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3  통권 215호     필자 : 진평안
[기획]
주님께서 앞서 열어 놓으신 길을 따라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할 때 필자는 한족 대학생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대학생들은 새로운 국가주석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을 볼 수 있었다. 필자 또한 그의 부드러운 인상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중국 상황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종교 환경은 더 암울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소위 사회정화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악화됐다. 

그러는 사이 필자에게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족 대학생 사역을 내려놓고 티베트족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한번은 필자의 이야기를 듣던 중국 어느 도시 한 한인교회의 집사님 한 분이 어떻게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큰 변화를 겪으셨냐고 하면서 신기한 듯 바라보셨다. 원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보기에 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필자에게는 그 일이 그렇게 놀랍지만은 않았다. 

중국선교를 위해 훈련을 받으며 준비할 때부터 하나님은 중국 대학생과 티베트족을 품는 비전과 사명을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사명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조금씩 계획을 세우며 준비를 했다. 하지만 선교현장에서 철저하게 세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중국 대도시에서 대학생 사역에 집중하는 동안 티베트족에 대해 품은 비전을 까맣게 잊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일련의 특별한 사건을 통해 다수인 한족과 함께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아픔과 상처, 그들의 그늘진 삶의 모습을 보게 하셨고, 깊은 깨달음을 주셨다. 그리고 한 소수민족이 오밀조밀 모여 사는 동네 한복판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보다 앞서 행하셔서 티베트족을 섬길 수 있게 주님이 직접 열어 놓으신 길을 볼 수 있었다. 

티베트족을 만나고 보니 과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을 낮잡는 듯 대하는 한족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티베트족 친구들도 우리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미소를 보낸다. 게다가 우리 민족 역시 식민 치하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우리 같은 선교사들이 꼭 필요한 곳이 바로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티베트족 선교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더 훨씬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도 티베트족 선교는 모든 영역에서 난해하고 힘들지만 시쳇말로 ‘역대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필자의 티베트족 크리스천 친구는 경찰서에 두 번이나 끌려가서 구타를 당하면서 그만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말았다. 중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티베트족은 그들 민족의 종교인 불교(티베트불교/라마불교)만 믿어야 한다. 아마도 말단 경찰들 역시 티베트족인 티베트족 자치지역이라는 것이 그가 박해를 받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티베트족 자치지역에서 나름 부흥하던 한 가정교회는 핍박을 피하기 위해 삼자교회 등록을 신청했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들이 등록신청을 거절한 이유는 티베트족 자치지역에는 절대 삼자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궤변을 들이댔다. 티베트족은 티베트불교만 믿어야 한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 드러난 그 가정교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모임을 할 수 없게 됐다. 아직 삼삼오오 모여서 기도하며 교제를 나누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쯤 이러한 고난이 물러날지 기약이 없다. 요즘 중국 가정교회는 숨을 죽이고 있다. 티베트족 자치지역의 가정교회는 그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하다. 어떤 현지사역자는 내게 말하길 10명 이상만 모여도 그 즉시 공안들이 어떻게 알고 오는지 들이닥친다고 한다.



티베트족 한 사람이 회심하기란 정말 무슬림이 예수님을 믿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때에는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소수의 티베트족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역시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중국의 티베트족 크리스천들은 언제쯤 동족의 배척과 국가의 박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필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자를 티베트족에게로 부르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그리고 그 오묘하신 인도하심을 믿는다. 내게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티베트족에게도 동일한 일들을 행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진평안 | 중국사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