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3  통권 212호     필자 : 왕민
[특집] - 중국선교사 재배치 후의 사역 이야기
우연한 모습, 필연적으로 인도하시는 사역 재배치


사역지 철수와 재배치

필자는 2002년 2월 26일부터 중국의 한 도시에서 만 17년 4개월간 사역을 하다가 2019년 6월 27일 비자발적 철수를 하였다. 한국에 머문 지 7개월 만인 2020년 2월 1일에 다시 싱가포르로 재배치되었다. 재배치되는 과정은 비교적 짧은 7개월간이라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단순한 내용이 될 수밖에 없을 듯 하지만 재배치를 위해 기도하며 기다리는 동료 선교사님들께 조금이나 도움이 되는 글이기를 바랍니다.

2019년 6월 10일 싱가포르에서 뜬금없이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우리는 6월 27일자로 한국으로 출국할 비행기표를 예매해 놓고 철수를 준비하고 있는데 느닷없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박 목사님, 언제 싱가포르에 옵니까?” 싱가포르 중국인교회 목사님이 대뜸 이렇게 묻길래, “지금 상황에서 싱가포르에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이게 무슨 뚱딴지처럼 난데없는 일이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싱가포르로 재배치되는 신호탄이었다.

비자발적 철수 뒤에 가장 먼저 몰려드는 생각은 너무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중국인교회로부터 받은 전화는 ‘불가능’이라는 단어에 함몰시켜 버린 채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 지, 구체적인 인도하심이 전혀 없어서 그저 멍한 상태로 꽤 오랫동안 보냈다. 과연 재파송을 발을 수나 있을까? 후원이 중단되는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도 했다. 그렇게 몇 주를 지내는 중에 앞서 철수하신 선교사님들의 기도모임과 독서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오묘하신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한 지역에서만 선교사역을 하였었는데 필자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복음에 대한 이해, 신학적인 견해, 알고 있는 찬양, 목회적 감각 등은 모두 다 17년 4개월 전에 파송받을 때의 것들이었다. 물론 그 핵심은 바뀌지 않았겠지만 새로운 선교지로 재배치되어 나가기 전에 시대에 맞는 옷으로 갈아 입을 필요를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강하게 느꼈다.

만약 그런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그냥 이 상태로 선교지에 재배치되어 나갔다면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집하며 선교사역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오래 사역한 사역자일수록 그동안 쌓인 관록이 있기 때문에 교회나 선교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재배치가 된 뒤에 선교지 대상자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제까지 해왔던 것, 자신에게 익숙한 것으로 더 잘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것이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도 변했고, 사역지 환경도 변했으며, 대상자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모임을 통해 필자는 하나님 나라 복음과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조직이 아닌 공동체로서 교회 세우기에 대해 큰 도전을 받았다. 나름대로 이런 모임과 만남을 통해 다음 사역에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던 중에, 때마침 파송교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싱가포르신학교 입학 권유를 받고 다음 사역을 위해 싱가포르로 떠났다.

싱가포르 중국인교회 선교행전 29장
사실 싱가포르는 필자가 2006년에 안식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 당시 중국 대륙에서 온 유학생들의 모임을 섬겼는데 이번에 그 모임에서 제자훈련으로 섬겨 달라고 간곡히 요청해왔다.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주위에 알리고 새로운 후원자도 연결되었기에 결국 싱가포르로 재배치되어 출국하였다. 물론 싱가포르가 선교전략적 기지로 중요하기는 했지만 필자에게는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더 중요했다. 선교지라는 것이 선교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어야 하겠지만 그 선교지 자체가 선교사역의 목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곳에서도 이루어야 할 목표는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우리 가정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가 적합했다. 싱가포르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었기에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없다면 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하심과 우리가 섬겨야 할 중국인교회만 생각하며 기도에 전념했다. 싱가포르의 중국인교회는 현재 중국 대륙의 약 30여 곳에 있는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과 네트워킹을 통해 SNS로 예배 실황을 일주일에 3번씩 내보내고 있다. 물론 음성으로 내보내는 것이지만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바로 피드백을 해준다. 이러한 방식으로 예배를 인도하기에 중국 대륙에서 목회자가 없는 곳, 목회적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는 유익한 일일 것이다. 중국에서 비자발적으로 철수한 뒤 중국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게 된 선교사들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중국 대륙과 연결된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요즘 코로나 19로 더더욱 대인접촉이 어려운 시기에 방송사역의 강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한편 싱가포르 중국인교회 목회자가 중국 대륙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방송 예배로 섬기고 있는 반면, 정작 본인이 맡은 교회의 목회적 돌봄은 여력이 없어서 새로운 영적 자원을 제공받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에게 제자훈련과 주일학교사역을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 중국인교회가 든든히 서 나가게 될 때 싱가포르에 와 있는 중국인들을 더 많이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 주변국들의 화교 기독교회들과도 연합하여 협력하고 섬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중국인교회의 인적 구성과 구조를 감안할 때 조금만 더 수고를 더하면 전략적인 선교사역 기반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싱가포르선교였으나 파송교회 목사님이 싱가포르 또한 선교현장이라고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신 것이 싱가포르 재배치의 한 원동력이되었다. 그리고 싱가포르 중국인교회의 간곡한 도움 요청과 이에 기도와 재정적으로 협력해주신 후원자들, 이 세 가지 원동력으로 우리 가정은 싱가포르에 재배치될 수 있었다. 이제 탄력을 받은 싱가포르 중국인교회는 싱가포르 중국인교회의 선교행전 29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필자의 재배치 과정은 이랬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다른 분들은 재배치되어 나갈 때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제까지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을 것이고, 오랫동안 선교지에서 해왔던 사역도 있었을 것이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재배치되어 나가는 일, 앞으로 해야 할 선교사역은 쉽지 않겠지만 가슴 뛰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과거의 사역과 연계선상에서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 물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런 바탕 위에 그 시대와 문화를 복음으로 읽어내는 준비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버려짐’이 아닌 ‘뿌려짐’으로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 때 에베소에 가고자 하였으나 성령께서 가지 못하게 하시므로 결국 마게도냐로 가서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를 세운다. 비록 지금 대부분의 중국선교사들이 비자발적 철수로 인해 한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와 세계로 재배치되는 상황은 결국 이것은 흩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선교 활성화를 통해 급기야 중국 대륙마저 복음에 더 온전히 반응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비록 우리가 못 가더라도 화교들을 통해서든 SNS를 통해서든 더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선교의 불꽃이 더욱 세차게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우리가 미래의 중국선교사들을 위한 세례 요한 같은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 대륙에서 수많은 선교사들이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지역으로 대거 들어와 사역하게 되는 날을 위해 미리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 날에 같이 손을 맞잡고 선교사역을 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 땅으로 팔려갔지만 하나님은 그 땅의 흉년이 몰아쳤을 때 그렇게 팔려간 요셉을 통해 애굽과 요셉의 가족을 구원하셨다. 요셉은 마치 애굽 땅에 버려진 것 같았지만 애굽 땅에 구원의 씨앗을 미리 뿌린 것이다. 지금 철수한 중국선교사님들 역시 ‘버려짐’이 아니라 ‘뿌려짐’의 소망의 재배치이다. 그 길의 여정에서는 불투명하게 보이지만 그 길의 목적지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듯 선명히 보일 것이다. 바라기는 각 나라에 흩어진 중국선교사들의 연합사역을 도모하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선교단체와 교회들이 협력하고 공조하는 귀한 사역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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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민 | GMS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