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3  통권 226호     필자 : 유관지
[발행인통신]
6월과 중국교회, 그리고 중국사역
‘신교(身敎)’ 때문이었을까?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6월이 우리를 찾아왔는데요, 6월은 신록이 녹음으로 바뀌는 아름다운 절기이지요. 6월에 <중주> 가족 여러분께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6월이 되니까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포스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 된 것은 이달에 현충일과 6.25전쟁 발발일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6.25전쟁을 흔히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데요, 저는 “그 전쟁은 한반도에서 벌어지기는 했지만,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참전한 대규모의 국제전쟁인데 단순히 한국 땅에서 벌어졌다고 해서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한가?” 묻고는 합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어서 갖게 되는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요, “만일 6.25전쟁 때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중주> 가족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본웹진 2017년 8월호(통권 180호)에 팔로군의 ‘신교(身敎)’에 대해서 쓴 일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어느 중국 목사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중국공산당운동 초기에는 사람들의 환영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른바 ‘신교'라고 해서 욕하지 않고, 때리지 않고, 빼앗지 않고, 나이 든 여자는 어머니같이 대하고, 어린 여자는 누이동생같이 여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는 것입니다. 수적으로 열세인 팔로군이 국부군(國府軍)에 대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가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신교’는 ‘몸으로 가르친다’는 뜻이겠지요. 그 목사님은 이어서, 그렇지만 공산당이 부패하는 것을 보면서, 특히 개혁개방 후에 그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실망한다면서 교회는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에 저는, 나이 많은 분들 가운데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피난을 가지 못했던 몇 분에게 “그때 중공군이 어떻게 했나요?” 물어본 일이 있었습니다. 

국공내전 때 그렇게 나온 중공군이 6.25전쟁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였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나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저희 집은 피난을 가지 못했습니다. 서울을 너무 빨리 빼앗겼고, 정부가 한강다리를 끊어 버려서 피난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희 집도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때 서울에서 지내면서 인민군과 동네 좌익들의 사나운 행태에 시달림을 겪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서울을 다시 한 번 빼앗기게 된 1.4후퇴 때는 얼른 피난을 가서 중공군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의 질문을 받은 분들은 대개 ‘그렇게 사납게 굴지는 않았다’는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대답을 들으면서 그것이 앞에서 들은 ‘신교’ 때문이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6월이 되니까 그 궁금증이 되살아나네요.

미중 갈등이 심해지는데
요즘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과 관련된 보도를 대할 때마다 ‘중국의 국력이 참 빠른 속도로 강대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중국은 명실상부한 G2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미중 갈등’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이 중국교회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기고는 합니다. 나아가서는 ‘중국사역에는 어떨까?’ 하는 염려도 생깁니다. 중국에서 기독교는 서양, 특히 미국과 떼지 못할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6.25전쟁 중인 1951년 4월, 중국 정무원(政務院, 국무원) 종교사무처는 ‘미국의 재정원조를 받는 기독교단체를 처리하기 위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종교사무처는 중국의 모든 교회는 항미원조(抗美援朝)의 행렬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항미원조’는 잘 아시는 대로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북한)을 돕는다’라는 뜻인데, 중국은 6.25전쟁에 참전한 명분을 여기에 두고 있습니다. 6.25전쟁을 아예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공군을 ‘항미원조반도지원군’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 회의 기간에 고발대회(控訴大會)가 진행되었는데 고발당한 대상은 주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중국교회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 고발대회는 훗날 전국고발대회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항미원조 삼자혁신운동위원회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우야오쭝(吳耀宗)을 회장으로 선임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삼자운동이 전면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미중 간의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그 일이 생각납니다. 또 ‘중국사역자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단순한 복음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5월 22일에 북한교회 재건에 대한 학술발표회가 서울 양천구에 있는 강일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이 학술발표회에서 일곱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는데요, 그 가운데 ‘중국교회 사례연구를 통한 북한교회 재건’이라는 논문이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백석대학교의 장동민 교수와 진미수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하여 작성한 논문인데 발표는 장동민 교수가 하였습니다.

장 교수는 이 논문에서 중국교회의 역사를 정리하고 결론 부분에서 “어떤 신학이 북한의 교회를 이끌고 가야 할까? 단순한 복음신앙을 유지하되 이를 정당화할 전통적 신앙, 그리고 북한 체제하에서 생존하고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신학이 발전되기 바란다. 우선 단순한 복음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경우 왕밍다오(王明道)의 신학은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신앙하는 전통적 복음신앙이었다. 이 단순한 신앙이 박해 시대를 견디게 하였고 개혁개방 시기에 교회의 급성장을 견인하였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발언이었습니다.

이 논문은 “북한교회와 가장 가까운 중국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북한교회의 미래를 전망해 보았다.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와 결합했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면서 자립교회를 세워야 한다. 박해 속에서 저항과 타협의 길을 걸은 교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 상황에 맞는 신학을 정립해야 한다는 등의 착상들을 정리해 보았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뿐 미래를 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루터기와 같이 조금 남아 있는 북한의 성도들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의 역사가 번성하기를 기도할 뿐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역시 적지 않은 울림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지난호 ‘발행인 통신’에서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두고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말을 썼는데 이런 주제의 발표를 들으면서 그 말이 다시 한 번 생각이 났습니다.

이번 호의 특집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중어권한인선교사협의회(KMAC)에서 주관하는 ‘2021 중어권 선교 On Sharing 콘퍼런스’의 내용을 정리하여 다루었습니다. 서진, 최진호, 정요한 이들 세 분 선교사님의 강의와 질의응답을 통해 많은 소득이 있기를 바랍니다.

올 상반기에 베풀어주신 <중주> 가족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사를 드리면서 하반기에도 우리의 교제가 더욱 도타워지기를 바랍니다.







사진 | 교갱뉴스, 바이두(위에서부터)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겸 웹진〈중국을주께로〉 발행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