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부터 연재되는 이 작은 글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견실하여 흔들리지 않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선교사인 바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확신’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다. 지난호에서는 선교사 바울의 ‘복음’에 대한 확신을 살펴보았으며, 이번 호에서는 선교사인 바울 자신의 분명한 ‘자기 인식과 소명의식’에 대한 확신을 살펴볼 것이다.
선교사 바울의 소명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라디아서 1:1)
바울은 사도가 된 것이 사람에게 기인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 근거한다는 소명을 확신한다. 선교 현지의 정치적 혹은 사회적 원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비자발적 귀국을 하거나 선교지 입출국 일정이 불투명한 채 시간이 흘러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때 선교사들에게 재삼 ‘확신’이 필요한 것이 바로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일 것이다. 오늘날 선교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 가운데 많은 선교사가 ‘자기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곳에 와 있는지’ 묻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선교사역 중에 ‘나는 누구인데 왜 이곳에 와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운영하고 있던 **신학교에 공안이 급습하여 공부하던 지도자들과 학생들을 모두 지역 파출소로 연행해 간 사건이 있었다. 그날부터 거의 한 달간 집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내 집을 알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서 고3인 아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런 생각이 엄습하였었다. 하물며 사역지를 본인이 원해서 나온 것도 아니고, 사역지로 들어가고자 하나 그곳으로 들어갈 수 없는 선교사들은 오죽하겠는가 싶다.
바울은 어떠했을까? 1∼3차 선교여정 동안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닥쳤다. 사도행전 9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사울을 찾아오셔서 처음 하신 말씀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이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교회를 박해하고 있던 사울을 찾아오셔서 사울을 거듭나게 하시고 사명을 주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바울은 그에게 군중 앞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자신을 찾아오시고 사명을 주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하였다.
사도행전 22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라고 하셨음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또한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은 아그립바 앞에서 변명하는 중에 자신의 부르심에 대해 예수께서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16)”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그 숱한 핍박과 위험과 투옥과 죽음을 방불케 하는 고난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복음을 맡은 선교사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누가 자신을 불렀으며, 왜 불렀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울서신이라 불리는 13권의 서신서 서문에서 그의 확신은 더욱 분명히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고전도후서 1:1, 에베소서 1:1, 골로새서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갈라디아서 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디모데전서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디모데후서 1:1)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선포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확신했고, 모든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행하였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고,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었다. 이 소명의식은 바울의 선교사역 중에 만나는 수많은 환란이나 비방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소명의식은 선교사들이 확인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는 모든 사역을 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일생이었다. 길고도 험난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고, 복음이 증거가 되는 일에만 완벽한 헌신을 하였다. 이처럼 자신을 택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 모든 선교사들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에게 종속되어야 하고, 복음전파에 종속되어야 한다. 또한 복음을 들어야 하는 선교 현지의 사람에게 종속되어야 한다. 변화하는 사회 환경이나 조건에 얽매이는 것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몰두하여야 한다(고린도전서 9:19-22).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이며 권능이었다고 확신한다. 자신의 구원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도 거부할 수 없는 은혜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8-10).
우리 선교사들이 어려운 시절에 견고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를 축복한다.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뜻은 흔들리지 않는다. 사울을 불러 바울을 만드시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선교사로 부르신 것을 기억하고 인내하며 기다리자. 바울이 사도로서의 자기 인식과 소명에 대한 확신으로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한 것처럼, 이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는 우리 선교사들도 부르심에 후회가 없으신 주님을 바라보며 견디어 내고, 믿음의 경주를 잘 달려갈 수 있기를 축복한다.
※참고문헌 닐 앤더슨.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유화자 역. (서울: 죠이선교회), 2005. 데이비드 보쉬. 《변화하는 선교》. 김만태 옮김. (서울: CLC), 2017. 마크테리. 《선교전략 총론》. 엄주연 옮김. (서울: CLC), 2015. 에크하르트 슈나벨. 《선교사 바울》. 정옥배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허버트 케인. 《선교신학의 성서적 기초》. 이재범 옮김. (서울: 도서출판 나단), 1994.
사진 출처 | 픽사베이 김종구 선교사 | 빌리온선교회 대표, ACTS 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