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6  통권 224호     필자 : 김종건
[중국기독교회사]
명말청초 서양 선교사들(2)
디에고 데 판토하
디에고 데 판토하(Diego de Pantoja, 龐適我, 1571-1618) 신부는 스페인 출신으로 자는 순양(順陽)이다. 1589년 예수회에 가입한 후 1596년 롱고바르디(N. Longobardi)와 함께 동방선교의 길에 올라 이듬해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1600년 남경(南京)에 와서 마테오 리치를 도와 선교활동을 하다가 그와 함께 북경으로 상경하였다. 판토하는 중국어를 빨리 습득하였고, 역법(曆法), 산학(算學)뿐만 아니라 조각, 서금(西琴, 풍금[風琴]) 연주도 뛰어나 마테오 리치의 사역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1601년부터는 자주 궁중에 들어가 악공(樂工)들에게 악리(樂理)를 강의하면서 중국 인사들과의 친교 범위를 넓혔다. 1610년 마테오 리치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신종(神宗) 황제에게 묘지를 청하는 상소를 올려 하사받았다고, 1611년에는 역법 수정 작업에도 합류하였다.

판토하는 지리학에도 밝아서 신종 황제에게 4대주(大洲) 지도를 제작해 헌상하였는데, 각 주(洲)를 한 폭에 담고, 각국의 역사, 지리, 정치, 문화 관련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대표적 저작으로 《칠극대전(七克大全)》(7권)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인생을 위로는 7덕(德), 아래로는 7죄(罪)로 나누면서, 7덕으로 7죄를 극복하는 것이 7극(克)이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겸손이 오만을 조복(調伏)하고, 인(仁)이 질투를 평정하고, 시은(施恩)으로 빈곤을 해소하고, 인내로 분노를 가라앉히고, 담담함으로 탐욕을 막고, 정조(貞操)로 음란을 예방하고, 근면으로 태만을 다스린다는 내용이다. 그는 이 7극을 유가(儒家)의 수신극기(修身克己)와 결합하여 풀이하기도 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1616년 남경에서 심최(沈漼) 등이 교난을 야기했을 때 신종(神宗)이 그를 광동(廣東)에 보내 귀국하도록 명했으나, 그는 귀국하지 않고 마카오에 체류하다가 병사하였다.

니콜로 롱고바르디
니콜로 롱고바르디(Nicolo Longobardi, 龍華民, 1559-1654) 신부는 이탈리아 시칠리 출신으로 1582년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며, 자는 정화(精華)이다. 1597년 마카오에 도착하였고, 이후 강소(江蘇)성 소주(蘇州)에서 사역하면서, 중국어로 《천주성교일과(天主聖敎日課)》(1권)와 《성약슬행실(聖若瑟行實)》(1권)을 저술하였다.

1610년 마테오 리치 사후 후임 중국선교 감독(관구장)으로 임명되어 북경으로 들어가 1622년까지 재직하면서 중국선교를 총괄했다. 도중에 남경 예부시랑의 서방선교사 비난 사건이 일어나 일시 피신해야 하는 상황을 겪기도 하였다. 1622년 감독직을 그만둔 이후에는 북경에서 청 세조 순치제(順治帝) 치세까지 선교활동을 이어가다가 95세인 1654년에 북경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 저술로는 1623년에 라틴어로 쓴 《공자와 그의 교리(De Confucio ejusque doctrina tractatus)》가 있는데, 여기서 그는 중국 경전에 나오는 기본 개념들, 즉 ‘상제(上帝)’와 ‘천(天)’은 ‘천주(天主)’에 대하여 해석하였다. 이 책은 중국 유가학(儒家學)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서구인의 첫 저서로 간주된다. 이 책은 1701년에 《중국 종교의 몇 가지 관점을 논함》이란 제목의 프랑스어 번역판이 출간되어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누엘 디아스 오벨호
마누엘 디아스 오벨호(Manuel Dias Ovelho, 李瑪諾, 1559-1639) 신부는 포르투갈 출신이며 자는 해악(海嶽)이다. 1575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1597년 7월 판토하 신부와 함께 마카오에 와서 1597년 마카오 예수회 원장이 되었다. 1602년 북경으로 가서 2개월여를 사역하다가 1603년 마카오로 복귀했다. 1604년 이후 1609년까지 소주에서 선교하였고, 1622년에는 순찰사로 임명되어 일본, 베트남, 태국 등지의 선교사역을 관할하며 각 선교지를 시찰하였다. 1639년 11월 28일 마카오에서 세상을 떠났다. 

