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패왕별희》(1993)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중국의 5세대 감독 천카이거(陈凯歌) 감독이 연출하고,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던 《와호장룡》과 《색계》에서 리안(李安) 감독과 협업했던 대만의 왕후이링(王蕙玲)이 각색을 맡았다. 2017년 12월 22일 중국에서 먼저 개봉되고 다음 해 2월 24일 일본에서도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일본 소설 《승려 쿠카이가 당나라에서 귀신과 연회하다(沙門空海唐の国にて鬼と宴す)》라는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일본에서 주목을 받았다.
천카이거 감독이 2015년 《도사하산(道士下山)》을 연출한 이후 6년간 공을 들여 만든 《요묘전(妖猫传)》은 당 제국의 융성함을 재현하려고 후베이성(湖北省) 샹양시(襄阳市)에 600무(亩)나 되는 화려한 궁성을 조성하고, 2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는 등 대규모의 제작비가 투여된 작품이다. 한편 《요묘전》은 2019년 11월 23일 28회 중국영화제 금계백화장(金鸡百花奖)에서 미술상과 촬영상을 수상하였고, 55회 대만영화제 금마장(金马奖)에서 미술디자인, 시각효과, 조형디자인 부문에서 경쟁후보에도 올랐다. 하지만 천카이거 감독이 이 영화에서 미술과 효과 방면에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작품에 비해 작품성이 점점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비록 거액의 자금이 투입되었지만 흥행과 평가 두 가지 면에서는 실패한 작품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중국 판타지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종교적인 깊은 사색이 돋보인다고 호평했는데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에게 아쉬움을 전했다.
성당(盛唐) 시기 현종과 양옥환의 사랑 이야기는 오랫동안 수많은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원화(元和) 원년(806년)에 백거이가 창작한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투영한 장편 서사시 <장한가>는 당나라와 그 후대까지 낭송되었고, 현종 시기에는 이백·두보·왕유·맹호연 등 대시인들이 등장하였다. 영화에 이백과 백거이 시인뿐만 아니라 주술 법사인 쿠카이, 당 개원(開元, 현종의 연호) 연간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였던 아베노 나카마로(阿倍仲麻吕 晁衡) 같은 두 명의 일본인도 등장하였다. 국제 교류가 왕성했던 당 제국은 해외 유학생, 유학승이 모여들었는데 <왕오천축국전>으로 유명한 혜초(慧超)와 885년 귀국할 때까지 17년 동안 중국에서 활동했던 최치원도 포함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도성인 장안의 황궁에서 황제가 연이어 비명에 횡사하여 황궁 기록관인 백거이(황헌 분)는 일본에서 온 주술법사 쿠카이(소메타니 쇼타 분)와 죽음의 내막을 들추면서, 말할 줄 아는 검은 고양이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고 양귀비가 죽은 지 30년이 흐른 뒤 그녀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캐기 시작하였다.
백거이의 <장한가> 기록에 의하면 칠월 칠석일 현종은 양귀비와 장생전(長生殿)에서 하늘의 비익조와 땅의 연리지로 사랑의 맹세를 하였다. 현종은 극락지연을 베풀어 도성에서 양귀비가 그네를 타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숨죽이고 올려보았다. 일본에서 온 조형(晁衡)도 군중 속에서 그녀를 흠모하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백은 술에 취해 양귀비를 위한 《청평조(清平调)》를 지었다. 백학소년인 백룡과 단룡은 학으로 변신하여 하늘을 나는 환술(幻術)을 보여주었다. 이역 출신 절도사 안녹산은 연회에서 검무를 선보여 흥을 돋았다. 하지만 이 연회 뒤에 일어난 안사의 난으로 현종 시기 ‘개원지치(開元之治)’라고 불리웠던 당나라의 성세는 점차 쇠망의 길로 들어섰다.
절도사 안녹산은 재상 이임보의 신임을 받아 강력한 세력으로 확장하다가 이임보가 죽게 되자 국가의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양귀비의 친척 오빠 양국충과 갈등을 겪게 되었다. 양국충은 현종에게 안녹산이 모반을 일으킨다는 소환명령을 내리자 안녹산은 대군을 이끌고 양국충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거병을 하였다. 반란군이 낙양과 장안으로 쇄도하자 현종은 양귀비와 난을 피하여 산시성(陝西省) 마외(馬嵬)언덕에 이르렀다. 군병이 동요하자 장군 진현례(陈玄礼)는 양씨 집안을 처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고력사는 양국충의 수급(首級)을 들고 와 현종에게 양귀비의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깨울 수 있다고 말했다. 양귀비는 비단 줄에 목매어 자결한 것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황학은 양귀비 머리의 혈에 침을 놓아 시해법(尸解法)을 시행하였다. 석관에 안치된 양귀비는 깨어나 발버둥을 쳤지만 석관의 덮개를 열 수 없었다.

