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논단 통신】 매일 뉴스를 접하면서 낙담하지만 점점 익숙해질까 봐 두렵다. 복잡한 정세에 직면하여 류탕교회(流堂) 설립자인 천웨이안(陈韦安)은 이전에 “국가보안법 아래의 홍콩 기독교인(国安法下的香港基督徒)”이라는 주제로 두 번의 예배에 설교를 하고, 로마서 12장 1-2절의 말씀으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성경의 가르침이 결코 생존 수단은 아니지만 어둠과 절망 속에서 성경의 교훈을 빌어 생존의 의지를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로마서의 본문을 통해 어떻게 오늘날 처한 환경 속에서 산제물로서 드려지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성찰하고, 예배로서 시대에 적극 대응하자고 했다.
하나님에게서 온 생명의 지침서 천웨이안은 먼저 본문의 배경과 배경 너머의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로마서가 대략 A.D. 55-57년경에 쓰였고, 네로 황제가 막 등극했을 때라고 했다. 사람들은 과거 로마 정권의 핍박을 잊지 않았고, 이후에 불어닥칠 폭풍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실 A.D. 64년 이후 기독교는 200년간 폭정에 시달리고 박해를 받았다. 그는 또한 로마서가 완성되었을 때 ‘폭풍과 폭풍 사이의 시기’라고 묘사했다. 설령 당시의 로마 정권은 표면적으로는 노래와 춤으로 꾸몄을지라도 그 이면에는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로마교회는 가정교회로 전환해야 했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억압의 시대였다. 따라서 바울의 로마서는 단순한 생활 지침서가 아니라 그 시대에 따른 구체적인 권고이자 로마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질적인 가르침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친절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산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예배이다.” 천웨이안은 이렇게 로마서 12장 1절을 재해석하면서, 다른 형용사들을 다 빼 버린 본문에서 남게 되는 중요한 것은 ‘예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암흑의 시대, 핍박의 날에는 정의를 위해 싸우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의 상황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소극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하며, 그는 2019년부터 ‘612, 721, 831, 〈홍콩특별행정구국가보안법(港区国安法)〉, ‘안심추싱(安心出行) 앱’ 등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에 대해 설교했다. 그러나 사회 형태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사명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복음이 갖는 시대적 의미를 성찰해야 한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행동의 궁극적 의미가 실제는 예배라고 말한다.
예배로 나아가는 삶의 선율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옥중서간》에서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율로 묶은 악장을 가리키는 다성음악(polyphony)이라고 했다. 삶에는 즐거움도 있고, 비통함도 있고, 고통도 있고, 슬픔과 절망도 있다. 어쩌면 삶 속에서 하나님께 속한 단일한 주선율이 없더라도 이 모든 음악이 하나님께 속한 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웨이안은 마음이 하나님을 따를 때 그것이 곧 예배라고 했다. 그러나 삶에 오직 하나님의 단일한 주선율만 있을 때, 또는 우리가 지나치게 삶을 교회의 일을 하는 것으로만 단순화한다면 다른 선율을 무시하게 되는 데 이것이 일종의 종교적 소비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세상에만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선율에 주목하며 오히려 삶이 본래 하나님께 속한 악장이라는 것을 잊는다면 이 역시 적합하지 않다. 삶의 악장은 곧 다양한 선율 속에서 하나의 주선율과 하나의 방향을 찾는 것이다.
2019년 6월 9일 천웨이안은 정부 총본부 밖에서 시위대의 시위 소리와 경찰의 소리, 공포와 희망의 소리가 들렸지만 또 하나의 주선율, “Sing Hallelujah to the Load”의 찬양 소리를 들었다. 그는 우리가 어둡고 힘든 환경에 처했을 때 여러 종류의 소리가 뒤섞여 있음에도, 여전히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세계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떠올리는 것, 이곳이 곧 예배라고 했다. 바울과 본회퍼 혹은 수감 중인 홍콩 기독교인이든 그들은 모두 삶 가운데서 예배를 한다. ‘홍콩구국가보안법’의 통제 아래에서 성도들은 이것이 ‘예배’라는 사실을 더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면서 ‘암흑세력은 단지 예배의 배경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최악의 시대이지만 오히려 우리가 가장 잘 ‘올인(all in)’할 수 있는 시기라고 지적했다. 또 이것은 가장 최악의 시대이지만 오히려 우리를 더 이상 애매하게 만들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최악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한 세기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시대이다. 희망에서 핍박, 절망에서 구원까지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는 성도들이 자기 몸을 산제물로 드려야 하고, 가장 최악의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므로 예배는 교회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도 왕성하게 드려져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세 가지 특성 그렇다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하고 하나님께 ‘올인’해야 하는까? 그는 두 번째 설교에서 생명력,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의 의미에 대해 강해했다. 생명력은 ‘삶’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종종 이것을 소홀히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산다’라는 것은 생존과 음식을 먹고 마시고, 숨을 쉬고, 죽지 않는 것뿐 아니라 생존이라는 양식으로 우리의 생명을 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생명에 대한 많은 진귀한 부분을 놓치게 할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흑암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정권이 빼앗아 가지 못하는 아주 작은 것들이 많다. 최근 사람들은 산행과 캠핑, 케이크 만들기, 물 마시기 등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이 점점 더 어지러워질 때 우리는 삶 속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단순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천웨이안은 위화(余华)의 《인생(活着)》에서 한 문장을 인용했다. “살아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고, 살아있는 것보다 더 힘든 것도 없다. 살아있는 것은 어쩌면 힘들 수 있겠지만, 그만큼 너무 힘들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한 삶을 얻게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정권이 이 말을 망칠 수 없는 것은 이것이 바로 예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사랑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곧 생명력의 의미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神圣)’에 대해 말했고, 중국어 성경 《和合本》은 이것을 ‘성결(圣洁)’로 번역했다. 사람들은 항상 성결을 ‘청결함’, ‘깨끗함’, ‘도덕적 깨끗함’ 등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들은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을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실제는 깨끗함의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후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성결’로 대신 사용됐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결코 어떤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사건을 모두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로 간주한다. 환경 문제를 옹호하는 기독교인처럼 그들은 이 일을 모두 하나님의 일로 여기며, 하나님 아버지의 세계를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천웨이안은 기독교인의 시위나 마스크 착용, 또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반응한다면 이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한 제물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본래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곧 헌제(献祭)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진리의 기준과 행동의 기준이라고 말하며, 난세(乱世)에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즐겁고 기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진리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만 즐거움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본질은 여전히 우리의 몸을 드리는 예배이다.” 천웨이안은 예배는 단순히 주일예배를 넘어 이성적인 예배, 삶을 바치는 예배라고 강조한다. 그는 과거에 성도들은 끌려 다녔지만 오늘부터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반응해야 한다고 했다. 예배의 방식에 변화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앞으로 성도들이 생명력을 가지고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기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일깨웠다. 더 나아가 예배에는 승패가 없으며, 예배 자체가 흑암의 세력을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 | https://cantonhymn.net/song 캡처 출처 | 〈举目〉(时代论坛) | 2021년 4월 9일 번역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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