바르톨로메오 테데스키
바르톨로메오 테데스키(Bartolomeo Tedeschi, 杜祿茂, 1572-1609) 신부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594년 예수회에 입회한 뒤 동방으로 파송되어 1600년 인도 고아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601년 9월 1일 마카오로 와서 1603년 강소성 소주(蘇州)로 파견되어 니콜로 롱고바르디 신부의 사역을 도우며 선교활동을 하다가 아쉽게도 1609년 7월 25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소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바티노 데 우르시스
사바티노 데 우르시스(Sabatino De Ursis, 熊三拔, 1575-1620) 신부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597년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1603년 마카오로 와서 중국선교를 시작하였다. 1606년 남창(南昌)으로 이동하여 라자리우스 카타네오 신부의 선교사역을 도왔다. 

우르시스 신부는 수학, 천문학, 역학(曆學)에 능통하여 1610년의 일식(日蝕), 1612년의 월식(月蝕)을 관측하고, 유성(遊星)에 관한 이론서를 번역하는 등, 천문과학 지식 보급에 공헌하였다. 디에고 데 판토하 신부와 함께 북경 흠천감(欽天監)에서 역법(曆法)을 수정하는 일에 참여하였고, 천체 관측을 할 수 있는 기기들도 제작하였다. 남경교안(南京敎案)의 여파로 1617년 체포되어 마카오로 압송되었고, 3년 뒤 사망하였다. 

저술로는 농업 수리 기술을 집성한 《태서수법(泰西水法)》(6권, 1612), 측량 기구의 기능과 용법을 설명한 《간평의설(簡平儀說)》(1611), 그림자를 통한 시간과 계절 측정법을 기록한 《표도설(表度說)》(1614), 서양 약재(西藥) 제조법을 소개한 《약로설(藥露說)》(1618) 및 《중국속례간평(中國俗禮簡評)》 등이 있다. 

펠리치아노 다 실바
펠리시아노 다 실바(Feliciano da Silva, 林斐理, 1567-1628) 신부는 포르투갈 출신으로 1593년 12월 5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601년 4월 리스본을 떠나 인도로 와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1604년 마카오로 파견되었다. 

1605년 이후 남경에서 선교사역을 하였으나 병으로 인해 1608년 마카오로 돌아와 요양한 후, 1610년 다시 중국 내지로 들어가 1611년부터 북경에서, 1612년 이후 상해(上海)와 항주(杭州)에서 선교하였다. 1628년 5월 9일 남경에서 세상을 떠났다.

알폰소 바뇨네
알폰소 바뇨네(Alfonso Vagnone, 高一志, 1568-1640) 신부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584년 10월 24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604년 마카오로 와서 중국선교를 준비하였고, 1605년 남경으로 파송되어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609년에는 남경 선교구 책임자가 되었으며, 남경교안이 일어난 뒤 1617년에 추방되어 마카오로 돌아왔다. 1624년 다시 중국 산서(山西)성 남부에 위치한 강주(絳州, 현재의 新絳縣)에서 선교하였고, 1633년에는 강주의 서남부 포주(蒲州) 선교구를 열었다. 

바뇨네 신부는 온화한 성품에 청빈한 생활을 하였으며, 흉년이 들면 빈민 구호에도 적극 나섰다. 저술도 왕성하게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면, 천주교 교리를 간추린 《교요해략(敎要解略)》상권, 《성모행실(聖母行實)》3권, 《성인행실(聖人行實)》7권, 《여학고언(勵學古言)》1권, 《달도기언(達道記言)》2권, 《비록휘답(斐錄彙答)》, 《십위(十慰)》1권, 《신귀정기(神鬼正記)》4권, 《측성십편(則聖十篇)》1권, 《천주성교사말론(天主聖敎四末論)》4권 등, 서양 학문을 소개한 《수신서학(修身西學)》5권, 《서학제가(西學齊家)》5권, 《서학치평(西學治平)》4권, 《민치서학(民治西學)》2권 등, 천문 지식을 정리한 《공제격치(空際格致)》2권, 《환우시말(寰宇始末)》2권 등, 아동 교육론을 정리한 《동유교육(童幼敎育)》2권 등이 있다.

페드로 히베이로
페드로 히베이로(Pedro Ribeiro, 黎寧石, 1570-1640) 신부는 포르투갈 출신으로 1586년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600년 4월 인도로 왔고, 1604년 마카오로 이동하였다. 1613년부터 남창(南昌)에서, 1628년 이후 상해에서, 1635년 이후에는 남경에서 선교하며 많은 사람을 입교시켰다. 1640년 항주에서 세상을 떠나 현지에 안장되었다.

예로니모 로드리게즈
예로니모 로드리게즈(Jeronimo Rodriguez, 駱入祿, 1567-1628) 신부는 포르투갈 출신으로 1585년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595년 4월 15일 리스본을 떠나 동방선교에 헌신하였고, 1600년 일본으로 가서 선교하던 중 1605년 중국 소주(蘇州)로 사역지를 옮겨 니콜로 롱고바르디 신부를 도와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628년 마카오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진설명 | 판토하의 저서 《칠극대전(七克大全)》의 제1권
사진출처 | 바이두
김종건 |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