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4  통권 219호     필자 : 나은혜
[나은혜 선교문학]
단편소설 《회귀(回歸)》(7)
오 선교사는 윤이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났다. 바짝 마른 체격에 까무잡잡한 얼굴, 단발머리를 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소녀 같은 윤이를 보면서, 전도해서 제자를 삼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다 듣고 있으셨던 것이다. 윤이를 전도하여 제자 삼은 일은 이준민 선교사 가족 모두에게 기쁨을 주었다. 왜냐하면 선교지에 들어온 지 일 년이 다 되었지만, 그때까지 한 영혼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 현지어를 익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현지인을 전도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윤이는 비록 현지인이 아닌 한국 학생이었지만, 한 영혼이 구원받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큰 성취감을 느끼게 하였다. 매번 주일이 돌아오면 오 선교사는 두 유학생을 위해서라도 더 정성껏 식탁을 준비하였다. 한 주간 동안 기숙사에서 지내며 음식을 소홀하게 먹을 두 학생에게 맛있는 걸 먹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윤이와 지혜도 매주일 정성 어린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뻐했다. 그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학생은 이 선교사 집에서 드리는 주일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였다.

특히 지성이 지영이가 두 여학생을 ‘누나’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것도 보기 좋았다. 외로운 선교지에서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제삼자로서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퍽 다행한 일이었다. 아이들의 현지어 실력은 많이 늘기는 하였지만 아직 그렇게 익숙하지는 않았다.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리는 정도가 되려면 한 이 년은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윤이와 지혜는 주일예배 외에도, 매주 목요일에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서 오 선교사의 집으로 왔다. 때때로 그녀는 4층 부엌에서 일을 하면서 문득 창밖을 바라볼 때가 있는데, 가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성경공부를 하기 위해서 달려오는 윤이의 모습이 보이고는 하였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그런 윤이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가만히 부엌 창문에 기대서서 윤이를 바라보노라면 오혜영 선교사의 입가엔 행복의 미소가 피어났다. 윤이를 제자 삼고 싶었던 소망이 현실이 된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놀랍게도 윤이는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새롭게 배우는 성경의 내용들을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지혜도 모태신앙이었지만 처음 받는 제자훈련이 매우 신선한 모양이었다. 두 사람 다 열심히 과제를 해 오고 예습도 해 왔다.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의 ‘전도’장을 공부할 때였다. 윤이는 곧바로 삶에 전도를 적용하였다. 실제로 전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와 남동생에게도, 또 한국에 있는 남자 친구에게도 전도를 위해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지혜는 모태신앙인답게 현지 대학생을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캠퍼스에서 만난 현지 여대생을 기숙사로 초청하여 잡채 등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면서 전도를 하였다. 현지 여대생 중에 이준민 선교사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이 여학생이 지혜와 친해진 것이다. 지혜는 이 여학생을 전도하기 위해서 자기 기숙사에 자주 초대하였다고 한다. 이 여학생은 그동안 배운 한국어로 지혜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따금 지혜의 기숙사 방에 들어와 의자에 앉으면서 “언니, 커피 한 잔!”이라고 한다면서 지혜는 깔깔 웃어 댔다. 오 선교사는 두 제자의 변화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성경공부를 하는 보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준비하고 기도하는 모든 수고가,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 녹듯이 사라지곤 하였다. 역시 사역자는 영혼을 돌보고 사역을 하면서 살아난다. 지성이와 지영이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도 다행한 일이었다. 

