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3년 동안 있으면서 유치원, 초등학교, 주말 축구교실 등에서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약 2,000여 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 학부모들, 교사들, 교장, 원장, 축구 코치들, 축구협회 관계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사역하면서 취업비자로 있지 않고 학생비자로 있었다면 이렇게 많은 아이들과 다양한 계층의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직접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이 제가 만났던 모든 현지인들에게 흘러가게 하심을 믿습니다. 그렇게 씨를 뿌렸고, 꼭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통해 그 씨앗의 열매들을 거두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축구 수업을 하러 갈 때는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갑니다. 20-30분 정도 타고 가면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요?”라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선교사인데 직장인의 삶을 사는 것 같아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해보지 않은 직장생활을 중국에서 처음 하다 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취업비자를 받고, 일을 할 수 있고, 다양한 모습의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저도 모르게 직장생활에서 오는 피로와 관계 문제와 ‘직장생활하면서 언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양육을 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과 걱정들 그리고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가 아프시면서 모든 것이 한꺼번에 큰 짐으로 다가왔습니다. 급기야 ‘이럴 바에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잘 모시고, 자유롭게 사역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철저히 인간적인 저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저도 모르게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매일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 묵상은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에는 그냥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유치원 축구 수업을 하러 갈 때면 ‘하나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요?’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에게 “아들아! 내가 누구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예레미야 33장 2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그동안 제 삶에 베풀어 주셨던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나게 하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한 번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주관하시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자 나의 든든한 후원자요 동역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불평하고, 걱정하고, 힘들어했던 모든 것이 다 사라지면서 마음 가운데 평안이 찾아왔고 이렇게 사역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축구 코치로 회사에 다니면서 늘 믿음의 동역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도해왔는데 하나님이 A형제를 우리 회사에 축구 코치로 보내주셨습니다. A형제는 제가 섬겼던 선교훈련원의 제1기 졸업생이었습니다.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가 음악공부를 하다가 2019년 1월에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다니며 축구 코칭을 배우고 한 달 뒤 정식 코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A형제와 함께 매주 월요일 점심식사 후에 회사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첫 모임 때는 비가 와서 아무도 없는 곳을 찾다가 회사 창고에서 첫 기도모임을 가졌는데 회사에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동역자가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회사에서 축구 코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우선적으로 비자 문제의 해결과 사역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큰 계획은 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이 회사에 계속해서 흘러갈 수 있게 동역자인 A형제를 이곳에 세우기 위한 것임을 또한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2020년에 안식년을 위해 귀국을 결정했기 때문에 1년 동안 회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고, 안식년 후에 회사가 저를 다시 받아 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단 사장에게는 아내의 막내 출산을 위해 잠시 귀국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도 안식년을 결정하면서 ‘그 어려운 취업비자를 받아서 지금 한창 사역이 진행되고 있고, 팀장으로 승진도 하고 회사에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이 자리를 내려놓고 선교지를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을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저희에게 안식년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해주셨기에 모든 걸 다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때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취업비자도 하나님이 주셨고, 만약 하나님이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면 취업비자도 다시 해주실 것이고, 또 회사에서도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을 떠나기 전인 2019년 11월 초 저희 축구교실 코치 팀과 다른 축구 팀의 친선경기가 있었습니다. 경기 후에 사장이 함께 야식을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간이라 피곤하기도 하고 집에도 가고 싶었지만 제가 팀장이라 빠질 수 없었습니다. 다들 술을 마시고 저는 음료수를 마시며,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벽 1시 반이 되었습니다. 저는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야기가 계속되다가 사장과 정 코치(코치 총 담당)는 제가 성실하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며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 코치는 신앙이 있어서 책임감도 있고, 일을 정말 묵묵히 잘한다.”는 사장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다른 코치들에게 저를 본받아 열심히 해주기를 바란다는 당부도 이어졌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고, 눈을 뜬 채로 코치들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신앙인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란다. 내가 이들을 너무 사랑한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일이 힘들고 바쁘다 보니 회사에서 만나는 이들을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장은 나를 신앙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고 신앙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예수 믿는 사람임을 밝혔고, 주일은 교회 가야 하기 때문에 수업에서 빼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이 가장 바쁜 회사인데도 저를 배려해주었고 저 역시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잘 걸어가고 있는가?’ 고민하고 걱정할 때도 하나님은 저를 위로해주시고 새 힘을 주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회사에 셋째 출산을 위해 한국에 갔다 오겠다고 하였고, 회사는 어떻게든 같이 일을 하자고 저를 설득하며 더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신분과 상황을 솔직히 이야기할 수 없었기에 일단은 저만이라도 되도록 빨리 돌아오겠다고 하고 2020년 1월 16일 귀국하였습니다. 저희는 안식년으로 한국에 나오면서 많은 계획들을 세웠습니다. 셋째 출산 뒤 가족과 함께 쉼을 가지고, 선교사 재교육과 여러 가지 훈련을 받고 싶었지만 코로나19로 모든 계획이 취소되고 꼼짝할 수 없이 집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고, 참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답답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고, 저희가 한국에 나온 지 벌써 1년 7개월이 지났습니다. 