백룡은 평소 연모했던 양귀비의 시신이 독충으로 썩어 들어가자 독충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들여 자신은 죽게 되고 혼은 황실에서 키우던 검은 고양이의 몸에 들어간다. 검은 고양이로 변신한 백룡은 양귀비의 죽음과 관련된 인물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노년에 병든 황제는 7일간 밤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갑자기 고양이의 급습을 받아 눈이 멀어 죽었다.
진운초(陈云樵)와 춘금(春琴) 부부의 모습은 현종과 양귀비의 모습을 닮아있다. 진운초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황실호위대장을 맡았다. 고양이는 주술에 걸린 춘금을 가리키며 진운초에게 당신의 여자인데 구하지 않을 거냐고 물었는데, 이는 현종이 양귀비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하지 못한 것을 풍자하는 듯하다. 진운초는 춘금이 요물인 줄 알고 목 졸라 죽인 후 자신이 아내 춘금을 죽인 게 아니라고 외치며 정신적인 충격으로 결국 미치고 말았다.
우리는 해하전투에서 사랑하는 우희와 함께 장렬한 죽음을 선택한 항우에게는 찬사를 보내지만 자신의 목숨과 황권을 잃을 것이 두려워서 양귀비를 끝내 지키지 못한 현종을 비난하기 쉽다. 하지만 양귀비는 죽기 전에 현종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넣은 향낭을 건네주며, 현종의 나약함을 이해하고 자신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음을 예견하였다. 현종은 양귀비에 대한 집착으로 그녀에게 시를 써준 이백과 관심을 보인 일본인 조형을 질투하고 경계하였다. 현종의 양귀비에 대한 사랑은 집착과 과시로 그치고 말았다.
백룡은 어려서 아버지가 자신을 사부 황학에게 맡겨져 사부의 아들인 단룡과 함께 도술을 배웠다. 양귀비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숙부 집에서 자란 경험이 있었다고 말하며 백룡을 감싸주었다. 그 후 백룡은 양귀비를 연모하게 되었다. 백룡은 양귀비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검은 고양이의 몸에 맡기고 양귀비의 원수를 갚다가 양귀비의 곁에서 최후를 맞았다. 백룡의 사랑은 현종의 연약함에 비해 헌신적이었지만 양귀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야 복수를 내려놓고서야 마지막 안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쿠카이는 중국으로 오는 도중 배가 풍랑을 만나 죽음이 경각에 달한 것을 걱정했는데 옆에 있던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부인은 평온한 모습이라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이가 잠들어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쿠카이는 선상에서 만난 부인과 양귀비와 관련된 사건을 통해 무상밀(無上密)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영화에서 검은 고양이가 복수의 화신이 되어 사람들의 눈을 공격하여 살해하는 데 이는 인간이 진실과 허상의 경계를 눈으로 구분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성당의 문화에 경도되어 중국에 체류했던 쿠카이와 조형 두 일본인을 양귀비와 관련지어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쿠카이(空海 774-835)는 홍법대사(弘法大师)라 불리며 일본 불교 진언종(真言宗 동밀[东密]) 창시자로 804년에 중국에 와서 806년에 귀국하였다. 특히 그의 저작 《문경비부론(文镜秘府论)》은 문학이론에서 불후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조형은 본명 아베노 나카마로(阿倍仲麻吕, 698-770), 개원(开元) 5년(717년) 당나라에 들어와 개명하고 진사에 합격하였다. 영화는 조형이 양귀비에게 사랑을 고백하였고 양귀비가 마외언덕에서 변고를 당한 뒤에도 귀국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조형은 이백·왕유·저광희(储光羲) 등의 시인들과 교제하였고, 이백이 조형이 타고 귀국하던 배가 침몰하여 익사한 오보(誤報)를 전해 듣고 지었다는 《조경형을 위해 통곡하다(哭晁卿衡)》라는 애도시가 전한다. 천카이거 감독은 중·일문화교류사에서 기념비적인 일본인 두 명을 중용한 것이었다.
이 영화는 당나라의 융성함과 국제적인 위상 속에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가 녹아 있다고 해석하였다. 현종은 양귀비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질투하다가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지 못하고 왕위도 양위하는 등 비참한 처지가 되고 나라마저 쇠망의 길을 걷게 하였다. 백거이의 <장한가>는 한나라 황제가 경국지색을 밝히는 대목으로 시작하여 하늘과 땅보다 더 유장한 한이 있다는 말로 시를 맺었다. 양귀비의 사랑과 한은 황제(현종)와 왕조에서 기인한다. 양귀비는 당 현종을 비롯한 이백, 백거이 등 주변 인물과 후대 사람들에 의해 부단히 조명되어 오랜 세월 동안 ‘양귀비 문화’로 자리잡았고 앞으로도 부단히 재해석되고 변형되어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탄생할 것이다.
사진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