이제 계절은 초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5월이 되자, 기온이 벌써 35도를 웃돌았다. 에어컨 없는 집안은 꽤나 후덥지근하였다. 여름을 어떻게 날지 새로운 고민이었다. 드디어 선교지에 온 두 번째 여름에 오 선교사의 집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선교지에서 첫 여름을 맞았던 작년에는 에어컨 없이 지냈었다. 이 지역의 한여름은 보통 섭씨 4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자랑한다. 집안 거실 온도가 31〜2도를 넘기기 일쑤였다. 선교비로는 에어컨을 구입할 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오 선교사는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이 희생해서 에어컨을 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대학에서 현지어를 배우고 있던 오 선교사는 한 학기를 쉬고, 한 학기 등록금으로 에어컨을 구입하기로 했다. 식구들도 식구들이지만 오 선교사의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이제는 제법 많아졌기에 에어컨은 꼭 필요했다. 남편 이 선교사에게 한국어 수업을 듣는 현지 대학생들도 종종 “김 교수님 계십니까?”라고 한국말을 하며 찾아왔다. 거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자 집안 전체가 시원했다. 특히 지성이와 지영이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왔을 때 시원해진 이 집을 너무 좋아하였다. 오 선교사는 비록 한 학기 언어 배우는 것을 쉬기는 했지만 가족들과 손님들에게 시원한 집을 제공하게 되어 기뻤다. 지성이도 지영이도 선교지에 온 지 일 년이 지나면서 현지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니 친구들도 하나둘 생기는 것이었다. 지성이와 지영이는 가끔 현지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왔다. 또 친구들이 스스로 찾아오기도 하였다. 오 선교사는 아이들의 친구들을 위해서 떡볶이나 잡채, 김밥 등을 만들어 주었다. 친구들은 처음 먹어 보는 한국 음식인데도 아주 좋아했다. 

오 선교사는 가정과 사역 여러 면에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매일 큐티를 하면서 남편 선교사와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영적인 힘을 얻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 한 시간씩 드리는 가정예배를 통해서는 가족들의 영적 건강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지성이와 지영이는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가정예배 시간에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면 가족들은 그 문제를 가지고 합심해서 기도했다. 이처럼 고민과 문제를 매일 기도하며 풀 수 있는 가정예배는, 우리 가정이 선교지에서 잘 버틸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영적 보루였다. 

오 선교사와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를 하는 윤이와 지혜도 가르침대로 성실하게 잘 따라왔다. 특히 새신자인 윤이는 신약성경을 통독하면서 믿음도 점점 자라갔다. 윤이의 신앙이 예쁘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 또한 사역지의 큰 기쁨이 되었다. 어느 날, 성경공부를 하는 날도 아닌데 윤이가 찾아왔다. 오 선교사는 “윤이, 어서와요.” 반색하며 맞았다. 윤이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에서 포장지에 쌓인 조그만 물건을 꺼내 불쑥 내밀었다. “저…, 선교사님 이거….” 윤이가 쑥스러워하면서 내민 포장지를 끌러 보니 예쁜 머리핀이었다. “어머, 참 예쁜 머리핀이네. 내 머리가 길어져서 머리핀이 하나 필요하다 싶었는데, 정말 고마워요.” 하자 윤이가 대답한다. “안 그래도 선교사님 머리가 길어져서 제가 하나 사 드리고 싶었던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활짝 웃는다. 머리핀을 머리에 꼿는 것을 잠시 지켜 보던 윤이가 조금 무거운 톤으로 말문을 열었다. “저…, 그런데 선교사님 아무래도 저 잠시 한국에 좀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 최근 한 달 동안 위가 너무 아파서 밤에 잠을 잘 못 자곤 했거든요. 위장약을 먹어도 안 듣네요.” 