안식년을 위해 귀국하면서 안식년이 끝날 때쯤이면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시 중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저는 회사의 취업비자를 다시 받을 수 있었지만 가족들의 비자는 아예 신청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 혼자라도 먼저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기도 중에 ‘가족 모두 들어갈 수 없으면 그것은 아니다’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중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만을 기도하며 기다리는 중에 상황은 더 어려워졌고 모두가 지쳐갔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제 안에 있는 많은 문제점을 보게 하셨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많은 제약과 셋째의 출산 뒤에도 선교지의 문이 막히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저 역시도 하나님과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밑바닥을 치며 힘들어하고 심지어 우울에 빠진 저를, 지금 모습 그대로 만나고 싶어 하셨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아이들이 다시 대면 수업이 가능해 학교에 다니면서 아내의 배려로 오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집 뒤에 있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산을 오르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1년 넘게 산을 다니면서 하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고, 힘들어 지쳐 펑펑 울며 걸어가는 저를 주님은 안아 주셨고, 다시 새 힘을 주셨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산에서 보내는 시간은 정말 따뜻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방언기도를 하며 산을 오르는데 “미안하다”라는 말만 계속해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미안하다”, 바로 하나님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 제 안에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시지? 내가 무엇이기에, 이런 나에게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분이 죄 많고 교만하고 이기적인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실까? 그동안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씀이라 내가 한 말은 아닌가? 사단의 음성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기도하는 중에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과 그동안 내 안에 숨겨왔던 모든 스트레스와 힘든 것들이 하나님의 따뜻한 그 한마디 말씀에 완전히 사라지고 위로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셨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사역지를 위해 기도하던 중 하나님은 저희에게 선교지로 다시 들어가는 것에 대해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때를 위해 미리 보내주신 A형제도 잘 적응하며 코치들 사이에서 신임을 받으며 모범적인 코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를 통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열매 맺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내려놓고 나니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동남아의 화교권지역을 알아보고 탐방을 가기 위해 지역 선교사님과 연락을 하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코로나19 상황이 또다시 심각해지면서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 그 땅과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보다 어디든지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컸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구하고 있을 때 2021년 5월 말에 제주도에 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실 1월 중 새벽기도 시간에 생각나게 하셨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인 것 같아 잊고 지내다가 다시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제주도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문득 2007년 미국 LA에서 DTS 훈련을 받고 간사로 섬길 때 중국에서 한국인선교사 부부가 훈련생으로 오셨는데 그분들이 지금 제주도에서 중국어문선교회 대표로 중국인선교를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로 내려가 14년 만에 선교사님 부부를 만났습니다.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이곳을 저희에게 예비해주셨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중국어문선교회와 협력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로 내려오는 과정들이 쉽지는 않았지만 파송교회와 담임목사님이 동의해주시고 적극 지원해주셨고, 가족과 주변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8월 9일 제주도로 이사하여 잘 정착하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제주에서 한 중국인교회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강의를 맡아 협력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이를 위해 오래전에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준비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꿈꾸는교회에서 찬양 인도로 섬기고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 또 한 달에 한 번 중국어 설교도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어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고 중국인들과 교제를 계속할 수 있게 예비해주셨습니다. 또 감사한 것은 초등학교 바로 옆에 좋은 집을 구하였고 아이들 또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걱정이었습니다. 또 전학 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자녀들 역시 책임져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제주도로 가는 것이 맞나 하는 고민을 이곳에 내려오기 직전까지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수없이 물어볼 때마다 하나님은 맞다고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려오기 전 가정예배 때 나누었던 설교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도행전 10: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베드로는 시몬의 집에 여러 날을 머물면서 결국 그곳에서 고넬료를 만났고, 고넬료와 그의 가정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저는 시몬의 집 위치에 대해 집중하였습니다. 그의 집은 해변에 있었습니다. 저희 집도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 머물면서 예배하던 중 고넬료와 같은 가정을 만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제주도는 아닐 거야, 그냥 내가 쉬고 싶어서 떠나고 싶은 곳이기에 제주도에 대한 마음을 주셨겠지’라고 의심했던 저에게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그곳으로 가는 것이 맞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제주도에 내려와 정착한 지 세 달이 지났습니다. 관광지로 여겼던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연이 아름답고 좋은 환경에서 하나님은 저희에게 안식을 주시고, 중국인들을 만나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고 감사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하나님은 저희 가정을 통해 예배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드리는 가정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저희 가정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붙잡아 주셨습니다. 제주도로 내려오면 뭔가 확실한 사역들이 보일 것 같았는데 여전히 앞은 희미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지금 잘 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하나님께 묻고 있는 저를 보게 됩니다. 사실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지’라고 정해 놓은 것이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더더욱 어떠한 계획을 세울 수 없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때를 구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어가실지,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서 다시 중국이나 제3국의 선교지로 나아가게 하실지, 아니면 이곳에 정착하여 사역하게 하실지 지금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이곳으로 부르셔서 저희 가정에게 맡겨진 사명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기도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창세기 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아브라함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