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을 향해 함께 사역했던 분들을 떠올리다 보면 답답함이 몰려온다. 심한 무력함에 눌려있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우려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기 일쑤이다. 중국 상황 변화로 인해 중국사역을 포기하고 온 가족이 철수했거나 중국 정부로부터 출국을 강요받아 온 가족과 함께 정든 지역을 떠나야 했던 동역자들 중에는 잠시 숨고르기를 한 뒤 또 다른 사역지로 재배치된 이들도 있지만 아직도 국내에서 다음 사역을 모색하면서 기도 중인 이들이 적지 않다. 사모들 가운데는 선교비 후원이 끊겨 생활 전선에 뛰어든 분들도 있다고 한다. 중국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내년까지 모든 선교사들이 추방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아직 별 탈 없이 중국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들은 물론 중국교회도 수년 동안 ‘동토’ 속에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1980년대 초반, 한국이 중국(당시는 중공으로 불림)과 수교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선교 비전을 갖고 화교들과 함께이거나 한국인들이 모여 작은 모임을 갖던 과거 시절을 생각해보면 40년 만에 눈앞에 펼쳐진 현재를 비관적으로만 보지 말자고 하고 싶다. 당시 중국이나 중국어를 알려 주는 책들도 거의 없었다. 두 개의 출판사가 펴낸 빈약한 중한사전이 있었을 뿐이다. 중국어 전공자 중에는 대만 국어(國語)일보사가 펴낸 중중사전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는 아니었다. 필자가 함께한 화교들과 모임에서는 중국어를 잘하지 못할지라도 사도신경, 주기도문만큼은 중국어로 고백하자고 했다. 이 모임에서는 설교도 중국어로 들었다. 설교자에 따라 중국 방언 중 하나인 산둥어(山東語)로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필자는 훗날 중국 산둥지역에서 만난 이들이 산둥어를 구사할 때 상당 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당시 모임의 2부 순서에서는 중국교회사, 중국의 종교정책 등에 대한 책을 강독하면서 중국과 중국인, 중국교회를 알아가기 위해 애썼다.
그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설령 중국 땅이 열려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영원토록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종교는 곧 아편’이라는 견고한 이데올로기 위에 서 있는 중국이 국가의 정체성을 온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통일전선전술에 따라 외부의 기독인들에게는 복음전파의 기회가 한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선교를 함께 준비하되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에 맞게 각자의 역할을 해나갈 것을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그 결과 중국과 수교에 앞서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대로 대만 등 화교권 선교사로 나가거나 중국과의 수교와 동시에 정식 선교사 신분은 아니지만 학생이나 비즈니스맨 등으로 중국 각지로 나갔다. 또 중국학을 보다 깊이 전공하면서 교수의 길을 가거나 중국과 화교권 선교현장으로 바로 갈 수 없을 경우 직장인이나 주부로서 중국선교에 힘쓰는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중보기도와 후원자의 대열에 서 있었다.
당시와 현재는 엄청난 변화와 간극이 있지만 선교에 대한 열정만큼은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점은 동일할 것이다. 아직 이후의 사역을 준비하지 못한 중국선교사들에게 도전하고 싶다. 지금이야말로 재충전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중국선교사로 헌신하기로 했던 초심을 회복하고 국내에서 사역의 또 다른 지평을 넓혀가자고, 후배 사역자들을 위한 모델이 돼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처한 위치나 재정에 따라 작지만 강한 선교적 가정교회를 만들어나가자고, 주일이나 평상시 모임을 진행할 때가 아니면 비어 있는 교회 공간이 적지 않다. 찾아보면 주중에는 어렵지만 주말이나 주일에 소규모 모임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공유할 수 있는 기독인들이 운영하는 회사들도 있다.
최근 국민일보, 한국기독공보 등 기독언론을 통해 알려진 경기도 김포 명성교회(김학범 목사)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코워십스테이션, 서울 수서교회(황명환 목사), 추수교회(김인호 목사) 등이 예배당 공유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계속되면서 예배당 공유가 여러 교회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코워십스테이션은 명성교회 등 8개 교회가 함께하는 공유 예배당이다. 주일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정해진 시간에 2시간씩 예배당을 사용한 뒤 다른 교회에 각 공간을 양보한다. 스테이션이란 개념은 여러 기차가 시간에 맞춰 정차한 뒤 떠나가는 기차역과 비슷하다. 코워십스테이션을 활용하는 교회들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교단 소속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등이다. 교회 일치와 연합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수서교회는 지난 2015년 새 성전을 건축하면서 구 성전을 작은 교회와 나누고 있다. 임대료 부담에서 벗어나 자립을 위한 시드머니를 확보할 수 있게 돕는다. 교단과 상관없이 개척교회나 자립 대상교회를 대상으로 공유한다. 임대료에 대한 큰 부담 없이 최대 3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현재 3개 교회가 각자 예배 시간에 맞춰 예배당을 활용하고 있다.
