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3  통권 223호     필자 : 박애양
[신조어로 보는 중국 사회]
국조(国潮 [guócháo])

중국에 있을 때 보통 한 달에 한두 번은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했다. 그런데 한번은 그곳에 한국 물티슈가 진열되어 있어 반가운 마음에 한 통을 구입하려는 순간, 상품 브랜드가 낯설고 글자도 어색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가짜상품이었다. 상표와 사용 설명을 한글로만 적었을 뿐, 한국과는 전혀 관계없는 물건이었다. (아래 사진) 이런 모조상품이 중국 유명 마트에 버젓이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충격이었지만, 이런 현상은 아마 오래된 관행 같은 것이 아닐까? 1994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잠시 어학연수를 할 때 길거리 좌판의 조잡한 물건에 ‘南韩制’라고 쓰인 종이 표지를 보고서 정말 황당했던 기억을 소환해 보면 말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도용한 메이드 인 차이나가 중국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해외로 뻗어 나간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몇 달 한국 물품 없이 지내다 보면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이 쇼핑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가끔은 한국 인스턴트 커피가 정말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한번은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宝)에서 인이 박인 ‘그’ 노란색 스틱 커피를 주문한 적이 있는데 스틱 커피 꼭지에 그려진 이지 컷(easy cut) 부분이 잘리지 않아 결국 가위로 커피 꼭지의 초록색 부분을 자르면서 “이지 컷이 ‘easy’가 아니네.”라고 중얼거렸던 일이 있다. 내가 마신 커피가 정말 ‘그’ 회사의 커피였을까? 또 한번은 학교 근처에 한국의 생활용품점과 똑같이 차려 놓고 운영하는 ‘무무소(무궁생활)’라는 곳에서 칫솔을 구입한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무소(무궁생활)는 순수 중국 회사였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것도 모두 중국의 어느 이름 모를 기업들이 만든 것들이었다. 일부 어색한 표현도 없지 않았지만 모든 제품에 한글이 적혀 있었고 결재 시스템과 매장 분위기가 한국의 일반 생활용품 판매점과 똑같아서 나조차도 한국 상품 판매장으로 오인했었다. 그리고 그 매장에는 수많은 중국 젊은 소비자들이 그곳에서 한국의 분위기를 느끼며 쇼핑하고 있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국가 위상이 높아진 한국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사업 목적을 달성하는 데 사용하는 중국 상인들이 많아졌다. 한국마케팅으로 부당한 수입을 창출하는 것이다. 상품의 종류는 공산품이나 농산물은 물론 프리미엄 화장품까지 무차별적으로 도용되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도 등장한 무무소(무궁생활)과 같은 한국식 생활용품 판매점은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국가브랜드가 소비자 평가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일명 후광효과라고 할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는 그 국가에 대한 기존 이미지에 기인한다. 그 국가의 어떤 것에 대해 쌓인 이미지가 해당 상품이나 제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 상인들이 중국 내륙은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에서까지 한글과 한국의 이름을 달고 가짜 메이드 인 코리아를 파는 것도 이 후광효과의 효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무조건 베끼기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그런데 중국 상인들은 이런 베끼기에 대한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인가? 최근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신조어 가운데 ‘山寨(shānzhài)’라는 말이 있다. ‘모조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이 단어를 이제는 버젓한 ‘창의적인 베끼기’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초기에 ‘모방품’, ‘짝퉁’이라는 질타와 혹평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성공한 기업들의 선례가 중국에는 무궁무진하다. 그렇다고 일부 중국 상인들의 무임승차 행위만을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중화’의 영예를 되찾기 위한 중국 정부의 정책이 착착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발표된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해 밝힌 것처럼 중국은 지금껏 다른 나라 기업의 물건만 만들어 주는 하청 공장 시스템에서 벗어나 순수 중국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세계를 선도한다는 <중국지조(中国智造)>의 목표를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연구 개발 투자로 고부가가치 기술을 선점하는 것과 동시에 기술의 세계표준화 분야에서도 선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중국은 <중국표준 2035(中国标准 2035)> 정책을 실행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중국의 기술이 표준화가 된다면 정치 갈등으로 야기되는 선진 기술 활용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기술 로열티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표준과 관련된 기관이나 단체에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중국방식을 국제표준화하려는 노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중국 관영매체가 고의로 야기한 김치 논쟁의 시작인 ‘파오차이 국제표준화’는 ISO(국제표준화기구)라는 곳에서 발표한 것으로 이 기구 역시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다. 

중국의 국가 브랜드 고취 작업인 <중국지조>는 중국 정부의 전방위적이고 총체적인 지원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그 가속 페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조(国潮)’ 프로젝트다. 이른바 ‘국산 브랜드 열기’이다. 현재는 의류나 유통처럼 일부 분야에서 주로 강세를 보이지만 그 형세가 매우 드세다. 중국은 현재 명품 브랜드 소비국에서 명품 브랜드 제조국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국가 브랜드를 창출해서 고가 브랜드화하려는 시도는 최근 해외 명품과의 협업을 통한 홍보방식에서 두드러진다. 이들의 기세는 90后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그 힘을 키워가는 중이다. 중국의 막강한 소비집단인 90后는 소황제, 소공주 대접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들이다. 중국 경제 부흥을 목도하면서 성장한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중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기꺼이 국가 브랜드의 ‘애국 소비’에 동참하고 ‘애국 패션’을 애호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세계적 유행을 겪으면서 오히려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이웃 국가들의 행보를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중국의 전방위적 굴기는 우리에게 큰 위협이다. 그 옛날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을 무시한 대가로 처참한 호란(胡亂)을 두 차례나 겪어야 했던 이전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을 그저 모조품이나 만드는 세계의 공장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전 세계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중국 유학생들이 그들의 조국을 품에 안고 미래를 꿈꾸며 학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그들이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엘리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막연한 경계나 반목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무시하고 원망하는 태도 역시 건강한 모습은 아니라 하겠다. 다만 그들의 잠재력을 무시하거나 간과하지 말고 그들의 행보를 주시하면서 당당하게 우리의 할 말을 하고, 우리의 일만 하면 된다. 그들의 굴기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커다란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 바이두
박애양 | 중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