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6  통권 224호     필자 : 왕빈
[선교나침반]
“중국교회여, 세상에 교회를 번역해주고, 교회에 세상을 번역해주라”

“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면 다른 믿음 체계,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면서도 복음적 확신을 유지하며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같은 질문을 하면서 나와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더불어 살되 구별된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 고민해봤을 것이다. 다른 믿음 체계(종교), 존중, 복음적 확신, 관계, 이들 각각의 단어의 뜻은 쉽지만 네 단어를 융합시킨 삶을 살아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존중할 수 있을까. 복음적인 확신이 강한 사람이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특히 사회주의라는 이념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중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네 단어를 표면적으로가 아닌 실질적인 삶으로 녹여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Uncommon Ground)》이라는 책에서 일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뉴욕 리디머교회 설립자인 팀 켈러 목사와 카버프로젝트(The Carver Project) 대표인 존 이나주 박사 등이 저자로 참여한 이 책이 그린 그리스도인은, 서로의 차이를 품되 구별되어 세상을 섬기는 삶을 올곧이 살아갈 것으로 촉구한다. 12가지 직업군에서 어떻게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지를 보여주면서. “신학자와 목회자, 모험가와 기업가는 어떻게 차이를 넘어 세상에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일까?”, “작가와 송라이터, 스토리텔러와 번역자는 어떻게 자신이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구현하며 살아야 하는가?”, “다리 놓는 사람과 의료인, 화해자와 평화를 이루는 자는 어떻게 움츠러들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을까?” 각자 삶의 차이 속에서 신앙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도전적인 울림을 준다. 공공선에 대한 공통적 이해가 결여된 문화 속에서 도덕적 권위와 인간 본성에 대한 상이한 이해와 실재 인식에 대한 이해간(利害間) 차이는 실용주의적 전략으로도 합리주의적 전략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일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을 무조건 적으로 규정, 대립하지 말고 이해와 사랑과 배려 속에서 그 차이와 다름과 변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립되어 물러나 있을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두루 다니며 각자 속한 사회에서 최상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고 최악의 경향들을 상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맛을 더하거나 세상이 부패하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로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황폐한 지역이 성장을 자극하고 세상의 거름더미에 섞여 들어가 하나님이 새롭고 덕스러운 삶을 이루시는 데 그 거름을 쓰실 수 있게 준비하는 사명을 받았다.” 

이 책에서 차이를 뛰어넘기 위한 실천 키워드로 언급된 ‘겸손’, ‘인내’, ‘관용’은 이 시대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겸손은 근본적 사안들에 관한 생각이 크게 다른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 모두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린 이유를 늘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인식하는 태도다.” 그리스도인은 이성의 한계를 인식할 뿐 아니라 도덕적 행위와 선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잘 알고 있기에 공공생활에서 겸손을 실천할 수 있다. “인내는 경청하고 이해하고 질문하도록 권한다.” 인내심으로 이념적 거리를 늘 넘어설 수 없고 모든 어려운 사안들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주의 깊은 경청, 공감적 이해, 사려 깊은 질문을 통해 서로를 묶어주는 공통된 경험들과 서로를 갈라놓은 상이한 경험들을 인식하며 다른 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관용은 공유하지 않는 믿음과 실천을 실제로 참아내는 일이다.” 상이하고 양립할 수 없는 모든 믿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다른 이들에게 관용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이웃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고, 우리의 하나님 사랑은 복음의 진리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100명 중 1명쯤은 성경을 펴겠지만 99명은 그리스도인들을 본다는 말이 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은 제5복음서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통해 교회를, 기독교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교회가 건강하면 세상에 소망을 주지만, 그 맛을 잃으면 세상에 절망을 안겨 준다는 말도 곱씹어 봐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모인 교회는 효과적인 번역자가 되기 위해 전달할 내용, 성경을 잘 이해할 뿐 아니라 번역을 제공할 대상, 청중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교회는 두 문화를 잇는 번역자로서 ‘한 발은 한쪽 세계에, 다른 발은 다른 세계에’ 딛는 단순한 접근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존 이나주의 지적은 새겨들어야 한다. “유능한 번역자는 전혀 다른 두 상황에 대해 정통해야 한다. 이 또한 겸손, 인내, 관용이 필요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내가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고 믿는 이유를 타자에게 설명할 수 없을 때도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내가 속한 두 세계 중 한쪽에서 ‘저 다른 세계’에 대해 자신들이 당연시하는 바를 내게 그대로 덧씌울 때 자제력을 발휘하는 인내 또한 요구된다. 의지를 갖고 사람과 그의 생각을 기꺼이 분리하는 관용도 필요하다. 차이를 넘어 공통점을 찾는 일은 공익을 증진할 뿐 아니라 관계적 거리도 이어준다.” 그러자면 우리의 일부를 나누어야 하고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말뿐이 아니라 삶도 번역해내야 한다. 언행일치를 위해 애쓰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은 교회의 진정성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줄 것이다. 




오늘날은 세계 어디서나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더 그렇다. 적지 않은 이들이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이는 우리 시대가 유신론에 대해 적대적인 상황을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부조리 앞에서 많은 이들이 실존적인 무기력감을 경험하며 지적인 차원에서 정직성을 유지하려고 할 때 종교적 신념과의 충돌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올바른 성경읽기와 더불어 기독교 고전과 C. S. 루이스의 저작을 천착하고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운동을 펼치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C. S. 루이스는 무신론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에 이르는 지적이며 실존적인 변화를 경험한 지성인이기에 현재의 중국 상황에 매우 유용하다. 그는 자신의 지적인 정직성을 포기하지 않은 가운데 기독교 신앙에 이르는 여정을 거쳤고, 《예기치 않은 기쁨》, 《순전한 기독교》, 《나니아 연대기》 등의 저술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내적 논리를 잘 변증했다. 모더니즘의 지성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상력을 보여준 루이스의 문학은 우리 눈을 열어 복음의 더 큰 실재를 보게 해준다. 개성이라는 특징을 허물지 않으면서, 우리 내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역할을 한다. 과거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곧 상상력이다. 자신의 시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상상력은 보다 확장된다. 루이스의 변증 태도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주변부를 탐색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일종의 생각의 생태계를 구축해 모든 세대가 상상력을 발휘해 하나님을 탐구하도록 유도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함으로 하나님 존재를 더욱 알아가게 한다. 루이스가 우리에게 주는 변증과 통찰은 기독교 진리를 충분히 설명하는 데 손색없음을 느끼게 한다. 《순전한 기독교》는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나니아 연대기》는 기독교 진리를 경험하도록 해준다. 중국교회가 현재 풀어가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현재의 중국공산당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국내외의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정책은 더욱 정교화하고 상대의 대책을 사전에 무력화하는 데 맞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교회는 진정성을 갖고 지역 사회를 섬길 뿐 아니라 일상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며 힘들지만 주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새로운 삶의 꿈을 꾸기 위해 결코 늦은 때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C. S. 루이스의 통찰은 여전히 이 시대에도 유용하다. 







사진 | 픽사베이
왕빈 | 중국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