추수교회는 최대 120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 다목적실 교육실과 소그룹실 등의 복합공간, 40여 명이 모일 수 있는 카페를 공유한다. 대상은 교단 상관없이 성인 성도 20명 내외의 미자립교회이다. 추수교회가 예배하는 주일 오전 11시를 제외한 시간대를 2시간씩 나눠 사용할 수 있다. 교회 월세는 추수교회가 부담하되 월 사용료 10만 원만 내면 된다. 예배당 공유를 넘어 목회훈련까지 지원해 재정적 자립과 신앙 성장도 도우려고 한다.
선교사들은 교회는 건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교제와 모임이라는 것을 잘 보여줄 수 있다.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 전통적 방식의 개척 패러다임이 결코 이 시대에 유용하지 않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다. 선교사들은 공유 예배당을 사용하면서 월세 부담을 경감하고 선교 공동체의 본질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 선교사들이 건물 공유지에 들어가든 자신이 거주하는 곳 또는 특정 장소를 기도처든지 예배처든지 만들어 ‘선교 커뮤니타스(communitas)’를 형성하면서 선교와 전도 비전으로 충만한 기독인들을 착실하게 양성한 뒤 매주 또는 정기적으로 선교를 위해 국내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전도를 위해 주변 이웃에게로 나가면 된다.
특히 중국선교사들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기에 중국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곳을 집중적으로 찾아가서 복음을 제시한 뒤 중국인(한족 또는 조선족)교회로 연결해주면서 선교동역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다. 선교사들은 강소형교회 공동체 네트워크운동을 펼치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생활운동도 병행해갈 수 있다. 국내뿐 아니라 화교권 교회개척운동을 위해서도 선교사후보생들을 공동 프로젝트로 양성할 수 있다. 교회 구성원들은 다양한 일터와 관계돼 있기 때문에 일과 영성학교,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자녀학교, 결혼학교, 상담, 코칭, 재정교육, 기독교변증사역 등을 펼쳐나가면서 한국교회가 다시 복음 앞에서 헌신할 수 있게 갱신운동도 선도할 수 있다. 중국과 수교 전후 중국선교에 나섰던 이야기들을 모아 그동안의 중국선교와 중국교회 상황을 찬찬히 성찰하고 선교중국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중국교회와 화교교회들을 돕고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갈 수도 있다. 성경적 세계관을 담은 중국학 강의와 연구, 관련시리즈 콘텐츠를 발간하거나 영상화해 세계교회와도 노하우를 나누는 데 힘쓸 수 있다. 유튜브 친화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중국과 중국인, 중국인(화교)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때는 없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지금이 가장 기회가 많은 때라고 할 수 있다. 내일을 위해 잠시 천천히 가는 시간이라고 여기고 다음을 철저하게 준비할 수 있는 때이다. 이 같은 호기가 다시 온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세월을 아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도 복음을 직접 전하기는 어렵지만 복음을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외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때가 도래했을 때 그 계기를 잡을 수 있는 후배들을 더 많이 양성해나가는 올해와 내년이 되면 좋겠다. 중국선교사들이여, 다시 ‘야성’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자국어로 된 성경을 가진 이 민족을 위해, 이 땅을 위해 선교 열정을 다시 불어넣어 주는 자랑스러운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란다.
‘밀레니얼세대(1981년생∼1996년생)’, ‘Z세대(1997년 이후 출생)’ 등은 ‘규격화한 신앙(institutional faith)’보다는 ‘폭넓은 영성(wider spirituality)’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를 감안해 한국교회의 다음세대를 세우는 데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온라인이나 복합적인(hybrid) 디지털선교에 나설 이들에게 눈을 돌려주기 바란다. 우리의 작은 헌신이 성령의 바람과 파도를 타고 한국교회 안에서 한 영혼을 우리의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운동으로 발전돼 절망과 단절, 불통과 불공정의 이 땅과 교회 안팎을 치유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선교사들을 포기하신 적이 없다!
사진 | 픽사베이 왕빈 | 중국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