 설명을 보면 (에듀월드 표준중중한사전) “월급쟁이족. 셀러리맨족. 노동자족. 근로자족. 공돌이[공순이]족. [남에게 일을 해주면서 생계를 꾸려 가는 부류의 사람을 가리킴.]”1)이라고 나온다. 번역하면 ‘노동자’ 혹은 ‘근로자’가 되겠다. 중국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의 백과사전 바이커(百科)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이 말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정식적인 직원이 아닌 임시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삯을 받는 이들을 말했다. 점차 이런 이들이 많아지면서 일명 ‘打工族(알바족)’이라는 말이 정착되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농민, 기업 직원, 상인, 공무원 등과는 다르다. 보통 이들은 농촌 호적을 가진 내지 사람들로 도시에 와서 일을 하지만 농번기에는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다. 일반적으로 저학력 저소득에 속한다. 또 다른 설명으로 ‘打工’은 ‘일을 하는 것’을 가리키며 보통 임시적으로 생긴 일을 말한다. 打工人은 원래 신체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외지에서 온 품꾼들을 말한다. 현재는 농민공이나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종사자, IT업계 종사자 등 모두를 포함한 단어로 쓰인다.2) 어떤 직종에서 어떤 직위로 일을 하든 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을 통칭한다는 말인데 최근 중국에서 왜 이 말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일까? 학생이 보내온 동영상의 주요 내용에 간단한 해석을 붙이면 다음과 같다. 

 打工人 打工魂 打工都是人上人
 (근로자, 근로자의 정신, 일하는 사람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今天搬砖你不狠 明天地位就不够稳 
 (오늘 허드렛일하는 당신이 독하게 결심하지 않으면 내일 당신의 지위는 안정적이지 않다)
 今日住在城中村 明日住在三里屯 
 (오늘 사는 곳은 미개발 낙후지역, 내일 사는 곳은 베이징 중심지구)
 爱上班爱打工 加班加到要送终 
 (출근해서 일하는 걸 즐기고 죽을 때까지 초과 근무하라) 
 打工不能太轻松 轻松钱包就得空 
 (쉬운 일을 하면 지갑이 금방 얇아진다)
 不打工没出息 靠谁不如靠自己 
 (일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자신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라)
 今日城里不努力 明日回村掰苞米 
 (오늘 도시에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일 농촌에서 옥수수 알갱이나 털게 될 것이다)

학생 말로는 이 동영상이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힘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996(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6일 근무하는 것)으로 인해 삶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일을 해야 먹고사는 근로자들의 삶을 자조적으로 풍자하는 동영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동영상 내용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용 속에 농촌을 비하하고, 노동을 천시하며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듯한 내용이 읽혀 답답했다.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약육강식의 질서를 옹호하며 능력주의적인 사고와 철저한 계급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씁쓸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비단 중국만의 문제이겠는가! 우리나라도 드러나지 않은 인권 사각지대가 얼마나 많은가?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판이 우리나라에도 진행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능력이 없으면 가난한 것이 맞다고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반대로 능력 있는 엘리트는 연봉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추앙하고 동경하고 제2, 제3의 ‘그’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의 비현실적인 연봉 액수가 정말 정당한 것인지, 그런 엘리트가 진정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공론화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엘리트주의 사회, in 서울 대학, 레거시 미디어, 유명 브랜드…….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라는 단어가 친근해진 것이 특정 제품 이름에 엘리트가 붙여지면서부터일 듯싶다. 엘리트 교복, 엘리트 참고서, 엘리트 사전……. 엘리트로 무장한 학생들은 사회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 지금도 밤잠을 줄여가며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 사회는 소수의 엘리트가 국가를 지배하고 사회의 지도층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많이 배우고 능력이 있으니 남들보다 많이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위 엘리트가 된 이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엘리트주의적인 생각이다. 같은 의사들이라도 유명 대학 출신의 의사가 지방 대학 출신 의사를 폄훼하고 사법고시 출신 법률가들이 로스쿨 출신을 무시한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엘리트주의의 계급주의적 사고와 발언에 동의 혹은 수긍하는 것인지 이에 대한 반박이 없다. 이런 거대하고 후안무치한 엘리트 카르텔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인생을 좌우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런 엘리트 코스를 밟아 엘리트 계층으로 가도록(혹은 자격을 유지하도록) 적극 돕는다. 과정은 문제가 되지 않고 결과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답답하게 여길 뿐이다. 슬픈 현실이다. 

우리는 정말 노력하면 모두가 엘리트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든든한 사다리를 만들어 준다면 그들이 이 사회에 필요한 엘리트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부모의 직업과 학력, 재력이 자녀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 아이들이 서 있는 출발점이 다르다. 그런데도 경쟁에서 도태된 이들에게 너는 왜 더 노력하지 않았느냐, 왜 더 죽을 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느냐 물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왜 이런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일까? 언론은 왜 잠잠한가?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는 왜 목소리를 내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 교육계는 왜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기 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엘리트답지 않은 엘리트들 그리고 그들이 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슬픈 현실,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打工人이 부르는 노동요는 자조적인 읊조림이다. “일개미는 일만 해야 한다. 그것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사회가 발전했다고 하지만 강고한 세력은 오히려 더 강고해졌다는 생각에 루쉰(魯迅)의 《외침》을 다시 꺼내 본다. “救救孩子!!” 우리 교육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미래가 무척 걱정이다. 

미주            
1) 참고: https://zh.dict.naver.com/#/search?query
=%E6%89%93%E5%B7%A5%E6%97%8F
2) 참고: https://baike.baidu.com/item/
%E6%89%93%E5%B7%A5%E4%BA%BA/54050409






사진출처 | 바이두
박애양 | 중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