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 한다!’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작년 연말에 새해 계획을 세울 때, 새해에 해야 할 일의 목록에 원저우(溫州) 방문을 올려놓았었습니다(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우선순위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왜 원저우를 가보고 싶어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기독교와 관련해서 최근에 우리가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지명이 바로 원저우이기 때문입니다.
원저우는 ‘중국의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우선, 이 도시가 어떻게 해서 이런 아름다운 그리고 감동적인 별명을 갖게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평양(平壤)을 ‘조선의 예루살렘’이라고 했는데, 원저우에는 평양과 한자 발음이 같은 핑양현(平陽縣)이 있습니다. ‘만일 원저우를 방문하게 되면 그곳도 찾아보아야지’ 했습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에 원저우교회와 관련해서 우리가 듣고 있는 소식들은 대부분 박해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2014년 4월 27일에는 완공을 눈앞에 둔 원저우 싼장(三江)교회가 강제 철거 당해 우리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철거된 이유는 건축법 위반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크기와 높이가 건축법을 어겼다는 것인데, 실제 이유는 그 교회의 위치상 어디서나 십자가가 잘 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강제 철거의 기미가 보이자 교인들은 20일 넘게 교회당을 지키며 철거를 막으려 했고, 철거가 강행되자 “십자가 대신 내 목을 주겠다”며 항거했지만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철거가 집행된 날이 주일이어서 ‘중국, 해도 너무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두 달 전인 7월 7일에도 원저우의 두 교회의 십자가가 보안요원들에 의해 새벽에 철거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 현장들을 돌아보고, 성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웹진 <중국을주께로> 발행인 책임을 감당하는 데에도 유익하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마침 중국어문선교회에서 2007년 3월에 발행한 《중국관문도시》에 원저우가 실려 있어서 숙독을 했습니다. 이 책에는 48개의 도시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원저우기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아, 중요한 도시로구나!’ 했습니다.
원저우는 저장성(浙江省) 남부의 경제, 문화, 교통 중심지이다. 중국 내 20개 주요 항구의 하나로 지정된 곳으로, 기온이 온화해서 원저우(溫州)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또 물산이 풍부하여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원저우의 기독교 역사는 1867년에 시작되었으며,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0%인 70만 명 내외라고 수첩에 이런 사실들을 메모했습니다.
《중국관문도시》에는 원저우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복음주의적인 교회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도록’, ‘목회자 부족 문제를 잘 극복하도록’, ‘성도들이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경제력을 복음을 위해 사용하도록’, 이 세 가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중국관문도시》의 개정판이 나온다면 틀림없이 ‘원저우의 교회들이 박해를 잘 극복하도록’, 이 기도제목이 제일 위에 자리를 잡게 되겠지요.
박해는 팽이를 잘 돌게 하는 채찍 《중국관문도시》에 있는 것과 같이 원저우의 기독교 역사는 중국내지선교회(CIM)의 파송을 받은 요시아 잭슨(Josiah Alexander Jakson, 蔡文才) 선교사와 조지 스토트(George Stott, 曹雅直) 선교사가 1867년 11월에 현지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두 선교사 가운데 스토트 선교사는 왼쪽 다리를 절단한 지체 장애인이었는데, 중국내지선교회 설립자인 허드슨 테일러가 그에게 폭동을 만나면 어떻게 피신할 것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스토트 선교사가 한 대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애당초 저는 도망칠 생각이 없습니다!”
원저우의 기독교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분은 수트힐(William.Edward.Soothill, 苏慧廉) 선교사입니다. 그는 뛰어난 한학자로 원저우 방언으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였고, 많은 책을 집필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앞에서 원저우교회가 받고 있는 박해에 대해 말했지만 원저우교회는 초기부터 수난을 겪었습니다. 1884년 10월 4일에는 수트힐 선교사가 인도하고 있는 예배현장이 습격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원저우 최초로 세워진 감리교회인 청시교회(城西堂)을 비롯하여 선교사 숙소 등 여러 곳이 불타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갑신교안’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불탄 청시교회는 1898년에 중건되었습니다. 수트힐 선교사는 성전중건기를 작성해서 돌에 새겼는데 그는 이 중건기에서 “바라건대 복음이 방방곡곡 널리 전해지고 나날이 뜨거워지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이런 이유로 돌에 새겨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하는 바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성전중건기가 새겨진 비석은 지금도 청시교회에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원저우를 방문하면 꼭 찾아보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청시교회는 2차 대전 때는 일본군의 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가 된 뒤인 1952년 1월에는 4천 명 가까운 군중이 청시교회에 모여 제국주의자들이 이 교회를 중국을 문화적으로 침략하는 거점으로 삼았다고 성토를 했습니다. 고발[控訴]대회를 연 것입니다. 제일 큰 수난은 역시 문화대혁명 때였습니다. 원저우는 상업이 발달한 곳이어서 홍위병들은 이곳을 자본주의의 온상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공격하는 가운데 특히 교회에 집중타를 가했습니다. 교회는 폐쇄되었고 성경과 찬송가는 압수당해 불태워졌고, 교역자도 없어졌습니다. 교회·교역자·성경이 없는 ‘삼무(三無)’ 상태가 된 것입니다. 문화대혁명 때 중국 당국은 원저우를 ‘종교청정지역’으로 선포했다고 합니다. 종교적인 요소들이 깨끗하게 제거된 지역이라는 뜻이었겠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들겨 맞을 때마다 원저우의 교회는 더 부흥했습니다. 아마 팽이를 닮은 것 같습니다. 팽이는 맞을수록 씽씽 신나게 돌아가지요. 그래서 갖게 된 이름이 ‘중국의 예루살렘’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소망이고 또 교훈입니다.
지금 중국교회는 당국의 여러 제약이 목을 조이고, 코로나19가 동아줄이 되어 손발을 묶은 형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내실화하고, 강인해지고, 뛰어오를 수 있는 힘이 축적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믿음을 <중주> 가족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다가 보니까 원저우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네요. 그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호에는 ‘대변혁의 시대와 선교사의 미래 대응’에 대한 글을 기획으로 다루었습니다. 독자님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의 한결같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평강을 기원합니다.
사진 | 바이두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겸 웹진 <중국을주께로> 발행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