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나 조금 부족한 게 있다면…,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가족은 안식년을 가졌다. 그리고 지역 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새롭게 옮긴 곳은 한국 사람이 많은 지역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중국 학교를 다니며 맘고생이 심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나를 국제학교에 보냈다. 거기서 나는 한국 친구들을 새롭게 사귀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낮은 자존감은 매사에 자신감이 없게 만들었다. 이런 나의 모습이 너무 수치스럽고 싫었다. 자신감이 없어 주뼛거리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착하다고 하는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방황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걱정하는 마음에,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운영되는 SOT(교사는 필리핀에서 오고, 미국의 홈스쿨링 커리큘럼) 과정에 나를 보냈다. 그런데 이 학교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한 학기 동안 선생님 없이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함께 지내던 형이 기도를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나를 포함하여 모두 4명이 아무도 없는 학교의 작은 방에서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작은 방에서 형들이랑 2시간을 기도했다. 우리는 동그랗게 모여서 기도를 했는데 그 중앙에는 우리의 눈물과 분비물로 흥건하였다. 이때부터 우리는 매일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데 힘썼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때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한창이었고, 마침 우리 가족은 비자갱신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학교가 결국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학교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중 나는 한국에 남아서 부천에 있는 한 대안 학교에 다니기로 했고, 그때가 중3이었다.
한국에서 정말 치열한 신앙생활을 했다. 친구가 전부라고 여기는 청소년 시기,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신앙에 있어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음담패설을 늘어놓을 때, 학교 규율을 어길 때 친구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함께하지 않고 변화된 삶을 살려고 애썼다. 이전에 낮은 자존감의 나였다면 그저 또 분위기에 휩쓸렸을 것이다. 여전히 내 안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박혀 있었기에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썼다. 친구들을 모아서 찬양집회를 다니며 학교에 예배 팀을 꾸려서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집에서 홀로 기도하고 찬양하다가 이웃의 민원을 받을 만큼 하나님 앞에 뜨거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엄마는 지금은 안 그러시지만 (아직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자주 나에게 미안해하셨다. 한국에 나를 홀로 남겨 두고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게 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신다. 사실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서 지낸 생활은 참으로 힘들었다. 그때까지 안정감을 느낄 만한 공동체에 속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적응할 만하면 또다시 낯선 곳으로 옮겨 가야 했고 거기서도 불안함을 느꼈다. 어디를 가나 항상 이방인이었고, 중국에서 사귄 친구들과는 우리 가족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모든 것을 나눌 수도 없었다. 항상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다 한국에서는 가족들이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 참 힘들었다. 가끔 방학 때 중국에 가서 가족들을 보고 오거나, 가족들이 한국에 왔다가 가면 한동안 가슴속이 텅 빈 것 같은 허무함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한 가지 달라진 것은 내 삶에 주인이 되신 하나님이 계셨다. 선교사인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닌 바로 나의 하나님이 내 아픔을 보듬어 주셨다.
하나님을 만나서 많은 상처가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나를 넘어지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내 인생은 비극’이라는 것이었다. 내 인생은 꼬이고 꼬여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거의 확정을 지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된 시기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3 수학 문제를 풀다가 그랬다. 중국 학교에 좀 다니다가, SOT 교육을 좀 받다가, 한국 학교에 좀 다니기만 한 나는 제대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런 내가 대학을 가는 데 필요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중3 수학을 푸는데 하나도 제대로 풀 수 없는 내 자신을 보고 너무 기가 막혔다. 도중에 한국에 나오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처럼 ‘재외국민전형’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선교사자녀인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께 헌신하여 살면서도 여전히 아픔의 잔재들로 힘들었다. 나의 발목을 잡는 패배감과 좌절감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배운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내 삶을 그 자리에서 단번에 회복시켜 주시지는 않지만 그것을 마주할 용기를 주신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하나님과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서 그것을 통해 매순간 깨달음을 주시고 성장하게 하셨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느꼈던 인생의 좌절감, 원하던 대학 입학에 실패하면서 ‘역시나 나는 안 되는구나’ 하는 더욱 큰 좌절을 통해 내 안에 있는 깊은 상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도록 하나님은 나를 정말 천천히 세밀하게 그리고 깊이 치유하시고 알려주시고 은혜를 느끼게 하신다. 대학에서 스스로에 대해 정말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삶의 방향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은혜는 아내를 대학에서 만난 것이다. 1학년 때 만나 5년의 연애 끝에 군대 전역 뒤에 졸업을 하고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하나님은 내 삶을 놀랍게 인도하셨고 채우셨다. 나는 지금 부족한 게 없다.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딱 하나 조금 부족한 게 있다면 물질이다. 물질이 전부인 이 시대를 살아가며, 물질이 내 삶에서 그저 부족한 작은 부분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 가족을 인도하신 하나님, 내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접 연출하는 내 삶은 비극이 아니다. 그리고 내 삶은 결코 꼬이지 않았다. 내 삶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 이 글은 <나는 선교사입니다>(고신총회세계선교회)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수정, 보완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김수민 | 중국선교사 MK, 열린교회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