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  통권 229호     필자 : 김종구
[선교일언]
‘인간의 전적 타락과 복음의 절대적 필요’에 대한 확신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인간을 설득하여 파멸의 존재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선교에 있어서 참으로 강력한 동기인 것이다. 에베소서 2:1-3에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존재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은 자이며,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자이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범위는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였기에 누구도 예외가 없으며, 이 죄의 삯은 사망인 것을 로마서와 그의 서신서 여러 곳에서 밝혀주고 있다. 

선교사인 바울이 심각하게 인간의 전적 상실(lostness)에 대하여 논의하고 밝혀주는 것처럼, 타문화권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우리도 인간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그가 진정 복음이 필요한 자인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상실에 대하여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첫째로 인간은 잃어버린 존재인가? 아닌가? 둘째로 만일 그가 잃어버린 존재라면 그는 잠시 동안만 잃어버림을 당한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잃어버림을 당하는가? 셋째로 만일 우연히 내세에서 잃어버려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있을 것인가?

바울은 이방인의 사역자로 부름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애를 바친 사람이지만 그가 말하는 잃어버린 존재인 인간은 이방인도 유대인도, 선인도 악인도, 아프리카의 이방인과 아메리카의 이교도, 이 모든 이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대인에게도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이방인에게도 의인은 없으며, 모든 인간이 심판 아래 있음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며, 니고데모와 고넬료같은 정직하고, 도덕적이며, 인격적인 사람들도 모두가 잃어버린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의 전적 타락한 존재로서의 인간이해, 영원한 멸망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이해, 인간이 상실됨으로 인해 발생한 죄책(罪責)을 해결하기 위한 답변이나 능력이 전혀 없다는 처절한 인간이해는 무엇을 말하는가? 결국에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전적 타락(totally depraved)’은 우리의 상상보다 심각하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으며, 불의의 자식이 되었으며, 그의 영혼을 좀먹는 병균이 그 몸과 영혼 전체에 퍼져 있고, 총명이 어두워져 창조주를 알지 못하고 썩어질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고 있으며, 죄의 종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결국에는 공의의 하나님께 심판받아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되는 것이 타락한 인생의 결국이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그분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자신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심연의 계곡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인생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도록 한 동기이며, 복음 전도자로서 그의 삶을 이끌어 간 것이다. 그는 아그립바왕 앞에서도 복음으로 인하여 서슴없이 말했다.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사도행전 26:27-29)

바울은 이 동기에 자극받아 계속해서 사역을 했다. 바울은 모든 인간의 파멸과 그들에게 구주(救主)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었고, 그러므로 땅 끝까지 선교가 필요함을 믿었고, 실천하였다. 바울은 회심한 뒤부터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도록 권고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를 느꼈다.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 동기와 자극이었다. 

이 시대에도 75억의 인구들 모두가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28,000명의 우리 한국선교사들이 가 있는 그곳, 또 가야 할 그곳, 이 땅에 들어와 있는 250여만 명의 외국인 이주민들 모두가 복음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바울이 신약에서 56번 사용한 바 있는 ‘유앙겔리온’은 ‘유앙겔리소’에 근거하는 형용사인데 소식이나 뉴스를 의미하는 말로, 자신은 이 유앙겔리온을 전하는 자로 인식하고 있다. 이사야서에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로 표현되고 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이사야서 40:9). 

우리 한국선교사들이 전하는 소식은 세상의 뉴스나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보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무리의 죄악을 메시야이신 예수께 담당시키사 그가 우리 대신 질고를 지고, 우리 대신 찔림을 당하시고 징계를 받으시고,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다는 구원의 소식이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신다’(고린도후서 5:19). 기쁜 소식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를 위축시켰는지 모르겠다. 현재 선교사 파송과 관련된 모든 상황은 팬데믹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러한 시대에 선교사 파송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교현장의 필요, 현장을 섬길 준비된 선교사, 기꺼이 선교사를 보내고자 하는 교회, 선교사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준비할 선교단체들이 한마음이 되어 복음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아가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쩌면 더 복음을 필요로 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바울이 그렇게 모든 인류가 복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확신한 것처럼, 오늘 모든 선교사들이여! 선교지의 영혼들 누군가가 복음 듣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하고 나아갑시다. 


※참고문헌
1) J. 마크테리·J D. 페인. 《선교전략 총론》. 엄주연 역. 서울: CLC, 2015.
2) 에크하르트 슈나벨. 《선교사 바울》. 정옥배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3) 허버트 케인. 《선교신학의 성서적 기초》. 이재범 역. 서울: 도서출판 나단, 1994. 
4) 허버트 케인.《기독교선교이해》. 신서균 역. 서울: CLC, 2007.
5) E. Hedlund. 《성경적 선교신학》. 송용조 역. 서울: 서울성경학교출판부, 1991. 








김종구 선교사 | 빌리온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