윤이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러다가 오 선교사의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빛을 의식했는지 윤이는 짐짓 밝은 어조로 “저 금방 다녀올게요. 한 1〜2주면 될 거예요. 정확한 진단을 받고 약을 지어서 들어오려고 해요.” 그러더니 이어서 “참, 이번에 저의 아버지가 언어과정을 일 년 더 연장해서 공부하도록 허락해 주셨어요.” 한다. 윤이의 말을 듣는 오 선교사의 마음이 다시 밝아졌다. “와〜 참 잘되었구나. 지성이, 지영이도 윤이가 일 년 더 있게 되었다고 하면 너무 좋아하겠는걸!” 윤이가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빨리 병을 고치고 들어와야지요. 저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면 진짜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윤이의 얼굴에는 순간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빛이 빛났다. 윤이는 지금까지 정규 수업외에도, 도서관에서 하루 여덟 시간씩 앉아서 언어공부를 하는 열심파였다. 그러나 윤이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요즘 왠지 부쩍 초췌한 것이 오 선교사는 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해 초가을이었다. 윤이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위장병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나갔다. 윤이가 중국에서 일 년간 더 유학을 할 계획이었기에 자신의 모든 책과 옷, 소지품은 기숙사에 그대로 둔 채, 한국에 잠시 다녀올 요량으로 나간 것이었다. 오 선교사는 언젠가 윤이가 홍조를 띠며 이야기했던 일이 떠올랐다. 윤이는 대학졸업을 하고 여행사에 취직을 한 뒤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웃으면서 말했었다. “저도 선교사님 부부처럼 경건하고 인격적으로 서로를 존중해 주는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윤이의 미래에 대한 꿈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몸이 아픈 것이다. 윤이가 두 주 정도를 기한하고 한국으로 떠나던 날, 날씨가 몹시 흐려지더니 때 아닌 소나기가 쏟아졌다. 여간해서 소나기가 오지 않는 지역인데 이상하게도 종일 소나기가 오락가락했다. 오 선교사의 마음속에 일말의 불안감이 맴돌았다. 윤이가 한국으로 떠나고 나서 갑자기 혼자 기숙사에 남게 된 지혜는, 어서 윤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오 선교사 가족도 윤이가 어서 치료를 받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오 선교사는 매일 드리는 가정예배 시간에 윤이의 치료를 위해 가족들과 합심해서 기도하였다 

윤이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온 것은 윤이가 한국에 나간 지 삼 일 후였다. “선교사님, 잘 지내시지요? 저 윤이예요. 어제 병원에 갔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 있다가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하네요. 무슨 병인지…, 설마 심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오 선교사는 전화기를 통하여 윤이의 말을 들으면서 충격이 밀려왔다. “일주일 후에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이건 어디서 듣던 말인데….” 속으로 생각하던 오 선교사는 화들짝 놀랐다. 그랬었다. 바로 십 년 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를 진료했던 의사가 한 말이었던 것이다. 오 선교사의 친정 어머니는 위궤양을 앓으시다가 위암으로 발전한 경우였는데, 암이 말기까지 진행된 뒤에 발견되어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때도 의사 선생님은 오 선교사의 어머니에게 말했던 것처럼 윤이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던 것이다. “일주일 후에 보호자를 보내세요.”라고…. 

일주일 후에 오 선교사는 남편 이 선교사와 함께 어머니가 진료를 받은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어머니가 위암 말기여서 수술해도 일 년, 수술하지 않아도 일 년 정도밖에 사실 수 없다고 하였다. 오 선교사는 새벽마다 어머니를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친정 어머니를 치료해 주셨다. 일 년밖에 못 산다는 분이 이 년이 지나면서 오히려 더 건강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약했던 친정 어머니는 몸이 좋아지자 교회에 나가지 않으셨다. 집안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시면서 믿음생활을 멀리하였다. 오 선교사 어머니의 몸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고, 한 달 새 몸무게가 십여 킬로그램이 빠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오 선교사는 다시 새벽기도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어머니를 살려 달라고 절규에 가까운 기도를 드렸다. 

오 선교사의 어머니는 딸의 기도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암 발병 후에도 오 년을 더 사셨다. 재발 후에 투병하시면서 약했던 믿음도 점점 더 견고해지셨다. 이 땅에서의 삶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더욱 소망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찾아간 오 선교사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얘, 나 이제 아버지 집에 가서 쉬고 싶구나…, 그런데 나 죽기 전에 소원이 하나 있는데, 얼마 전 라디오를 들으니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학생 하나가 눈을 실명했다는구나. 내 눈을 주고 가고 싶구나.” 그러나 어머니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선 믿음 없는 아들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또 관련 부서의 사람들이 왔었지만 어머니의 눈을 그 청년에게 이식해 줄 수 있다고 판단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인생의 마지막을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살고 가신 것이다.  

윤이의 그 한 통의 전화는 이처럼 지난 기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할 만큼, 마음을 마구 뒤흔들었다. 윤이는 일주일 후 다시 전화를 하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오 선교사는 한국으로 나가서 윤이를 돌봐 주고 싶었다. 하지만 선교지의 상황은 오 선교사가 한국으로 잠시나마 나갈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은혜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